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께서 양혜왕을 보신대 왕왈 수 천리를 머다 않고 온다. 하시니 춘향이 모시려 오시니까?"
사략을 읽는데,
"태고라 천황씨도 이(以) 쑥떡으로 왕하여 세기섭제(歲起攝提) 하니 무위이화(無爲而化)하시다 하여 형제 십일 인이 각각 일만 팔천 세를 누리시다."
방자도 또 여짜오되,
"친황씨가 목덕(木德)으로 왕이란 말은 들었으되 쑥떡으로 왕 이란 말은 금시 초문이오."
"이자식 네 모른다. 천황씨는 일만 팔천 세를 살던 양반이라 이가 단단하여 목덕을 잘 자셨거니와 시속의 선배들은 목떡을 먹겠느냐? 공자님께옵서 후생을 생각하사 명륜당에 현몽하고 <시속 선배들은 이가 부족하여 목떡 못 먹기로 물씬물씬한 쑥떡으로 하라> 하여 삼백 육십주 향교에 통문(通文)하고 쑥떡으로 고쳤느니라."
방자 듣다가 말하되,
"여보 하느님이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말도 듣겠읍니다."
또 적벽부(赤壁賦)를 들여 놓고,
"임술(壬戌)지추 칠월 기망에 소자(蘇子)가 객으로 더불어 배를 띄워 적벽의 아래에 놀새 청풍은 서서히 불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기해천문(奇解千文)
천자를 읽을새,
"하늘 천 따 지."
방자 듣고,
"여보 도련님, 점잖은 분이 천자는 웬일이오?"
"천자라 하는 글이 칠서(七書=四書三經)의 본문이라. 양나라 주사봉(周捨奉) 주흥사(周興嗣)가 하룻밤에 이 글을 짓고 머리가 희였기로 책 이름을 백수문(白首文)이라 하니라. 낱낱이 새겨보면 뼈똥쌀 일이 많으니라."
"소인놈도 천자 속은 아옵니다."
"네가 알더란 말이냐?"
"알다 뿐이겠소."
"안다 하니 읽어보라."
"예 들으시요. 높고 높은 하늘 천, 깊고 깊은 따 지, 홰홰친친 가물 현, 불타졌다 누를 황."
"예 이놈 상놈은 적실하다. 이놈 어디서 장타령하는 놈의 말을 들었구나. 내 읽을테니 들어 보아라. 하늘이 자시에 열려 하늘을 나으니 태극이 광대(廣大) 하늘 천, 땅이 축시에 개벽하니 오행과 팔괘로 따 지, 삼십삼천 공(空)은 다시 공인 인심지시(人心指示) 가물 현, 이십팔숙(二十八宿),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의 정색(正色) 누를 황(黃), 우주일월중화(宇宙日月重華)하니 옥우쟁영(玉宇쟁嶸) 집 우(宇), 연대국도 흥성쇠(年代國都興盛衰), 옛은 가고 이제는 오니 집 주(宙), 우치홍수(禹治洪水=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림) 기자 추에 홍범구주(洪範九疇) 넓을 홍(洪), 삼황오제(三皇五帝) 붕(崩)하신 후 난신적자 (亂臣賊子) 거칠 황(荒), 동방이 장차 계명키로 고고천변 일륜홍 번듯 솟아날 일(日), 억조창생, 격양가에 강구연월(康衢煙月)의 달 월(月), 한심미월(寒心微月) 때때로 불어나 삼오일야(三五日夜)에 찰 영(盈), 세상만사 생각하니 달 빛과 같은지라 십오야 밝은 달이 기망(旣望)부터 기울 책, 이십팔숙부터 하도낙서(何圖洛書) 버린 법(法), 일월성신 별 진(辰), 가련금야숙창가(可憐今夜宿娼家)라 원앙금침의 잘 숙(宿), 절대가인 좋은 풍류 나열춘추(羅列春秋)의 버릴 열(列), 의의월색(依依月色) 야삼경의 만단정회(萬端情懷) 베풀 장(張), 오늘 찬 바람이 소슬히 불어오니 침실에 들어라 찰 한(寒), 베개가 높거던 내 팔을 베러 이마만큼 오너라 올 래(來), 에라 후리쳐 질끈 안고 품에 드니 설한풍에도 더울 서(暑), 침실이 덥거든 음풍(陰風)을 취하여 이리저리 갈 왕(往), 불한불열(不寒不熱) 어느 때냐 엽낙 오동 가을 추(秋), 백발이 장차 우거지니 소변풍도를 거둘 수(收), 낙목한풍 (落木寒風) 찬 바람 백운강산의 겨울 동(冬), 자나깨나 잊지 못할 우리 사랑 규중심처에 감출 장(藏), 부용(芙蓉)이 지난밤의 가는 비에 광윤유태(光潤有態) 부를 윤(潤, 이러한 고운 태도 평생을 보고도 남을 여(餘), 백년기약 깊은 맹세 만경창파 이룰 성(成), 이리저리 노닐 적에 부지세월(不知歲月) 햇세(歲), 조강지처 불한당 아내 박대 못하느니 대전통편(大典通編) 법중, 률 (律), 군자호구(君子好逑)이 아니냐. 춘향 입에 내 입을 한데다 대고 쪽쪽빠니 법중여(呂)자가 이 아니냐. 애고애고 보고지고."
필재절등(筆才絶等)
소리를 크게 질러 놓으니 이때 사또가 저녁 진지를 잡수시고 식곤증(食困症)이 나셔서 평상에 취침하시다가,
"애고 애고 보고지고."
소리에 깜짝 놀라,
"이리 오너라."
"예!"
"책방에서 누가 생침을 맞느냐. 신다리를 주물렀느냐? 알아 들여라."
