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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박근혜와 이명박, `108번뇌 후 이별여행`
폴리저널 추천 0 조회 566 08.05.12 09:1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박근혜와 이명박, 동반자에서 협조자로
'108번뇌 후 이별여행' 남반구 겨울 바람 안고 올 결심은?
2008년 05월 11일 (일) 07:14:24 양삼운 기자 ysamwoon@koreafindnews.com

108번뇌의 끝은 무상무념이 아닌, 허공을 향한 외침에 불과했다.

 

10일은 3일간의 연휴가 시작되는 5월 둘째 토요일로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는 '놀토'였다. 일부 학교는 6~9일을 자율방학으로 정해 10여일간 쉬는 이들도 있었던 시기였다. 가정의 달인 5월 상순 막바지이자, 12일 석가탄신일을 앞둔 비교적 차분해야 할 주말에 오찬회동 일정으로 인해 언론사마다 당직이 강화됐다.

 

그렇게 요란하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회동 시간도 예정보다 길어져 1시간 50분이 걸렸고, 결과 발표를 청와대에서 보기좋게 같이 할 수도 있다더니 결국 4시가 넘어서야 나왔다.

 

발표도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섰다. 유정복 비서실장이 한나라당사에서 하기로 했지만, 회동 결과가 기대에 못미친다고 판단했는지 자신의 의원회관에서 직접 기자들을 만났다.

 

내용은 "뭐 할려고 만났느냐"는 친박연대 의원의 불평에 잘 묻어난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로 갈라진 신뢰도를 만화하기보다는 이별을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이 우세해지고 있다. 당장 갈라서기에는 유권자의 눈이 무섭겠지만, 명분을 축적하고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취임 70여일만에 지지도가 20%대로 추락한 이명박 대통령이 다급해졌다는 분석이다. 절대적인 우세 전망에도 153석에 그친 총선 후, 한달 만에 퇴로를 찾아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정치평론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면초가의 위기상황인데도 임전무퇴의 돌파형인 그의 선택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라는 것이다. 21년 전에도 비슷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도 하지만, 교훈을 얻으라는 격언이라는 점에서 참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누구의 자문에서 해법을 찾을 것인지 연휴에도 고민이 깊을 것이다.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에게서 심리적인 격려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서 정치공학적인 컨설팅을 얻는데 그친다면, 그의 지지도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낳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렇다고 20일간 입산수도하고 돌아온 지리산 기도발이 충천한 이재오 의원? '농민반란에 무장해제'된 이방호 의원? '수영강물에 떠내려간' 박형준 의원? 차라리 수행단장으로 경선승리를 안겨준 이성권 의원이 정치특별보좌관으로 낫겠다는 비아냥도 있을 정도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정치행로 참고해야

산에 오르며 김영산 전 대통령은 말없이 걸었다. 그를 따르는 민주산악회를 통해 체력과 기상을 회복해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을 모두 제압했다. 책을 읽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목숨을 노리는 핍박을 이겨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단기필마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소신발언을 앞세워 전국적인 지지자들의 자발적인 조직인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을 통해 집권하고 탄핵정국을 돌파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4년전 보수진영의 오판에 의한 탄핵을 밀어붙인 후유증으로 신생정당이던 열린우리당의 단독 개헌선 이상 의석확보가 예상될 정도로 한나라당이 위축되었을 때가 있었다.

 

'차떼기 정당'으로 밀리며 '군소정당이냐, 해체냐'의 기로에 선 한나라당의 구세주가 누구였던가. 천막당사로 옮겨가 전국 격전지에 대한 수차례 지원유세를 통해 접전자에서 당선자를 늘려가며 121석을 건지게 한 이가 누구인가?

 

박근혜 전 대표였다. 그래도 그는 3년간의 부침 끝에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석패한다. '집안을 일으킨 노회한 어머니보다는, 그의 땀을 먹고 자라나 화려하게 돌아온 서울유학생 아들만 필요한 것이 부잣집 며느리의 심성이었다.' 하지만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로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깊게 새기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박근혜는 밀려나기 시작했다. 토사구팽이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당선이 유력한 자당의 후보를 거부할 수 없었으며, 취임후 한달여 만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경선에서 자기를 지지한 의원들이 대거 공천에서 밀려났지만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속았다. 살아서 돌아오라'는게 그의 해답이었다. 여기서 그는 정치지도자를 포기하고 계보 수장으로 내려오고 만다. '영원한 선거대책위원장에 불과하다'는 혹평이 나오기도 한다.

 

고급 전세보다도 자기집을 사려하는 심정을 몰랐을까? 박근혜 전 대표는 다시 한 번 기로에 섰다. 10박 11일의 남반구 여행에서 초겨울 날선 바람으로 돌아올 지, 두꺼운 외투에 싸인 채 평범한 4선 의원으로 돌아올 지...

 

오늘 오후 호주행 여행 가방의 수첩이 얼마나 촘촘하게 정리되어 공개될 지 5월 하순 귀거래사(?)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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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5.13 01:03

    첫댓글 폴리저널님..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자주 올려주세요. 폴리뉴스에 방문해서 이것 저것 유익한 자료 많이 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 08.05.14 00:49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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