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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九十二 淮陰侯列傳第三十二
淮陰侯韓信者,淮陰人也。〔一〕始為布衣時,貧無行,不得推擇為吏,〔二〕又不能治生商賈,常從人寄食飲,人多厭之者,常數從其下鄉〔三〕南昌亭長〔四〕寄食,數月,亭長妻患之,乃晨炊蓐食。〔五〕食時信往,不為具食。信亦知其意,怒,竟絕去。
회음후 한신은 회음 사람이다 처음에 포의로 지내던 시절 가난하여 할 수 있는 바가 없다보니 관리가 되기 위한 추천을 받을 수 없었다 또한 생계를 위한 장사를 할 줄 아는 바도 없어 늘 남을 따라 다니며 밥과 술을 기식하니 그를 꺼리는 이가 많았다 평소 자주 하향에 있는 남창정의 장을 따라 다니면서 기식하기를 여러 달 지속하니 정장의 처가 이를 싫어하여 새벽에 방안에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식사 시간에 맞추어 한신이 와서 보니 식사가 차려지지 않았다 한신이 이미 그 뜻을 알아채고 노하여 마침내 절교하고 떠났다
〔一〕 正義楚州淮陰縣也。
정의: 楚주 회음현이다
〔二〕 集解李奇曰:「無善行可推舉選擇。」
집해 이기 왈: 추천하여 선발할 만한 선행이 없었다
〔三〕 集解張晏曰:「下鄉,縣,屬淮陰也。」 索隱案:下鄉,鄉名,屬淮陰郡。
집해 장안 왈: 하향은 현 이름으로 회음에 속하여 있다
색은: 하향은 현의 이름이다 회음군에 속한다
〔四〕 索隱案:楚漢春秋作「新昌亭長」。
색은: 초한춘추에 신창정의 장이다 하였다
〔五〕 集解張晏曰:「未起而床蓐中食。
집해 장안 왈: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 상을 차려 이부자리에서 식사한 것이다
信釣於城下,〔一〕諸母漂,〔二〕有一母見信飢,飯信,竟漂數十日。信喜,謂漂母曰:「吾必有以重報母。」母怒曰:「大丈夫不能自食,〔三〕吾哀王孫而進食,〔四〕豈望報乎!」
한신이 성 아래에서 낚시를 하는데 아녀자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한 아낙이 한신이 굶는 것을 보고 그에게 밥을 주자 이에 빨래를 수십 일 하였다 한신이 즐거워하며 빨래하는 아낙에게 이르길 “내가 반드시 어멈에게 크게 보답하리다” 아낙이 노하여 이르길 “대장부가 되어 자기 밥을 챙기지 못하니 내가 댁을 가엽게 여겨 식사를 내어 주었지만 어찌 보답을 바랄 수 있겠소”
〔一〕 正義淮陰城北臨淮水,昔信去下鄉而釣於此。
정의: 회음성 북쪽 회수에 임하여 이전에 한신이 하향을 떠나 이곳에서 낚시를 하였다
〔二〕 集解韋昭曰:「以水擊絮為漂,故曰漂母。」
집해 위소 왈: 물로 솜옷을 두들겨서 빨래를 하므로 표모라고 하였다
〔三〕 正義音寺。
정의: 밥 사로 읽는다
〔四〕 集解蘇林曰:「如言公子也。」 索隱劉德曰:「秦末多失國,言王孫、公子,尊之也。」蘇林亦同。張晏云「字王孫」,非也。
집해 소림 왈: 공자라 하는 것과 같다
색은 유덕 왈: 秦말에 나라를 잃은 자가 많아서 왕손, 공자라 함은 존칭한 것이다 소림이 또한 같다 하였고 장안이 이르길 字가 왕손이다 하였는데 옳지 않다
淮陰屠中少年有侮信者,曰:「若雖長大,好帶刀劍,中情怯耳。」眾辱之曰:「信能死,刺我;不能死,出我袴下。」〔一〕於是信孰視之,俛出袴下,蒲伏。〔二〕一市人皆笑信,以為怯。
회음의 백정 중에서 한신을 모욕하던 젊은이가 있었는데 왈 “네가 비록 장대하고 검을 허리에 근사하게 차고 있다만 속으로는 겁쟁이다” 사람들 앞에서 그를 욕하며 왈 “네놈이 죽을 자신이 있으면 나를 찌르고 죽을 자신이 없으면 내 가랑이 아래를 지나거라” 이에 한신이 그를 한참 보다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을 지나 기어갔다 저자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한신을 비웃고 겁쟁이로 여겼다
〔一〕 集解徐廣曰:「袴,一作『胯』。胯,股也,音同。」又云漢書作「跨」,同耳。 索隱袴,漢書作「胯」。胯,股也,音枯化反。然尋此文作「袴」,欲依字讀,何為不通?袴下即胯下也,亦何必須作「胯」。
집해 서광 왈: 袴(사타구니 고)는,일부에 胯(사타구니 고)로 쓰여있다 。胯는 사타구니로 고로 읽는다」 또한 한서에 跨로 쓰여 있는데 같다
색은: 袴는 한서에 胯로 쓰였고 胯는 股이다 고로 읽는다 그런데 이글에서 袴로 쓰인 것은 글자대로 읽히도록 한 것이니 통하지 않을리 없다 袴下는 즉 胯下이니 어찌 꼭 胯로 쓸 것인가
〔二〕 正義俛音俯。伏,蒲北反。
정의: 俛는 俯이며 伏은 복으로 읽는다
及項梁渡淮,信杖劍從之,居戲下,〔一〕無所知名。項梁敗,又屬項羽,羽以為郎中。數以策干項羽,羽不用。漢王之入蜀,信亡楚歸漢,未得知名,為連敖。〔二〕坐法當斬,其輩十三人皆已斬,次至信,信乃仰視,適見滕公,曰:「上不欲就天下乎?何為斬壯士!」滕公奇其言,壯其貌,釋而不斬。與語,大說之。言於上,上拜以為治粟都尉,上未之奇也。
항량이 회수를 건너오자 한신이 검을 차고 그를 따랐다 그의 휘하에 있는 동안 이름을 알리지 못하였다 항량이 패하고 다시 항우 수하에 귀속되었는데 항우가 그를 낭중으로 삼았다 항우에게 자주 계책을 내었으나 항우가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漢 왕이 蜀에 들어오자 한신이 楚에서 도망쳐 漢으로 귀속하였지만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연오의 직을 맡았다 법에 연루되어 참형을 받게 되어 그 무리 13인이 모두 이미 참하여지고 한신의 차례가 되었는데 한신이 고개를 들어 마침 등공을 보게 되었다 이에 왈 “주상께선 천하를 취하려 하심이 아닌게요 어째서 장사를 참하는 것이오” 등공이 그 말을 기이하게 여기고 모양을 장하다 보고는 풀어주어 참하지 않았다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는 크게 기뻐하여 주상에게 말하니 주상이 치속도위에 제수하였으나 주상은 그를 기이하다 여기지 않았다
〔一〕 集解徐廣曰:「戲,一作『麾』。」
집해 서광 왈: 戲는 일부 麾로 쓰여 있다
〔二〕 集解徐廣曰:「典客也。」 索隱李奇云:「楚官名。」張晏云:「司馬也。」
집해 서광 왈: 전객이다
색은: 이기 이르길 楚의 관직 이름이다 장운 이르길 사마이다
信數與蕭何語,何奇之。至南鄭,諸將行道亡者數十人,信度何等已數言上,上不我用,即亡。何聞信亡,不及以聞,自追之。人有言上曰:「丞相何亡。」上大怒,如失左右手。居一二日,何來謁上,上且怒且喜,罵何曰:「若亡,何也?」何曰:「臣不敢亡也,臣追亡者。」上曰:「若所追者誰何?」曰:「韓信也。」上復罵曰:「諸將亡者以十數,公無所追;追信,詐也。」何曰:「諸將易得耳。至如信者,國士無雙。王必欲長王漢中,無所事信;〔一〕必欲爭天下,非信無所與計事者。顧王策安所決耳。」王曰:「吾亦欲東耳,安能鬱鬱久居此乎?」何曰:「王計必欲東,能用信,信即留;不能用,信終亡耳。」王曰:「吾為公以為將。」何曰:「雖為將,信必不留。」王曰:「以為大將。」何曰:「幸甚。」於是王欲召信拜之。何曰:「王素慢無禮,今拜大將如呼小兒耳,此乃信所以去也。王必欲拜之,擇良日,齋戒,設壇場,具禮,乃可耳。」王許之。諸將皆喜,人人各自以為得大將。至拜大將,乃韓信也,一軍皆驚。
한신이 소하와 더불어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소하가 그를 기인이라 여겼다 남정에 이르러 행군 중에 도망하는 장수가 수십 명에 이르렀다 한신 또한 소하 등이 이미 자주 주상에게 말을 올렸으되 자신을 쓰지 않음을 짐작하고는 도망쳤다 소하는 한신이 도망쳤단 말을 듣고 아뢸 시간도 없이 직접 그를 쫒아갔다 누가 주상에게 아뢰길 “승상 소하가 도망쳤습니다” 주상이 대노하면서도 양 팔을 잃은 듯 아쉬워하였다 하루 이틀 지나서 소하가 돌아와 상을 알현하였다 상이 한편으로 노하고 한편으로 기뻐하며 소하에게 욕하되 “네가 도망가다니 무슨 일이냐” 소하 왈 “신이 어찌 감히 도망치겠습니까 신은 도망친 자를 쫒아갔습니다” 상 왈 “네가 쫒아간 자가 누구란 말이냐” 왈 “한신입니다”
상이 다시 욕하며 왈 “장수들로 도망친 자가 수십에 이르도록 공이 쫒아간 적이 없는데 한신을 쫒았다니 거짓말 아닌가”
소하 왈 “여러 장수들이야 쉽게 얻습니다만 한신과 같은 자는 온 나라에 비길만한 선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왕께서 내내 한중에서 왕으로 있고자 하신다면 한신을 쓰실 일이 없습니다만 반드시 천하를 갖고 다투고자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는 더불어 일을 계획할 자가 없습니다 단지 왕의 계책을 어디로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왕 왈 “나도 동쪽으로 가고자 하지 어찌 이곳에서 울적하게 오래 머물 수 있겠는가?”
소하 왈 “왕의 계획이 반드시 동쪽으로 가고자 하고 한신을 기용할 수 있으면 한신은 머무를 것이고 기용하지 못한다면 한신은 결국 달아날 것입니다”
왕 이르길 “내가 공을 생각하여 장수로 삼겠소”
소하 왈 “장수로 삼는다 해도 한신은 머무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 왈 “대장으로 하겠소”
소하 왈 “다행입니다”
이에 왕이 한신을 불러 제수하려 하니 소하 왈 “왕께서 평소 거만하고 무례하시어 이제 대장을 제수함에도 마치 어린 아이 부르듯 하면 한신은 가버릴 것입니다 왕께서 그를 임명하시려면 좋은 날을 골라 재계하고 단을 설치하여 예를 갖추어야 비로소 가할 것입니다”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저마다 즐거워하며 서로 자기가 대장이 되려니 여기고 있었다 대장을 임명함에 한신이 되고 보니 전 군이 모두 경악하였다
〔一〕 集解文穎曰:「事猶業也。」張晏曰:「無事用信。」
집해 문영 왈: 事는 업으로 삼는 것이다 장안 왈 한신을 기용할 일이 없는 것이다
信拜禮畢,上坐。王曰:「丞相數言將軍,將軍何以教寡人計策?」信謝,因問王曰:「今東鄉爭權天下,豈非項王邪?」漢王曰:「然。」曰:「大王自料勇悍仁彊孰與項王?」漢王默然良久,曰:「不如也。」信再拜賀曰:「惟信亦為大王不如也。然臣嘗事之,請言項王之為人也。項王喑噁〔一〕叱咤,〔二〕千人皆廢,〔三〕然不能任屬賢將,此特匹夫之勇耳。項王見人恭敬慈愛,言語嘔嘔〔四〕,人有疾病,涕泣分食飲,至使人有功當封爵者,印刓敝,忍不能予,〔五〕此所謂婦人之仁也。項王雖霸天下而臣諸侯,不居關中而都彭城。有背義帝之約,而以親愛王,諸侯不平。諸侯之見項王遷逐義帝置江南,亦皆歸逐其主而自王善地。項王所過無不殘滅者,天下多怨,百姓不親附,特劫於威彊耳。名雖為霸,實失天下心。故曰其彊易弱。今大王誠能反其道:任天下武勇,何所不誅!〔六〕以天下城邑封功臣,何所不服!以義兵從思東歸之士,何所不散!〔七〕且三秦王為秦將,將秦子弟數歲矣,所殺亡不可勝計,又欺其眾降諸侯,至新安,項王詐阬秦降卒二十餘萬,唯獨邯、欣、翳得脫,秦父兄怨此三人,痛入骨髓。今楚彊以威王此三人,秦民莫愛也。大王之入武關,秋毫無所害,〔八〕除秦苛法,與秦民約,法三章耳,秦民無不欲得大王王秦者。於諸侯之約,大王當王關中,關中民咸知之。大王失職入漢中,秦民無不恨者。今大王舉而東,三秦可傳檄而定也。」〔九〕於是漢王大喜,自以為得信晚。遂聽信計,部署諸將所擊。
한신이 배례를 마치고 왕이 자리하였다
왕 왈 “승상이 자주 장군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장군은 과인에게 어떤 계책을 가르쳐 주려는가”
한신이 사례하고 왕에게 묻기를 “지금 동쪽으로 향하여 가시면 천하를 다투는 것은 항왕이 아니겠습니까?”