통인이 들어가,
"도련님 웬 목통이오? 고함소리에 사또께서 놀라시사 엄문하라 하옵시니 어찌하오리까?"
"딱한 일이다. 남의 집 늙은이는 이농증(耳聾症)도 있느니라마는 귀 너무 밝은 것도 예삿일 아니로구나."
도련님 크게 놀라,
"이대로 여쭈어라. 내가 논어라는 글을 읽다가 슬프다 나의 도가 오래 된지라 꿈에 주공을 뵙지 못하여 나도 이대목을 보다가 나도 주공을 뵈오면 그리하여 볼까 하여 흥취로 소리를 높아졌으니, 너 그대로만 여쭈어라."
통인이 들어가 그대로 여쭈니 사또는 도련님에게 승벽(勝癖)이 있음을 크게 기꺼워 하여,
"이리 오너라! 책방에 가서 목랑청(睦郞廳)을 가만히 오시래라."
낭청이 들어 오는데 이 양반이 어찌 고리게 생기었던지 체신머리가 없는 걸음으로 조심없이 덤썩 들었던 것이라.
"사또 그새 심심하시지요?"
"아 괜치 않네. 할말이 있네. 우리 피차 고우(故友)로서 동문수업(同門修業) 하였거니와 어릴 때 글 읽기처럼 싫은 것이 없건마는 우리 아이 시흥(詩興)을 보니 어이 아니 즐겁손가."
이 양반은 아는지 모르는지 하여간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이 때 글 읽기처럼 싫은 게 어디 있으리요."
"읽기가 싫으면 잠도 오고 꾀가 많아지지. 이 아이는 글 읽기를 시작하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쓰고 한단 말이여."
"예 그러하옵디다."
"배운 바 없어도 필재가 대단하지."
"그렇지요."
"점 하나만 툭 찍어도 고봉투석(高蜂投石=한문 글자의 좋은 필법)같고, 한 일(一)을 그어 놓으면 천리진운(千里陳雲)이요, 갓머리는 작두첨(雀頭添-획의 모양이 참새 머리 같아야 한다는 말)이요, 필법을 논할지면 풍랑뇌전(風浪雷電)이요, 내리 그어 치는 획은 노송도괘절벽(老松倒掛絶壁)이라, 창과(戈)로 이를 진댄 바른 등(藤) 넝쿨같이 뻗어갔네, 도리깨 치는 데는 성낸 손우 끝같고 기운이 부족하면 발길로 툭 차 올려도 획대로 되나니."
"글씨를 가만히 보오면 획은 획대로 되옵디다."
"글쎄 들어 보세. 저 아이 아홉 살 먹었을 제 서울 집 뜰에 늙은 매화가 있는 고로 매화 나무를 두고 글을 지으라 하였더니 잠시 지었으되 정성 들인 것과 필요한 것만을 간추리는 솜씨가 대단하여 한 번 본 것은 문득 기억 하였으니 정부의 당당한 명사가 될 것이요, 눈을 남으로 돌리면서 북쪽을 돌아보며 춘추의 한수를 읊었데그려."
"장래 정승을 하오리다."
사또 너무 감격하여,
"정승이야 어찌 바랄 것이겠나마는 내 생전에 급제는 쉬 할 게고 급제만 쉽게 하면 육품의 벼슬에 오르는 것이야 어련히 하겠나."
"아니요, 그리 할 말씀이 아니오라 정승을 못하면 장승(長丞=나무로 人形을 새겨 里數를 표하는 標本)이라도 하지요."
사또가 호령하되,
"자네 뉘 말로 알고 대답을 그리 하는가?"
"대답은 하였사오나 뉘 말인지는 모릅지요."
그렇다고 하였으되 그게 또 다 거짓말이었다.
청사등용(靑紗燈龍)
이때 이도령은 퇴령(退令) 놓기를 기다리다가,
"방자야!"
"예!"
"퇴령 놓았나 보아라."
"아직 아니 놓았소."
조금 있더니,
"하인 불러라."
퇴령 소리 길게 나니,
"좋다. 좋다. 옳다. 옳다. 방자야 초롱에 불 밝혀라."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춘향의 집으로 건너 갈 때 자취없이 가만 가만 걸으면서,
"방자야, 상방(上房)에 불 비친다. 등롱을 옆으로 감춰라!"
삼문 밖에 썩 나서니 좁은 길 사이에는 월색이 영롱하고 꽃 사이에 푸른 버들 몇 번이나 꺾었으며 투기(鬪技)하는 소년 아이들은 밤에 청루(靑樓)에 들어갔으니 지체말고 어서 가자. 그렁저렁 당도하니 좋은 이 밤은 죽은 듯 고요한데 가기물색(佳期物色)이 아니냐. 가소롭다. 어주자(漁舟子)는 도원(桃源) 길을 모르던가. 춘향의 문전에 당도하니 인적은 드물고 월색은 삼경이더라. 뛰는 고기는 출몰하고 대접 같은 금붕어는 임을 보고 반기는 듯, 월하의 두루미도 흥에 겨워 짝을 부른다.
이때 춘향이 칠현금(七絃琴) 비껴 안고 남풍시(南風詩)를 희롱하다가 침석에서 졸더니 방자가 안으로 들어가되 개가 짖을까 염려하여 자취없이 가만가만 춘향 방 영창(影窓) 밑에 가만히 살짝 들어가서,
"이애 춘향아, 잠들었냐?"
춘향이 깜짝 놀라,
"네 어찌 오냐?"
"도련님이 와 계시다."
춘향이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울렁울렁 속이 답답하여 부끄럼을 이기지 못하여 문을 열고 나오더니 건넌방에 건너가서 저의 모친을 깨우는데,
"애고 어머니, 무슨 잠을 이다지 깊이 주무시오?"
