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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왜 전략공군인가?
육·해·공군 등 3개 군 가운데서 굳이 우열을 따지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국가 주요기능과 국민의 생활터전인 육상공간을 지키고 전쟁의 최종적인 승패 여부를 결정짓는 ‘터미네이터’ 육군(陸軍), 국내외를 경유하는 거의 모든 무역과 물자 수송의 통로 그리고 각종 자원의 보고인 바다를 책임지면서 국가 제반활동의 안정성과 유사시 장기전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는 ‘수호천사’ 해군(海軍), 그리고 하늘을 통해 어떠한 공간으로든지(지하, 해저를 제외하고)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여 공격과 방어 양측에서 적의 기선을 제압하는 ‘전위대’ 공군(空軍)까지 모두 나름대로의 중요성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륙과 해양의 지리적 입지를 공유하는 한반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이후 이들 3군 가운데서 공군이 전쟁의 주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제1차 걸프전(1991년)과 코소보전쟁(1999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대테러 전쟁(2001년)과 제2차 걸프전쟁(2003년)의 사례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공군력이 강한 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물리적 제약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공간인 하늘에서의 우위 확보는 자연스럽게 육지와 바다에 대한 통제력 강화로 연결되며, 결국 전장에서의 산소와 다름없는 ‘행동의 자유’(주도권)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오늘날 육군과 해군까지 자체 항공부대를 보유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언젠가 모 화장품 회사 광고에 ‘산소같은 여자’라는 문구가 쓰인 적이 있는데, 공군(Air Force)이야말로 3군 가운데서 단연 ‘산소같은 존재’인 것이다.
일찍이 손자(孫子)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부전승(不戰勝)을 전략의 최고 경지라고 강조한 바 있다. 풀이하자면 침공하려는 자가 처음부터 패배 가능성을 인정하여 아예 싸움을 걸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태를 유지,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흔히 말하는 ‘전쟁 억지력’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1) 침공하는 적 군사력의 손실 극대화, 혹은 2) 침공한 적의 정치, 군사, 경제적 중심에 대한 치명적 보복 가운데 적어도 하나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육군은 영토의 점령, 탈환을 실시하여 실전에서 결판을 짓는 역할에 관한 한 독보적이지만, 지상 공간만으로 작전 공간이 제한된다는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때문에 육군에 크게 의존해서는 자국 영토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을 강요받기 쉽다. 반면 공군은 현존 내지 잠재적인 적국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이 나타날 경우 하늘을 경유하여 육지, 바다를 망라한 어떤 공간으로든 전투기를 출격시킬 수 있으며, 보다 신속하게 적을 영토와 중요 거점의 최대한 바깥에서부터 상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필요하다면 직접 적의 중심을 겨냥한 대규모의, 정밀타격을 수행할 수도 있다. 물론 무장 탑재규모나 작전수행의 장기간 지속능력에 있어서는 해군이 공군보다 우월한 것이 사실이지만, 신속 대응의 측면에서 해군의 수상전투함과 잠수함은 음속 내외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공군 항공기들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요컨대 전쟁의 원천적인 억지를 관철하고, 실전에서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한 가운데 가장 신속하게 적의 침략을 좌절시키거나, 적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보복을 강요하여 승리를 주도해내는 능력은 공군이 육·해군과 비교할 때 확실한 경쟁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공군만의 강점을 극대화시킨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를 ‘전략공군’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특정한 소규모의 공간만을 범위로, 육·해군의 작전에 종속되어 화력지원 정도나 해 줄 수 있는 ‘전술·작전수준 공군’의 차원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창공의 도전
이젠 새삼스럽게 들리겠지만, 반만년에 걸친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는 대륙과 바다의 호전적인 이민족들과의 무력 충돌로 점철되어 왔다. 그리고 이는 21세기로 들어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여서 세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10위권을 자랑하는 군사강국들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처지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한국을 둘러싼 이들 국가들의 공군력은 양적 규모의 질적 수준에 있어서 결코 만만치 않다.
