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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입도하게 된 감동적인 이야기들
2015년 4월 입도를 중심으로 한 입도 이야기입니다.
베를린도장 이○○ 여성51세입문일(141.5.29)
저는 1992년 4월 4일, 독일 땅에 첫 발을 디딘 이후 올해로 23년이 되었습니다. 숙명여대 독문학과를 졸업 후, 5년의 유학생활을 계획하고 독일에 왔었는데 독문학과 독일역사의 매력에 빠져, 그리고 무엇을 하면 끝을 보려는 저의 성격으로 인해 계속 독일에 남아 독문학 석사과정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베를린 자유대학으로 대학을 옮기면서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던 독일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면서, 의대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임신과 함께 모든 학업을 포기하고 가정과 육아에 전념하면서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아 키우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결혼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열길 불속을 경험해 보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다 제가 선택한 길이고 그렇더라도 한번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2012년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이혼을 진행중에 있습니다. 법적인 문제로 아이들(첫째가 15살, 둘째가 13살, 막내가 10살)은 전 남편이 키우고 있습니다.
힘들게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중 그나마 경제적으로 형편이 풀려가던 2008년, 한국식당에서 우연히 한국 교민 중년남성에게서 천지성공 책 번역 제안을 받고, 책을 보니 당시, 카톨릭신앙을 하던 제에게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내용이여서 그냥 책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러다 2010년 저는 다시 현재의 삶에서 어떤 삶의 의미도 찾지 못하는 정신적 방황 속에서, 7년 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게 되고 떠나오면서는 부모님과 한국의 산하에 마음으로 작별을 고하고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긴 채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15년 전, 제 자신과 약속했던 글을 쓰려고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3년 전 받아서 책장에 그대로 꽂아 두었던 천지성공 책을 다시 보게 되었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면서 뭔지 모르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방을 왔다 갔다하다 정원으로 나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오랜시간 동안 잊고 살았던 지나간 날들의 회한과 고국에 대한 깊은 상념에 빠져 제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나는 자고 있었던가’. 스스로에 대한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온 외국 생활, 그저 견뎌내며 겨우 버텨 온 시간들..., 아픈 기억들을 잊으려 하면서 기억들을 지워 버린 시간들,짧은 밤이였지만 참으로 깊이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였습니다.
저는 천주교 모태신앙인으로서, 성당 회장을 맡으시고 한국 천주교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던 외할머님을 본받아, 독일인 성당에서 한 때는 사목위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3년전 자리를 내어놓으면서 신앙에 대한 마음 또한 떠나게 했던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카톨릭교리에 대한, 인생에 대한, 우주에 대한 의문들이 다시 떠오르게 한, 이 책의 저자가 누군지 정말 알고 싶어졌고, 저자의 다른 저서가 있다면 꼭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다른 것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인천 주안 도장에 연락해서 다른 책을 구입 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고, 결국 본부를 통해 베를린 도장 이강호 성도님을 소개 받게 되었습니다. 이성도님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개벽실제상황과 도전을 받아서 매일 정독을 했습니다. 도전은 당시 저에겐 재미있는 무협지처럼 느껴졌고 스케일이 커서 좋았고 한시로 본 성구 말씀들이 너무 좋아 자꾸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왠지 이강호 성도님을 만나는 것은 부담이 돼서 자꾸 피하고 싶어서 혼자 집에서 하겠다 했었으나 이강호 성도님의 설득에 못 이겨, 결국 이강호 성도님 집(당시는 가가도장 개념)에서 매일 오전과 밤에 도무넷 VOD를 통해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도훈 말씀을 들으면서 받아 적었고 그리고 많은 증산도 강사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다가 5개월 후에 입문하면서 포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후천 가을 개벽을 종말론 분위기로 전하는 이강호 성도님을 따라 저의 지인과 천주교 집안인 한국의 가족들과 친척까지 나름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전하면서 가족들은 저를 사이비종교에 미쳐있는 사람쯤으로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졌고, 거리에서 만나는 독일인들과 여호와 증인, 몰몬교, 성당 사람들까지도 만나 포교하면서 때론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외면도 당하면서 저는 철저히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독일친구들도 등을 돌리고 급기야는 집에서까지 애들을 다 놔두고 쫓겨 나와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당시는 태을주를 하루종일 입에 달고 다녔었고 새벽 4시반이면 일어나 수행을 하며 포교를 하였지만, 주부로서 저의 본분인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였고, 저를 바르게 이끌어줄 도장의 선배신앙인이 없었습니다. 결국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돌아버린 어머니는 애들도 만나면 안된다’고 남편이 경찰에 신고하여 모든 걸 다 잃고 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집은 나왔지만 저는 태을주철야수행, 21일정성 기도와 수행을 하며 베를린자유대학 도서관에서 진리책을 읽으며 대학생 포교를 열심히 했고 메일 주소도 많이 받고 도장에도 많이 인도하였으나 그때는 도장 책임자가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하여 자의적 해석으로 증산도의 참진리가 아닌 종말론적 이야기, 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린시절 기억까지 다 떠올려 지면서, 한참 만에 정신이 들기 시작했고 주위를 둘러 보니 저의 처지가 참 불쌍해 보였고, 특히나 아이들도 볼 수 없는 상황이였지만 한편으론 그래도 저에겐 상제님 진리가 있어 즐거웠습니다.
입문 후 미친 듯이 나름의 진리공부와 수행 포교를 하다 일년 반 만에 현실에 눈을 뜨면서 신앙 생활도 쉬게 되고, 그간의 힘들었던 결혼생활이 저의 신앙생활이 계기가 되어 남편과 이혼을 결정하게 되면서, 집을 나와 전전긍긍하며 경제적 자립을 준비하던 중에, 2014년 9월 베를린에서, 2년전 읽었던 환단고기 바로 그 책에 대해 북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여 강연회 당일 현장에서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북콘서트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마치 내안에 있던 어두운 기운들이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였습니다, 아니 정말 그랬습니다.
그 후로 조금씩 제 자신을 추수릴 수 있었고, 10월부터 열렸던 환단고기 역사교실을 참석하면서, 다시 증산도 진리서적들을 보면서 도장에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역사교실의 인연을 타고 다시 이○○ 포정님과 김○○ 본부장님을 만나면서 2015년 2월부터는 도장 일요치성에 참석하고, 그리고 베를린 자유대 학생들중 수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도장에 초대해서 다도와 태을주 수행이 현실생활에 얼마나 유용한지 그리고 우주1년, 음양오행으로 본 건강 강의를 본부장님과 이포정님이 하면서 저는 독일어로 통역을 했습니다.
독일 젊은 대학생들의 배우려는 진지함과 수행하는 자세속에서 동양문화가 오히려 이곳 사람들에게 더욱더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이제는 이곳도 개인주의로 팽배하고 백인 우월주의나 타 인종 배척의 지난 수세기의 잘못들을 극복하고 넘어서고 있다는 확신, 상제님의 손길이 이곳 많은 사람들과 젊은 학생들에게도 섭리로 작용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여기에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그리고 사람과 사람간의 따스한 만남을 통해, 독일 청년들의 밝고 희망찬 모습을 보았습니다.