漢왕 왈 “그렇소”
왈 “대왕께선 스스로 헤아려 보건데 용맹과 사나움 인자함 강건함에 있어 항왕과 비교하면 어떠하십니까?”
漢왕이 한참을 침묵하다가 왈 “내가 그에 미치지 못하오”
한신이 두 번 절하고 경하하며 왈 “제 생각에도 또한 대왕께선 그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신이 일찍이 그를 섬기었기에 항왕의 위인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항왕이 큰 소리로 욕하고 질타하면 천명의 사람이 모두 엎드립니다만 현명한 장수에게 맡겨 위임하지 못하니 이는 단지 필부의 용맹에 불과합니다 항왕이 사람을 만나면 공경하고 자애로우며 언어가 따스해서 누가 아프면 울면서 음식을 나누어 주거늘 공적이 있어 당연히 작위를 봉함에 이르러서는 직인을 만지작대어 닳을 지경이 되도록 차마 내주지 못합니다 이는 소위 아녀자의 인덕이라 하겠습니다 항왕이 비록 천하의 패자가 되어 제후를 신하로 거느리고 있지만 관중에 머물지 않고 팽성에 도읍하였습니다 의제와의 약속을 저버린 바 있으며 친애하는 정도를 가지고 왕을 정하니 제후들이 불평합니다 제후들은 항왕이 의제를 쫒아내어 강남에 두는 것을 보고 또한 모두들 돌아가서 그 주인을 쫒아내고 스스로 좋은 땅의 왕이 되었습니다 항왕이 지나가면서 잔인하게 죽여 없애지 않은 곳이 없어 천하에 원망이 많고 백성은 가까이 하려 하지 않지만 단지 그의 위세가 강함을 겁내고 있습니다 이름은 비록 패자라 하나 실은 천하의 인심을 잃고 있습니다 고로 그의 강함은 쉽게 약해지리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진실로 그와 반대의 길로 갈 수 있어 천하의 용맹한 자를 임명한다면 어찌 죽이지 못할 적이 있겠습니까 천하의 성읍을 공신에게 봉읍으로 내어주면 어찌 굴복시키지 못할 곳이 있겠습니까 의로운 전쟁을 행하는 마음으로 동쪽으로 군사를 가게 하면 어찌 깨서 흩어놓지 못할 적이 있겠습니까 한편 三秦의 왕들은 秦의 장수로서 秦의 자제들을 데리고 다닌지 수 년 만에 죽어나간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으며 또한 그 무리를 속여 제후에 항복시키고는 신안에 이르렀는데 항왕은 秦의 항복한 군사 20여 만을 속임수를 써서 갱에 묻어 죽였습니다 오직 장한, 사마흔, 동예 만이 살아남았으니 秦의 부형들의 이 세 사람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아프게 박혀 있습니다 지금 楚는 억지로 윽박질러 이 세 사람을 왕으로 삼았으니 秦의 백성은 아무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무관에 들어가면서 추호도 해를 끼침이 없이 秦의 가혹한 법을 없애고 秦의 백성에게 약법삼장을 내주었으니 秦의 백성으로 대왕을 秦의 왕으로 삼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제후들의 약속에 따르면 대왕께서 당연히 관중의 왕이 되었어야 함을 관중의 백성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그 자리를 잃고 한중으로 들어가시니 秦의 백성으로 한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일어서 동쪽으로 가시면 三秦은 격문을 전하는 것으로 평정할 수 있습니다”
이에 漢왕이 크게 기뻐하면서 자신이 한신을 얻은 것이 늦었다 생각하였다 마침내 한신의 계책을 따라 여러 장수들이 공격할 곳을 나누어 정하였다
〔一〕 索隱上於金反,下烏路反。喑啞,懷怒氣。
색은: 음아로 읽으며 노기를 띤 모습이다
〔二〕 索隱「咤」字或作「吒」。上昌栗反,下卓嫁反。叱咤,發怒聲。
색은: 咤는 혹 吒로 쓰여 있다 질타로 읽는다 질타는 노함을 드러낸 소리다
〔三〕 集解晉灼曰:「廢,不收也。」 索隱孟康曰:「廢,伏也。」張晏曰「廢,偃也。」
집해 진작 왈: 廢는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색은 맹강 왈: 廢는 엎드리는 것이다 장안 왈 廢는 눕는 것이다
〔四〕 集解音凶于反。 索隱音吁。嘔嘔猶區區也。漢書作「姁姁」。鄧展曰「姁姁,好也」。張晏音吁。
집해:嘔(기뻐할 후)는 후로 읽는다
색은: 후로 읽는다 嘔嘔는 區區와 같다 한서에 姁姁로 쓰여있다 등전 왈 姁姁는 좋아하는 것이다
〔五〕 集解漢書音義曰:「不忍授。」
집해 한서음의 왈: 차마 주지 못하는 것이다
〔六〕 索隱何不誅。按:劉氏云「言何所不誅也」。
색은: 어찌 죽이지 못하리 살피건데 유씨 이르길 어디건 죽이지 못함이 없다 하는 것이다
〔七〕 索隱何不散。劉氏云:「用東歸之兵擊東方之敵,此敵無不散敗也。」
색은: 어찌 흩어놓지 못하리 유씨 이르길 동쪽에 귀의하는 군사로 동방의 적을 치는 것이니 저 적들이 패하여 흩어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八〕 索隱案:毫秋乃成。又王逸注楚詞云「銳毛為毫,夏落秋生也」。
색은: 터럭은 가을이 되면 비로서 생겨난다 또한 왕일이 초사를 주석하여 이르길 가는 털이 毫이며 여름에 탈락되었다가 가을에 생겨난다
〔九〕 索隱案:說文云「檄,二尺書也」。此云「傳檄」,謂為檄書以責所伐者。
색은: 설문에 이르길 檄은 두척의 서신이다 또한 이르길 傳檄은 격서를 써서 공격할 자를 책하는 것이다
八月,漢王舉兵東出陳倉,〔一〕定三秦。漢二年,出關,〔二〕收魏、河南,韓、殷王皆降。合齊、趙共擊楚。四月,至彭城,漢兵敗散而還。信復收兵與漢王會滎陽,復擊破楚京、索之閒,以故楚兵卒不能西。
8월에 漢왕이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진창을 나서서 삼진을 평정하였다 漢 2년 함곡관을 나서서 魏, 하남을 흡수하니 韓과 殷왕이 모두 항복하였다 齊, 趙와 함께 楚를 공격하여 4월에 팽월에 이르렀으나 漢의 군사는 패하여 흩어져 돌아왔다 한신이 군사를 다시 수습하여 漢 왕과 형양에서 회합하여 다시 楚의 수도와 변방의 사이를 격파하여 楚의 군사가 서쪽으로 향할 수 없게 하였다
〔一〕 正義漢王從關北出岐州陳倉縣。
정의: 漢왕 관의 북쪽을 따라 기주 진창현을 나섰다
〔二〕 正義出函谷關。
정의: 함곡관을 나섰다
漢之敗卻彭城,〔一〕塞王欣、翟王翳亡漢降楚,齊、趙亦反漢與楚和。六月,魏王豹謁歸視親疾,至國,即絕河關〔二〕反漢,與楚約和。漢王使酈生說豹,不下。其八月,以信為左丞相,擊魏。魏王盛兵蒲阪,塞臨晉,〔三〕信乃益為疑兵,〔四〕陳船欲度臨晉,〔五〕而伏兵從夏陽以木罌缻渡軍,〔六〕襲安邑。〔七〕魏王豹驚,引兵迎信,信遂虜豹,〔八〕定魏為河東郡。〔九〕漢王遣張耳與信俱,引兵東,北擊趙、代。後九月,破代兵,禽夏說閼與。〔一0〕信之下魏破代,漢輒使人收其精兵,詣滎陽以距楚。
漢이 팽성에서 패하여 물러나자 塞왕 사마흔과 翟(적) 왕 동예가 漢을 도망하여 楚에 항복하였고 齊와 趙 또한 漢에 반하여 楚와 화친하였다 6월에 魏왕 표가 어버이의 병을 돌보고자 귀향할 것을 청하고 돌아가서는 바로 하관을 끊고 漢에 모반하고는 楚와 화친을 약조하였다 漢왕이 역생을 보내 표를 설득하게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그해 8월 한신을 좌승상으로 삼아 魏를 공격하였다 魏 왕이 포판의 군사를 늘려 임진을 틀어막으니 한신은 이에 거짓으로 군사를 증원한 듯 꾸며 배를 늘어놓아서 임진을 건너는 것처럼 하고는 숨겨둔 군사를 하양에서 나무로 만든 부표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게 하여 안읍을 습격하였다 魏왕 표가 놀라서 군사를 이끌고 한신에 맞섰으나 한신이 마침내 표를 사로잡고 魏를 평정하여 하동군으로 하였다 漢 왕이 장이를 보내 한신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동쪽과 북쪽으로 趙와 代를 공격하게 하였다 9월에 代의 군사를 격파하고 하열을 알여에서 사로잡았다 한신이 魏를 점령하고 代를 격파하자 漢은 바로 그 정예 군사를 받아들이게 하여 형양으로 가서 楚에 대적하게 하였다
〔一〕 正義兵敗散彭城而卻退。
정의: 군사가 팽성에서 패하여 흩어지니 물러난 것이다
〔二〕 索隱:謂今蒲津關。
색은: 지금의 포진관이다
〔三〕 索隱塞音先得反。臨晉,縣名,在河東之東岸,對舊關也。
색은:塞은 색으로 읽는다 임진은 현의 이름이며 하동의 동쪽 강안에 구관을 마주하고 잇다
〔四〕 集解漢書音義曰:「益張旍旗,以疑敵者。」
집해 한서음의 왈: 깃발을 늘려 펼쳐 적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五〕 索隱劉氏云:「陳船,地名,在舊關之西,今之朝邑是也。」案:京兆有船司空縣,不名「陳船」。陳船者,陳列船艘欲渡河也。
색은: 유씨 이르길 陳船은 지명이며 구관의 서쪽에 있어 지금의 조읍이다 살피건데 경조에 선사공현이 있는데 진선이라 불리지 않는다 陳船은 뱃머리를 이어 벌려 강을 건너고자 하는 것이다
〔六〕 集解徐廣曰:「缻,一作『缶』。」服虔曰:「以木押縛罌缻以渡。」韋昭曰:「以木為器如罌缻,以渡軍。無船,且尚密也。」 正義按:韓信詐陳列船艘於臨晉,欲渡河,即此從夏陽木押罌缻渡軍,襲安邑。臨晉,同州東朝邑界。夏陽在同州北渭城界。