춘향의 모 잠을 깨어,
"아가 무엇을 달라고 부르느냐?"
"뉘가 무엇을 달랬소?"
"그러면 어째서 불렀느냐?"
엉겁결에 하는 말이,
"도련님이 방자 뫼시고 오셨다오."
춘향의 모친이 문을 열고 방자 불러 묻는 말이
"뉘 왔냐?"
방자 대답하되,
"사또 자제 도련님이 와 계시오."
춘향모 그 말을 듣고,
"향단아!"
"네."
"뒤 초당에 좌석과 등촉을 신칙감시하여 포진하라."
당부하고 춘향모가 나오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 춘향모를 칭송하더니 과연 그 이유가 있었다. 예로부터 사람이 외탁(外託)을 많이 하는 고로 춘향 같은 딸을 낳구나. 춘향모 나오는데 거동을 살펴보니, 반백이 넘었는데 소탈한 모양이며 다정한 거동이 표표정정하고 살결이 윤택하여 복이 많게 보이더라. 점잖은 걸음으로 걸어 나오는데 가만가만 방자가 뒤를 따라 온다.
함정무어(含情無語)
이때 도련님이 천천히 거닐며 뒤 돌아보고 흘겨보기도 하며 무료히 서 있을 때 방자가 여짜오되,
"저기 오는 게 춘향모로소이다."
춘향모가 나오더니 공수(拱手)하고 우뚝 서며,
"그 사이 도련님 문안이 어떠시오?"
도련님 반만 웃고는,
"춘향의 모친이라지..... 평안한가?"
"예 겨우 지냅니다. 오실 줄 진정 몰라 영접이 불민하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춘향모 앞을 서서 인도하여 대문 중문 다 지나고 후원(後苑)을 돌아가니 해묵은 별초당(別草堂)에 등촉을 밝혔는데 버들가지 늘어져 불빛을 가린 모양이 구슬 발(簾)이 갈고랑이에 걸린 듯하고, 오른쪽의 벽오동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이 꿈을 눌래 주는 듯하고, 좌편에 섰는 반송(盤松)은 청풍이 건듯 불면 늙은 용이 꿈틀거리는 듯 하고, 창 앞에 심은 파초, 일란초(日暖初) 봉미장(鳳尾長-파초의 속 잎이 봉의 꼬리 같이 길다는 말)은 속잎이 빼어나고 수심여주(水心如珠) 어린 연꽃 물 박에 겨우 떠서 옥로는 비껴 있고, 대접 같은 금붕어는 고기 변해 용되려 하고 때때로 물결쳐서 출렁출렁 굼실 놀 때마다 조롱하고, 새로 나는 연잎은 받을 듯이 벌어지고 금연상봉석가산은 층층이 쌓였는데 계해의 학두루미 사람을 보고 놀래어 두 쪽지를 떡 벌리고 긴 다리로 징검징검 낄룩뚜르룩 소리하며, 계화 밑에 삽살개 짖는구나. 그중에 반가운 것은 못 가운데 쌍오리는 손님 오시노라 두둥실 떠서 기다리는 모양이요, 처마에 다다르니 그제야 저의 모친의 영을 받들어 사창을 반쯤 열고 나오는데 그 모양을 살펴보니 뚜렸한 일륜명월(一輪明月)이 구름 밖에 솟았는 듯 황홀한 그 모양은 측량키 어렵다. 부끄러이 당에 내려 천연스레 서 있는 거동은 사람의 간장을 다 녹인다.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더러 묻는 말이,
"곤(困)치 아니하여 밥이나 잘 먹느냐?"
춘향이 부끄러워 대답치 못하고 묵묵히 서 있거늘 춘향모가 먼저 당에 올라 도련님을 자리로 모신 후에 차를 들여 권하고 담배 붙여 올리니, 도련님 받아 물고 앉았을 때 도련님 춘향의 집 오실 때는 춘향에게 뜻이 있어 와 계시는 것이지 춘향의 세간 기물 구경 온 게 아니로되, 도련님의 첫 외입인지라 밖에서는 무슨 말이 있을 듯 하더니, 들어가 앉고 보니 별로이 할말이 없고 공연히 기침 기운이 나서 오한증(惡寒症)이 들면서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할 말이 없었다. 방 한가운데를 둘러보며 벽 위를 살펴보니 상당한 기물들이 놓여 있다. 용장(龍欌)과 봉장(鳳欌), 가께수리 여기저기 벌려 있고 그림을 그려 붙여 있으되, 서방 없는 춘향이요, 학문하는 계집아이가 세간과 그림이 왜 있을까 마는 춘향모가 유명한 명기라 그 딸을 주려고 장만한 것이었다. 조선의 유명한 명필 글씨가 붙어 있고 그 사이에 붙인 명화 다 후리쳐 던져 두고 월선도(月仙圖)란 그림이 붙어 있으니 월선도의 화제(畵題)가 다음과 같았다. 임금님이 높이 앉아 군신의 조회를 받는 그림(上帝高絳降朝節), 청년거사 이태백이 황학전(黃鶴展)에 꿇어앉아 황정경(黃庭經) 읽는 그림, 백옥루(白玉樓) 지은 후에 자기 불러 올려 상량문(上樑文) 짓는 그림, 칠월 칠석 오작교에서 견우 직녀 만나는 그림, 광한전 달밝은 밤에 약을 찧던 항아(姮娥)의 그림, 층층이 붙였으나 광채가 찬란하여 정신이 산만하였다. 또 한 곳을 바라보니, 부춘산 엄자릉(富春山嚴子陵)은 간의대부(諫議大夫) 마다하고 백구를 벗을 삼고 원학(遠鶴)으로 이웃 삼아 양구를 떨쳐 입고 추동강(秋桐江) 칠리탄(七里灘)에 낚시줄 던진 경치를 역력히 그려 놓았다. 방가위지(方可謂之) 선경이라. 남자의 좋은 짝이 놀 데가 바로 여기라. 춘향이 일편단심으로 일부종사 하려고 글 한 수를 지어 책상 위에 붙었으되,
운을 띤 것은 봄바람의 대나무요
향불을 피운 것은 밤에 책 읽을러라
(帶韻春風竹 焚香夜讀書)
"기특하다 이글 뜻은 목란(木蘭)의 절개로다."