입도 결심을 하면서 새벽수행을 하고 진리공부를 하면서 조상님과 많은 문중 어른들과 선배신앙인들을 생각하면, 감사와 회한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합니다. 지난날의 숱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저를 증산도 도문으로 이끌어 주신 상제님과 태모님, 태사부님과 사부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참회와 봉사, 기도와 수행, 근본신앙에 보다 철저해져서 그리고 진리로 무장한 자유로운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포교의 열매를 맺어, 많은 독일사람들을 살리고 이 크신 천지일월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드리면서 이만 줄입니다. 그리고 저의 오랜 외국생활로 한글이 매끄럽지 못함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니시노미야 권○○ 男 35세입문일( )
예전에 한국에서 살고있을때 집에 스카이 라이프가 설치 되어있었습니다. 채널을 넘기다가 우연히 상생방송을 잠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어떤 방송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상제님의 진리를 알게 된건 김아즈사와 부모님에게 증산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한달에 한번 일본에 올 때마다 이진나미 수호사님께서 증산도에 관련된 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천지성공>을 처음받고 읽었을때는 굉장히 어렵고 이해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일본으로 이사를 와서 환단고기를 읽고 왜곡된 우리나라의 역사와 증산도의 진리를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개벽실제상황, 한민족과 증산도, 상생의 문화를 여는길, 춘생추살, 도전, 증산도의 교리, 100문 100답을 읽으며 김아즈사와 니시노미야 도장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일본어로 치성을 드리는 니시노미야 도장은 제가 치성을 드리기에는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오사카 도장에서 포정님과 이보순 신도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조상님과 조상님의 제사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도전을 읽었을때 [사람이 조상에게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제사를 지내는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태상종도사님 말씀중에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게 뭐냐하면 자기자신이다. 그러면 가장 존귀한 내몸뚱이를 낳아준 사람이 누구인가? 나의 근본이 무엇인가? 바로 내 조상이다. 그러니까 조상은 하나님보다 더 높은 존재다. 따라서 사람은 제 조상을 잘 받들어야 한다] 하신 말씀이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2번의 죽을 고비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이크로 큰 사고가 났었습니다. 다행히 골절과 큰이상은 없었지만 피부 이식 수술을 받고 퇴원을 했습니다. 불교신자인 어머니께서 절에 갔을때 주지스님께서 어머니를 보자마자 [조상님이 자식을 살리셨어] 하고 지나가셨답니다. 어머니께 그말을 들었을 때는 말도 안돼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증산도 공부를 하면서 사람마다 보호신이 있고 자신의 조상이 각자의 보호신이다 라는걸 알게 되고 나서 조상님의 음덕과 조상제사의 중요성을 더욱더 잘알게 되었습니다.
사고 당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증산도 공부를 하고 다시 생각해보면 조상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셨다고 다시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증산상제님의 진리를 만날수 있게 도장으로 인도해 주신 김아즈사 가족분들께 감사드리고 후천개벽을 통해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일심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매일 청수를 잘모시고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고 신앙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주이도 장○○ 女83세
저는 올해 83살 되는 할머니입니다. 오래전부터 부엌에 청수를 떠놓고 조왕신께 가족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고 있었고 사월 초파일날과 칠월칠석날엔 절에 기도하러 가곤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생때부터 증산도를 공부한다던 둘째 아들이 “어머니, 조왕신이 바로 조상님입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외에도 여러 얘기를 해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별대수롭지 않게 들었습니다. 시집와 농사지으면서 또 여관을 운영하면서도 수십년간 제사명절을 지내왔으니 조상님들이 보살피심이 당연히 있겠다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둘째아들은 가끔 시간이 나면 “어머니, 이제 석가불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말법시대라 이미 140년전에 도솔천의 주인이신 미륵부처님이 우리 조선땅에 오셨다가 일을 마치시고 천상보좌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미륵님의 도를 만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곤했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예전 모슬포에서도 미륵불 믿다가 가산 탕진한 사람 여럿봤다”라고 하면서 “증산도에서 믿는 것이 미륵불이면 너도 믿지말라”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아들이 증산도 신앙하는 것을 항시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작년에 둘째아들이 학원강사 일을 하다 쉬게 되면서 참 많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어서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지’하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들놈은 태연하게 아침새벽수행을 몇 달씩하면서 틈틈이 저에게 세상돌아가는 법에 대해서 얘기했고 지금 뉴스나 시사프로에서 하는 얘기들이 다 옳지는 않다면서 비판적으로 말하곤 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들놈이 틀렸다고 반박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점차 그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 이도도장 식구들이라고 하면서 아들이 강호철 수호사님과 여성신도들을 저희집에 초해하여 태을주 체험담 얘기를 듣고 저도 열심히 태을주를 읽어보겠다고 약속하고 그날부터 조금씩 숫자를 늘려가면서 지금은 하루에 칠팔천독이상을 읽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몸에 힘이 많이 붙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한달에 한번씩 천도식때마다 치성참석을 하였습니다. 차츰 적응이 되고 또 저와 같이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입도하는 것을 보고 저도 입도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제주이도 강○○ 男59세
저의 형제는 3남 3녀입니다. 현재 어머님은 돌아가시고 아버님만 살아계십니다. 부인과는 종교적인 갈등문제로 약 15여년 전에 이혼을 하였고 슬하에 아들1명과 딸 1명이 있습니다. 딸은 현재 시집을 가서 수원에 살고 있으며 아들은 서울에서 CCTV 설치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증산도를 접한 것은 1980년도 초반에 울산에서 현대 조선소에서 근무를 할 때 서점에서 이것이 개벽이다와 증산도 진리책을 보고 당시 부산에 있는 도장에 몇 번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전 현재의 증산도 본부 괴정동에서 4박5일 교육이 있을 때 참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서울로 가서 마포에 있던 도장에도 나가 보았습니다. 우주1년 도표와 우주변화원리 책을 여러번 읽으면서 인생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삶을 마감하고 1987년도에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와서 당시 용담동에 있던 도장에 방문을 하고 입도를 하였습니다. 이후 공인 중개사 사무실을 내고 일을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도장 중심의 신앙이 잘 안되었고 도적부 정리가 되었습니다.
10여년 전부터 몸이 많이 좋지 않아 고생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아들집에서 약 1여년 동안 기거를 하면서 상생방송을 꾸준히 시청해 왔습니다. 작년 초반에 제주도에 내려와 있는 동안 제주시청에서 진리 홍보를 하고 있던 신도들을 만나서 다시 신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처음 입도를 함께 했던 부철용 신도가 꾸준히 문자와 전화를 주면서 신앙으로의 삶으로 인도를 해주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동안 동대문 도장에 2번 정도 참석을 하였고
약 3개월전에 제주도에 다시 내려와서 직장을 잡고 정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 신도의 인도로 다시 제주이도 도장에 수차례 방문을 하고 태사부님 어천치성 때 참여를 하고 과거 알던 신도들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책임자분과 신앙에 대한 상담을 통하여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의 바로 밑에 여동생이 안성도장에서 입도교육을 받고 입도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함께 상제님 진리속에서 성숙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이제 제 나이가 환갑에 닿아 가고 있습니다. 살아온 육십여년 인생에서 삼십년씩 나눠 두 번째로 증산도 신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창 나이에 접했던 진리를 이어오지 못하고 이제 황혼줄에 접어들어 다시 찾게 된 것이 제 자신의 인생의 운명이 아닌가하고도 생각해 봅니다.
