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가기전에 축일 축하 글 올려요~^^
세 그림중에 어느 것이 맘에 드나요~
성녀 체칠리아(Caecilia)
여러 필사본으로 전래된 성녀 체칠리아(Caecilia)의 순교록은 5세기 중엽에 기록되었다.
그 전승들에 의하면, 그녀는 로마 원로원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면서 평생 동정을 지킬 것을 서약하였다.
성녀 체칠리아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이교도인 성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4월 14일)라는 귀족 청년과 결혼하였으나,
결혼식이 끝난 후 그에게 자신은 동정 서약을 하였으며 천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말하였다.
성 발레리아누스는 그 천사를 보게 해 주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래서 성녀 체칠리아는 그를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Urbanus I, 5월 25일)에게 보내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도록 하였다.
세례를 받고 돌아온 그는 백합으로 장식된 관을 쓴 두 천사가
성녀 체칠리아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결국 그녀의 동정서약에 동의하였다.
또한 그의 동생인 성 티부르티우스(Tibrutius, 4월 14일)도 후에 천사를 보고 세례를 받았다.
성 발레리아누스와 성 티부르티우스 형제는
그때부터 신앙생활과 자선활동에 전념하다가 행정관인 알마키우스(Almachius)의 미움을 사서 체포되었다.
그들은 신전에 제사를 바치라는 행정관의 강요를 거절하여 심한 매질을 당한 후
로마 근교 파구스 트리피오에서 성 막시무스(Maximus, 4월 14일)와 함께 참수되었다.
성 막시무스는 성 발레리아누스와 성 티부르티우스가 보여준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신앙을 보고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순교하였다.
성녀 체칠리아(Caecilia)는 이 세 명의 순교자들을 장례지낸 다음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하였다.
그녀는 용감하게 알마키우스와 논쟁하였으며,
행정관은 도저히 그녀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사형을 언도하였다.
사형 방법은 그 당시 흔히 사형수에게 적용된 것으로 욕실에 가두어 쪄서 죽이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목욕실에 가둔 지 24시간이 경과하였어도 성녀 체칠리아가 죽지 않자
목을 베어 죽이기로 다시 결정하였다.
그러나 형리의 서툰 솜씨로 목을 베인 후에도 성녀는 3일 동안이나 숨이 붙어 있다가 순교하였다고 한다.
성녀 체칠리아에 대한 공경은 수세기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보편화되었고,
그녀의 행적들이 수많은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순교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성 티부르티우스를 비롯한 다른 성인들이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225-235년 재위)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녀의 순교 연대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성녀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그 이유는 원치 않았던 결혼식 때 성녀 체칠리아는 결혼 음악과 환호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고,
오히려 내심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행적에 근거한 것이다.
그래서 성녀는 음악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전해졌다.
1584년 로마에 음악원이 세워졌을 때 성녀는 이 학원의 수호자로 지칭되었고,
이후 성녀 체칠리아를 교회 음악의 수호자로 공경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성녀의 문장은 오르간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전 세번째 그림이 맘에 드네요 한장 인쇄해서 간직할께요
축일 축하드립니다.^^ 몸이 (감기) 많이 아프신거 같은데 24일 행사끝나면 시간이 없으시더라도 폭좀 쉬세요~~건강이 최고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