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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에는 작년 벼포기 자리에 새 모가 들어서야 한다. 발전적 방양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젊었다고 사고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애늙은이가 되어 고집을 피우면 감당이 되지 않는다. 이런 사고까지도 쟁기로 갈아엎는다. 수구 꼴통도 뒤엎는다. 무엇이 무엇을 지배한다는 사고보다는 같은 세대에 사는 사람으로 같이 간다는 생각으로 가는 것이 옳다. 법을 따지면서 법을 지키지 않는 썩어문들어지 칼은 주위만 오염시킬 뿐이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말로는 아무 효과가 없다. 지금 아버지와 누렁이가 거친 숨을 몰아 쉬어가면서 쟁기를 끌 거니 밀거니 하는 것도 혁명은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겨울인 줄 알고 잠만 자던 흙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호들갑을 떤다. 속살을 드러낸 것에 부끄러워한다. 옷도 미처 챙겨 입지 못한 벌레는 아직 더 자야 하는데 무슨 날벼락이냐며,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반토막난 올맹이들은 아픈 것을 참아가며 말한다.
“잠자고 있는 나를 반토막 내다니 누가 무지막지하게 하는 거여. 아직 날도 추운데 죽일려고 작정했구먼.”
반 조각난 돌멩이가 아우성이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느냐며 어이없어 한다. 지난해에 아버지와 누렁이가 함께 쓴 농사 일기는 이젠 접어둔다. 과거에는 미련 따위를 두지 않는다. 추억이 그리움으로 다가올지라도 흔적을 갈아엎는다. 이곳에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쓰고 그림을 그리겠다며 헉헉거려가며 쟁기를 끌고 종횡무진으로 활동한다. 그는 그런 누렁이의 의욕이 넘치는 활동을 다독거리느라 힘이 드는지 목청이 쉬었다. 쟁기라는 지우개는 누가 옆에서 거들어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누렁이는 쟁기의 멍에를 끌고 그는 운전한다. 그와 누렁이가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해 가면서 누렁이는 쟁기를 끌고 그는 뒤에서 밀어준다.
“누렁아, 힘들지. 이번 바퀴만 돌고 잠시 쉬었다 하자꾸나.”
누렁이에게 힘을 북돋아 준다. 사실 나도 힘이 든다. 종일 누렁이와 일하니 친구처럼 지낸다. 지친 마음을 서로 교감하면서 달랜다. 힘이 든다고 쟁기를 놔두고 가도, 힘이 넘친다고 달려가도 안 되는 일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옷을 꿰매려면 바늘이 먼저 천에 들어가고, 그다음에 실이 따라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다. 소가 바늘이 되어 실이라는 쟁기를 끌고 들어가면 논갈이가 된다. 이런 일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실체는 쟁기를 붙들고 가는 사람이다.
일에는 고통이 따른다. 일을 시작할 때 결과를 생각하면 힘이 절로 난다. 일이 어느 정도 진행하면 꾀병이 슬슬 난다. 핑곗거리라도 생기면 그걸 구실로 일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동안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것이 허사가 된다. 생각한 것도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아무 소득 없이 골치만 아팠다. 일을 시작한 것이 후회된다. 이로 해서 매사에 자신감이 떨어져서 주춤주춤한다. 일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접근한 것이 많은 후유증을 낳은 것이다. 본인만 모르고 있었지, 옆에 있는 사람은 일이 잘 안 될 거라는 것을 이미 예측했다. 일도 시작 안 했는데 일이 잘 되니마니 하면, 남의 일에 초 친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다.
논갈이는 누렁이, 쟁기, 농부가 한 박자로 움직여야 한다. 어느 한 요소라도 어깃장을 놓으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누렁이와 농부가 들판에 선을 긋는다. 천천히 긋는다. 무늬를 만든다. 선의 꼬리가 점점 길게 이어져 들판 속으로 펴져 나간다. 들판에 널브러져 있는 과거를 갈아엎는다. 이런 일은 말로만 떠들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소같이 우직하게 자기가 할 일을 해 가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좌로 가든 우로 가든 느리더라도 움직여야 한다. 가능하면 행복을 지으면서 가면 더 좋다.
농우가 쟁기를 끌고 논갈이를 한다. 일할 사람이 줄어드니 경운기나 트랙터가 등장해서 논을 간다. 벼를 베어 탈곡까지 한다. 기계화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일에 새로운 방법으로 농사를 지으니 진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삶에 편리함을 주는 것이다.
“수저로 밥을 떠먹으면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일을 손으로 잡고 먹으면 보수가 하는 일이고 이걸 비위생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손을 씻고 시의적절하게 모든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진보가 아닐까. 하나의 선을 그어 놓고 이쪽은 맞고 저쪽은 틀리다고 주장하는 것이 맞을까. 모두가 상대적인 거 아녀. 내가 주장하면 보수고 니가 말하면 진보라는 건 자가당착에 빠진 억지가 아녀. 기선을 잡는다고 생각하니 타협점이 소멸되는 거지.”