우주에서 천지일꾼을 찾는 이때 조약돌 하나 없는 심정으로 성경신을 다해서 신앙을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합니다.
다시 신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철용성도님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게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보은
정읍연지 양○○(女50
저는 선비의 고장 장성군 북이면 달성리 궁동마을에서 1남 3녀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모두 출가 시키고 아내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도인으로 전국 명당을 손수 찾아가서 그림으로 그리셨고 알 수 없는 물형부를 그리시며 지역에 경로당 부지를 헌성하셨고, 경로당을 지어서 시사 할 정도록 주변에 인망이 있으셨으며 그 인연으로 인하여 저도 경로당에 무료 봉사를 해주고 있습니다.
아버님 생전에 항상 하신 말씀이 욕심을 버려라 과도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고 하셨으며 남을 도우며 검소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증산도 신앙하는 최○○ 신도님을 만나게 되어 증산도 상생방송을 자주 보면서 증산도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최○○ 신도의 지극정성과 상생방송을 시청하면서 증산도가 세계종교 참진리를 확신하면서 도장에 방문하게 되었고 수호사님으로 부터 진리교육을 받으면서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불교신앙을 하고 있고 저 또한 불교에서 증산도 진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으나 입도를 결심하고는 한집안에 신앙이 둘이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내를 증산도 도장에 인도하였습니다.
싫지는 않는 내색을 하였고 입도 후 정성을 들여서 아내와 함께 증산도 신앙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을 어르신들도 관심을 보이는 분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있으며 장성 쪽에도 상제님 성소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조상님의 음덕으로 상제님의 진리를 만나 입도 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도하기 까지 친절하게 조력을 해주신 인도자 최○○ 성도님께 감사하고, 정읍연지도장 모든 성도님들께도 감사합니다. 증산도 참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보은
전주경원 최○○女18
작년 가을 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사건은 저희 가족 모두 심적인 방황을 하게 했습니다. 엄마는 방황 속에서 증산도를 알게 되었고 언니의 천도제를 지내며 언니의 혼을 위로했습니다. 엄마를 따라 도장에 몇 번 나갔지만 증산도가 뭐하는 곳인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태을궁에도 한번 가서 이야기들을 들었지만 온통 의문투성이었고 상제님이 하늘에 계시다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이란 것이 잘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검정고시 시험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저에게 정식으로 증산도 공부를 해보고 입도를 하길 권했습니다. 처음엔 공부하는 것이 싫어서 도장에 가는 게 싫었는데 도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많은 영상과 피피티 자료들, 도전을 보면서 1번 듣고 2번 듣다보니 진짜 증산도가 맞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도장 선생님도 현재 포감이 되어 의통구호대를 조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맞이하는 대변화속에 인류를 구원하는 특공대라니 정말 도장선생님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직은 많이는 진리를 잘 알지 못하고 어렵지만 엄마 따라서 도장도 더욱 잘 나오고 수행, 진리공부를 잘해서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이 원하는 참된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전주경원 이○○남70세
1993년경 제가 철도 기관사로 철도청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부기관사로 저와 함께 일을 하던 순천조례도장 전인군성도가 개벽이라는 책을 권해주면서 증산도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그 이후로도 간혹 태을주를 기억하며 쭉 읽어왔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깊은 인연을 맺지 못한 채 20여년이 훌쩍 지난 2015년 1월 26일 저는 뇌경색으로 떨어져서 전주예수병원에 2주 동안 입원 치료 후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다시 태을주를 찾게 되었고 태을주를 약 20분정도 읽으니까 백회혈로 차고 시원한 기운이 들어오더니 머리가 맑아지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 바로 이거다. 증산도 증산도가 있었지’하면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쁨처럼 상생방송을 틀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상생방송에 나오는 상제님의 말씀들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뼈 속 깊숙이 파고 들어왔습니다. 뇌경색을 앓는 동안 그 고통으로 실성한 사람처럼 자꾸 횡설수설하고 삶의 의욕이 없어 자살까지도 생각하게 되었으며 죽지 못해 목숨이 붙어 있다는 생각에 누워 있는 제 자신을 보면 오직 제가 할 수 있는 건 태을주를 읽고 또 읽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계속 태을주만 읽고 싶어졌고, 그렇게 태을주를 계속 읽자 뇌경색으로 인한 고통도 많이 살아지고 몸이 많이 회복이 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주변 집에서 먹던 밥을 내 자신이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서는 절망하게 되었고 도문에 들고자 하는 생각도 끊겨 요양원에 들어가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 와중에 집에 수호사님과 성도님들이 함께 오셔서 주과포 치성을 모셔 주었고 주기적으로 주과포 치성을 올리고 기도 수행을 하라는 권유도 듣게 되어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몸이 많이 좋아졌고 다시 맘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곳을 간다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저도 탈거라고 열심히 쫒아 가는데 버스는 무정하게 떠나 버렸습니다. 잠이 깨고 나서 기분이 너무 언짢았습니다. “나 같은 병자는 후천을 못 가는구나. 후천 버스를 놓쳤구나”하고 낙담하고 수호사님께 전화해서 꿈을 이야기하며 저는 도를 못 닦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청수도 안 모셨습니다”하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호사님이 한 말씀해 주셨는데 제 뒷통수를 한방에 갈겨버리는 너무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수호사님은 “ 사람이 한 번 뜻을 정했으며 죽어도 그걸 밀고 나가야지 인생 한번 살면서 그 뜻 하나를 못 지켜 상제님과 천지신명님께 마음이 들통 났다고” 그러면서 “ 그 버스는 후천가는 버스가 아니라 저승가는 버스인데 상제님께 기도하니까 살아난 거”라고. 너무도 충격을 받았으며 부끄러움을 느껴 다시 마음먹고 신앙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동안 불교 공부를 하면서 가지고 있는 모든 책을 불태우고 오직 상제님신앙과 태을주에 목숨을 걸기로 하였습니다.