이렇듯 칭찬할 때 춘향모 말하기를,
"귀중하신 도련님이 변변찮은 집에 와 주시니 황공하고 감격하옵니다."
탐화봉접(探花蜂蝶)
도련님 그 말 한 마디에 말구멍이 열리었제.
"그럴 리가 왜 있는가. 우연히 광한루에서 춘향을 잠깐 보고 연연히 보내기로 탐화봉접(探花蜂蝶=여색을 좋아함) 취한 마음, 오늘 밤에 오는 뜻은 춘향의 모 보러 왔거니와 자네 딸 춘향이와 백년언약을 맺고저 하니 자네의 마음 어떠한가?"
춘향의 모가 대답하되,
"말씀은 황송하오나 들어보오. 자핫골 성참판 영감이 보후(補後=내직에 들어가기 전 잠시 外官 補任하는 것)로 남원에 좌정하실 때 소리개를 매로 보고 수청을 들라 하옵기로 관장의 영을 어길 수가 없어 모신 지 삼삭만에 올라가신 후 뜻 밖으로 잉태하여 낳은 것이 저것이라. 그런 연유로 성참판께 아뢰니 <젖줄 떨어 지면 데력가련다> 하시더니 그 양반이 불행하여 세상을 버리시니 보내지 못하옵고 저것을 길러 낼 때, 어려서 잔병조차 그리 많고 일곱 살에 소학 읽혀 수신제가(修身齊家) 화순심(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씨가 있는 자식이라 만사를 달통하고 삼강행실, 뉘라서 내 딸이라 하리요. 가세가 부족하니 재상가(宰相家)에는 부당하고 사(士), 서인(庶人) 상하에 다 미치지 못하니 혼인이 늦어져서 주야로 걱정이나 도련님 말씀은 잠시 춘향과 백년기약한다는 말씀이오나 그런 말씀 말으시고 노시다가 가시기나 하시오."
"또 내 말 들으시오. 고서에 하였으되 신하를 아는 것은 임금만한 이 없고, 아들을 아는 것은 아비만한 이 없고 딸을 아는 것은 어미만한 이 없다 하지 않았는가? 내 딸 마음 내가 알지요. 어려서부터 절곡한 뜻이 있어 행여 신세를 그르칠까 의심이오. 일부 종사 하려 하고 일마다 하는 행실 철석같이 굳은 뜻이 청송녹죽 전나무 사시절을 다투는듯 상전벽해 될지라도 내 딸 마음 변할 손가. 금은 보화가 산같이 쌓여 있을 지라도 받지 아니할 것이오. 백옥 같은 내 딸 마음 청풍인들 미치리요. 다만 옛날의 큰 뜻을 본받고자 할 뿐인데 도련님은 욕심부려 인연을 맺었다가 미장가 전 도련님이 부모 몰래 깊은 사랑 금석같이 맺었다가 소문 나 버리 시면 옥결 같은 내 딸 신세 문채 좋은 대모(玳瑁=열대지방산 거북), 진수, 고운 구슬, 군역노리 깨어진 듯, 청강에 노든 원앙새가 짝 하나를 잃었다 한들 어이 내 딸 같을손가. 도련님의 속 마음이 말과 같을진댄 깊이 알아 행하소서."
주반등대(酒盤等待)
도련님 더욱 답답하여,
"그건 두 번 다시 염려 마소. 내 마음 혜아리니 특별간절 굳은 마음 흉중에 가득하니 분의(分義)는 다를망정 저와 나와 평생 기약을 맺을 때에 전안납폐(奠雁納幣-결혼식때의 예식의 하나) 아니한들 창파같이 깊은 마음 춘향 사정 모를 손가."
이렇듯 설화(說話)하니, 청실홍실 육례(六禮)를 갖춰 만난다 해도 이 위에 더 뾰족할 것인가.
"내 저를 첫장가 모양 여길 터이니 시하(侍下)라고 염려 말고 미장가 전이라고 염려마오. 대장부 먹은 마음으로 박대하는 행실을 할 것인가? 허락만 하여 주오."