집해 서광 왈: 「缻는 缶로 쓰인본이 있다 복건 이르길 나무로 항아리를 얽어 묶어서 강을 건너는 것이다 위소 왈 나무로 항아리 같은 그릇을 만들어 군사를 건너게 하는 것이다 배가 없으니 또한 오히려 은밀하였다
정의: 한신이 배를 임진에 늘어놓아서 강을 건너고자 하는 것처럼 속이고는 바로 하양을 통하여 나무로 만든 항아리로 군사를 도강케 하여 안읍을 습격하였다 임진은 동주 동조읍 경계이다 하양은 동주 북위성 경계에 있다
〔七〕 正義安邑故城在絳州夏縣東北十五里。
정의: 안읍의 옛 성이 강주 복현 동북 15리 지점에 있다
〔八〕 索隱按:劉氏云「夏陽舊無船,豹不備之,而防臨晉耳。今安邑被襲,故豹遂降也」。
색은: 유씨 이르길 하양에 원래 배가 없으니 표가 이에 대비하지 않고 임진 만을 방어하엿다 지금 안읍이 피습당하여 결국 표가 항복하였다
〔九〕 正義今安邑縣故城。
정의: 지금의 안읍현 옛성이다
〔一0〕集解徐廣曰:「音余。」駰案:李奇曰「夏說,代相也」。 索隱司馬彪郡國志上黨沾縣有閼與聚。閼音曷,又音嫣。與音余,又音預。沾音他廉反。 正義閼與聚城在潞州銅鞮縣西北二十里。
집해 서광 왈: 여로 읽는다 배인 이르길 이기가 가로되 하열은 代의 재상이다
색은: 사마표군국지에 상당 점현에 알여현이 있다 閼은 알로 읽으며 與은 여로 읽는다 沾은 첨으로 읽는다
정의: 알여취성이 노주 동제현 서북 20리 지점에 있다
信與張耳以兵數萬,欲東下井陘擊趙。〔一〕趙王、成安君 聞漢且襲之也,聚兵井陘口,〔二〕號稱二十萬。廣武君李左車說成安君曰:「聞漢將韓信涉西河,虜魏王,禽夏說,新喋血〔三〕閼與,今乃輔以張耳,議欲下趙,此乘勝而去國遠鬥,其鋒不可當。臣聞千里餽糧,士有飢色,樵蘇後爨,〔四〕師不宿飽。今井陘之道,車不得方軌,騎不得成列,行數百里,其勢糧食必在其後。願足下假臣奇兵三萬人,從閒道絕其輜重;足下深溝高壘,堅營勿與戰。彼前不得鬥,退不得還,吾奇兵絕其後,使野無所掠,不至十日,而兩將之頭可致於戲下。願君留意臣之計。否,必為二子所禽矣。」成安君,儒者也,常稱義兵不用詐謀奇計,曰:「吾聞兵法十則圍之,倍則戰。今韓信兵號數萬,其實不過數千。能千里而襲我,亦已罷極。今如此避而不擊,後有大者,何以加之!則諸侯謂吾怯,而輕來伐我。」不聽廣武君策,廣武君策不用。
한신과 장이의 군사 수만이 동쪽으로 정형을 내려와 趙를 치고자 하였다 趙 왕과 성안군 진여는 漢이 다시 공격하고자 함을 듣고 군사를 정형의 입구에 모아 20만이라 과시하였다
광무군 이좌거가 성안군을 설득하여 왈 “漢의 장수 한신이 서하를 건너 魏왕과 하열을 사로잡고 새로이 알여를 피바다로 만들고는 이제 장이를 보좌로 삼아 趙를 정벌하고자 한다 들었습니다 저들이 승세를 타고 나라를 떠나 멀리서 싸우고 있으니 그 예기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신이 듣건데 천리에 걸쳐 군량을 잇자니 군사들이 굶은 기색이 있어 땔감을 구해 밥을 짓느라 장수도 배불리 먹지 못할 지경입니다 이제 정형의 길은 수레가 온전히 구를 수 없고 기마병도 대오를 이룰 수 없어 행렬이 수백 리에 걸치니 그 추세로 보아 군량이 반드시 후미에 놓이게 됩니다 족하께서 기병 삼만 명을 내어주시면 사잇길로 가서 그 치중을 절단하고자 합니다 족하께선 못을 깊이 파고 성곽을 높이 하여 굳게 지키고 더불어 싸우지 마십시오 저들이 앞으로 나서 싸우지 못하고 돌아서 되돌아 갈 수 없으면 우리의 기병이 그 후방을 끊고 들판에 노략질 할 것을 없게 하면 열흘이 안되어 저 두 장수의 머리를 깃발 아래 갖다 놓을 수 있습니다 군께서는 신의 계책을 유의하여 주십시오 안 그러면 저 두 사람에게 잡히게 됩니다”
성안군은 유자로서 평소 의로운 군사는 거짓되거나 기이한 계책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상찬하고 있었다 그가 이르길 “내가 듣기로 병법에 군사가 10배가 되면 에워싸고 두 배가 되면 싸운다 하오 지금 한신의 군사가 수만이라 하는데 그 실제는 수천에 불과하오 천리를 달려와서 우리를 습격할 수 있지만 또한 피로가 극에 이르렀을 것이요 지금 이렇게 피하여 치지 않으면 후에 대군이 올 것이고 어찌 이를 더하여 해결하겠소 제후들이 나더러 겁이 많다 하여 가벼이 여겨 우리를 공격할 것이오” 결국 광무군의 계책을 듣지 않았으니 광무군의 계책은 사용되지 않았다
〔一〕 索隱案:地理志常山石邑縣,井陘山在西。又穆天子傳云「至于陘山之隧,升于三道之磴」是也。
색은: 지리지 상산 석읍현에 정형산이 서쪽에 있다 또한 목천자전에 이르길 至于陘山之隧,升于三道之磴 한 것이 그것이다
〔二〕 正義井陘故關在并州石艾縣東十八里,即井陘口。
정의: 정형의 옛 관이 정주 석예현 동쪽 18리 지점에 있으니 즉 정형의 입구이다
〔三〕 索隱喋,舊音歃,非也。案:陳湯傳「喋血萬里之外」,如淳云「殺人血流滂沱也」。韋昭音徒協反。
색은: 喋의 옛 음이 歃이라 하는데 옳지 않다 살피건데 진탕전에 「喋血萬里之外」라 하여 여순 이르길 「사람을 죽여 피가 끝없이 흘러내린다 하엿다 위소는 첩으로 읽는다 하였다
〔四〕 集解漢書音義曰:「樵,取薪也。蘇,取草也。」
집해 한서음의 왈: 樵는 땔감을 구하는 것이고 蘇는 풀을 구하는 것이다
韓信使人閒視,知其不用,還報,則大喜,乃敢引兵遂下。〔一〕未至井陘口三十里,止舍。夜半傳發,〔二〕選輕騎二千人,人持一赤幟,從閒道萆山而望趙軍,〔三〕誡曰:「趙見我走,必空壁逐我,若疾入趙壁,拔趙幟,立漢赤幟。」令其裨將傳飧,〔四〕曰:「今日破趙會食!」〔五〕諸將皆莫信,詳應曰:「諾。」謂軍吏曰:「趙已先據便地為壁,且彼未見吾大將旗鼓,未肯擊前行,恐吾至阻險而還。」信乃使萬人先行,出,背水陳。〔六〕趙軍望見而大笑。平旦,信建大將之旗鼓,鼓行出井陘口,趙開壁擊之,〔七〕大戰良久。於是信、張耳詳棄鼓旗,走水上軍。水上軍開入之,復疾戰。趙果空壁爭漢鼓旗,逐韓信、張耳。韓信、張耳已入水上軍,軍皆殊死戰,不可敗。信所出奇兵二千騎,共候趙空壁逐利,則馳入趙壁,皆拔趙旗,立漢赤幟二千。趙軍已不勝,不能得信等,欲還歸壁,壁皆漢赤幟,而大驚,以為漢皆已得趙王將矣,兵遂亂,遁走,趙將雖斬之,不能禁也。於是漢兵夾擊,大破虜趙軍,斬成安君泜水上〔八〕,禽趙王歇。
한신이 간자를 보내 지켜보게 하였는데 그 계책이 쓰이지 않음을 알아내어 돌아와 보고하니 이에 크게 기뻐하여 비로소 군사를 이끌고 내려갔다 정형의 입구 20리 못 미친 지점에 멈추어 묵게 되었는데 한밤에 전령을 보내 날랜 기병 2천 명을 선발하여 저마다 적색 기를 갖고 사잇길을 따라서 산에 은폐하여 趙군을 지켜보되 명심하되
“趙의 군사들은 우리가 도주하는 것을 보곤 반드시 진터를 비우고 우리를 쫒을 터이니 너희는 재빨리 趙의 진터에 들어가 趙의 깃발을 뽑아버리고 漢의 붉은 기를 세워라” 또한 비장에게 야식을 먹이라 이르고 왈 “오늘 趙를 격파하고 모여 식사할 것이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들 믿지 못하였으나 그저 응하여 답하길 “그러하겠습니다” 또한 군리를 불러 이르되 “趙에서 이미 편리한 지점을 점거하여 보루를 쌓았으되 또한 저들이 아직 우리의 대장기와 북을 보지 못하여 선뜻 앞으로 나서서 공격하려 하지 않음은 내가 험준한 곳에 이르러 되칠까 걱정해서일 것이다” 한신은 이에 만 명을 선두로 해서 보내고 배수진을 쳤다 趙의 군사가 내다보고는 크게 웃었다 날이 밝자 한신은 대장의 깃발과 북을 내세워 북소리와 함께 정형의 입구를 나서니 趙에서 보루를 열고 공격해와 한참을 크게 싸웠다 이에 한신과 장이가 거짓으로 북과 기를 내버리고 강변의 군진으로 달아났다 강변의 군진에서 문을 열어 받아들여 다시 치열하게 싸웠다 趙에서는 과연 보루를 비우고 漢의 북과 기를 다투면서 한신과 장이를 쫒았다 한신과 장이가 이미 강변의 군진으로 들어가서 군사들이 모두 죽을 각오로 싸워 승패가 나지 않았다 한신이 내보낸 기병 이천 기가 모여서 趙에서 보루를 비우고 이득을 취하여 쫒아 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바로 趙의 보루로 침입하여 趙의 깃발을 모두 뽑아내고 漢의 적색 깃발 2천 개를 세웠다 趙의 군사는 이기지 못하고 한신 등을 잡지도 못하게 되어 보루로 돌아가고자 하였는데 보루에 온통 漢의 적색기가 있으니 대경하여 漢이 이미 趙의 왕과 장수를 잡았다 여기고 병사들이 어지러워지면서 숨어 달아나려하였다 趙의 장수들이 칼로 베면서 막았으나 금하지 못하였다 이에 漢의 군사가 협공하니 趙의 군사를 대파하고 성안군을 지수에서 참하고 趙왕 알을 사로잡았다
〔一〕 正義引兵入井陘狹道,出趙。
색은: 군사를 이끌고 정형의 좁은 길을 들어섰으니 趙로 나선 것이다
〔二〕 集解漢書音義曰:「傳令軍中使發。」
집해 한서음의 왈: 전령이 군내에서 발하여진 것이다
〔三〕 集解如淳曰:「萆音蔽。依山自覆蔽。」 索隱案:謂令從閒道小路向前,望見陳餘軍營即住,仍須隱山自蔽,勿令趙軍知也。萆音蔽。蔽者,蓋覆也。楚漢春秋作「卑山」,漢書作「箄山」。說文云「箄,蔽也,從竹卑聲」。
집해 여순 왈: 萆(가릴 폐)는 蔽로 읽는다 산에 의지하여 스스로 덮어 가리는 것이다
색은: 령을 내려 사잇길로 소로를 타고 전진하여 진여의 군영을 보면 머물면서 산에 숨어 자신을 숨기고 趙의 군사가 알아채지 못하게 함을 이른다
〔四〕 集解徐廣曰:「音飱也。」
집해 서광 왈: 飱으로 읽는다
〔五〕 集解服虔曰:「立駐傳飱食也。」如淳曰:「小飯曰飱。言破趙後乃當共飽食也。」 索隱如淳曰:「小飯曰飱。謂立駐傳飱,待破趙乃大食也。」
집해 복건 왈: 바로 말을 멈추고 저녁밥을 먹으라 전한 것이다 여순 왈 조금 먹는 것을 飱이라 한다 趙를 격파 한 뒤에 마땅히 함께 배불리 먹겠다고 말한 것이다
