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사는 사람들(느 5:14-19)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했습니다. 왕과 귀족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하가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끌려간 사람들, 끌려간 후 태어난 사람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바벨론은 바사의 고레스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고레스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스 1:2-4)고 선포하였습니다.
고레스의 명령에 따라,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사만 이천 삼백 육십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를 따라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받아, 술 관원이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예루살렘을 향한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갔다 온 사람에게,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었는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느 1:3)고 하는 말을 듣게 되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후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총독의 임무를 수행하라”는 왕의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12년 동안, 총독으로 활동했습니다. 총독으로 있으면서,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읽은 말씀 속에서, 느헤미야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그는 바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첫째, 느헤미야는 총독의 녹을 먹지 않았습니다.
14-1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아멘.
그 당시는 바사(페르시아)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와 로마도,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나라는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고, 황폐해진 예루살렘 도신을 다시 복구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들어 경제적으로 먹고 살기가 아주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묘사한 곳이 느헤미야 5:1-5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아멘.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흉년까지 들어, 먹을 것이 없어, 민심이 어지럽고, 원망과 시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 자녀들을 종으로 팔고, 밭과 포도원을 팔아서, 겨우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치적인 불안정과 경제적인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시대를 느헤미야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느헤미야 이전의 총독들은, 녹을 챙겼고, 재물을 챙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12년 동안, 총독 일을 하면서, 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 뜻은 법이 정한 것 외에는, 부정하게, 재물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대 정권치고, 치부와 축재, 돈 때문에 욕을 먹지 않은 정권이 어디 있었습니까?
이것은 여야를 불문하고,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똑같은 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도한 재물을 챙기고, 이권을 챙기고, 토색하는 권력은, 반드시 타락합니다.
그리고 타락한 권력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양심선언입니다. 그는 일생 동안 누구를 속인 일도,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도 없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백성들의 요구대로,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고, 뒤로 물러났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삼상 12:3)고 말했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 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삼상 12:4)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 12:23-24)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깨끗한 나라가 되고, 깨끗한 정치가 되려면, 탐관오리나 부정 축재자들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권력을 쫓아다니는 불나방들이, 권력 주변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누가 그런 부정한 사람들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
누가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냐고 물으면, 누구라고 대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새롭게 뽑힐 대통령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뽑아야 하나?”
“이 사람을 뽑자니 이래서 안되고, 저 사람을 뽑자니 저래서 안되고...”
“뽑히지 말아야 될 사람이 뽑히면 어떻게 하나? 뽑혀야 할 사람이 뽑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이래 저래, 염려와 걱정이 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정직한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뽑기 전에, 뽑으면서, 뽑은 후에,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마땅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나라가 살고, 민족이 삽니다.
기도하면,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살고, 내가 삽니다. 살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의 장래가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아멘.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이전의 총독들은, 돈을 챙기고, 땅을 챙기고, 포도주를 챙기느라, 일하지 않았습니다. 딴짓 하느라, 정작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느헤미야 4장을 보면, 느헤미야의 지휘로 성을 수축하는데, 주변 국가들이 훼방을 놓고, 공격을 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한 손으로 일하고,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게 했습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칼을 차고, 일하게 했습니다. 적이 쳐들어오면, 언제라도 일하다가,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춘 채, 일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살후 3:10-12)고 경고했습니다.
잠언 6:6절을 보면,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을 보면,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일 할 자리가 없어서, 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실업률이 너무 높습니다. 일할 자리가 없습니다.
경기 회복을 기대하지만, 고용 한파가 여전합니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기업들이 사람을 뽑지 않습니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아르바이트 학생ㆍ입사시험 준비자 등 “숨은 실업자”를 포함한 청년층 체감실업률이 올 1분기 23.6%까지 치솟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노동시장이 얼어붙은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청년층의 구직활동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자리가 없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현재,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구직 단념자들도 많지만, 일할 의지조차 없는 청년 니트족이 16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했습니다.
니트족이란, “나라에서 정한 의무교육을 마친 뒤에도,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도,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16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정부에서는, 실업문제가 해결되어,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일하고 싶은 곳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여러분!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성도들은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더 나아가 교회 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 느헤미야는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함께 다시 읽습니다.
“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아멘.
열왕기상 21장을 보면,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낸 나머지, 강제로 탈취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궁 가까이에, 자그마한 포도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합 왕이, 그 포도원을 채소밭으로 삼고 싶어, 주인인 나봇에게 팔 것을 종용했으나, 그는 조상 대대로, 그 땅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남에게 넘길 수가 없다며, 아합 왕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아합과 이세벨이 공모하여, 나봇을 처형하고, 그 밭을 탈취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엘리야는, “개들이 아합과 이세벨의 피를 핥으리라”고 했고, 훗날 그의 예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합 왕은 땅 욕심이 많았습니다. 그 욕심 때문에, 망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총독으로 있으면서, 땅을 사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여,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땅을 구입하여,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하고, 그곳에서, 온 성도들이 함께 예배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물려주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직 돈을 벌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투기의 목적으로, 필요도 없는 땅을 사재기 해서는 안됩니다.
어릴 적에, 친구들과 함께 주로 하던 놀이가 있었습니다. “땅 따먹기”입니다.
열심히 돌을 튕겨가면서, 땅을 따 먹고 나면, 다음엔, 친구가 내 땅을 다 따먹어버립니다. 동네 마당에 큰 원을 그리며, 그것이 내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녁이 되면,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날, 다시 땅 따 먹기를 합니다.
그러면 그 땅은 누구의 땅일까요?
