그믐달이 보름달을 품었다.
-가족들이 서로 맺어져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이 세상에서의 유일한 행복이다.-퀴리 부인
우리는 살면서 하늘을 몇 번이나 쳐다보며 하늘에 뜬 달과 별을 유심히 관찰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작정하고 고개 들어 올려다 본 적은 없을지라도 초승달부터 온달이 되었다가 다시 그믐달이 되는 과정을 우리는 충분히 보아왔다. 그래서 초승달과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시어머니의 품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식을 키우는 과정은 온전히 부모의 교육철학이었고 교육의 과정 또한 부모의 의지가 충분히 반영된 결과에 따라 지금 성인이 된 내 아이의 사회적 자리가 생겼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며느리를 키워낸 친정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시어머니의 깊은 품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온달 때 그런 그믐달의 깊은 품을 깊은 줄도 모르고 안겼다가 세월이 흘러 초승달과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헤아리게 될 만큼 성숙한 후 드디어 시어머니의 품이 되었다. 초승달부터 자라서 온달이 되었다가 비로소 새로운 둥지를 틀어 가족을 만들고 또 다시 초승달이 생기면 스스로 그믐달이 되어 감히 온달을 품는 현명하고 넓은 품 말이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럽게 낯선 집 대문 안으로 처음 들어서던 그 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었다. 대궐 같은 기와집 위채에서 물렁물렁한 장두감 홍시를 들고 총총걸음으로 나를 반기시던 시어머니와의 첫 만남의 순간이 떠오르는 것은 해마다 감에 대한 추억인 줄 알았다. 유난히 감을 좋아하셨던 친정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인 줄 알았다. 그래서 감나무를 올려다보거나 늦가을의 장터에 감들이 쏟아져 나오면 유난히 홍시가 된 장두감에 눈을 박아두고 가슴은 늘 무엇인지 모를 따뜻함을 느끼곤 하였다. 그런데 아들아이가 결혼을 하여 나란히 걸어 들어오는 며느리의 모습에서 문득 떠오르는 시어머니의 모습은 평소 느껴왔던 따뜻함을 넘어 아련함이 되었다. 되돌아보니 나와 시어머니의 첫 만남부터 떠나 보내드리는 세월까지 남편으로 인한 가족이 되어 가족으로 살았고 그 가족이야말로 가장 알뜰한 내용이었으며 감에 대한 추억을 빼고라도 내 인생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던 것을 이제 알겠다.
벌써 딸아이의 결혼 12년차가 되었다. 그때 딸에게는 낯선 가정에 새로운 부모님을 잘 섬겨주기를 바라면서 그 댁에서는 내 딸을 잘 품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참으로 단순하고 편안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가 시댁이 되어 보니 품어야 하는 며느리는 단 한 번의 내 사랑이 없이도 온달이 되어 우리 가족이 되어 주었다. 그런 차고 넘친 감사의 온달을 그믐달인 내가 품어야 하고 품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성숙해야 할 인생이 멀지만 누구라도 시어머니의 품이란 참 아름답다는 새로운 신선함이 느껴진다. 한편 문득 지인으로부터 보내온 선물이 안방까지 들어와 줄줄이 앉아 익어가고 있는 홍시를 들여다본다. 오랜만에 가슴이 찡해오는 참으로 새삼스러운 그리움을 품었다. 그리고 홍시를 들고 처음 나를 맞이하시던 시어머니와의 세월은 참으로 곱고 단정했었다는 그리움과 함께 한창 피어오르는 새댁의 볼처럼 투명하고 매끈한 홍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조심스럽게 만지지 않으면 터지기 일쑤여서 매끈매끈한 홍시를 두 손으로 소중하게 집어 든다. 평소에는 장 건강에 환영받지 못하여 멀리하는 과일이었건만 특별한 추억으로 오늘은 한 개 쯤 먹어보기로 한다. 예부터 귀한 손님이 집에 찾아오면 홍시를 내놓았다. 홍시의 겉과 속의 색깔은 한결같다. 안과 밖에서 한결같은 정성으로 대접하겠다는 주인의 마음이 깔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며느리를 향한 내 모습을 그렇게 완성되어 가고 싶었다. 말랑말랑한 표정으로 살가운 표현은 어렵더라도 며느리를 사랑하는 마음의 겉과 속은 홍시처럼 투명하고 귀하게 여기리라.
한편 감은 홍시가 되기까지 서리 내리는 초겨울까지도 빨간 등불을 켜고 인내를 감내한다. 오월 감꽃의 향긋함이 특별한가 하면 많은 꽃이 오월의 바람과 함께 산화하는 것과 달리 열매가 된 이 후에도 봉오리에는 마른 꽃을 달고 있다. 그리고 가을날 갖은 고난을 겪은 감이 익어서 숙성되면 비로소 투명하고 먹기조차 아까워 가지고 놀고 싶은 홍시가 되어 우리 가까이에 선다. 선한 가정에서 곱게 자라 선한 우리 집안에 가족이 된 며느리에게 나도 감꽃과 홍시 같은 추억하나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연하고 부드러운 과육은 단단하고 야무진 까만 씨를 품고 싹으로 잉태하기 위한 젖줄의 근원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홍시>라는 노래에서 홍시는 엄마이고 생명의 근원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온달로 우리 가족이 되어 들어온 며느리가 그믐달이 되어가는 동안 그가 엄마 되어 엄마이면서 엄마의 배경이 필요할 때 기꺼이 과육으로 남아 나에게 영원한 보름달인 며느리를 그믐달의 가슴으로 끝끝내 품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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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행복한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
어느 가정이거나
누구의 이야기거나
꺼내 놓으면 신선하여 보기에 참 좋습니다.
아마도
그런 것일 것입니다.
늘 고맙습니다.
연말도 많이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