반세기가 넘도록 한국 안보의 최대위협으로 남아있는 북한은 3개 비행사단 소속의 약 600여대 이상의 전투기와 80대 가량의 폭격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다른 재래식 전력들과 마찬가지로 북한 공군의 보유기종은 대다수가 Mig-19/21 전투기와 IL-28 폭격기를 비롯한 구식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나마 신형으로 평가되는 Mig-23/29, Su-25는 각 30~40대 정도로 남침보다는 평양에서의 방공 임무를 수행하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게다가 북한 공군의 조종사들은 연간 비행훈련시간이 20시간 이하에 불과하여 실전에서의 능력이 크게 의심받고 있다. 따라서 유사시 한국은 북한의 구형 전투기들과의 공중전보다는 전방에 배치된 몇몇 전투기들이 가미가제식 자살에 투입될 가능성을 더 경계해야 할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대륙의 중국과 바다 건너 위치한 일본이 보유한 공군력은 질적 측면에서 한국에 대한잠재적 위협으로 다가오는 추세에 있다. 과거 중국 공군은 북한 못지않게 ‘규모만 압도적일 뿐, 대다수가 구형기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1990년대를 기점으로 뚜렷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만주 선양군구와 산둥반도의 지난군구에 각 1개 비행연대 규모로 배치되어 있는 러시아제 Su-27 제공전투기는 언제든지 한반도의 항공우세를 노릴 수 있다. 한편 중국은 대만 해협과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조어도) 영유권 분쟁이 진행 중인 동중국해 연안의 난징군구에 Su-30MKK 다목적전투기(초음속 대함미사일 탑재)를 2개 비행연대 규모로 배치했으며, 역시 동중국해를 작전권으로 하는 중국 동해함대 소속 항공대도 Su-30MKK 1개 비행연대를 보유 중이다. 이 전투기는 기본적으로 대만이나 일본의 해군력, 또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될 수 있는 미 해군의 항공모함 전단을 제압하는 역할을 제1순위로 할 것으로 평가되지만, 필요할 때는 언제든 남해에서 대만해협과 바시해협, 말라카 해협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해상 자원수송로를 차단하거나 서해 및 남해에서 예상되는 한국과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관련 분쟁에 투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항공자위대로 대표되는 일본의 공군력은 전투기 총 370여대에 달하는 규모보다 질적 측면에서 그 위협성이 부각된다. 이미 1970년대 후반부터 확보된 세계 정상급의 제공기 F-15J를 200대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서부 항공방면대 소속의 2개 비행대대는 현 시점에서도 동해와 남해 상공에 투입되어 독도를 둘러싼 대립에서 일본의 항공우세 확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이 90여대 도입을 추진 중인 F-2 지원전투기 1개 비행대대도 이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일본과의 해양관할권 분쟁에 맞서려는 한국 해군을 겨냥한 해상차단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퇴역을 앞둔 개량형 F-4를 대체할 80대 규모의 후계기종으로 공대지 타격능력이 우수한 F/A-18 ‘수퍼호넷’ 혹은 F-15E '스트라이크 이글‘ 등을 고려 중이다. 여기에 일본은 수년 이내에 KC-767의 공중급유기를 총 4대 도입할 예정이기 때문에 F-15J와 F-2의 작전범위는 곧 한반도 상공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평가된다.
도약의 조건들
오늘날 한국 공군은 9개 전투비행단 소속 약 520여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기종별로는 180대 이상이 F-5E ‘타이거-Ⅱ’이며, F-16 '파이팅 팰콘‘이 170여대(국내 생산된 KF-16 블록52가 130여대이며, 나머지는 1980년대 초 ’평화의 가교‘ 사업으로 도입된 블록32), 그리고 F-4 '팬텀’은 약 100대에 이른다. F-5를 로우(Low)급으로 대량 확보하여 북한과의 양적 격차를 줄이고, F-4를 유사시 북한 영토에 대한 직접 공격을 수행할 수 있는 하이(High)급 장거리 전폭기로 운용하는 가운데, F-16을 다목적의 미들(Middle)급 기종으로 삼아 북한 질적 우세를 결정짓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전력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 공군은 일단 북한에 대한 양적 열세를 질적인 우세로 상쇄시킬 수 있을 만큼의 전력을 구축하는데는 일단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휴전선 이남에서의 우세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전술·작전수준 공군’에 불과했으며, 탄도미사일이나 대량살상무기 관련 시설 혹은 북한군의 중앙지휘소를 비롯한 북한의 군사적 중심을 직접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중국, 일본과 같은 주변 강대국의 공군력을 상대로 한 전쟁억지나 국지전에서의 신속 대응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공군은 이러한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으며, 「국방개혁 2020(안)」에서도 포함되었던 공군 관련 계획들은 따지고 보면 그러한 노력들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공군을 진정한 ‘전략공군’으로 진화시키기 위해 이뤄야 할 목표와 이와 직접 관련된 과제들은 무엇인가?
첫째, 향후 한국 공군이 보유할 전투기들은 최소한 한반도 전체와 주변수역을 작전범위로 삼을 수 있는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기존의 KF-16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당장 부딪히는 문제는 오는 2015년부터 시작될 KF-16의 후계자는 무엇이어야 하느냐의 문제다. 한국 항공산업의 간판으로 떠오른 TA-50 ‘골든이글’의 확장형 FA-50은 국내 실전화보다는 수출 확대쪽이 더 가치가 높을 것이며, 국방과학연구소의 KFX(한국형전투기) 개발은 당위성만을 앞세우기에는 비용과 시간 측면의 효용성에서 위험부담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력화 시기만으로 따진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택은 미국제 F-35 ‘라이트닝-Ⅱ’일 것으로 평가된다.