‘아~ 오직 태을주만이 내게는 희망이구나’ 라는 강렬한 신념은 태을주를 정식으로 전수받고 증산상제님의 대도진리로 들어가는 입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완벽히 몸이 낫지 않았지만 태을주를 많이 읽어 몸도 마음도 회복이 되어 상제님 진리를 이 세상에 펴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입도를 허락해주신 천지일월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전주경원 김○○ 여 47세입도일(145.3.1)
지나온 세월을 생각해보면 모두 상제님 진리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혼 후 저희 부부는 삶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몸도 아프고 심신이 지쳐 아버지 묘소에 가서 자살을 생각키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죽을 용기가 있다면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가 솟구쳐 입에 삼키려던 수면제를 뱉어버리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삶의 의지를 더욱 다지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산의 아나법화연수원에서 묘법연화경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정공스님과 정견(명엽)스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12년 전 정견스님(인도자인 김정숙성도)과 첫 만남이후로 묘법연화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를 하면서 저에게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눈이 틔워지면서 기도를 하게 되면 영상메시지(신도체험)들이 제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유배달, 택배일 하루 3시간 수면시간이 생활로 굳어져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이지만 영상메시지가 나타나고 내면의 소리에서 울림이 일어나는 날이면 장수 극락사 정견스님을 만나러 곧장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상생방송을 보고 증산도를 공부하시기 시작하신다고 하셨고 또 어느 날에 들르니 증산도에 정식 입도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저에게 미륵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야기며, 앞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도전 속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태을주를 적어주며 읽고 다니라고 하였고 대구에 돌아가 저는 늘상 태을주를 틀어놓고 태을주를 따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태을주를 읽으니 하얀 도포를 입고 수염이 희고 긴 할아버지가 자꾸 나타나셨고 누에고치도 보였습니다. 스님은 누에가 조선의 모습이고 누에고치 실이 12000배 나오듯이 앞으로 12000도통군자들이 나와서 앞으로 미륵님의 세상을 건설하는 걸 보여준 거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태을주를 계속 읽자 어느 날 전쟁상황이 터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며 피비린내가 코를 진동하는 영상메시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은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스님을 뵈러 극락사에 가서 스님을 모시고 전주경원도장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수호사님, 포정님과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눴고 도전, 개벽책, 진리책을 사가지고 가서 집에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랜 조상님 같으신 분의 영정 3개가 스쳐지나가면서 커다란 고목나무가 보이더니 중앙에서 하얀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매화꽃으로 한반도를 그려주셨습니다.
자꾸 나타나는 영상메시지와 현몽들을 보면서 더 이상 입도를 미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 빨리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입도 날짜를 받아놓고 선몽을 받았습니다. 애아빠가 집을 샀다며 보여주는데 아주 허름한 초가집이었습니다. 처음에 외관을 보고 실망을 하였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겉모습과는 다르게 넓고 깨끗한 집이었습니다.
아마도 증산도의 도세가 겉으로는 사람들이 보기엔 별거 없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미륵부처님의 이상을 구현하는 정말 위대한 진리이고 이미 내면적으로는 탄탄히 구축되어 있는 것을 보여준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과 같이 입도를 해서 기쁘고 남편과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하여 천지에서 꼭 필요한 일꾼이 되겠습니다.
통영정량 하○○ 女59세입도일(145.4.26)
저는 지리산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부모님의 보살핌아래 어린 시절을 순박하게 자랐습니다. 1980년대 시집을 와서 다른 풍습에서 오는 고달픔속에서 삶을 지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불교를 신앙했고 시집와서는 시어머니의 권유로 기독교를 신앙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마음에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0년전에 강○○ 성도를 만난것이 이생에서 크나큰 복임을 자득하면서 언제나 맘속으로는 나라를 세우신 단군임금님의 가르침속에서 물흘러 가듯이 삶을 영위해왔습니다. 증산도의 가르침에 관심가진것은 작년 7월 20일 태을궁대천제에서 강성도를 따라 함께 참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태을궁에서 진행된 행사와 모든 공연할 때부터 이후 종도사님 도훈말씀에 이르기까지 상제님의 진리문화가 참 새로웠고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인도해주신 강종선 성도님께 참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저는 자주 강성도님의 집을 찾아가서 집안상담도 하고 영성적 깨달음에 대해 경청했었습니다. 저는 천부경속에서 진리의 깨달음의 길이 열렸기 때문에 4년정도를 매일 읽어 왔습니다. 특히 외손자가 없어서 개인적으론 손자를 갈구를 해왔는데 천부경을 읽어면서 단군님의 은혜에 외손녀를 얻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천부경을 읽어온것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증산도에 와서보니 천부경을 중요시 하는것을 보고 참진리를 전하는 곳이구나 그리고 입도공부를 해보니 이것이 옥황상제님의 진리이구나 !
저의 삶속에서 이뤄졌고 천부경 속에 바탕이 되어서 살아왔기에 증산도 입도교육을 통해 부족하지만 기본적인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저는 외손녀키우는 일 때문에 당장 집중력을 가지기 힘들지만 생활속에서 천부경 태을주를 읽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내 가족들의 행복을 기원하고자 남은 이 생의 시간을 미흡하지만 정신 정진으로 상제님 태모님의 진리를 받들고자 합니다. !
부산 온천 이○○男18세
저는 부산전자공고의 공기업·대기업 공채 대비반에서 이○○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공채 대비반을 끝마쳐 갈 즈음 선생님께서 『한민족과 증산도』라는 책을 주셨는데,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는 어머니께 『한민족과 증산도』 책을 아시는지 여쭤봤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나중에 종교 내용이 나온다며 별로 좋지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책의 중반부터 그런 내용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류○○문명 사진전>에 김○○ 수석포감님의 차를 타고 이동하며 그 내용을 슬쩍 여쭤봤습니다. 이수정 선생님이 벌써 그만큼 읽었느냐고 놀라셨습니다. 김문규 수석포감님을 만났을 때 뭔가 친숙한 느낌이 들고, 예전부터 알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는 듯한 묘한
기분도 들었었습니다. 사진전을 재미있게 관람한 후에 맥도날드에서 선생님께서 햄버거를 사주셨는데, 그 때 김문규 수석포감님께 음양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음양에 대해 듣고 나니 사람의 생김새로 성격도 맞출 수 있고,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나서 신기했습니다. 그 날 원래는 각자 시청에 모이기로 했는데, 제가 낮잠을 자는 바람에 늦어서 김○○ 수석포감님이 집 앞으로 저를 태우러 오셨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만난 게
다 인연이 있어서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후 책을 읽으며 가을 개벽이라는 용어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씀드렸더니 우주 1년에 관한 만화책을 주시면서 우주 1년과 상극, 상생 등에 관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또한, 도전에 나온 내용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신기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2년 동안 심각했던 불면증이 매일 밤 잠자리에서 태을주를 들으며 속으로 읊었더니 서서히 고쳐진 것입니다.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인데, 고등학교 1학년부터 태을주를 알기 전까지는 정말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매일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피곤한 몸에 씻고 잠을 자려 해도 새벽 2시가 지나기 전까지는 절대 잠이 들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날은 밤을 새우기도 했고, 피곤한 채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날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태을주를 들으며 자는 날이 점점 많아질수록 잠도 편하게 자게 되고, 낮에 피곤한 경우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광안 도장에서 강의를 듣게 되었고, 증산도에 관해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온천 도장에도 방문해보고, 궁금한 것들은 선생님께 물어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주말에는 어머니 일을 도와드려야 해서 남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따로 시간을 내어 도장에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평일에는 헬스를 갔다가 특공무술을 가는데 마치는 시간이 대략 10시 20분쯤입니다. 그런데 김○○ 수석포감님과 이○○ 선생님께서 제가 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매일 저를 데리러 와 주셨습니다. 지금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두 분도 바쁘시고 피곤하실 텐데 정말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밤마다 도장에 나가서 태을주 수행을 하기도 하고 주말에 시간이 맞을 때는 진리 공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도장에 들어가면 분위기도 너무나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진리를 알면 알수록 증산도가 정말 대단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주 동안 매일 도장에 나가서 진리 공부를 하였습니다.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서 밤을 새웠지만, 다음날 도장에 와서 입도 시험과 면접을 치렀고, 4월 29일에 입도 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증산도로 이끌어 주시며 많은 노력을 하셨던 김문규 수석포감님, 이수정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겠습니다!