아등바등, 죽을 힘을 다하여 땅 따먹기를 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저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넷째,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15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아멘.
느헤미야는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느 6:9), “악한 자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느 6:14)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구체적인 행위는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면, 하나님을 유일하신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부처도 하나님, 마호메트도 하나님, 문선명도 하나님, 안상홍도 하나님, 이만희도 하나님, 공자도 하나님, 여호와도 하나님이라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요,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그때,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단을 태우는 것을 보고 난 후,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 18:39)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만이 오직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이름 외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 6: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진다”(벧전 2:8)고 말했습니다.
불순종은 실패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순종은 축복의 조건이 됩니다.
순종에 관한 말씀들을 보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 5:29)고 했고,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고 했고,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왕상 3:14)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모든 복이, 우리에게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3-6)
순종은, 복 받고, 번영하고, 평탄하게 되고, 인생이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시고, 정직하시고, 신실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십니다. 불성실한 사람이나, 거짓된 사람이나, 믿기 어려운 사람은 멀리 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와 교회는, 바로 사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잘 믿는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보다는, 바로 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바로 사는 사람들이, 사회와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와 같이 바로 사는 사람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다섯째, 느헤미야는 정직했습니다.
17-1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백오십 명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아멘.
수많은 사람들이, 느헤미야 총독 주변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것은 예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자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모여 듭니다. 그들은 매일 같이 총독인 느헤미야를 위하여,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열흘에 한 번씩은,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그 이유는 뻔합니다. 총독 느헤미야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생활은, 정직했고, 검소했습니다.
욥기 1:1절을 보면, 욥기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아멘.
욥은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큰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직한 삶을 살았습니다.
욥기 2:3절을 보면, 하나님이 보신 욥의 인물평이 나와 있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욥은 순전한 사람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기 전이나, 당한 후에도, 그의 정직함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느헤미야나 욥의 정직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믿음의 힘으로, 정직을 지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 세상의 빛이 되라”(마 5: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정직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사회가 아무리 혼란스럽고, 부정과 불법이 판을 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누리고, 산다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더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풍조에 휩쓸려서는 안됩니다. 세상 방법을 취하여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카지노에서, 도박과 같은 정직하지 않는 방법으로, 감기약에서 마약 성분을 분리하여 판매하는 그런 못된 방법으로, 떼돈을 벌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일확천금을 꿈꾸어서는 안됩니다. 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사 26:7)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왜 정직해야 합니까? 주님이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정직한 사람의 길을, 평탄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거짓말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사기치고, 강제로 빼앗는 삶을 살아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손해를 보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정직해야 합니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면, 절대 안됩니다. 권모술수, 중상모략, 아첨, 도박 등으로, 출세하고, 영화를 잠깐 누리는 것보다는, 정직하게 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의 복을, 영원히 누리는 쪽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라고 고백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거짓을 버리고, 정직해야 합니다.
여섯째,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아멘.
왜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은혜를 이토록 간절하게 구했을까요?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구한 이유는,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5절을 보면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든, 재벌회사 회장이든, 세계적인 석학이든, 장군이든 간에, 구원받아야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구원은 은혜로 받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시 57:1)라고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구한 이유는, 은혜를 받아야 자기의 책임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나 여호수아, 기드온이나 사무엘, 다윗과 여호사밧, 그리고 베드로나 바울이 자기의 사명을 다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총독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총독의 일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구한 이유는, 은혜를 받아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외적의 침입과 국론의 분열, 그리고 경제적인 공황까지 겹친 수난을 이겨내고, 기도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편해야, 가정도 편안하고, 직장도 편안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습니까? 은혜를 입어야 가능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눅 1:28)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그 말을 듣고,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라고 생각할 때,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눅 1:30)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 있든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구한 이유는, 은혜를 받아야 범사가 형통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만사형통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구원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강건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성공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환난이나 시험을 이깁니다. 은혜를 받으면, 바로 살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주님만을 바라보고 바로 믿고 바로 살게 됩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누군가, 서선주의 “은혜가 아니면”라는 찬양곡을 추천하면서, 이런 말을 남겨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침 당직이라, 너무 피곤해서, 짜증이 났었는데요. 머리를 감는데 이 찬양이 흥얼거려지더라구요.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할 수 있는 것도, 살아 숨쉬는 것도, 다 주님의 은혜 아니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피곤한 출근길이 이쁘게 느껴졌답니다. 이 찬양 들으며 즐겁게 남은 시간 보내려 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Thanks Gods. 하나님, 감사합니다.”
서선주의 “은혜가 아니면”라는 찬양 가사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나 어찌 살리요. / 은혜가 아니면 나 어찌 서리요.
은혜 아니면 나 어찌 가리요. / 은혜가 아니면 나 어찌 말하리.
내 주님의 십자가 / 나의 허물과 실수 / 나의 모든 죄 깨끗이 씻기며
배신과 독선에 상처 입은 사랑을 / 주님의 피로 온전케 하시네.
은혜가 아니면 나 어찌 살리요. / 은혜가 아니면 나 어찌 서리요.
은혜 아니면 나 어찌 가리요. / 은혜가 아니면 나 어찌 말하리.
은혜가 아니면 어찌 찬양하리요.
그렇습니다.
은혜가 아니면 어찌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로 사는 것도, 정직하게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바로 믿고 바로 삽시다. 정직하게 삽시다.
세상이 아무리 썩고, 혼란스럽다 할지라도,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정직하게 바로 살아감으로, 날마다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속에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간절히 구하옵나니, 지도자들이 바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정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