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비름(Love lies a Bleeding)
[과명] : 비름과
[원산지] : 인도
[꽃말] : 애정
[꽃점]
사랑하는 사람을 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남들이 당신을 간파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잘난 척하고 허풍쟁이로 비춰지기 쉽지만 정이 깊고 성실한 면은 좀처럼 전달되지 않습니다.
짧은 기간 내에 사람을 간파할 방법은 직관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의지해 연인들은 사랑을 품는 것입니다.
당신은 직관력이 조금 적은 편.
당신의 장점을 하나라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래]
중심자목 비름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
늦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잎이 아름다운 색으로 변하여 화단에 이용 된다.
열대지역에서는 채소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으나 본종은 잎을 관상하기 위해서
끝눈에 꽃눈이 달리지 않는 계통을 선발 하였다
가을이 시작되는 무렵부터 줄기 윗부분의 잎들이 여러 색으로 물든다
완전히 색이 변하면 잎사귀가 진분홍 색으로 물든다.
4월이 되면 포트에 종자를 뿌려도 좋지만 땅에 직접 뿌릴 경우에는 저온이 올라가는 5월까지 기다렸다가 뿌린다.
곧은 뿌리여서 옮겨심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화단에 직접 40-50cm 간격으로 몇개씩 뿌린 후 솎아 준다.
포트육모의 경우에는 작은모(3-5개 잎)상태로 옮겨 심는다.
하루종일 햇빛이 잘 드는 장소가 좋은데, 특히 석양이 잘 드는 곳에서 잎색이 아름답게 된다. 많이 모여 있을 수록 보기가 좋다.
인도와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이고 관상용으로 심는다.
줄기는 곧게 서고 높이가 80∼150cm이며 엷은 녹색이고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고 마름모꼴의 달걀 모양·바소꼴·줄 모양이며 길이가 7∼20cm이고 양끝이 좁으며 노란 색 또는 붉은 색의 무늬가 있어 아름답다.
꽃은 8∼10월에 연한 녹색 또는 연한 붉은 색으로 피고 잎겨드랑이에 둥근 모양으로 모여 달린다.
포는 막질(膜質)이고 좁은 달걀 모양이다.
조각은 3개이고 달걀 모양의 바소꼴이며 끝이 뾰족하다.
수술은 3개이고 암술은 1개이다.
열매는 포과이고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며 끝에 2∼3개의 돌기가 있고 1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열매 가운데 부분이 수평으로 갈라지면서 윗부분이 떨어져 나간다.
많은 원예 품종이 있다.
색비름(Love lies a Bleeding)
높이 약 1m. 털은 없고 줄기는 곧게 선다.
잎은 마름모꼴 달걀형이고 녹색이며, 길이 약 10㎝이다.
꽃 피는 시기는 8∼10월이다.
가지 끝에 생기는 꽃차례는 이삭모양이지만 잎겨드랑이에서 나오는 꽃차례는 구슬모양이다.
꽃덮이는 눈에 띄지 않으며 보통 3장이다.
포엽(苞葉) 끝은 털모양이다.
색비름은 이 종에서 개량된 것이며, 꽃차례가 가지 끝에 생기지 않는다.
비름속에 딸린 식물은 세계에 약 60종이 알려져 있고, 한국에도 약 10여 종이 있다.
청비름은 포엽 끝이 가시모양이며, 꽃차례가 굵은 것이 특징이다.
가시비름은 잎겨드랑이에 1쌍의 가시가 있고, 눈비름은 지면을 기면서 자란다.
비름속 Amaranthus와 맨드라미속 Celosia는 아주 비슷하지만 비름속은 밑씨가 1개이고, 맨드라미속은 2∼8개인 점이 다르다.
털비름은 줄기에 털이 있고 꽃차례는 짧다.
줄맨드라미는 1m나 되는 홍색의 꽃차례가 밑으로 처지므로 관상용으로 많이 재배한다.
선줄맨드라미는 꽃차례가 갈라지고 보통은 노란색을 띤다.
줄맨드라미는 안데스에서, 선줄맨드라미는 멕시코에서 유사 이전부터 재배되어 종자를 곡물로 이용하였다.