부산광안 김○○남41세
대학교때에 친구로부터 증산도를 한다는 말을 듣고 처음 증산도 광안도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환단고기를 읽었고, 도장에 계신 분과 환단고기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증산도의 첫발걸음이었습니다만, 그때는 이것이 이토록 대단한 것인줄도 몰랐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죠. (이때 저의 성격상 어디서 고개를 잘 숙이지 않는 뻣뻣한 목줄을 가진 사람이었던터라, 저희 부모님은 불교이신데요, 저는 절은 가나 법당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서성이다가 절밥만 먹고오는 머그런… 기분이 좀 내키면 법당안에는 들어가도 방석에 앉아 있고 절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첫발걸음에 증산상제님과 태모고수부님에게 예를 다하지 못하는 불경을 범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중국으로 가서 중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8년이 넘는 시간을 그리고 일본에서는 1년 넘게 생활하면서, 저는 개인적인 인격수양의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때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면서 많은 생각의 변화를 갖게 되었답니다. 이때 내가 왜 우리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났는지 왜 저사람들이 나의 형제가 되었는지등(지금 생각해보면 증산상제님의 진리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밑바탕이 마련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증산상제님의 진리에 대해선 전혀 몰랐습니다. 저는 가끔 한국에 들어오면 친구들을 보게 되었는데, 다행이 이때 저를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게 해준 전보영신도님와 가끔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때마다 전보영신도는 책을 주었습니다. 개벽에 관한 여러권의 책을 읽게 되었지만 그냥 읽지 않고 책장에 꼽아둔것도 있습니다. 거의 10년에 가까운 외국생활을 끝냄과 동시에 직장도 그만두고 2014년에 귀국을 하였습니다.
귀국을 해서 이번에도 저는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만난 한 스님은 저는 사업하면 안된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사업으로 한번 성공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잘안됐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저녁에 알바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생활을 몇 개월째 계속하다보니 솔직히 많이 힘들고 지쳤는데, 전보영신도가 2014년 동지대치성이 대전에서 있는데 올수있겠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그때 가겠다고 했습니다. 뭔가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저는 동지치성에 참석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태을주를 따라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주문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 가슴을 누르고 있던 큰 돌덩이가 사라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아버지만 보면 아무말이 없어도 속에서 주먹이 올라오는 느낌이였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있다는 것, 같은 집에 산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하지만 동지대치성을 다녀온 후로는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나를 짓누르던 무엇인가가 사르르 없어진 느낌이였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이건 그냥 스쳐지날게 아니다 그날로 저는 전보영신도에게 전화를 해서 도장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그리하여 광안도장에서 수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수행 7일째 저는 그날 온몸에 닭살이 돋는 첫번째 경험을 하게 되었답니다. 옆에 사람이 없는 바로 옆에서 이상한 톤의 목소리가 태을주를 같이 읽고 있는겁니다. 속으로 “그래 이게 말로만 듣던 신령님이 같이 태을주를 읽는 소리인가?”그렇게 생각하면서, 태을주에 집중하지 못했답니다.
정말인지 아닌지 몰라서 포정님과 다른 성도님에게 물어보니, 신령님목소리의 주파수가 사람과 틀리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잘 안간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더욱더 태을주 읽기를 생활화하기 위해서 mp3파일을 항상 틀어놓고 길을 가면서도 화장실에 있으면서도 듣기 시작했더니, 놀라운건, 저는 태어나면서 신장이 안좋았고, 장기간 외국에서의 생활로 인해 술을 많이 마시다보니, 1년전부터 소변에서 거품이 나기 시작하면서 거품의 양이 점점 많아졌는데, 지금은 그 거품이 없어졌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mp3파일을 받은 이후로 잠 잘때에도 틀어놓고 자는데, 하루는 제가 잠자는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핸드폰에서는 태사부님께서 태을주를 읽는 부분이었는데 갑자기 태사부님의 목소리가 “네가 아직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하고 야단을 치시는 목소리가 나면서 저는 누운상태로 엉엉 울면서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라고 하면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정말 정신이 멍했고, 그 멍한 상태에서 지난날의 잘못이 파노라마처럼 쫘~~~~~~악 펼쳐지는데 너무도 많은 잘못으로 도대체 무엇부터 용서를 빌어야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서는 감사한 마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증산도 기본진리 공부가 거의 끝날 때쯤, 그날도 역시 잠자기전 도전을 읽고 책을 딱 덮고 핸드폰으로 태을주를 켜놓고 사실 순식간에 잠이 들다가 화들짝!!! 잠잔다고 누워서 그렇게 닭살이 돋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도공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사부님 목소리만 들려야 하는데, 두 목소리가 들렸답니다. 눈을 뜨면 그 소리가 사라질 것 같아서 눈을 꼭감고 소리에 더욱 집중했는데, 아무리 들어도 두목소리라………. 그때 “아… 조상님이시구나,,,, “ 속으로 그랬습니다 “제가 잘때도 태을주를 틀어놓으니 좋으시죠^^”너무 기뻤구요, 또 바로 옆에 조상님이 계신다는게 더욱 든든해진 느낌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답니다.
이제 4월 5일 청명에 저는 상제님의 영광스런 일꾼으로 새로 태어납니다,(사실 그날은 저의 생일이기도 해서 더 뜻깊은 날이랍니다) 다만 저는 태사부님의 말씀이신 “일심이 죽기보다 어렵느니라”을 매일 생각합니다. 도장에서 배우면 배울수록 도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증산상제님의 일꾼으로써 더욱 더 막중한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더불어서 제가 증산상제님의 진리를 알게 해준 60년공덕으로 저를 보내주신 조상님들, 어쩌면 거의 10년이되는 외국생활은 제가 상제님의 진리를 제대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조상님께서 그렇게 만드신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보구요, 10년이 되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진리를 전해준 전보영 성도님, 옆에서 가이드라인을 잡아준 이경문성도님, 긴시간 열정적으로 교리를 가르쳐주신 은포정님, 그리고 지금의 증산도가 있어서 저 같은 사람을 구원해주신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과 사부님의 은혜에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태사부님과 사부님께서 펼쳐놓으신 증산상제님의 진리를 잘 받들어 충실한 상제님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부산중앙 정○○男 55세
“조상님이 제1의 하나님이다.” “선영의 음덕으로 상제님을 믿게 된다” 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평소에 조상님 제사를 잘 모셔왔고 조상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습니다.