둘째, 유사시 한국 영토에서 최대한 바깥에서 적 공군력과 상대하여 이들의 침입의도를 견제 및 저지하고, 필요할 경우 적의 정치, 경제, 군사적 중심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고성능의 하이급 전투기의 적정 규모 확보다. 해당 전투기는 한반도를 넘어 주변국 영토 상공에 이르는 영역에서의 장시간 작전수행이 가능한 1,200km 이상의 전투행동반경이 요구되며, 대규모의 공대지 무기 탑재능력과 적 방공망 밖에서 발사될 수 있는 원거리(일명 스탠드오프) 정밀유도무기를 보유해야 한다. 지난 2002년 우여곡절끝에 선택되어 총 40대가 도입되어 있는 F-15K '슬램이글‘이 여기에 해당한다. 2008년 이후에는 20대의 후계 기종 도입이 예정되어 있는 F-15K의 추가도입으로, 다만 추가도입 대수의 규모가 당초 절반으로 축소된 F-15K 기종의 나머지 추가확보 일정과 규모가 또 다른 과제로 남을 것이다.
셋째, 전략 수준의 비전투 지원기종의 조속한 전력화 문제다. 어차피 한국 공군이 양적 규모에서 북한이나 주변 강대국을 압도할 의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를 상쇄시킬 수 있는 제반 지원능력을 실전에 투입되는 전투기들에 제공할 수 있는 특수기종들의 확보가 여기에 해당한다. E-X 사업으로 잘 알려진 조기경보통제기, 적 후방에 특수전 부대를 투입시키는데 필요한 중대형 수송기, 적 대공망 제압을 위한 전자전 전용기, 그리고 전투기들의 지속적인 작전 수행을 보장하는 공중급유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E-X 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당초부터 가장 유력한 기종이었던 보잉의 E-737이 선정된다.
수송기의 경우 한국 공군은 10여대의 C-130 '허큘리스‘ 중형 수송기와 CN-235 수송기 20대를 보유 중인데, 이들은 군수물자 수송과 병력수송 임무에 함께 쓰이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 특수전 부대를 투입하기 위해서만 동원될 수 있는 경우가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전자전 전용기는 개발이 진행 중이며, 공중급유기 도입은 최근에야 비로소 국방중기계획에 반영된 후발사업에 해당한다.
넷째, 공군 전력체 사이의 조직화된 정보통신능력 구축이다. 네트워크 중심전(NCW)으로 알려진 오늘날의 군사 정보화능력 진화는 정찰기 등에 의한 정보수집이나 분석뿐만 아니라, 각 실전수행 전력에 해당 정보를 최대한 빨리, 필요한 수준으로 전달하는 것이 생명인 것이다. 공군의 경우 지금까지 전투기 자체의 레이더나 지상 관제소의 음성 관제보다 높은 수준의 ‘데이터링크’ 체계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해당 통신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비용이 무기체계 획득에 못지않게 고액을 요구하며, 몇 년 이내에 퇴역할 예정인 구형 기종에까지 이를 당장 설치하기에는 비용 낭비로 그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이 경우 데이터링크 체계가 탑재된 신형 기종의 도입까지 이 과제를 마냥 방치하여 실전에서의 효과적 전력운용은 그만큼 희생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결언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전략공군으로 진화하기 위한 필수조건’에 해당하는 전력 요소들은 길게는 지난 1980년대부터 소요가 제기되어 온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군 중심의 예산 편성, IMF 외환위기에 따른 대형 전력화사업의 연기, 그리고 남북한 화해협력 분위기 등에 편승한 국방예산 확보의 문제 등과 같은 복합 요인들로 그 시기와 규모가 번번이 뒤로 미루어져 왔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은 대량살상무기라는 비대칭 전력을 통해 한국에 대한 위협능력을 유지 및 배가시켰으며, 중국과 일본의 공군력은 한반도의 안보를 보다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사실 본문에서 언급된 내용들은 상당 부분이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만큼 오랫동안 필요성이 제기되어온 것이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해온 과제들인 것이다. 이번의 기회에 매듭을 짓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자주국방을 원한다면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수준의 하드웨어를 들이는 것에 결코 게을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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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 멋진 글입니다. 우리 공군은 전쟁억지력에 있어서 어느 군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국 공군의 발전을 기원할 뿐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공군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