색은: 여순 왈 조금 먹는 것을 飱이라 한다 바로 말을 멈추고 저녁밥을 먹으라 전하면서 趙를 격파하길 기다려서 많이 먹겠다 한 것이다
〔六〕 正義綿蔓水,一名阜將,一名回星,自并州流入井陘界,即信背水陣陷之死地,即此水也。
정의: 면만수는 일명 부장 혹 일명 회성이라 하며 병주에서 정형의 경계로 유입되어진다 즉 한신의 배수진이 죽을 장소로 몰아넣은 곳이 바로 이 물줄기다
〔七〕 正義恆州鹿泉縣,即六國時趙壁也
정의:항주 녹천현이니 즉 6국 시기에 趙의 보루이다
〔八〕 集解徐廣曰:「泜音遲。」 索隱徐廣音遲。劉氏音脂。
집해 서광 왈: 泜는 遲로 읽는다
색은: 서광이 遲로 읽는다 유씨는 脂로 읽는다 하였다
信乃令軍中毋殺廣武君,有能生得者購千金。於是有縛廣武君而致戲下者,信乃解其縛,東鄉對,西鄉對,師事之。
諸將效首虜,〔一〕(休)畢賀,因問信曰:「兵法右倍山陵,前左水澤,今者將軍令臣等反背水陳,曰破趙會食,臣等不服。然竟以勝,此何術也?」信曰:「此在兵法,顧諸君不察耳。兵法不曰『陷之死地而後生,置之亡地而後存』?且信非得素拊循士大夫也,此所謂『驅市人而戰之』,其勢非置之死地,使人人自為戰;今予之生地,皆走,寧尚可得而用之乎!」諸將皆服曰:「善。非臣所及也。」
한신이 이에 군중에 영을 내려 광무군을 죽이지 말라 하고, 사로잡아 오는 자에게 천금을 줄 것이라 하였다 이에 광무군을 포박하여 영내로 데려온 자가 있었다 한신이 그의 포박을 풀어주고 동쪽과 서쪽에서 마주앉아 스승으로 그를 대우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적의 수급과 포로를 헤아리며 축하하길 마치고선 한신에 묻되 “병법에 우측에 산 능선을 거느리고 앞으로 좌측에 수택을 두라 하였는데 금번에 장군께선 신 등에게 반대로 배수진을 시키고선 이르되 趙를 격파하고 회식하리라 하여서 신 등이 불복하였습니다만 결국 승리하였으니 이는 어찌된 연유입니까” 한신 왈 “이는 병법에 있으니 다만 제군들이 살피지 못하였을 뿐이오 병법에 이르지 않았소 사지에 빠지고 나서야 살아나며 죽을 장소에 놓아야 살아남는다고 하물며 내가 평소 잘 훈련된 군사를 이끌고 있지 않으니 이는 소위 시장 사람을 이끌고 전쟁을 치르는 격이라 저들을 사지에 내몰아 저마다 자기가 살고자 싸우게 하지 않고, 살아날 만한 곳에 두면 모두 달아날 것이니 어찌 이들을 쓸 수 있다 하겠오” 여러 장수가 모두 감복하여 이르길 “대단하십니다 신 등이 미치지 못할 바입니다”
〔一〕 索隱如淳曰:「效,致也。」晉灼云:「效,數也。」鄭玄注禮「效猶呈見也」。
색은 여순 왈 效는 이르는 것이다 진작 이르길 效는 헤아리는 것이다 정현이 禮에 주하길 效는 아뢰는 것이다
於是信問廣武君曰:「僕欲北攻燕,東伐齊,何若而有功?」廣武君辭謝曰:「臣聞敗軍之將,不可以言勇,亡國之大夫,不可以圖存。今臣敗亡之虜,何足以權大事乎!」信曰:「僕聞之,百里奚居虞而虞亡,在秦而秦霸,非愚於虞而智於秦也,用與不用,聽與不聽也。誠令成安君聽足下計,若信者亦已為禽矣。以不用足下,故信得侍耳。」因固問曰:「僕委心歸計,願足下勿辭。」廣武君曰:「臣聞智者千慮,必有一失;愚者千慮,必有一得。故曰『狂夫之言,聖人擇焉』。顧恐臣計未必足用,願效愚忠。夫成安君有百戰百勝之計,一旦而失之,軍敗鄗下,〔一〕身死泜上。今將軍涉西河,〔二〕虜魏王,禽夏說閼與,一舉而下井陘,不終朝破趙二十萬眾,誅成安君。名聞海內,威震天下,農夫莫不輟耕釋耒,褕衣甘食,〔三〕傾耳以待命者。〔四〕若此,將軍之所長也。然而眾勞卒罷,其實難用。今將軍欲舉倦獘之兵,頓之燕堅城之下,欲戰恐久力不能拔,情見勢屈,曠日糧竭,而弱燕不服,齊必距境以自彊也。燕齊相持而不下,則劉項之權未有所分也。若此者,將軍所短也。臣愚,竊以為亦過矣。故善用兵者不以短擊長,而以長擊短。」韓信曰:「然則何由?」廣武君對曰:「方今為將軍計,莫如案甲休兵,鎮趙撫其孤,百里之內,牛酒日至,以饗士大夫醳兵,〔五〕北首燕路,〔六〕而後遣辯士奉咫尺之書,〔七〕暴其所長於燕,〔八〕燕必不敢不聽從。燕已從,使諠言者東告齊,齊必從風而服,雖有智者,亦不知為齊計矣。如是,則天下事皆可圖也。兵固有先聲而後實者,此之謂也。」韓信曰:「善。」從其策,發使使燕,燕從風而靡。乃遣使報漢,因請立張耳為趙王,以鎮撫其國。漢王許之,乃立張耳為趙王。
이에 한신이 광무군에게 묻기를 “제가 북으로 燕을, 동으로 齊를 공격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공이 있겠습니까?”
광무군이 사양하며 이르길 “신이 듣건데 패한 장수는 용맹을 말할 수 없고 망국의 대부는 살기를 바랄 수 없다 합니다 이제 신은 패망한 포로이니 어찌 대사를 저울질 하겠습니까?” 한신 왈 “제가 듣건데 백리혜가 虞에 머물 땐 虞가 망했고 秦에 머물 땐 秦이 패권을 잡았으니 虞에서는 어리석었다가 秦에서는 지혜로웠던 것이 아니고 쓰여지고 안 쓰여졌느냐 혹은 말을 들었느냐 안 들었느냐 입니다 진실로 성안군이 족하의 계책을 들었다면 저는 또한 사로잡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족하의 계획을 쓰지 않았기에 제가 이렇게 모실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굳이 묻기를 “저는 마음을 다하여 계책을 따르고자 합니다 족하께선 사양하지 말아주십시오”
광무군 왈 “신이 듣건데 지혜로운 자도 천 번 생각에 한 번은 반드시 실수가 있다 하고 어리석은 자도 천 번 생각에 한 번은 반드시 얻음이 있다 합니다 그래서 이르길 미치광이의 말도 성인은 가려듣는다 하더이다 단지 신의 계책이 족히 쓸만한 바가 안되겠지만 어리석은 충심을 다하고자 합니다 대저 안성군은 백전백승의 계책이 있었으나 하루아침에 실수하여 군사는 호하에서 패하고 몸은 지수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장군이 서하를 건너 魏왕을 포로로 하고 알여에서 하열을 사로잡았고, 일거에 정형을 함락하여 하루아침에 趙의 20만 군사를 물리치면서 성안군을 죽였습니다 명성이 강호에 자자하고 위엄은 천하에 떨쳐졌으니 농부들 마다 쟁기와 보습을 놓고 좋은 옷에 맛난 음식이나 찾아 먹으면서 이제나 저제나 귀를 기울여 천명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장군의 장점이옵니다 그러나 군사들은 저마다 피로하여 부리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제 장군이 피폐해진 군사를 일으켜 燕의 견고한 성 아래 진을 치게 하고자 한다면 싸운다 하여도 오래도록 정벌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우니 사정이 드러나고 세력이 움추려 들면 날이 갈수록 군량이 다하여지고 약한 燕마저 굴복시키지 못함에 齊는 반드시 국경을 지키면서 스스로 강해질 것입니다 燕과 齊가 서로 지원하여 함락되지 않게 되면 유방과 항우의 권세는 구분될 것이 없게됩니다 이렇게 되어짐이 장군의 단점이라 하겠습니다 신은 어리석어 또한 잘못되었다 생각되지만 본디 용병을 잘하는 이는 자신의 단점으로 상대의 장점을 치지 않고 자신의 장점으로 상대의 단점을 친다 합니다”
한신 왈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광무군 답하길 “바야흐로 장군을 위하여 계책을 내어놓는다면 무기를 정비하고 군사를 쉬게 하느니만 못합니다 趙를 진휼하고 고아들을 돌봐주면 백리 이내에서 술과 고기가 날마다 오게 됩니다 사대부를 접대하고 군사를 먹이면서 북쪽의 燕으로 가는 길에 머물러 있으면 됩니다 이후 말주변 좋은 선비에게 짧은 서신을 들려 보내어 우리의 장점을 燕에 드러내 보이면 燕은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燕이 이미 복종하고 나서 말 잘하는 자를 동쪽의 齊에 보내 고하시면 齊는 반드시 바람결에 복종할 것이니 비록 지혜로운 자가 나선다 해도 齊를 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하의 일을 대개 도모할 수 있습니다 군사의 일은 본디 먼저 명성을 갖고 나중에 실제를 갖는다 하는 말이 이런 것을 이르는 것이옵니다”
한신 왈 “좋습니다” 그 계책을 따라서 사신을 燕에 보내니 燕은 바람에 쓸리듯 스러지고 이에 사신을 漢에 보내 보고하고는 장이를 趙의 왕에 세우고 趙나라를 진무하려 한다 청하였다 漢왕이 이를 허락하니 이에 장이를 趙왕에 세웠다
〔一〕 集解李奇曰:「鄗音臛。今高邑是。」
집해 이기 왈: 鄗(땅이름 호)는 臛(고깃국 학)으로 읽는다 지금의 고읍이 이곳이다
〔二〕 索隱此之西河當馮翊也。 正義即同州龍門河,從夏陽度者。
색은: 이 곳은 서하의 풍익에 마땅하다
정의: 즉 동주 용문하이니 하양에서 건넌것이다
〔三〕 索隱褕,鄒氏音踰,美也。恐滅亡不久,故廢止作業而事美衣甘食,日偷苟且也,慮不圖久故也。漢書作「靡衣媮食」也。
색은: 褕(고을 유)는 추씨 이르되 踰로 읽고 아름다운 것이다 곧 멸망할 것을 두려워하여 일을 멈추고 좋은 옷을 입고 잘 먹는 것으로 구차하게 있기 싫어함이니 생각이 멀리 도모할 수 없는 이유에서이다 한서에 靡衣媮食이라 쓰여 있다
〔四〕 集解如淳曰:「恐滅亡不久故也。」
집해 여순 왈: 멸망할 날이 머지 않았다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五〕 集解魏都賦曰:「肴醳順時。」劉逵曰:「醳酒也。」 索隱劉氏依劉逵音。醳酒謂以酒食養兵士也。案:史記古「釋」字皆如此作,豈亦謂以酒食醳兵士,故字從酉乎?