춘향의 모 이말을 듣고 이윽히 앉았더니 몽조(夢兆)가 있는지라 연분인 줄 집작하고 흔연히 허락하여,
대답하고 주효를 차릴 때에 안주등을 보자하니 고음새도 정결하고 대양판 갈찜, 소양판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날으는 매초리 탕에, 동래(東萊), 울산(蔚山) 대전복, 대모장도(玳帽粧刀=대모갑으로 칼집을 만든 장도칼) 잘드는 칼로 맹상군(孟嘗君)의 눈썹과 같이 어슥비슥 오려 놓고 염통, 산적, 양볶음과 춘치자명(春稚自鳴) 생치(生稚) 다리 적벽(赤壁) 대접 분원기(分院器)에 냉면조차 비벼 놓고, 생밤, 찐밤, 잣송이며, 호도, 대추, 석류, 유자, 준시, 앵두, 탕기(湯器) 같은 청술레(푸른 배)를 볼품 있게 고였는데 술병 치례를 볼 것 같으면 티끌 없는 백옥병과 푸르른 산호병과 엽락금정(葉落金井-중국에 있는 섬) 오동병과 목이 긴 황새병, 자래병, 당화병, 쇄금병, 소상동정 죽절병, 그 가운데 품질이 좋은 은으로 만든 주전자, 적동자, 쇄금자 등을 차례로 놓았는데 빠짐 없이도 구비하여 놓았구나. 술 이름을 말할진대 이적선(李謫仙) 포도주와, 안기생(安期生) 자하주 (紫霞酒-이슬을 받아 만든 술)와, 산림처사(山林處士) 송엽주(松葉 酒)주와, 과하주(過夏酒), 방문주(方文酒), 천일주, 백일주, 금로주(金露酒), 팔팔 뛰는 화주(火酒), 약주, 그 가운데 향기로운 연엽주(蓮葉酒) 골라 내어 알모양으로 동그란 주전자에 가득 부어 청동화로 백탄 불에 남비 냉수 끓는 가운데 동그란 주전자에 부어 차지도 덥지도 않게 데워내어 금잔, 옥잔, 앵무새 주둥이 같은 잔 을 그 가운데 띄웠으니, 옥경, 연화 피는 곳에 태을선녀(太乙仙女)가 배를 띠우듯 대광보국(大匡輔國-벼슬 이름) 연꽃잎 영의정 파초선을 띄우듯 두둥실 띄워 놓고 권주가 한 곡조에 한잔 한잔 또 한잔이라.
이도령 하는 말이,
"오늘밤에 하는 절차 보니 관청이 아닌 바에 어이 그렇게 구비한가?"
일희일비(一喜一悲)
춘향모 말하기를,
"내 딸 춘향 곱게 길러 요조숙녀는 군자의 짝으로 가려서 금실을 벗하여 평생을 동락하올 때에 사랑에 노는 손님 영웅호걸, 문장들과 죽마고우 벗님네들과 주야로 즐기실 때, 내당의 하인 불러 밥상 술상 재촉할 때, 보고 배우지 못하고는 어찌 곧 등대하리오? 안사람이 민첩지 못하면 남편의 낯을 깎는 것이니 내 생전에 힘써 가르쳐 아무 쪼록 빛받아 행하려고 돈이 생기면 사모으고 손으로 만들어서 눈에 익고 손에도 익히려고 잠시라도 놀지 않고 시킨 보람이오니 부족타 말으시고 구미대로 잡수시오."
하며 앵무배 술잔에 가득히 술을 부어 도련님께 드리오니 이도령 잔 받아 손에 들고 탄식하며 하는 말이,
"내 마음대로 한다면은 육례(六禮)를 행할 것이나 그렇게는 못하고 개구멍 서방으로 들고 보니 이 아니 원통하냐. 이애 춘향아, 그러나 우리 둘이 대례 술로 알고 먹자."
한 잔 술 부어 들고,
"내 말 들어라. 첫째 잔은 인사주요. 둘째 잔은 합환주(合歡酒)니, 이 술이 다른 술이 아니라 근원 근본으로 삼으리라. 순임금 때의 아황(娥皇)과 여영(如英)이 귀히 만난 연분이 귀중하다 하였으되 월로(月老)의 우리 연분, 삼생(三生) 가약을 맺은 연분, 천만년이라도 변치 않을 연분 대대로 삼태(三台) 육경(六卿) 자손이 많이 번성하여 자손 증손 고손이며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죄암죄암 달강달강 백 살까지 살다가 한 날 한 시 마주 누워 선후없이 죽게되면 천하에 제일 가는 연분 아닌가."
수잔 들어 먹은 후에,
"향단아, 술 부어 너의 마나님께 드려라."
"장모, 경사술이니 한 잔 먹으소."
춘향의 모 술잔 들고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하는 말이,
"오늘이 우리 딸의 백년의 고락을 맺는 날이라, 무슨 슬픔 있을까마는 저것을 길러낼 때 애비없이 길러 이 때를 당하오니 영감 생각이 간절하여 비창하여라."
도련님 하는 말이,
"기왕지사 생각 말고 술이나 먹소."
춘향모 수 삼배 먹은 후에 도련님 통인 불러 상 물려 주면서,
"너도 먹고 방자도 먹여라."
통인과 방자가 상을 물려 먹은 후에 대문 중문 다 닫히고 춘향의 모는 향단을 불러 자리를 보게 할 때에 원앙금침 잣 베개와 샛별 같은 요강, 대야까지 갖춰 자리 보전을 정히 하고,
"도련님 평안히 쉬시옵소서."
"향단아, 나오너라 나하고 함께 가자."
둘이 다 건너 갔구나.
녹수원앙(綠水鴛鴦)
춘향과 도련님이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사양(斜陽)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에 봉학이 앉아 춤추는 듯 두 활개를 살포시 들고 춘향의 섬수옥수를 반듯이 겹쳐 잡고 의복을 교묘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의 가는 허리를 담 쑥 안고,
"치마를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며 이리곰실 저리곰일 녹수(綠水)의 홍련화(紅蓮花)가 잔바람을 만나 흔들리는 듯, 도련님이 치마 벗겨 제쳐 놓고 바지와 속곳을 벗길 때에 무한이 힐난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의 청룡이 굽이를 치는 듯하더라.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엣다 안될 말이로다."
힐난하는 중에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지그시 누르며 기지개를 켜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짝 벗겨지니 형산(荊山- 중국에 있는 산이름-玉의 산지)의 백옥덩이가 춘향에 비길소냐. 옷이 활짝 벗겨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하고 슬금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 금침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이 왈칵 쫓아 드러누워 저고리를 벗겨 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편 구석에 던져 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리가 있는가. 애를 쓸 때에 삼승(三升-굵은 배) 이불이 춤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마추어 청그렁 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 잘 자고 났구나. 그 가운데의 진진한 일이야 오죽하랴.