조상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고 이번 후천개벽기때 천상의 조상님이 자손 하나 건져내기위해 60년 공덕을 들인다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꼭 상제님의 진리의 말씀을 잘 받들고 신앙하여 조상님을 구원하고, 조상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참신앙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 성도님들의 격려와 성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천평화 전○○ 男79세입문일(145.3.21)
예수교 신앙생활에 말세론 수차듣고 말세구원해 준다고 가족까지 버리고 신앙생
활해 결국은 교주 죽고나니 허사 불교입문해 집안식구따라 신앙하다가 상생방송 TV를 보고 조상을 잘섬겨야 한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불교에서도 세상 끝날 용화낙원이온다 했지만 좀더깊이 상생방송을 보고 참 세상은 이대로 계속유지하는 세상이 않이다 성경에도 새하늘과 새땅이 창조된다 불교에서도 용화낙원이온다 하지만 가장알기 쉽게 더 확실하게 밝혀 알려주는 상생방송을 보고 또 세상의 기후변화 세계강대국들이 전쟁준비 모든 것을 볼 때 틀림없이 상생방송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여 상생 증산도 도장을 찾아 입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구미원평 전○○일반 상생방송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나 무기력한 청년기를 보내고 학교를 졸업한 후 경북구미에서 직장생활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던중 직장생활을 하면서 너무도 초라한 제 자신을 발견되었고 힘들다고 소문난 해병대에서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고자 입대한 후 고생 끝에 자신을 성숙시키고 해병대를 전역하게 되었습니다.
전역 후 직장생활과 부업을 통해 열심히 살았지만 뭔가 모르게 알 수 없는 부족함과 허전함을 채우지 못해 고심하다가 후배를 통해 “참○ 실현회” 라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신○○ 선생님을 만나 “나는 누구인가?” 나를 성찰하는 진리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사업도 커 가면서 기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는데 언제부턴지는 모르지만 집사람이 집을 나가고 병환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던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이로부터 사업도 엉망이 되어 결국 빚만 지고 모든 걸 놓아야 했습니다.
애들과 어떻게든 살아야 해서 막 노동을 시작했고 그렇게 몇 년을 인고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깨 TV를 돌리다가 우연히 상생방송에서 안경전 종도사님의 환단고기 LA편 콘서트를 시청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푹 빠져버렸고 날이 새도록 보고서는 그날 책을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장남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기제사를 모시고 있었기에 증산도에 가면 조상님들을 잘 모시는 방법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해서 도장을 방문해 책임자이신 김○○ 수호사님과 상담 후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조상님의 음덕인지 증산 상제님과의 인연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주문이 저절로 외워지고 도전, 천부경, 환단고기 등의 상생방송의 강의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상생의 대도”를 깨칠 수 있도록 열심히 성경신을 다하여 육임완수를 하는 천하사 일꾼이 되겠습니다.
시지도장 손○○ 女20세
저는 처음에 대학교 동아리 모집 때 관심이 있어서 증산도 동아리에 입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동양철학이나 수행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선배들에게 증산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면서 도장 방문, 수행, 대학 홍보 활동을 같이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 점을 바탕으로 해서 단순히 개인적으로 도를 깨우치고 수행하는 것만이 다가 아닌,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큰 마음을 지니고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입도를 결심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원시반본, 내 자신의 뿌리를 되찾자는 가르침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이 때 까지 부모님에게 소홀히 했던 것, 우리 한민족 역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증산도를 만날 수 있게끔 도와주신 조상님들의 은혜를 모르고 살았다는 점에 반성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마음을 바르게 먹고 겸손한 자세로 더 배워나가야겠다 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도장에서 진리공부를 하면서 포정님이나 포감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내용들이 저에게는 그토록 찾아다니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100권 이상의 철학 도서를 읽어도 느껴지지 않았던 삶의 목적, 존재의 근원과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훤히 비춰지는 듯 했고 잡다한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하나로 묶여 상제님 진리라는 이름으로 정리가 되는 해소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그 지식을 현실세계에 적용하면서 사는 지혜로운 삶을 살라고 말씀해 주셨던 포감님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앞으로 증산도인으로서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 저의 입도를 위해 무한한 기도와 정성을 드리셨을 조상님,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의지가 되어주셨던 인도자와 동아리 선배님들, 그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은혜를 보답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고, 더 나아가서는 상제님 말씀 받들며 사람 살리는 데 쓰임 받을 수 있게 내외면적으로 자신을 가꿔나가고 노력해나가는 참 된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대명도장 정○○여54세입문일()
저는 불교 공부, 주역, 풍수, 명리학 공부를 하면서 늘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살았는데, 가르쳐주는 강사는 왜 그렇다고 하는 것을 답을 주지 않아 늘 공부에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교 공부도 점차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공부를 더 멀리하게 했으니까요.
그러던 중 인터넷에 들어가서 증산도 글을 읽게 되었는데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김창익 성도와 인연이 되었고, 늘 카톡을 하는 사이가 되었고, 도전 등 책을 보내주길래 읽어보고 상제님을 믿어야 하겠다는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김창익 성도가 이곳은 공부를 많이 하는 곳이라 하길래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증산도를 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불교에는 명리 공부를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제 공부가 더 진전이 없었습니다. 주역, 풍수 공부를 할 때 강사는 “앞으로 남사고 말씀에 십리 길에 한 사람이 살 수 없을 때가 온다.” 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는 말씀을 해주지 않았고, 물어봐도 모른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문점들은 증산도 공부를 하면서 다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모르는 문제, 의문 사항들이 팔관법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풀리기도 했습니다. 도전 책을 읽을 때는 별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팔관법을 들으면서, 주문을 읽으면서 “모든 신들은 상제님께서 다 움직이시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저는 명리학을 했기 때문에 신과 조상님들에 대해 많은 상담을 해줬는데 그러면서도 거기에 대해 막히는 부분이 많았는데 증산도 공부를 하면서 많은 의문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상담할 때도 자신 있게 말하는 데는 증산도 공부가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앞으로 제가 열심히 수행하고 신앙할 수 있도록 조상님의 은혜를 빌 뿐입니다.
대명도장 양○○ 男8세)
저는 걸어다니고 말을 배울 때부터 아빠를 따라 다니며 증산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빠 따라 도장에 형아랑 놀러다녔습니다. 아빠랑 형아랑 수행할 때 옆에서 태을주를 흉내 내어 같이 읽었습니다.
형아는 입문한 상태였고 전 입도 문제가 없어서 그냥 다녔습니다. 형이 먼저 입도를 하고 저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서 어포포감님에게 교육을 받고 1015년 3월 29일 입도를 하였습니다. 앞으로 포감님께 열심히 배워서 증산도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명도장심○○女8세
저는 할머니와 엄마가 상제님께 기도해서 태어났다고 해요.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다니며 도장에 다니고 태을주도 읽었습니다. 지금도 치성 시간에는 태을주를 크게 읽어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 어포포감님인 엄마의 교육을 받고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태을주를 읽고 도장에도 자주 나오겠습니다.