집해 위도부 왈: 술과 안주를 맞추어 내놓는 것이다 유규 왈 醳(진한 술 역)은 술이다
색은: 유씨가 유규에 의거하여 읽고 있다 醳酒는 술과 밥을 군사에게 먹이는 것이다 살피건데 사기의 옛 釋자는 모두 이렇게 쓰여 있으니 술과 밥으로 군사를 먹인다 할 때 글자가 酉에 따르게 된것 아닌가 한다
〔六〕 正義首音狩,向也。
정의: 首는 狩로 읽으며 향하는 것이다
〔七〕 正義咫尺,八寸。言其簡牘或長尺也。
정의: 지척은 8촌이다 그 서신 혹은 긴 편지를 이른다(**당시 편지는 보통 8촌이었다고 함: 小川環樹**)
〔八〕 正義暴音僕。
정의 :暴은 僕으로 읽는다
楚數使奇兵渡河擊趙,趙王耳、韓信往來救趙,因行定趙城邑,發兵詣漢。楚方急圍漢王於滎陽,漢王南出,之宛、葉閒,〔一〕得黥布,走入成皋,楚又復急圍之。六月,漢王出成皋,東渡河,獨與滕公俱,從張耳軍脩武。至,宿傳舍。晨自稱漢使,馳入趙壁。張耳、韓信未起,即其臥內上奪其印符,以麾召諸將,易置之。信、耳起,乃知漢王來,大驚。漢王奪兩人軍,即令張耳備守趙地。拜韓信為相國,收趙兵未發者擊齊。〔二〕
楚에서는 몇 차례 기습적으로 군사를 보내 황하를 건너 趙를 치게 하였지만 趙 왕 장이와 한신이 왕래하며 趙를 구원하였다 이어 趙의 성읍들을 안정시키고 군사를 내어 漢으로도 보내었다 楚에서 바야흐로 漢 왕을 형양에서 바짝 포위하니 漢왕이 남으로 나아가 완과 섭 사이로 가면서 경포를 얻어 성고로 달아났다 楚가 다시 이곳을 바짝 포위하였다 6월 漢왕이 성고를 나서서 동으로 황하를 건너 등공과 단 둘이서 수무에 있는 장이의 군사를 따르고자 하고는 도착하여 숙소에 묵게 되었다 새벽에 스스로를 漢의 사신이라 칭하고는 趙의 보루에 달려 들어왔다 장이와 한신은 아직 기상하지 않았는데 그의 침상에 있는 인장과 부절을 빼앗아서는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아 바꾸어 놓았다 한신과 장이가 일어나 漢왕이 온 것을 알고 대경하였다 漢왕은 두 사람의 군사를 빼앗고는 장이로 하여금 趙 땅을 수비하게 하였으며 한신은 상국으로 제수하여 趙의 군사로 아직 징발하지 않은 자들을 거두어 齊를 치게 하였다
〔一〕 正義宛在鄧州。葉在許州。
정의;완은 등주에 있다 섭은 허주에 있다
〔二〕 集解文穎曰:「謂趙人未嘗見發者。」
집해 문영 왈: 趙에서 아직 징발되지 아니한 자를 이른다
信引兵東,未渡平原,〔一〕聞漢王使酈食其已說下齊,韓信欲止。范陽辯士蒯通說信曰:「將軍受詔擊齊,而漢獨發閒使下齊,寧有詔止將軍乎?何以得毋行也!且酈生一士,伏軾〔二〕掉三寸之舌,下齊七十餘城,將軍將數萬眾,歲餘乃下趙五十餘,為將數歲,反不如一豎儒之功乎?」於是信然之,從其計,遂渡河。齊已聽酈生,即留縱酒,罷備漢守禦信因襲齊歷下軍,〔三〕遂至臨菑。齊王田廣以酈生賣己,乃亨之,而走高密,使使之楚請救。韓信已定臨菑,遂東追廣至高密西。楚亦使龍且將,號稱二十萬,救齊。
한신이 군사를 이끌고 동으로 가서 아직 평원을 건너지 못하였는데 漢왕이 역이기(酈食其)를 시켜 齊를 이미 설득하여 함락하였다 듣고는 한신이 그만두고자 하였다 범양의 변사인 괴통이 한신을 설득하기를 “장군께선 齊를 공격하란 명령을 받았으며 漢이 따로이 밀사를 보내 齊를 함락시켰다지만 장군에게 중지하란 조칙이 있었습니까 어째서 실행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또한 역생은 일개 선비로 수레에 엎드려 있다가 세척의 혀를 놀려서 齊의 70여 성을 함락하였거늘 장군께선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일년 여에 걸쳐서 趙의 50여 성을 함락하였고 장수가 된지 수년이 되어서 오히려 어린 유생의 공만 못하여서야 되겠습니까” 이에 한신이 옳게 여겨 그의 계책을 따라서 황하를 건너게 되었다 齊는 이미 역생의 말을 듣고 그를 머물게 하여 질펀하게 술을 마시며 漢에 대한 방어를 그만두었는데 한신이 이를 틈타서 齊의 역성 아래 군사를 습격하여 임치에 이르게 되었다 齊왕 전광은 역생이 자신을 속였다 여기고 그를 삶아죽이고 고밀로 달아나 사신을 楚에 보내어 구원을 청하였다 한신이 이미 임치를 평정하고는 다시 동쪽으로 전광을 쫒아 고밀의 서쪽까지 갔다 楚 또한 용차를 장수로 하여 20만이라고 떠벌리며 齊를 구원하게 하였다
〔一〕 正義懷州有平原津。
정의: 회주에 평원진이 있다
〔二〕 集解韋昭曰:「軾,今小車中隆起者。」
집해 위소 왈: 軾은 지금의 작은 수레 가운데 융기한 부분이다
〔三〕 集解徐廣曰:「濟南歷城縣。」
집해 서광 왈: 제남의 역성현이다
齊王廣、龍且并軍與信戰,未合。人或說龍且曰:「漢兵遠鬥窮戰,其鋒不可當。齊、楚自居其地戰,兵易敗散。〔一〕不如深壁,令齊王使其信臣招所亡城,亡城聞其王在,楚來救,必反漢。漢兵二千里客居,齊城皆反之,其勢無所得食,可無戰而降也。」龍且曰:「吾平生知韓信為人,易與耳。且夫救齊不戰而降之,吾何功?今戰而勝之,齊之半可得,何為止!」遂戰,與信夾濰水陳。〔二〕韓信乃夜令人為萬餘囊,滿盛沙,壅水上流,引軍半渡,擊龍且,詳不勝,還走。龍且果喜曰:「固知信怯也。」遂追信渡水。信使人決壅囊,水大至。龍且軍大半不得渡,即急擊,殺龍且。龍且水東軍散走,齊王廣亡去。信遂追北至城陽,〔三〕皆虜楚卒。
齊왕 전광과 용차가 군사를 함께 하여 한신과 전투를 하려함에 아직 부딪치지 않았을 때 누군가 용차에게 설득하여 이르길 “漢의 군사가 멀리서부터 싸우면서 전쟁을 겪었기에 그 예봉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齊와 楚는 자신이 거처하는 곳에서 싸우니 군사는 쉽게 패하여 달아나려 합니다 차라리 보루를 깊이하면서 齊왕에게 믿을만한 신하를 보내 잃어버린 성에 조칙을 내게 하면 잃은 성에서 그들의 왕이 건재함을 알고 楚에서 구원을 할 것을 알게되면 반드시 漢에 등질 것입니다 漢의 군사는 이천 리 객지에 머무니 齊의 성에서 모두 이들에 등지면 그 형세가 군량을 얻지 못하게 되고 싸우지 않고도 항복시킬 수 있게 됩니다”
용차 이르길 “내 평생 한신의 위인됨을 잘 알기에 쉽게 다룰 수 있느니라 또한 齊를 구원하러 와서 싸우지 않고 그를 항복시키면 내게 무슨 공이 있겠는가 이제 싸워서 이기면 齊의 절반은 가질 수 있거늘 어찌 그만두겠는가?”
마침내 싸우고자 한신과 유수에서 마주하여 대진하였다 한신이 이에 밤에 부하들에게 주머니 만여 개를 만들어 모래를 가득 채워서 상류의 물을 막게 하여 군사를 이끌고 반쯤 건너 용차를 습격하되 일부러 이기지 않고 돌아서 달아났다 용차가 과연 기뻐 이르길 “본디 한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침내 한신을 쫒아 강을 건넜다 한신이 막아놓은 모래주머니들을 치우게 하니 물살이 크게 내려왔다 용차의 군은 태반이 미처 건너지 못하였으니 이에 바로 습격하여 용차를 죽였다 용차의 수동군은 흩어져 달아났으며 齊왕 전광도 달아났다 한신은 북으로 쫒아 성양에 이르러 楚의 군사를 모두 포로로 삼았다
〔一〕 正義近其室家,懷顧望也。
정의: 그 집에 가까워 달아날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다
〔二〕 集解徐廣曰:「出東莞而東北流,至北海都昌縣入海。」 索隱濰音維。地理志濰水出琅邪箕縣東北,至都昌入海。徐廣云「出東莞而東北流入海」,蓋據水經而說,少不同耳。
집해 서광 왈: 동완을 나서서 동북으로 흘러 북해 군 창현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
색은: 濰는 維로 읽으니 지리지에 유수가 낭야 기현 동북에서 나서서 도창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 하였다 서광 이르길 동완을 나서서 동북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 하였는데 아마도 수경에 의거하여 설명한듯 하며 조금 차이가 난다
〔三〕 正義城陽雷澤縣是也,在濮州東南九十一里。
정의: 성양 뇌택현이 이것이다 복주 동남 91리 지점이다
漢四年,遂皆降平齊。使人言漢王曰:「齊偽詐多變,反覆之國也,南邊楚,不為假王以鎮之,其勢不定。願為假王便。」當是時,楚方急圍漢王於滎陽,韓信使者至,發書,〔一〕漢王大怒,罵曰:「吾困於此,旦暮望若來佐我,乃欲自立為王!」張良、陳平躡漢王足,因附耳語曰:「漢方不利,寧能禁信之王乎?不如因而立,善遇之,使自為守。不然,變生。」漢王亦悟,因復罵曰:「大丈夫定諸侯,即為真王耳,何以假為!」乃遣張良往立信為齊王,〔二〕徵其兵擊楚。
漢 4년 마침내 모두 항복시키고 齊를 평정하였다
漢왕에게 사신을 보내 말하길
“齊는 거짓과 속임으로 자주 변하여 뒤집기를 자주하는 나라입니다 남으로 楚와 접경하는데 假(가) 왕이 되지 않고서 이를 진압할 수 없게 그 판세가 안정되지 못하였습니다 가왕이 되어 편의를 돌보고자 청합니다”
당시에 楚는 바야흐로 漢왕을 형양에서 바짝 포위하고 있었기에 한신의 사자가 닿아 서신을 펼쳐보고는 漢왕이 대노하여 욕하여 이르길
“내가 이곳에서 곤욕스러워 아침 저녁으로 네가 와서 보좌하길 기다리건만 이제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구나”
장량과 진평이 漢왕의 발을 밟아 눈치를 주고는 귓속말로 이르길
“漢이 바야흐로 불리하여지는데 어찌 한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것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왕으로 세워 잘 우대하여 스스로 잘 지키도록 함만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고가 생길 것입니다”
漢왕 또한 깨닫고 이에 다시 욕을 하며 이르길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하였으면 眞왕이 될 것이지 어찌 假왕이 된단 말이냐”
이에 장량을 보내 한신을 齊의 왕으로 세우고 그의 군사를 징발하여 楚를 공격하게 하였다
〔一〕 集解張晏曰:「發信使者所齎書。」
집해 장안 왈: 한신의 사자의 받들어 올린 서신을 펼친 것이다
〔二〕 集解徐廣曰:「四年二月。」
집해 서광 왈: 4년 2월이다
楚已亡龍且,項王恐,使盱眙人武涉〔一〕往說齊王信曰:「天下共苦秦久矣,相與戮力擊秦。秦已破,計功割地,分土而王之,以休士卒。今漢王復興兵而東,侵人之分,奪人之地,已破三秦,引兵出關,收諸侯之兵以東擊楚,其意非盡吞天下者不休,其不知厭足如是甚也。且漢王不可必,身居項王掌握中數矣,〔二〕項王憐而活之,然得脫,輒倍約,復擊項王,其不可親信如此。今足下雖自以與漢王為厚交,為之盡力用兵,終為之所禽矣。足下所以得須臾至今者,以項王尚存也。當今二王之事,權在足下。足下右投則漢王勝,左投則項王勝。項王今日亡,則次取足下。足下與項王有故,何不反漢與楚連和,參分天下王之?今釋此時,而自必於漢以擊楚,且為智者固若此乎!」韓信謝曰:「臣事項王,官不過郎中,位不過執戟,〔三〕言不聽,畫不用,故倍楚而歸漢。漢王授我上將軍印,予我數萬眾,解衣衣我,推食食我,言聽計用,故吾得以至於此。夫人深親信我,我倍之不祥,雖死不易。幸為信謝項王!」
楚는 이미 용차를 잃고 보니 항왕도 두려워져 우이 출신의 무섭을 보내 齊 왕 한신을 설득케 하여 이르길