하루 이틀 지나가니 어린 것들이라 신맛이 간간 새로와 부끄러움은 차차 멀어지고 이제는 희롱도 하고 우스운 말도 있어 자연히 사랑가가 되었구나. 사랑하고 노는데 꼭 이 모양으로 노던 것이더라.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칠백(洞庭七百) 월하초에
무산(巫山-중국에 있는 산 이름) 같이 높은 사랑
목단(目斷) 무변수(無邊水)에
하늘 같고 바다 같은 깊은 사랑
오산전(五山顚) 달 밝은데
추산천봉(秋山千峰) 반달 사랑
증경학무(曾經學舞)하올 적에
하문취소(何問吹蕭)하던 사랑
유유낙일(慾慾落日) 월렴간(月簾間)에
도리화개(桃李花開) 비친 사랑
섬섬초월 분백(粉白)한데 함소함태(含笑含態) 숱한 사랑
월하의 삼생(三生)연분 너와 나의 만난 사랑
허물 없는 부부 사랑
화우동산(花雨東山) 목단화 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청루미녀(靑樓美女) 금침같이 혼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의 수양같이 펑퍼지고 늘어진 사랑
남창(南倉) 북창(北倉) 노적(露積)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장(銀藏) 옥장(玉藏)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록(映山紅綠) 봄바람에 넘노드니
황보(黃蜂) 백접(白蝶) 꽃을 물고 질긴 사랑
녹수청강 원앙조격으로 마주 둥실 떠 노는 사랑
년년칠월 칠석야에 견우직녀 만난 사랑
육관대사 성진(六觀大師性眞-九雲夢에 나오는 중과 주인공 이름)이가
팔선녀와 노는 사랑
역발산(力拔山) 초패왕(楚覇王)이
우미인(虞美人)을 만난 사랑
당나라 당명왕(唐明王)이
양귀비(楊貴妃)를 만난 사랑
명사십리(明沙十里-원산 부근 모래 사장) 해당화같이
연연(娟娟)히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를 보자
빵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 보자
너와 나와 만난 사랑
연분을 팔자한들 팔 곳이 어디 있어
생전 사랑 이러하고
어찌 사후(死後) 기약이 없을소냐
너는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 되되
따 지자(地), 그늘 음자(陰字), 아내 처자(妻字), 계집 여자(女字) 변(邊字)이 되고
나는 죽어 글자 되되
하늘 천자(天), 하늘 건자(乾), 지아비 부자(夫), 사내 남자(男) 아들 자자(子) 몸이 되어 여(女),변(邊)에다 붙이면 좋을 호자(好)로 만나보자
너 죽어 될 것이 있다
너는 죽어 물이 되되
은하수, 폭포수, 만경창해수(萬頃滄海水)
청계수(淸溪水), 옥계수(玉溪水),
일대장강(一帶長江) 던져 두고
칠년 대한(大旱) 가물 때 또 일상진진
젓어 있는 음양수란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새가 되어
두견새도 되지 말고
요지(瑤池) 일월 청조, 청학, 백학이며
대붕조(大鵬鳥=엄청나게 커서 九萬里를 단번에 난다는 큰 새) 그런 새가 될랴말고
쌍거쌍래 떠날 줄 모르는 원앙조란 새가 되어
녹수의 원앙격으로
어화 둥둥 떠놀거든
나인 줄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정자타령(情字打鈴)
"아니 그것도 내 아니 되려오"
"그러면 너 죽어서 될 것이 있다.
경주 인경도 되려 말고
전주 인경도 되려 말고
송도 인경도 되려 말고
장안 종로 인경 되고
나는 죽어 인경 마치 되어
삼십삼 천(天= 梵語譯語 欲界의 第二天)이십팔 숙(宿)을 응하여
질마재에 봉화 세 자루 꺼지고
남산에 봉화 두 자루 꺼지면
인경 첫마디 치는 소리
그저 뎅뎅 칠 때마다
다른 사람 듣기에는
인경 소리로만 알아도
우리 속으로는
<춘향 뎅 도련님 뎅이라>
만나 보자꾸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방아 확이 되고
나는 죽어 방아 공이가 되어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의 강태공 조작 방아
그저 떨꾸덩 떨꾸덩 찧거들랑 나인 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사랑 내 간간 사랑이야."
춘향이 하는 말이,
"싫소, 그것도 내 아니 될라오."
"어이하여 그말이냐."
"나는 항시 어찌 이생이나 후생이나 밑으로만 된다는 법 있소? 재미없어 못 쓰겠소."
"그러면 너 죽어 위로 가게하마. 너는 죽어 맷돌 웃짝이 되고 나는 밑짝이 되어 이팔 청춘 홍안 미색들이 섬섬옥수로 밑대줄 잡고 슬슬 돌리면 천원지방(天圓地方)격으로 휘휘 돌아가거든 나인 줄을 알려무나."
"싫소. 그것도 아니 되려오. 위로 생긴 것이 부아나게만 생기었소. 무슨년의 원수로서 일생 한 구멍이 더하니 아무 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서 될 것 이 있다.
너는 죽어 명사십리 해당화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나는 네 꽃송이 물고
너는 내 수염 물고
춘풍이 선듯 불거든
너울 너울 춤을 추며 놀아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내 간간 사랑이지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이 모두 내 사랑 같으면
사랑에 걸려 살 수 있나
어허 둥둥 내 사랑
네 예뻐 내 사랑이야
방긋 방긋 웃는 것은
화중왕 모단화가
하룻밤 세우(細雨)뒤에
반만 피고자 한 듯
아무리 보아도 내 사랑
내 간간이로구나
너와 나와 유정하니 정짜(情字)로 놀아보자."