멕시코의 테우아칸동굴에서 BC 7000∼BC 5000년의 비름속이 출토되고 있다.
에스파냐 침입 전에 멕시코에서는 주식의 하나였다.
지금도 히말라야와 중국 서부의 산지에서 재배된다.
채소로서의 비름은 고대 그리스에서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테오프라스토스는 개비름을 오이와 마찬가지로 4월에 종자를 뿌려 재배하는 여름채소로 분류하였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식용하였다.
기러기가 날아갈 즈음에 잎이 빨갛게 된다고 해 '안래홍(雁來紅)' 또한 잎이 노랗게 된다고 해 '안래황(雁來黃)'이라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영어명은 '사랑은 피를 흘린다'는 뜻으로서 아마 잎의 색깔에서 연상된 것 같습니다.
또 별명이 '성 요셉의 외투(Joseph Coat)'인 것은 이 식물에서 빨간 의례복을 연상한 탓이겠지요.
프랑스에서는 '비구니의 고난(Nun's Scourge)'이라고 합니다.
[9·28서울수복 (九·二八 서울收復)]
[서울투데이] 9.28 서울 수복 (1950년 9월 28일)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38선을 기습남침, 3일 만에 북한군에게 수도 서울이 함락 당한다.
6 ·25전쟁 과정에서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수도 서울을 한국군과 유엔군이 같은 해 9월 28일 탈환한 일.
같은 해, 9훨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그동안 열세에 있던 한국군과 유엔군의 전세가 역전되기에 이르렀고, 이로써 서울탈환의 교두보가 확보되었다. 상륙작전의 선봉에 선 미국해병 제1사단과 한국군 해병대는 18일 김포비행장을 탈환한 다음, 행주나루터의 맞은편에서 한강을 건너 그 일부는 영등포와 여의도비행장 방면으로 진출하였다.
한편 미군 제7사단과 한국군 제17연대는 서빙고 방면을 공격, 서울의 동쪽을 포위할 태세를 갖추었으며, 그 일부는 시흥·안양·수원 방면으로 진격하여 낙동강전선에 있는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19일 행주 방면에서 강습도하를 감행한 한·미 해병대는 행주산성을 점령하고, 21일 수색을 지나 서울의 서쪽을 감싸고 있는 안산·연희고지 일대로 진격하였다.
여기서 한·미 해병대는 북한군의 필사적 저항으로 고전을 면하지 못하다가 함재기와 포병의 강력한 화력지원하에 돌격을 감행, 24일 오후 연희고지를 점령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서빙고 부근에서도 한강 도하작전이 이루어져 미군은 남산·왕십리 방면을 제압하고, 한국군은 망우리 일대를 탈환하였다.
이와 같이 북쪽의 의정부 방면을 제외하고 서울 시가지를 3면에서 포위한 한·미연합군은 25일 오후부터 시가전에 돌입, 밤이 깊어가면서 점차 서울 중심부로 조여들기 시작하였다.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의 결과는 참으로 엄청났습니다.
그토록 막강하였던 인민군 병력은 후방의 보급로가 끊긴 채 양쪽으로 맹공격을 받자 순식간에 궤멸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개시 열흘 만에 맥아더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을 모시고 9월 28일에 서울에 입성하여 수복 기념행사를 가질 것을 제안합니다.
그때 부관이 말합니다. "각하,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모실 한강 다리는 끊어져 있습니다." 그때 맥아더 장군의 나즈막한 명령은 단 두 단어였다.
"Make one!"(없으면 만들어!)
이 명령이 떨어지자 전 미군 공병대가 철야 작업을 벌이며 끊어진 한강 다리를 철교로 복구하는데는 꼭 이틀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아침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던 장군이 나란히 탄 지프차와 그 뒤를 잇는 한국 행정부 각료들의 차량이 연도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서울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강 철교 복구로 미2사단 44공병대와 우리 민족의 뜨거운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9월 27일 오전 6시 10분 한국군 해병대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수도 서울은 90일 만에 완전 수복되었으며 다음날 정오에는 중앙청에서 수도탈환식이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