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이 맞는 거요? 덩굴이 맞는 말인가요?"
누가 국어학자인 밝덩굴 선생에게 여쭈었다. 밝덩굴이라는 필명을 쓰는 박선생님은 그 질문에 간단히 답변하셨다.
"둘 다 맞는 말이요. 표준어 규정 제3장 제5절 제26항에 있어요.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며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입니다. 이 규정에 따라 ‘넝쿨’과 ‘덩굴’을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였습니다."
넝쿨이나 덩굴은 길게 뻗어 나가면서 다른 것을 감아 오르기도 하고 땅바닥에 퍼지기도 하는 식물의 줄기를 이른다.
신설학교에 근무를 한 적이 있다. 신설학교에 발령이 난 교사들은 개교공신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근무한다. 내 학교를 내 생각대로 디자인 한다는 생각에서다. 교가도 새로 짓고 교표도 새로 만들고 교화와 교목도 새로 선정하여 심는다. 그런저런 생각으로 학교는 나날이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이 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학교 운동장 남쪽의 시멘트 옹벽이었다. 교도소 담장처럼 높다란 길이 80m의 시멘트벽을 어떻게 디자인할까? 어떻게 하면 높이 7m에 이르는 흉물을 가릴 수 있을까를 직원들과 논의하게 되었다.
"수수를 심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영화 붉은 수수밭에 나오는 그 수수 말이에요."
"키 큰 해바라기를 심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꽃도 보고 씨앗도 얻을 수 있어 좋겠습니다."
"토란도 좋겠습니다. 토란은 음지에서도 잘 자라니까요."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 중에서 여러 직원들이 선택한 것은 담쟁이덩굴이었다. 담장 밑이 햇볕이 닿지 않는 곳이어서 해바라기나 수수가 잘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담쟁이덩굴을 심어 친환경적인 담장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해결방안으로 선택되었다.
담쟁이덩굴은 포도과에 속하는 낙엽성 덩굴 식물이다. 줄기에 다른 물체에 달라붙는 흡착뿌리가 있어 무엇에도 잘 달라붙는다. 나무와 바위는 물론 방음벽이나 담벼락도 잘 타고 올라간다. 담쟁이 덩굴의 흡착뿌리는 덩굴손이 변한 것이다. 흡착뿌리는 잎과 하나씩 서로 마주보고 생긴다.
담쟁이덩굴의 잎은 머루 잎처럼 끝이 셋으로 갈라진다. 그래서 산에서 만나면 머루 덩굴로 착각하게 된다. 다른 나무를 타고 오르거나 너덜지대에서는 땅으로 기면서 무성한 덩굴을 만든다.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머루송이처럼 하얀 가루가 덮인 검은 열매가 송이로 매달린다. 처음 보는 사람은 머루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꽃은 초여름에 송이를 이루며 핀다. 연록색인데다 무성한 이파리에 가려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1905년,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가 쓴 ‘마지막 잎새’의 정체는 담쟁이덩굴이었다. 인도주의적 단편 소설인 이 작품은 어느 무명 화가의 희생적인 사랑을 그렸다. 폐렴으로 죽음을 앞둔 소녀의 절망적 상황을 안타까이 여긴 노 화가가 그려 붙인 잎새였다.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던 밤이었다. 담쟁이덩굴 잎새가 모두 떨어지자 화가 지망생인 소녀는 자신이 죽을 것으로 절망하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노 화가는 마지막 잎새를 대신 그려 붙여 놓았다. 그러고는 자신이 폐렴에 걸려 죽는다.
담쟁이덩굴은 관상용으로도 약용으로도 쓰인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약재로 쓴다. 산후 출혈을 비록한 각종 출혈, 골절로 인간 통증, 편두통, 대하 등에 처방한다. 줄기에서는 달콤한 즙이 나오므로 일본에서는 설탕이 나오기까지 이것을 감미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담쟁이덩굴을 한자 이름으로는 지금이라고 란다. 지금(地錦)이란 '땅을 덮는 비단'이라는 뜻이다. 가을에 아름답게 단풍이 든 모습을 보면 그 이름이 저절로 이해가 간다. 붉고 노란 담쟁이덩굴의 단풍은 정말 아름답다.
담쟁이덩굴의 번식은 대개 줄기를 잘라 삽목한다. 삽목은 어린 줄기가 좋으나 오래된 가지를 잘라 심어도 잘 자란다.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며 한여름에는 도심의 열기를 식혀주고 공해에도 강하여 도로 방음벽에 많이 심는다.
학교를 떠난 몇 해 후에 신설학교를 방문하였다. 뿌리줄기를 끊어 심은 담쟁이덩굴이 어느새 허연 회벽을 청벽으로 뒤덮었다. 처음 몇 년 간은 미미한 존재이더니 어느새 굵은 가지를 벽에 드리웠다. 그 청청한 모습에 학교의 이미지도 싱그럽게 느껴졌다.
첫댓글 담쟁이덩쿨이 삼목되는군요 푸른잎이 싱그러워보이고 시원스러워 보여 담쟁이르 좋아합니다^^
끈기있는 식물입니다. 한국인을 닮았어요
신설학교 근무하면 그 학교에 두고두고 무척 정이 가지요.
저도 두 신설학교를 거쳤습니다.
그때 심은 나무는 잘 컸는지? 그때 심어 놓은 교화는 잘 크는지? 때때로 보고 싶어져요.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이 담쟁이 잎이였군요.많이 배웁니다.
담쟁이덩쿨도 약용 되는데 담벼락과 건물벽에 자란는 담쟁이는 약용으로 사용하면 안된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