대구대명도장박○○朴남72세
저는 팔관법 공부를 하루 하고 온 정효정이 “혼자 공부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같이 듣고, 자기는 입도하고 나는 입도 안 해도 되니까, 일단 와서 공부를 한 번 해보자” 라고 권유를 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공부를 해보니까 그 동안 풀지 못하고 궁금하던 모든 것들이 쉽게 풀려서 ‘여기가 참 진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여기사 나의 살 길이고 조상이 살 길이구나. 우리 가문을 구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입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안성봉산 강○○ 女56세입도일(145.4.5)
진리를 찾아서, 증산도가 종착점이기를
들어가며
21일 수행에 들어가며 서원을 세운 것이 있다면 21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21일 동안 들락날락 배우다 보면 뭔가 잡히겠지.직장에 매어 있는 몸으로 최대한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3월 한 달을 어찌어찌 시간 내다보니 드디어 입도 수기를 쓰는 날이 되었다. 수행하는 방법을 시작으로 주문 암송과 팔관법을 체계적으로 하나하나 배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이끌어 주시는 포정님의 노력에 감복하여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21일이라는 목표점과 교리책 2권이라는 목표점이 있기에 그 도달점까지는 어떻게든 가고 싶었다. 크든 작든 어떤 목표에 이르렀을 때의 성취감은 자신에게 위로가 된다. 자신을 향해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그 시간이 더없이 좋다.
1. 나의 꿈 도통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의 꿈은 도통하는 것이었다. 막연하지만 국어시간에 배웠던 “조문도석사가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이 화두가 되어 삶 내내 도가 뭣이길래 도를 들으면 죽어도 좋은 것인가. 당시는 전도관 박태선 장로를 영모님으로 모시며 온 식구가 신앙생활을 하던 때였다. 집이 전도관 교회고 온 가족이 믿든 안 믿든 신앙하였다. 오빠는 신학교육 통해 전도사로 나섰다. 무당이셨던 할머니의 무구도 사탄의 짓거리라고 다 태워 못하게 하였다. 어른들은 두려움을 느껴 손을 못댔지만 고등학생인 난 무서움이 없었다. 그러다 3년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다시 무업을 하셨고 아버지는 몇 번의 재혼 실패를 겪다 지금의 어머니를 만나 자신의 꿈인 농장을 이뤄 내셨다. 세파에 시달리느라 도통에 대한 꿈은 마음 한구석에 접어 둬야했다.
2. 오빠의 개종
전도관 전도사를 하던 오빠가 군대를 제대하더니 마음이 바뀌어 증산도를 한다고 한다. 어느 날 오빠의 안사돈을 만났더니 오빠는 도채비(도깨비) 교에 미쳐버렸다고 어찌하냐고. 거기는 막 귀신도 보고 같이 산다고, 오빠는 나에게도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을 보라고 하나님이 강증산으로 우리나라에 오셨다고 했다. 앞으로 지구가 지축이 돌아가면 다 죽는다고. 진짜 오빠가 미쳤구나. 남들 죽을 때 함께 죽으면 되지 어차피 힘든 세상 혼자 살아남아 뭣해요. 전 평범하게 살다가 죽을 랍니다. 하고 더 이상 듣지를 않았다. 오빠의 결혼 생활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올케 언니와 의견이 맞지 않아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3. 할머니의 망령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신령이 되어서는 우리 생활에 자주 개입하셨다. 무업을 누구에게 이어주지 못한 미련이 남았는지 자손 모두에게 하소연하시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나타나시어 도와주시고 어느 날은 제사를 지내주기를 바라고, 좋은 뜻으로 수호신 역할을 하셨다. 아시는 법사님께 부탁하여 천도를 해드리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꿈에 나타나 솥 뚜껑위에 앉으셔서는 주문 외우는 것을 가르쳐 주시겠다며 무슨 주문을 외워주시곤 하셨다. 할머니에게 마음속으로 나중에 제가 애들 다 키우고 장성하면 할머니의 뜻을 받들어 무업을 있겠으니 대략 54살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 빌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결혼생활 이십년 차 52살 때 애들 아빠가 간암 선고를 받고 3개월 만에 세상을 달리해버렸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삶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했다. 자식을 혼자 키워야하는 어머니로서 없는 사람 몫까지 해내야했다. 두 아이 대학을 보내고 군대를 보내고, 갑자기 혼자 남은 시간을 채우려 책 속에 파 묻혀 버렸다. 사회복지사가 되어 있었다.
4. 안성 ‘소망의집 그롭홈’에서 만난 ‘춘생추살’
사회복지사들 젊은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나이 들어 일할 데가 있겠어요 라는 막내 동생의 말에 그래 내가 사회복지사로 꼭 취업을 하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말리라. 안성 쪽에서 입주하여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주실 분을 찾는다. 오케이, 그러나 막상 일을 해보니 너무 힘들었다. 3개월 즈음하여 오빠에게서 “춘생추살‘이라는 책이 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 개월 책 냄새를 못 맡고 있었지만 몸이 힘들다보니 수면재 역할만 할 뿐이었다. 3개월 동안 조금씩 스스로를 재우면서 보던 중 중간을 넘기고 끝으로 갈수록 헉, 여기 뭔가 있다. 책을 덮는 순간 마음이 급했다. 오빠가 그 옛날 읽으라고 권했던 이것이 개벽이다 책이 보고 싶었다. 책 뒤에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여 책을 빌리러 갔다. 너무도 낯선 도장 분위기였지만 목적이였던 책이 궁금하여 책을 빌려다 열심히 읽었다. 내 자신의 비뚤어진 마음의 축이 턱, 하고 바로 서고 있었다. 말씀들이 무섭게 나를 때렸다. 시비를 가리지 말라. 도가 떠나니라. 그 구절에서 아, 도! 내가 언젠가 추구했던 그 도라니 일단 도를 들으려면 내 마음을 곧추 세워야겠구나. 시시비비를 날카롭게 따지던 내가 사라졌다. 바로 앞에 있던 안 좋은 생활들이 하나씩 내 마음에서 버려지고 있었다.
5. 청수 모시고 기도하기
포정님께서 도장에 나오라고 하여 가보니 옛날 어머니들이 장돗대에 물 떠놓고 천지신명께 빌던 행위를 매일 한다고 한다. 나도 배우고 싶었다. 세상 살아보니 멀리서 기도밖에 달리 방도가 없는 일이 비일비재다. 내 품에서 세상 밖으로 자식들을 보내고 보니 자식의 앞날을 빌고 싶은 게 어머니의 마음인 것을, 나도 배워서 제대로 옥황상제님과 천지신명들에게 빌고 싶었다. 교리공부를 하고 입도라는 것을 해야 신도로 인정을 받는다고 하신다. 어쨌거나 공부를 하여 알아야 그 다음을 판단 할 수 있을 것이기에 해보기로 했다. 시간은 어떻게 내지? 어쨌거나 이곳은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들어 올 수 있다고 했으니 인연이 있다면 신명들이 시간을 내도록 도와 주시겠지요 라고 말하고 애들 방학 끝나는 3월부터 해보기로 하였다. 인연이 있었나보다 입도 수기를 쓰고 있으니.