“천하가 함께 秦에 고통스러워한 지 오래되어 더불어서 힘을 합하여 秦을 공격하였습니다 秦이 이미 깨어지고 공을 헤아려 땅을 나누어 갈라서 왕이 되면서 군사를 쉬게 하면 됩니다 지금 漢왕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와서 남의 분배지에 침입하고 남의 땅을 빼앗고자 하여 이미 삼진을 부수고 군사를 이끌어 함곡관을 나서서 제후의 군사를 거두어 동쪽으로 楚를 공격하고 있으니 그 뜻은 천하를 삼키지 않으면 쉬지 않으려 함이고 만족할 줄 모름이 이와 같이 심합니다 또한 漢왕은 믿을 수 없으니 전에 항왕의 수중에 머물게 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항왕이 가엽게 여겨 살려주었더니 벗어나게 됨에 바로 약속을 등지고 다시 항왕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를 친근히 믿을 수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이제 족하께서 비록 스스로 漢왕과 더불어 두텁게 교유한다고 여겨 그를 위해 힘을 다해 용병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그에게 잡히게 될 것입니다 족하께서 잠깐 사이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항왕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 두 왕의 사정을 논한다면 저울추는 족하에게 있습니다 족하께서 오른쪽으로 던지면 漢왕이 이기고 왼쪽으로 던지면 항왕이 이깁니다 항왕이 지금 망하면 다음은 족하를 취할 것입니다 족하와 항왕은 연고가 있거늘 어찌 漢을 등지고 楚와 연결하여 화친하여 천하를 셋으로 갈라 왕이 되려 하지 않으십니까? 이 시기를 놓치면 스스로 온전히 漢을 위해 楚를 공격할 것이니 대저 지혜로운 이는 본디 이와 같다 하겠습니까?” 한신이 사양하며 왈
“신이 항왕을 섬김에 관직은 낭중에 불과하고 지위는 집극에 불과하여 말을 하면 들어주지 않고 계획도 채용되지 않았기에 楚를 배반하고 漢에 귀의하였던 것입니다 漢왕은 나에게 상장군의 인을 주었고 수만의 군사를 내주었으며 옷을 벗어 나를 입혔고 음식을 주어 나를 먹였으며 말을 듣고 계책을 썼습니디 고로 내가 여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대저 남이 나를 깊이 친하게 여기고 믿어주는데 내가 그를 배신함은 상서롭지 못합니다 비록 죽더라도 변하지 않으렵니다 제 대신 항왕에게 인사 전해주십시오”
〔一〕 集解張華曰:「武涉墓在盱眙城東十五里。」
집해 장화 왈: 무섭의 묘가 우이성 동쪽 15리 지점에 있다
〔二〕 正義數,色庾反。
정의: 數는 수로 읽는다
〔三〕 集解張晏曰:「郎中,宿衛執戟之人也。」
집해 장안 왈: 낭중은 숙소를 지키느라 창을 잡고 있는 자이다
武涉已去,齊人蒯通知天下權在韓信,欲為奇策而感動之,以相人說韓信曰:「僕嘗受相人之術。」韓信曰:「先生相人何如?」對曰:「貴賤在於骨法,憂喜在於容色,成敗在於決斷,以此參之,萬不失一。」韓信曰:「善。先生相寡人何如?」對曰:「願少閒。」信曰:「左右去矣。」通曰:「相君之面,不過封侯,又危不安。相君之背,貴乃不可言。」〔一〕韓信曰:「何謂也?」蒯通曰:「天下初發難也,俊雄豪桀建號壹呼,天下之士雲合霧集,魚鱗襍遝,熛至風起。當此之時,憂在亡秦而已。今楚漢分爭,使天下無罪之人肝膽塗地,父子暴骸骨於中野,不可勝數。楚人起彭城,轉鬥逐北,至於滎陽,乘利席卷,威震天下。然兵困於京、索之閒,迫西山而不能進者,三年於此矣。漢王將數十萬之眾,距鞏、雒,阻山河之險,一日數戰,無尺寸之功,折北不救,〔二〕敗滎陽,傷成皋,〔三〕遂走宛、葉之閒,此所謂智勇俱困者也。夫銳氣挫於險塞,而糧食竭於內府,百姓罷極怨望,容容無所倚。以臣料之,其勢非天下之賢聖固不能息天下之禍。當今兩主之命縣於足下。足下為漢則漢勝,與楚則楚勝。臣願披腹心,輸肝膽,效愚計,恐足下不能用也。誠能聽臣之計,莫若兩利而俱存之,參分天下,鼎足而居,其勢莫敢先動。夫以足下之賢聖,有甲兵之眾,據彊齊,從燕、趙,出空虛之地而制其後,因民之欲,西鄉〔四〕為百姓請命,〔五〕則天下風走而響應矣,孰敢不聽!割大弱彊,以立諸侯,諸侯已立,天下服聽而歸德於齊。案齊之故,有膠、泗之地,懷諸侯以德,深拱揖讓,則天下之君王相率而朝於齊矣。蓋聞天與弗取,反受其咎;時至不行,反受其殃。願足下孰慮之。」
무섭이 이미 떠나고 齊나라 사람 괴통은 천하의 저울추가 한신에 있음을 알고 기묘한 계책을 내어 한신을 움직이고자 하여 관상을 가지고 한신을 설득하고자 하여 왈
“제가 일찍이 관상을 배웠습니다”
한신 왈
“선생은 어떻게 상을 보시오”
답하길
“귀하고 천함은 골상에 있고 근심과 기쁨은 안색에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결단에 있으니 이를 참고하면 실수함이 없습니다”
한신 왈
“좋습니다 선생이 과인의 상을 보건데 어떠합니까?”
답하길
“듣는 이가 있습니다”
한신 왈
“좌우는 물렀거라”
괴통 왈
“상군의 얼굴은 제후에 봉하여짐에 불과하고 또한 위태하여 불안합니다 상군의 등 쪽은 귀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한신 왈
“무슨 말이오?”
괴통 왈
“천하에 처음 난이 일어남에 영웅호걸이 나라를 세워 일갈하니 천하의 선비가 구름과 안개 모이듯 모이고 어중이떠중이 몰려들면서 불꽃이 튀어 바람이 일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근심은 秦을 무너뜨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제 楚와 漢이 나뉘어 다투니 천하의 무고한 사람들로서 길에서 죽어나가고 아비와 자식이 함께 들판에 해골로 나뒹굴고 있는 것이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楚의 항우는 팽성에서 일어나 여기저기서 싸워 적을 쫒았으니 형양에 이르러 승세를 타고 석권하면서 위엄이 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군사는 경과 삭의 사이에서 곤경에 처하여 서산으로 쫒겨나 나아가지 못한지 3년이 되었습니다 漢 왕은 수십 만의 군사를 이끌고 공, 낙에 대치하여 산하의 험준함에 가로막혀 하루에도 몇 번 싸우되 조금의 땅도 얻지 못하고 패하고 꺽이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형야에서 패하고 성고에서 상하고 완과 섭의 사잇길로 달아나게 되었으니 이는 소위 지혜와 용기가 모두 부족한 것이옵니다 대저 예기는 험한 요새에 꺽이고 양식은 국내에서도 다하였으니 백성들의 피곤함은 극심하여 원망하되 갈팡지팡 기대할 곳이 없습니다 신이 헤아리건데 지금의 판세는 천하의 어진 성인이 아니고서는 이 천하의 화를 잠재울 수 없습니다 지금 두 군주의 명운은 족하에게 달려있습니다 족하께서 漢을 위하면 漢이 승리하고 楚를 거들면 楚가 승리합니다 신은 복심을 내보이고 간과 쓸개를 내어 제 생각을 보이고자 하나 족하께서 쓰지 않으실까 두렵습니다 진심으로 신의 계책을 쓸 수 있다면 양쪽을 이롭게 하고 함께 살아남게 하여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솥발같이 서게 하여 어느 누구도 감히 먼저 도발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족하의 어진 성덕과 지닌 군사의 무리로 강한 齊에 거처하여 燕 趙와 합종하십시오 비어있는 땅으로 나서서 그 배후를 제압하면서 백성의 뜻을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면서 백성의 목숨을 구하자고 청한다면 천하는 바람결에 따르듯 호응할 것이며 누가 감히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큰 것을 자르고 강한 것을 약화시켜 제후를 세움이니 제후가 세워지고 나면 천하는 굴복하여 따르면서 덕을 齊에 돌리게 됩니다 齊의 옛 땅을 안정시키고 교와 사의 땅을 소유하면서 제후를 덕으로 품고 (만날 때) 손을 높이 올려 읍양하면 천하의 군왕이 서로 이끌고 齊에 와서 조회하게 될 것입니다 대개 이르길 하늘이 주는 바를 취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허물을 받는다 합니다 때가 되었는데 행하지 않으면 그 재앙을 받게 됩니다 족하께선 깊이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一〕 集解張晏曰:「背畔則大貴。」
집해 장안 왈: 배반하면 크게 귀해짐이다
〔二〕 集解張晏曰:「折,衄敗也。北,奔北。」
집해 장안 왈: 折은 기세가 꺽이어 패하는 것이고 北는 패하여 달아나는 것이다
〔三〕 集解張晏曰:「於成皋傷胸也。」臣瓚曰:「謂軍折傷。」
집해 장안 왈: 성고에서 가슴을 다쳤었다 신찬 왈 군사를 잃고 상하게 하였던 것이다
〔四〕 正義鄉音向。齊國在東,故曰西向也。
정의: 響은 向이니 제나라가 동쪽에 있어 서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五〕 正義止楚漢之戰鬥,士卒不死亡,故云「請命」。
정의: 楚와 漢의 전투를 그쳐 사졸이 죽지 않게 하는 것이니 고로 이르길 목숨을 청한다 하는 것이다
韓信曰:「漢王遇我甚厚,載我以其車,衣我以其衣,食我以其食。吾聞之,乘人之車者載人之患,衣人之衣者懷人之憂,食人之食者死人之事,吾豈可以鄉利倍義乎!」蒯生曰:「足下自以為善漢王,欲建萬世之業,臣竊以為誤矣。始常山王、成安君為布衣時,相與為刎頸之交,後爭張黶、陳澤之事,二人相怨。常山王背項王,奉項嬰頭而竄,逃歸於漢王。漢王借兵而東下,殺成安君泜水之南,頭足異處,卒為天下笑。此二人相與,天下至驩也。然而卒相禽者,何也?患生於多欲而人心難測也。今足下欲行忠信以交於漢王,必不能固於二君之相與也,而事多大於張黶、陳澤。故臣以為足下必漢王之不危己,亦誤矣。大夫種、范蠡存亡越,霸句踐,立功成名而身死亡。野獸已盡而獵狗亨。夫以交友言之,則不如張耳之與成安君者也;以忠信言之,則不過大夫種、范蠡之於句踐也。此二人者,足以觀矣。願足下深慮之。且臣聞勇略震主者身危,而功蓋天下者不賞。臣請言大王功略:足下涉西河,虜魏王,禽夏說,引兵下井陘,誅成安君,徇趙,脅燕,定齊,南摧楚人之兵二十萬,東殺龍且,西鄉以報,此所謂功無二於天下,而略不世出者也。今足下戴震主之威,挾不賞之功,歸楚,楚人不信;歸漢,漢人震恐:足下欲持是安歸乎?夫勢在人臣之位而有震主之威,名高天下,竊為足下危之。」韓信謝曰:「先生且休矣,吾將念之。」 後數日,蒯通復說曰:「夫聽者事之候也,計者事之機也,聽過計失而能久安者,鮮矣。聽不失一二者,不可亂以言;計不失本末者,不可紛以辭。夫隨廝養之役者,失萬乘之權;守儋石之祿者,〔一〕闕卿相之位。故知者決之斷也,疑者事之害也,審豪氂之小計,遺天下之大數,智誠知之,決弗敢行者,百事之禍也。故曰『猛虎之猶豫,不若蜂蠆之致螫;〔二〕騏驥之跼躅,〔三〕不如駑馬之安步;孟賁之狐疑,不如庸夫之必至也;雖有舜禹之智,吟而不言,〔四〕不如瘖聾之指麾也』。此言貴能行之。夫功者難成而易敗,時者難得而易失也。時乎時,不再來。願足下詳察之。」韓信猶豫不忍倍漢,又自以為功多,漢終不奪我齊,遂謝蒯通。蒯通說不聽,已詳狂為巫。〔五〕