"음상동(音相同)하여 정짜(情字)로 노래나 불러 보세."
"들읍시다."
"내 사랑아 들어서라,
너와 나와 유정하니 어이 아니 다정하리
담담 장강수(澹澹長江水) 유유원객정(悠悠遠客情)
하교 불상송(河橋不相送) 강수원함정(江水遠含情)
송군남포 불승정(送君南浦不勝情)
무인불견 송아정(無人不見送我情)
한태조 희우정(漢太祖喜雨亭)
삼태육경(三台六卿) 백관조정(百官朝庭)
도장(道場) 청정(淸淨)
각씨(閣氏) 친정(親庭)
친고(親故) 통정(通情)
난세(亂世) 평정(平定)
우리 둘이 천년 인정
월명성희(月明星稀) 소상동정(瀟湘洞庭)
세상만물 조화정(世上萬物造化定)
근심 걱정, 소지(所志) 원정(原情)
주워인정, 음식 투정
복 없는 저 방정,
송정(訟庭), 관정(官庭), 내정(內情), 외정(外定)
애송정(愛松亭), 천양정(穿楊亭)
양귀비의 심향정(沈香亭)
이비(二妃)의 소상정(瀟湘亭)
한송정(寒松亭)
백화만발 호춘정(好春亭)
기린 토월 백운정(白雲亭)
너와 나와 만난 정
일정(一情) 실정(實情) 논지(論之)하면
내 마음은 원형이정(元亨利貞)
네 마음은 일편탁정(一片託情)
이같이 다정하다가
만일 즉파정(卽破情)하면 복통 절정(絶情)걱정되니
진정으로 원정(原情)하자는 그 정짜(情字)다."
궁자잡담(宮字雜談)
춘향이 좋아라고 하는 말이,
"정속은 도저하오. 우리집 재수(財數) 있게 안택경(安宅經= 宅神安定과 재수 형통을 위하여 읽는 徑文)이나 좀 읽어 주오."
도련님 허허 웃고,
"그뿐인 줄 아느냐, 또 있지야. 궁짜(宮字)노래를 들어보아라."
"애고 얄궂고 우습다. 궁짜 노래가 무엇이오?"
"너 들어 보아라. 좋은 말이 많으니라."
좁은 천지 개태궁(開胎宮) 뇌성벽력 풍우 속에
서기 삼광(三光) 둘러 있는
장엄하다 창합궁
성덕이 넓으시다
조림(照臨)이 어인 일인고
주지객(酒池客) 운성(雲盛)하던
은왕(殷王)의 대정궁(大庭宮)
진시황(秦始皇)의 아방궁(阿房宮)
문천하득(問天下得) 하실 적에
한태조(漢太祖) 함양궁(咸陽宮)
그 곁의 장락궁(長樂宮)
반첩여의 장신궁(長信宮)
당명황(唐明皇)의 상춘궁(賞春宮)
이리 올라서 이궁(離宮)
저리 올라서 별궁(別宮)
용궁 속의 수정궁(水晶宮)
월궁 속의 광한궁(廣寒宮)
너와 합궁(合宮)하니
한평생 무궁이라
이 궁 저 궁 다 버리고
네 양 다리의 수룡궁(水龍宮)
나의 심줄 방망이로
길을 내자꾸나."
춘향이 반만 웃고,
"그런 잡담은 말으시오."
"그것 잡담 아니로다. 춘향아, 우리 둘이 업음질이나 하여 보자."
"애고 참 잡성스러워라. 업음질을 어떻게 하오?"
업음질을 여러 번 한 듯이 말하더라.
"업음질은 천하 쉬운 것. 너와 나와 활짝 벗고 업고 놀고 안고도 놀면 그게 업음질이 아니냐?"
"애고 나는 부끄러워 못 벗겠소."
"에라 요 계집아이야, 안될 말이로다. 내 먼저 벗으마."
버선, 대님, 허리띠, 바지, 저고리, 활짝 벗어 한편 구석에 밀쳐 놓고 우뚝 서니 춘향이 그 거동을 보고 방긋 웃고 돌아서며 하는 말이,
"영낙없는 낮도깨비 같소."
"오냐 네 말 좋다. 천지만물이 짝 없는 게 없느니라. 두 도깨비 놀아보자."
"그러면 불이나 끄고 노사이다."
"불이 없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어서 벗어라. 어서 벗어라."
"애고 나는 싫소."
도련님 춘향 옷을 벗기려 할 때 넘놀면서 어룬다. 만첩 청산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가 없어 먹지는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루는 듯, 북해의 흑룡(黑龍)이 여의주(如意珠)를 입에 다 물고 색구름 사이에서 넘노는 듯, 단산(丹山=봉황이 깃들고 있다고 믿는 상상의 산)의 봉황이 대 열매를 물고 벽오동 속으로 넘나드는 듯 , 구고 청학이 난초를 물고서 오송간(梧松間) 에 넘노는 듯,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 담쑥 안고 기지개 아드득 떨며 귀와 뺨도 쪽쪽 빨고 입술도 쪽쪽 빨면서 주홍 같은 혀를 물고 오색단청 순금장(純金欌) 안의 날아가고 날아 오는 비둘기 같이 꾹꿍꾹꿍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쑥 안고 젖을 쥐고 발발 떨며, 저고리 치마 바지 속곳까지 벗겨 놓으니, 춘향이 부끄러워 한편으로 잡치고 앉았을 때, 도련님 답답하여 가만히 살펴보니 얼굴이 복찜하여 구슬 땀이 송실송실 맺혔구나.