6. 수행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종도사님이나 오빠나 포정님이나 증산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 내가 사람들에게서 느끼고자 했던 그런 기운이다. 겉과 속이 진실한 그런 사람들 말이다.
수원인계 임○○女56세 입문일(145.4.26)
저는 증산도를 알기전 불교신앙을 하였습니다.
수원 딸집에 손자를 돌보아 주기위해서 수원역에 도착 하여 대순진리회 사람을 만나 대순 진리회 2달을 다녔습니다.
대순진리회 입도를하고 2달여 신앙을 하던중 세상 사람들의 평이 안좋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15년전 책을 구입하여 읽은 증산도의 진리와 흡사하다는 것을알고 우연히 상생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진리를 찾던중 불교에서 느끼지 못했던점을 대순에서 알게되었고 가야될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생방송을 보던중 대순진리회가 참 진리가 아닌 것을 느끼고 상생방송만 시청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태상종도사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오른쪽 목에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는에 어떻게 해야될지를 모르는데 제앞으로 오셔서 목에있는 지렁이를 빼주었습니다.
나중에 태을궁을 가서 알게되었지만 목에 지렁이를 빼준장소가 태을궁이었음을 동지 대천제에 태을궁에 가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 전화를 하여 도장을 방문하고 8관법 진리를 공부하고 참 진리임 느끼고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도장에서의 치성과 수행 진리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라 매일매일이 새롭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며 21일 정성수행을 마치고 100일 정성 수행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저의 조상님과 천지의 부모님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특히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게되어 기뻤습니다.
앞으로 천지일월 사체 부모님을 모시고 제가 가야할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천지일월 부모님의 진리에 천명을 받은 일꾼으로서 육임도체조직을 완수하여 천하사 일꾼으로 거듭태어나겠습니다.
보은 !!!
김포북변 서○○ 男50
저는 실업계 기계공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으나 직장 생활보다는 한 때 20대 초반부터 도에 대한 관심이 많아 홍태수 선생의 단의 실상, 단의 완성, 신단 등 도서등을 읽으며 단전호흡에 열중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불교의 참선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기독교, 카톨릭 그리고 다시 불교로 종교적 방황을 한 없이 많이 해 왔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마음은 언제나 불교적 관념으로 삶을 이어온 것 같습니다. 뒤돌아보니 중소기업 산업기계 기술직 근로자로 25년간 생활해 오면서 무엇하나 이루어 낸 것이 없구나 하는 반성과 함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만원짜리 지페를 보며 문득 세종대왕과 같은 인품과 지덕을 겸비한 분이라면 왠지 기대고 싶고 백성을 어여삐여겨 잘 살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한글 창제의 의미에 비추어 홀로 고사를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스쳐갔으며 같은 시기에 인천 황룡사내 인천 금강 불교 대학에서 기초 교양 과정인 불교학 1년을 마치고 2년 진학을 앞둔 상황에서 2학년 수업 요일이 달라져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증산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인간 농사 짓는 우주의 1년 도표가 눈에 확연히 들었고 보은, 해원,상생등의 언어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조개잡이하다가 보석,진주를 발견한 듯한 감동이었습니다. 현재 태을주 주문을 외우고 있으며 태을주 수행을 열심히 수련해 나갈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생활신앙을 활성화 하여 조직신앙을 할 때 더욱 기반이 튼튼해 질 수 있도록 해나갈 계획입니다.
입도를 준비하며 상제님 진리와 태을주 수행을 열심히 배우고 수행해 나갈 것을 다짐해보며, 상제님 진리를 만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상제님과 태모님, 태사부님과 사부님 그리고 조상님들께 깊은 감사를드립니다.
仁川朱安 홍○○ 男59세입문일
나는 중국 길림성 안도현 석문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 못하고 싸움질만 하였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사회쓰레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모님 속을 많이도 썩였지만 결혼하면서 차츰 사람 구실하면서 자식도 낳고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50살이 넘고 60살이 가까워오니 해 놓은 일은 없고 세월을 보내던 중에 아내가 주식을 사고부터 살림이 더 어려워지고 다툼도 잦아져서 아내가 가출하게 되다보니 앞길이 캄캄하고 속이 타고 해서 술만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주식문제로 임민혁 선생을 찾아 갔더니 (그때 당시 임민혁 성도님이 한국에서 입도하고 바로 중국 왔었어요) 증산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책도 주면서 보라 하였습니다. 집에 와서 책을 두세 번 보면서 증산도를 알았고 도전도 보면서 상제님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2011년 7월) 후부터 더 열심히 도전 보면서 수행을 하였습니다. 수행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을 헤쳐 오면서 상제님, 태모님께 열심히 속죄한 덕에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신앙해서 상제님 진리를 더 많이 전하여 개벽기에 수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겠습니다.
서울광화문 강○○男37세
유년시절부터 역사 관련 서책을 읽는 걸 좋아하여 다양한 책을 보다가 20대 초반에 우연한 기회에 환단고기 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의 막연한 느낌은 그저 우리나라의 민족적 위대함을 기리고 민족 자긍심을 일깨워 주기 위한 하나의 소설로 받아 들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위서 논쟁으로 인한 진위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우연한 기회에 광화문 도장 윤○○성도님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 번 환단고기를 접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증산도라는 단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타 종교 등에 대한 선입견으로 약간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추후 개벽강연회 및 세미나 등에 초대를 받아 종도사님의 말씀을 접하며, 현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야 되는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또한 윤○○성도님의 추천으로 광화문 도장에서 유종안 포정님의 역사 관련 강의 및 우주일년, 21일 정성 수행을 통해 증산도가 추구하는 참 진리와 추구하는 방향이 평소 생각해 오던 생각과 일치 한다는 믿음이 생겼으며 상제님의 말씀과 우리 역사의 바로 알기를 위하여 입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거든 역사를 읽을 것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라는 글귀를 마음에 새기며 항상 올바르고 참된 역사의식과 상제님 말씀인 증산도 진리를 현 생활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진정한 참 도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시카 김하늘 빅브레인 쯔위 김가연 유역비 조수훈 세븐틴 이동준 공효준 아이폰6S 다카하시 류현진 최진철 감독 오지호 제인박 설악산 아이유 조혜정 금수저 클릭비 박은지 김구라 신동엽 유재석 김태원 조규찬 신해철 노지훈 박진영 이윤미 김희정 스물셋 박서준 최시원 강소라 박신혜 김고운 히든싱어 심형탁 두찌빠찌뽀찌 무한도전 바보전쟁 두시탈출 컬투쇼 타오 장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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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돌고돌아 제자리 찾는 법이지요.
참진리를 만나는 과정이 감동적입니다.
잘 봤습니다~^^
조상의 음덕이 짱입니다.ㅎ
도움되는 말씀들이 많네요..
우리의 삶이란 진리를 만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란걸 알았습니다.
영혼의 성숙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너무길어요 흠
감동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