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세월 그 뜨겁던 국밥 한 그릇
주기영
어느 철학자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것 세 가지는 맛있는 음식 먹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대화하기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기라고 했다. 절대적일 수야 없겠지만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미지의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어보는 것이야말로 지상최고의 즐거움이자 행복이란 말도 성립이 된다.
행복은 언제나 고난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고 아주 상대적인 것이다. 행복은 슬픔의 강물 그 밑바닥을 구르는 모래알인지도 모른다. 목마른 나그네가 물 한 바가지를 얻어먹는 것, 고단한 노동자가 잠시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 바로 그런 것이 행복이다. 모든 것이 다 구족한 완전한 행복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꿈일 뿐이다. 그리고 조물주는 절대로 한 인간에게 오복을 다 허락하는 법이 없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마치 뜬구름과 같은 이런 저런 행복론에 매달린다고 행복해 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작디작은 어떤 실마리에서 행복은 말도 없이 찾아온다. 이발을 한다거나 새 구두를 신는다거나 이웃집 젊은이로부터 기분 좋은 아침인사를 받을 때 행복은 말도 없이 불시에 다가온다.
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이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도 인간의 생존본능에 근거한 가장 확실한 행복이다. 맛있게 먹었던 음식의 고유한 맛은 한 사람의 입안에 깊이 배어들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2차대전 때에 포로 신세가 된 일본군 패잔병사가 소원이 무어냐고 물으니 소바(메밀국수) 국물 한 모금 마시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단다.
나는 오래 전 젊은 교사시절의 국밥 한 그릇에 대한 추억을 지우지 못한다. 평생을 교직에 종사한 사람들은 대부분 초임교사 시절이 가장 즐겁고 가슴 벅차다고 말한다. 못 말리는 열정, 무한한 에너지와 비전, 무작정 따르고 좋아하는 학생들, 그 때가 교사로서의 전성기이다. 작은 실수 정도는 무릅써가며 몸을 사리지 않고 학교의 모든 일에 앞장서던 때가 바로 젊은 교사시절이다. 생각해보면 젊은 교사, 그들의 열정이야말로 인류사회의 희망이고 꿈이고 견인차이다.
열정은 단순한 의욕과는 다르다. 열정은 무언가에 대한 강렬한 사랑에서 출발하며 지속적이며 자기를 버리고 덤벼들며 끝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전시키는 아주 신령스러운 것이다.
나도 그때는 일과 후 저녁 늦게까지 학교 도서관에 남아 학생들 지도하는 일을 자청했고 여름방학이 되면 학생들과 바닷가에 가서 텐트를 치고 같이 자고 끓여먹으며 수영도 했다. 그 때 내가 지어준 동아리 이름 GOSEA CLUB 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Group of Sound English and Athletic 의 Initial 이다. 음악과 영어와 운동의 모임이란 뜻으로.
초임교사가 얼마간 정신없이 학교에 근무하다보면 곧 1정연수(1正硏修)라는 공부의 기회가 주어진다. 연수라고 해야 되지만 그때만 해도 다들 그저 1정강습이라고 말했다. 방학기간을 이용하여 소정의 강습을 받으면 급수가 하나 올라가 1급 정교사가 됨과 동시에 호봉도 승급이 된다.
첫 번째 연수의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여름방학 기간에 고3 영어 보충수업을 담당해야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연수를 받아야 승진의 기회를 앞당기게 되니 연수만은 받아야 된다는 너그러운 선배들의 배려로 제때 연수를 받게 되었다. 연수가 끝나면 더 많은 수업시간을 맡기로 단단히 약속까지 했다.
그 여름의 1정 연수는 참 뜨거웠고 바쁘기도 했지만 지금껏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날 근무하는 학교 교감선생님이 격려차 찾아오셔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신 일이었다. 그날은 마침 영시강좌가 있었는데 수업은 Cuckoo Waltz를 녹음기로 들려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한 사람씩 영시를 일고 감상을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날은 아침부터 꼭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무더운 여름날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임시 숙소로 가려는데 교감선생님이 저녁을 사주신다고 버스를 타고 멀리서 찾아오신 것이다. 라면이나 한 그릇 먹고 고단한 잠자리에 들곤 하던 연수기간 중인데 오랜만에 대하게 된 음식은 꿀맛과 같았다.
그 도시에서는 유명한 국밥집이라는데 냉동을 거치지 않은 한우고기로만 끓이고 자연양념만을 써서 그런지 그 부드럽고 깊은 맛은 지금으로서는 어디를 가도 다시 맛보기는 힘들 것이다. 여하튼 내 일생에 그보다 더 맛있게 잘 먹은 저녁식사는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때 그 맛을 또다시 맛볼 수는 없을 것만 같다.
길고 긴 교단생활을 보람 있게, 명예롭게, 나름대로 건강을 지키며, 정년까지 무사히 마치고, 정든 교직원들과 사랑하는 제자들의 뜨거운 석별의 정을 뒤로한 채 교문을 나서던 때가 엊그제만 같다.
한동안 나는 ‘보리밭’이란 가곡을 혼자 부르기를 좋아했다. 혼자서 걸어가며 지난 일을 생각하고 혼자만의 시간 그 쓸쓸함을 달래며,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이런 대목이 꼭 나의 처지인 것만 같았다. 좋은 시와 좋은 노래 또는 좋은 문학작품은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보람을 안겨주고 올바른 인생길을 걸을 수 있게 해준다.
이제는 제자들 좋은 소식 듣는 것을 제일의 낙으로 삼으며, 나름대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매일 아침 수영장에 개근하면서 읽고 싶던 책을 읽어보는 일, 그리고 봉사활동과 글 쓰는 일이 생활의 전부가 되었다. 모자란 재주이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더욱 노력하는 것 그것이 이 세상 누군가를 위해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제 또 글을 읽고 쓰기 좋은 가을이 오고 있다.
(2014. 09. 27)
### 주기영 약력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대전고등학교(5년), 서울 동성고등학교(32년) 등에서 봉직, 정년퇴임.
황조근정훈장 수훈.
한국문인협회 회원, 서울교원문학회 이사, 서울 강서문인협회 부회장.
수필집 <봄은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등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