한신 왈
“漢왕이 나를 심히 후대하여 나를 그의 수레에 태워주고 그의 옷을 입히고 그의 음식을 먹여죽었소 내가 듣건데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그의 근심을 이고 간다 하며 남의 옷을 입는 자는 그의 근심을 품는다 하며 남의 음식을 먹는 자는 그의 일로 죽는다 하는데 내 어찌 잇속을 쫒아 의를 배반하겠소”
괴통 왈
“족하께선 스스로 漢 왕을 선하다 여기시어 만세의 업을 세우고자 하시지만 신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상산왕 장이와 성안군 진여가 포의 시절에 서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우의를 지녔지만 나중에 장염과 진탁의 일로 두 사람이 서로 원망하였습니다 상산왕이 항왕을 배신하고 항영의 머리를 받들고 도망가서 漢 왕에 귀의하였습니다 漢 왕은 군사를 내어주어 동쪽으로 보내 성안군을 지수의 남쪽에서 죽이도록 하였으니 머리와 발이 서로 다른 곳에 놓이도록 하여 결국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서로 어울릴 땐 천하의 지극한 사이였는데 결국은 서로를 잡고야 말았으니 어찌된 일이겠습니까 환란은 욕심이 많은데서 생겨나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지금 족하가 漢 왕에게 교류함에 충성과 신의로써 하고자 하나 반드시 저 두 사람의 우의만큼 단단하지도 않고 벌어질 일은 장염 진탁의 건보다 많게 됩니다 고로 신은 족하께서 결코 漢왕이 나에게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 여김은 또한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대부 종과 범려는 망해가는 越나라를 살려내고 구천을 패자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지만 몸은 죽게 되었습니다 들짐승을 다 잡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답니다 대저 교우로써 말하여도 장이와 성안군에 미치지 못하고 충성과 신의로써 말하여도 대부 종 및 범려가 구천에 하였음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 두 사람에 관한 일은 살펴볼만 합니다 족하께선 깊이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신이 또한 듣건데 용맹함과 책략이 군주를 떨게 하는 자는 위험하고 그 공이 천하를 덮은 자는 보상받지 못한다 합니다 신이 대왕의 공과 지략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족하께선 서하를 건너 魏왕을 포로로 하고 하열을 사로잡았으며 군사를 이끌고 정형을 함락하여 성안군을 죽이고 趙를 공략하여 燕을 위협하였고 齊를 평정하였으며 남쪽으로 楚의 군사 20만을 꺽었으며 동쪽으로 용차를 죽이고 서쪽으로 향하여 보답하였으니 이것이 소위 천하에 둘도 없는 공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략이 불세출이라 할 것이니 지금 족하가 군주를 떨게하는 위엄을 갖고 있고 보상할 수 없는 공을 지니고 있다 할 것이며 楚에 귀의하면 楚에서 믿지 않고 漢에 귀의하면 漢의 사람이 떨며 두려워 합니다 족하께서 이러한 것을 지니고 어디로 귀의하시렵니까 대저 형세는 남의 신하된 위치에 있으면서 군주를 떨게 하는 위엄을 갖고 이름이 천하에 높으니 족하에겐 위험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한신이 사양하며 왈
“선생은 잠시 멈추시오 내가 생각해 보리다”
며칠 뒤에 괴통이 다시 설득하며 왈
“대저 남의 의견을 들어봄은 일의 징후를 살핌이고 헤아린다는 것은 일의 기틀을 짜는 것입니다 듣기를 잘못하고 헤아려야 할 것을 놓치고서 오래도록 편안한 경우는 없습니다 의견을 들음에 우선할 것이 무엇인지 놓치지 않으면 말로서 어지럽힐 수 없습니다 헤아려봄에 본말을 잃지 않으면 말로써 어지럽힐 수 없습니다 남의 종노릇이나 하는 자는 만승의 권세를 놓치고 작은 봉록이나 지키려는 자는 경상의 지위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고로 지혜로써 결단하는 것이며 의심은 일을 해칩니다 가는 털끝 같은 작은 것을 살피느라 천하의 큰 이치를 저버리게 됩니다 진실로 이를 알 만큼 지혜로워도 결단하여 감행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고로 이르길 사나운 범도 머뭇거리면 벌이나 전갈이 와서 쏘느니만 못하며 천리마도 머뭇거리면 둔마가 천천히 걷느니만 못하고 천하장사인 맹분일지라도 주저한다면 범부가 반드시 오느니만 못하며 순과 우임금의 지혜로도 입 다물고 있으면 벙어리가 손가락으로 가르킴만 못하다 합니다 이 말은 능히 행동할 수 있음을 귀히 여긴 것입니다 대저 공적은 이루기 어렵고 실패하기 쉽습니다 시간은 얻기 어렵고 잃기 쉽습니다 시간입니다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족하께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한신이 머뭇거리며 결국 漢을 배신하지 못하였으니 한편으로 자신이 공이 많아 漢이 결코 그에게서 齊를 빼앗지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결국 괴통에게 사양하니 괴통은 설득이 통하지 않음에 미친 척 하고 무당이 되었다
〔一〕 集解晉灼曰:「楊雄方言『海岱之閒名罌為儋』。石,斗石也。」蘇林曰:「齊人名小罌為儋。石,如今受鮐魚石罌,不過一二石耳。一說,一儋與一斛之餘。」 索隱儋音都濫反。石,斗也。蘇林解為近之。鮐音胎。
집해 진작 왈: 양웅방 이르길 해와 대의 사이 지역에서 항아리를 儋이라 부른다 石은 말 섬을 이른다 소림 이르길 齊나라 사람들이 작은 항아리를 儋이라 하였다 石은 요즘 태반을 담는 돌 항아리와 같다 불과 한 두 섬 된다 일설에 일 담과 일곡의 여유라 하였다
색은:儋은 담으로 읽는다 石은 한 말이다 소림의 해석이 가깝다 鮐(복어 태)는 胎로 읽는다
〔二〕 正義音適。
정의: 適으로 읽는다
〔三〕 集解徐廣曰:「跼,一作『蹢』也。」
집해 서광 왈: 跼은 일부에 蹢으로 쓰여있다
〔四〕 索隱吟,鄭氏音拒蔭反,又音琴。
색은: 吟(입다물 금)은 정씨는 금으로 읽는다 하였다
〔五〕 集解徐廣曰:「一本『遂不用蒯通,蒯通曰:「夫迫於細苛者,不可與圖大事;拘於臣虜者,固無君王之意。」說不聽,因去詳狂』也。」 索隱案:漢書及戰國策皆有此文。
집해 서광 왈: 일부에는 마침내 괴통의 말을 쓰지 않았다 괴통 왈 작은 부담에 허둥거리는 자와 대사를 더불어 도모할 수 없다 신하됨에 매어 있는 자는 본디 군왕의 뜻이 없도다 하고는 설득이 통하지 않자 이에 가서 미치광이 흉을 내었다
색은: 한서 및 전국책에 모두 이 문장이 있다
漢王之困固陵,用張良計,召齊王信,遂將兵會垓下。項羽已破,高祖襲奪齊王軍。〔一〕漢五年正月,徙齊王信為楚王,都下邳。
漢왕이 고릉에서 곤경에 처해 장량의 계책을 써서 齊왕 한신을 불러내어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해하에서 회합하였다 항우를 격파하고서 고조가 齊 왕의 군사를 기습적으로 빼앗었다 漢 5년 정월 齊 왕 한신을 옮겨 楚의 왕으로 삼고 하비를 도읍으로 하게하였다
〔一〕 集解徐廣曰:「以齊為平原、千乘、東萊、齊郡。」
집해 서광 왈: 齊로 하여금 평원, 천승, 동래로 하여 齊郡으로 하였다
信至國,召所從食漂母,賜千金。〔一〕及下鄉南昌亭長,賜百錢,曰:「公,小人也,為德不卒。」召辱己之少年令出胯下者以為楚中尉。告諸將相曰:「此壯士也。方辱我時,我寧不能殺之邪?殺之無名,故忍而就於此。」
한신이 楚에 와서는 전에 따르며 밥을 얻어 먹던 빨래하던 어멈을 불러 천금을 내렸다 하향의 남창정장을 불러서는 백 전을 내리고 이르길 “공은 소인이로다 덕을 행하면서 끝을 보지 못하였다” 자신이 어렸을 때 가랑이 밑을 지나게 하여 욕을 보였던 자를 불러 楚의 중위를 삼았다 여러 장수와 재상에게 이르길 “저자는 장사이다 나를 욕보이던 시절 내가 어찌 그를 죽이지 못하였겠는가 아무런 명분도 없이 죽이는 것이기에 고로 참아내어 여기에 이른 것이다”
〔一〕 集解張華曰漂母冢在泗口南岸。
집해: 장화 왈 빨래하던 어멈의 묘가 사구 남안에 있다
項王亡將鍾離眛家在伊廬,〔一〕素與信善。項王死後,亡歸信。漢王怨眛,聞其在楚,詔楚捕眛。信初之國,行縣邑,陳兵出入。漢六年,人有上書告楚王信反。高帝以陳平計,天子巡狩會諸侯,南方有雲夢,發使告諸侯會陳:「吾將游雲夢。」實欲襲信,信弗知。高祖且至楚,信欲發兵反,自度無罪,欲謁上,恐見禽。人或說信曰:「斬眛謁上,上必喜,無患。」信見眛計事。眛曰:「漢所以不擊取楚,以眛在公所。若欲捕我以自媚於漢,吾今日死,公亦隨手亡矣。」乃罵信曰:「公非長者!」卒自剄。信持其首,謁高祖於陳。上令武士縛信,載後車。信曰:「果若人言,『狡兔死,良狗亨;〔二〕高鳥盡,良弓藏;敵國破,謀臣亡。』天下已定,我固當亨!」上曰:「人告公反。」遂械繫信。至雒陽,赦信罪,以為淮陰侯。
항왕의 장수로 도망하였던 종리매의 집이 이려에 있었으며 평소 한신과 잘 지냈다 항왕이 죽고 나서 도망쳐서 한신에게 귀의하였다 漢 왕이 종리매를 원망하여 그가 楚에 있다 듣고는 楚에 종리매를 잡으라 명하였다 한신이 처음 楚에 가서 현과 읍을 순찰하고 군사를 배치하여 출입 하였다 漢 6년 누군가 상서를 올려 楚왕 한신이 모반하였다 고변 하였다 고제는 진평의 계책을 써서 천자로서 순수를 하려하니 제후를 모이라 하였다 남방에 운몽이 있었는데 사신을 보내 제후들이 陳에 모이라 알리면서 “내가 장차 운몽에서 노닐고자 한다” 하였으니 실은 한신을 기습하고자 함이었고 한신은 알지 못하였다 고조가 이렇게 楚에 닿고서야 한신은 군사를 내어 모반하고자 하였으나 스스로 헤아려 보니 죄가 없어 주상에게 말을 올리고자 하였으되 또한 잡힐 것을 두려워하였다 누군가 한신에게 아뢰길
“종리매를 죽여서 주상을 뵈면 주상이 반드시 기뻐할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한신이 종리매를 만나 일을 계획하니 종리매 왈
“漢이 楚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이 종리매가 공과 함께 있기 때문이오 만약 나를 잡아서 漢에 아부하고자 한다면 나는 오늘 죽겠소 공 또한 그 수법에 걸려 죽을 것이오”
하고는 한신을 욕하며 왈
“공은 장자가 아니올시다”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이 그 수급을 가지고 고조를 陳에서 알현하였다 주상이 무사를 시켜 한신을 포박하여 뒷 수레에 실었다 한신이 왈