비금비옥(非金非玉)
"이애 춘향아, 이리 와 업혀라."
춘향이 부끄러워 하니,
"부끄럽기는 무엇이 부끄러워. 이왕에 다 아는 바이니 어서 와 업혀라."
춘향을 업고 추기시며,
"아따 그 계집아이 똥집 장히 무겁고나. 네가 내 등에 업힌 것이 마음에 어떠하냐?"
"더할 수 없이 좋소이다."
"좋으냐?"
"좋아요."
"나도 좋다. 좋은 말을 할 것이니 너는 그저 대답만 하도록 하여라."
"말씀 대답할 터이니 하여보옵소서."
"네가 금(金)이지야?"
"금이란 당치 않소. 팔년 풍진 초한 시절에 육출기계(六出奇計) 진평이가 범아부(范亞父)를 잡으려고 황금 사만을 뿌렀으니 금이 어디 남으리까?"
"그러면 진옥이냐?"
"옥이란 당치 않소. 만고 영웅 진시황이 형산의 옥을 얻어 이사(李斯=진시황 때의 정승)의 명필로 수명우천(受命于天) 기수영창(旣受永昌)이라 옥쇄를 만들어 만세유전을 하였으니 옥이 어이 되오리까?"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해당화냐?"
"해당화라니 당치 않소. 명사십리 아니어든 해당화가 되오리까?"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밀화(密花) 금패(錦貝), 호박(琥珀), 진주냐?"
"아니 그것도 당치 않소. 삼정승, 육판서, 대신, 재상, 팔도방백, 수령님네 갓끈 풍잠(風簪) 다 하고서 남은 것은 경향의 일등 명기 지환 벌 허다히 다 만드니 호박 진주 부당하오."
"네가 그러면 대모산호냐?"
"아니 그것도 아니오. 대모 간 큰 병풍을 산호로 난간을 하여 광리왕 (廣利王) 상량문(上梁文)의 수궁 보물 되었으니 대모 산호가 부당하오."
"네가 그러면 반달이냐?"
"반달이라니 당치 않소. 오늘밤 초생(初生) 아니어든 벽공(碧空)에 돋은 밝은 달 내가 어찌 기울이리까?"
"네가 그러면 무엇이냐? 날 홀려먹는 불여우냐? 네 어머니 너를 낳아 곱게 길러 내어 나를 홀려 먹으라고 생겼느냐? 사랑 사랑 사랑이야 . 내 간간 사랑이야. 네가 무엇을 먹으려는 것이냐? 생밤 찐밤을 먹으려는 것이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대모장도 드는 칼로 뚝 떼어 강릉 백청(白淸)을 두루 부어 은수저 반간지로 붉은 점 한 점을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얼 먹겠느냐? 시금털털 개살구를 먹겠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이것을 먹으려느냐? 돼지 잡으랴? 개 잡아 주랴? 내 몸 통째 먹으려느냐?"
"여보 도련님, 내가 사람 잡아 먹는 것 보았소?"
여차장관(如此壯觀)
"에라 요것, 안 될 말이로다. 어화둥둥 내 사랑이지, 이애 춘향아 내리려무나. 백사만사가 다 품앗이가 있느니라. 내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 업어야지."
"애고 도련님은 기운이 세어서 나를 업으시거니와 나는 기운이 없어 못 업겠소."
"업는 수가 있느니라. 도두 업으려 말고 빨리 땅에 자운자운하게 뒤로 잦은 듯 업어다오."
도련님을 업고 툭 추워놓으니 대중이 틀렸구나.
"애고 잡성스러워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내가 네 등에 업혀 노니 마음이 어떠냐? 나는 너를 업고 좋은 말 하였으니 너도 나를 업고 좋은 말 해야지."
"좋은 말을 하오리다. 들으시오.
부열(傅說=중국 은나라 고종 때의 정승)이를 업은 듯
여상(呂尙=姜太公의 다른 이름)이를 업은 듯
흉중대략(胸中大略)을 품었으니
명만일국(名滿一國)의 대신이 되어
주석지신(柱石之臣), 보국충신(輔國忠臣) 모두 헤아리니
사육신을 업은 듯, 생육신을 업은 듯
일선생, 월선생, 고운선생(孤雲先生) 업은 듯
제봉(霽峰)을 업은 듯, 요동백(遼東伯)을 업은 듯
정송강을 업은 듯, 충무공을 업은 듯
우암(尤庵) 퇴계(退溪) 사계(沙溪)
명제(明제)를 업은 듯
내 서방이시지 내 서방, 알뜰 간간 내 서방
진사, 급제 대(臺) 받쳐, 직부주서(注書) 한림학사
이렇듯이 된 연후에
부승지, 좌승지, 도승지로 벼슬에 올라
팔도 방백 지낸 후에
내직으로 각신(閣臣), 대교(待敎), 복상(卜相)
대제학(大提學), 대사성, 판서
좌상, 우상, 영상, 규장각 하신 후에
내삼천(內三千), 외팔백(外八百), 주석지신(柱石之臣)
내 서방 알뜰 간간 내 서방이지."
제손도 능질나게 문질렀구나.
"춘향아, 우리 말 노름이나 하여 보자."
"애고 참 우스워라. 말 놀음이 무엇이오?"
말 놀음 많이 하여 본 듯이,
"천하에 쉽기야, 너와 나와 벗은 김에 너는 온 방바닥을 기어 다녀라. 나는 네 궁둥이에 딱 붙어서 네 허리를 잔뜩 끼고 볼기작을 내 손까락으로 탁 치면서 <이랴!>하거든, 흐흥 그러면 퇴금질로 물러서며 뛰어라, 알심 있게 뛰어놀면 탈승짜(乘字) 노래가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