“사람들 말과 과연 같구나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를 삶는다 하였고 높이 나는 새가 다하면 좋은 활을 감추고 적국이 무너지면 모신을 죽인다 하였다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나는 본디 그렇게 삶아지게 되어 있었구나”
주상 왈
“공이 모반하였다고 누가 고하였노라”
하고는 마침내 형틀에 묶어 낙양에 이르러 한신의 죄를 사면하고 회음후로 삼았다
〔一〕 集解徐廣曰:「東海朐縣有伊廬鄉。」駰案:韋昭曰「今中廬縣」。 索隱徐注出司馬彪郡國志。 正義括地志云:「中廬在義清縣北二十里,本春秋時廬戎之國也,秦謂之伊廬,漢為中廬縣。項羽之將鍾離眛冢在。」韋昭及括地志云皆說之也。
집해 서광 왈: 동해 구현에 이려향이 있다 배인 이르길 위소 왈 지금의 중려현이다
색은: 서광의 주석은 사마표군국지에 나온다
정의: 괄지지 이르길 중려는 의청현 북쪽 20리 지점이다 원래 춘추시기에 여융의 나라였다 秦에서 이려라 불렀고 漢대에 중려현이 되었다 항우의 장수 종리매의 묘가 이곳에 있다 위소급괄지지에 이를 모두 설명하고 있다
〔二〕 集解張晏曰:「狡猶猾。」 索隱郊兔死。郊音狡。狡,猾也。吳越春秋作「郊兔」,亦通。漢書作「狡兔」。戰國策曰「東郭逡,海內狡兔也」。
집해 장안 왈: 狡는 猾이다
색은: 郊兔死이니 郊는 狡로 읽는다 狡는 猾이다 오월춘추에 「郊兔」라 쓰였는데 역시 통한다 한서에 「狡兔」라 쓰여 있고 전국책에 이르길 동곽준(**빠른 토끼의 이름**)을 해내에선 狡兔라 한다
信知漢王畏惡其能,常稱病不朝從。信由此日夜怨望,居常鞅鞅,羞與絳、灌等列。信嘗過樊將軍噲,噲跪拜送迎,言稱臣,曰:「大王乃肯臨臣!」信出門,笑曰:「生乃與噲等為伍!」上常從容與信言諸將能不,各有差。上問曰:「如我能將幾何?」信曰:「陛下不過能將十萬。」上曰:「於君何如?」曰:「臣多多而益善耳。」上笑曰:「多多益善,何為為我禽?」信曰:「陛下不能將兵,而善將將,此乃言之所以為陛下禽也。且陛下所謂天授,非人力也。」
陳豨拜為鉅鹿守,〔一〕辭於淮陰侯。淮陰侯挈其手,辟左右與之步於庭,仰天歎曰:「子可與言乎?欲與子有言也。」豨曰:「唯將軍令之。」淮陰侯曰:「公之所居,天下精兵處也;而公,陛下之信幸臣也。人言公之畔,陛下必不信;再至,陛下乃疑矣;三至,必怒而自將。吾為公從中起,天下可圖也。」陳豨素知其能也,信之,曰:「謹奉教!」漢十年,陳豨果反。上自將而往,信病不從。陰使人至豨所,曰:「弟舉兵,吾從此助公。」信乃謀與家臣夜詐詔赦諸官徒奴,欲發以襲呂后、太子。部署已定,待豨報。其舍人〔二〕得罪於信,信囚,欲殺之。舍人弟上變,告信欲反狀於呂后。呂后欲召,恐其黨不就,乃與蕭相國謀,詐令人從上所來,言豨已得死,列侯群臣皆賀。相國紿信曰:「雖疾,彊入賀。」信入,呂后使武士縛信,斬之長樂鍾室。〔三〕信方斬,曰:「吾悔不用蒯通之計,乃為兒女子所詐,豈非天哉!」遂夷信三族。
한신은 漢왕이 자신의 능력을 꺼려함을 알기에 칭병하여 조회에 나서지 않았다 한신은 이로부터 밤낮으로 원망하여 거처함에 앙앙불락하여 주발이나 관영 등과 같은 반열에 있음을 수치스러워 하였다 한신이 한번은 번쾌 장군에게 들르게 되었는데 번쾌가 무릅을 꿇고 절하여 인사하면서 스스로 臣이라 칭하며 왈
“대왕께선 어쩌다 신에게 오시었습니까?”
한신이 문을 나서 웃으며 왈
“살다보니 번쾌 등과 동렬이 되었구나”
주상이 평소 한신과 더불어 한가하게 여러 장수들의 능력을 말하였는데 각기 차이가 났다 주상이 묻기를
“나 같으면 얼마나 많은 군사를 이끌 수 있겠나”
한신 왈
“폐하가 능히 이끌 수 있는 숫자는 10만을 넘지 않습니다”
주상 왈
“당신이라면 얼마나 되는가?”
왈 “신에게는 다다익선이옵니다”
주상이 웃으며 왈
“다다익선이라면 어째서 나에게 잡혔는가?”
한신 왈
“폐하는 군사를 잘 이끌지 못하시나 장수로 하여금 잘 이끌게 하십니다 이것이 폐하께 제가 잡힌 이유를 말해줍니다 또한 폐하는 하늘에서 부여 받은 바이지 사람의 힘이 아니옵니다” 진희가 거록의 수령으로 제수되어 회음후에게 작별하였다 회음후가 그의 손을 이끌고 좌우를 피하여 정원을 함께 거닐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왈
“그대와 더불어 말할 만 하겠는가? 그대에게 할 말이 있네”
진희 왈
“명령만 내리십시오”
회음후 왈
“공이 가는 곳은 천하의 정병이 있는 곳이네 그리고 공은 폐하가 신임하고 있는 신하이네 사람들이 공이 모반하였다 하면 폐하는 반드시 믿지 않을 것이고 다시 또 들리면 폐하가 이에 의심할 것이고 세 번째 이르면 반드시 노하여 스스로 군사를 이끌 것이네 내가 공을 따라서 내부에서 군사를 일으키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네”
진희는 평소 한신의 능력을 아는 터라 그를 믿고 왈
“가르침을 받자옵겠습니다”
漢 10년 진희가 과연 모반하였다 주상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떠나는데 한신은 병을 이유로 따르지 않았다 은밀히 사람을 진희에게 보내 이르길
“아우가 거병하면 내가 이곳에서 공을 돕겠다”
한신이 이에 가신과 더불어 모의하여 밤에 조칙을 꾸며 여러 관가의 노비를 사면한다 하여 일으켜서 여후와 태자를 습격하고자 하였다 부서를 이미 정하고 진희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의 사인이 한신에게 죄를 지어 한신이 감금하여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사인의 아우가 변고를 아뢰면서 한신이 여후에게 모반하려 함을 고하였다 여후가 불러내려다가 그 무리가 움직이려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소상국과 모의하여 주상에게서 온 사람을 꾸며내어 진희가 이미 죽었다 말하게 하고는 모든 후와 신하들이 축하하게 하였다 상국이 한신을 속이며 왈
“비록 병들었다 하여도 억지로라도 와서 축하해 주십시오”
한신이 들어서니 여후가 무사를 시켜 한신을 결박하여 장락궁의 종실에서 참하였다 한신이 참수되려 함에 왈
“내가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았음을 후회하노라 그로해서 아녀자에게 속았으니 어찌 하늘을 탓하겠는가?”
마침내 한신의 삼족을 멸하였다
〔一〕 集解徐廣曰:「表云為趙相國,將兵守代也。」
집해 서광 왈: 표에 이르길 趙 상국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代를 지켰다
〔二〕 索隱按:晉灼曰,楚漢春秋云謝公也。姚氏案功臣表云慎陽侯樂說,淮陰舍人,告信反。未知孰是。」
색은: 진작 왈 초한춘추에 사공이라 하였다 요씨는 공신표에 이르길 신양후악설에 회음후의 사인이 한신이 모반함을 고하였다 하였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다
〔三〕 正義長樂宮懸鍾之室。
정의: 장락궁의 종을 거는 방이다
高祖已從豨軍來,至,見信死,且喜且憐之,問:「信死亦何言?」呂后曰:「信言恨不用蒯通計。」高祖曰:「是齊辯士也。」乃詔齊捕蒯通。蒯通至,上曰:「若教淮陰侯反乎?」對曰:「然,臣固教之。豎子不用臣之策,故令自夷於此。如彼豎子用臣之計,陛下安得而夷之乎!」上怒曰:「亨之。」通曰:「嗟乎,冤哉亨也!」上曰:「若教韓信反,何冤?」對曰:「秦之綱絕而維弛,山東大擾,異姓並起,英俊烏集。秦失其鹿,天下共逐之,〔一〕於是高材疾足者先得焉。蹠之狗吠堯,堯非不仁,狗因吠非其主。當是時,臣唯獨知韓信,非知陛下也。且天下銳精持鋒欲為陛下所為者甚眾,顧力不能耳。又可盡亨之邪?」高帝曰:「置之。」乃釋通之罪。
고조가 진희의 군사를 마치고 와서 한신이 죽었음을 보고 한편 기쁘고 한편 가련하여 묻기를
“한신이 죽으며 무엇을 말하던가?”
여후 왈
“한신은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았음을 한스럽다 하였습니다”
고조 왈
“그는 齊의 변사이다”
하고는 齊에 괴통을 잡아오라 명령하였다 괴통이 이르니 주상 왈
“네가 회음후더러 모반하라 교사하였느냐?”
답하길
“그렇습니다 신이 굳이 그를 가르쳤으나 어린애가 신의 계책을 쓰지 않아 자신을 죽이고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저 어린애가 신의 계책을 썼더라면 폐하께서 어찌 그를 죽일 수 있었겠습니까?”
상이 노하여 이르길
“삶아 죽여라”
괴통 왈
“오호라 원통하도다 삶아지다니”
주상 왈
“네가 한신더러 모반하라 가르쳤거늘 어찌 원통하다 하느냐”
답하길
“秦의 기강이 무너지고 늘어짐에 (국가 법도가 무너져) 산동이 크게 어지러워져 각기 다른 성씨가 함께 일어나 영웅과 호걸이 까마귀 떼처럼 모였습니다 秦이 놓친 정권을 천하가 이를 저마다 쫒았기에 재주가 많고 빨리 달리는 자는 먼저 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음이 요임금이 어질지 않아서가 아니고 개는 그 주인이 아니면 짖을 뿐입니다 당시에 신은 오직 한신을 알았고 폐하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천하의 영민하고 뛰어난 이들이 칼을 들고 폐하의 하였던 바를 자신이 하려는 이가 많았습니다만 단지 힘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모두 삶아죽일 수 있다는 말씀이오?”
고제 왈
“그를 풀어주라”
하고는 괴통의 죄를 없애주었다
〔一〕 集解張晏曰:「以鹿喻帝位也。」
집해 장안 왈: 鹿은 황제의 지위를 비유한다
太史公曰:吾如淮陰,淮陰人為余言,韓信雖為布衣時,其志與眾異。其母死,貧無以葬,然乃行營高敞地,令其旁可置萬家。余視其母冢,良然。假令韓信學道謙讓 ,不伐己功,不矜其能,則庶幾哉,於漢家勳可以比周、召、太公之徒,後世血食矣。不務出此,而天下已集,乃謀畔逆,夷滅宗族,不亦宜乎!
태사공 왈 내가 회음에 가니 회음 사람이 내게 말하길 한신이 비록 포의 시절에도 그 뜻이 다른 사람과 달랐다 한다 그 어미가 죽고 가난하여 장례를 치르지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두루 높고 툭 터진 장소를 골라 그 주변에 만호의 가구가 있을 만한 곳에 자리하게 하였다 내가 그 어미의 무덤을 찾아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가령 한신이 겸양의 학문을 배워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그 능력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더라면 漢대에 있어서 공훈이 주공, 소공, 태공의 무리와도 비견되었을 것이니 후세에 흠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바에 나서길 애쓰지 않고 천하가 이미 결집되고 나서 반역을 모의하였으니 종족이 다 죽게 된 것 또한 마땅한 바가 있다 하겠다
【索隱述贊】君臣一體,自古所難。相國深薦,策拜登壇。沈沙決水,拔幟傳餐。與漢漢重,歸楚楚安。三分不議,偽遊可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