아집은 말처럼 타고 달릴 수는 있어도 병적 증상이니 치료를 받지 않고는 멈춰 설 수 없다. 그 중심선에는 흑과 백의 벽이 있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뿐이다. 보수 아니면 진보를 선택해야 한다. 회색지대에 있는 것들은 사이비 흑과 백일 뿐이다. 야합의 존재일 뿐이다. 하나. 도구를 가져다 놓고 다툼을 하지만 사용하기 편리하고 일에 효율성이 높은 것을 사용자는 선호한다. 여기에는 어떤 진영에도 관심이 없다. 그냥 사는 방식에 따라 나뉘어 있다.
쟁기도 발전된 도구였다. 이걸 계속해서 고집했다면 새로운 농기구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만드는 사람이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이념에 치우쳤기보다는 편리성에 기반을 둔 산물일 뿐이다. 논밭에 매달려 살았던 사람은 농기구를 만들고 개량하는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농업이라는 직장 대신에 공업이라는 일자리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일에는 이념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에 엉뚱한 이념을 집어넣어 사회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다. 혁신적인 사고로 좋은 물건을 만들어서 사용하게 된 것을 자기 것인 양 스스럼없이 말한다. 이런 일에 궤변을 붙여서 개인의 이득을 만들어가려 한다. 꼴불견이다.
소같이 우직하게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을 융통성이 없다고들 한다.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걷는 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한 걸음씩 떼어가며 가며 걸어가도 다 저녁때쯤 되면 열댓 마지기 논을 갈아엎는 우직함이 배어있다. 이런 성실성이 근본 바탕에 깔려있는 사람이 바른 보수고 진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을 하든 돈이 있어야 한다. 겉으로는 공약에 당의를 입혀서 그럴듯하게 해 놓았지만 그건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 가능한 일이다. 경비를 조달할 길이 마땅찮으면 세목 하나를 늘린다. 이것으로 부족하면 부동산 공지 시가를 줄줄이 올려 세금을 올린다. 이와 연계된 건강보험료, 취득세, 양도소득세까지 줄줄이 올려놓는다. 무얼 준다는 것은 내 돈을 뜯어다 남에게 나누어 준다는 뜻이다. 나누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의 월급도 내 호주머니에서 나가야 한다. 잠시 취직시켜 놓고는 어느 날 그만두는 직장을 만들어 놓고 목표 달성했다고 눈가림하는 권력자도 있다. 눈감고아옹하는 식이다. 파리 목숨과 같은 직장을 수두룩하게 만들어 놓고 일자리 많이 만들었다며 낯짝 두껍게 사기 친다. 잠시나마 헛꿈을 꿀 수 있는 일거리를 준 것에 고마워하라고 떠들어 댄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그들은 자기들 연금을 수북이 받도록 셀프서비스도 한다. 셀프훈장도 받는다. 낯간지러워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이 보면 미친 짓으로 보이는데도 박장대소한다. 빛 좋은 개살구를 수두룩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걸 보고 소가 웃으며 말한다.
“나는 매일 논 열댓 마지기를 갈고 뒤엎고 있으니 ‘농토혁명장’이라는 훈장을 받아야겠구먼. 한다. 이것이 일리가 있는 것이 농부, 농우, 쟁기는 하나가 되어 땅을 갈아엎어 다른 세상을 만든다. 하나의 혁신의 장을 펼친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들은 말뿐이지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려는 다툼이다. 그러나 농부와 농우는 기존의 것을 갈아엎는다. 새로운 농토의 풍경을 만드는 것만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 개혁이고, 이것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진보다. 새로운 토양을 만드는 일은 흙을 뒤엎는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햇빛을 따스한 맛을 보지 못한 흙에 기회를 준다. 임무 교대를 한다. 이게 평등이고 진보다.
한 자리에 오래 군림해 있으면서 혁신을 부르짖어 보아야 모두가 자기를 위한 것이다. 그 나물에 그 나물이 된다. 다음을 염두에 두고 국민이 아닌 자기 두목에게 아양을 떤다. 그렇게 아부하고는 자기 본분을 다한 줄 안다. 대중이 아니라 두목의 눈에 들기 위해서 오버액션을 한다. 한다는 짓이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 패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용기가 없어서 나서지 못하니 나서기 좋아하는 놈을 앞세워 자기 이익을 대변하게 한다. 이게 더러운 것이다. 토양을 이런 식으로 놓아두면 그해 농사는 망치게 된다. 그게 오래 지속되면 폐농도 피해갈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힘이 들지만 농부는 농우, 쟁기와 삼위일체가 되어 토양을 파 뒤집는다. 다른 풍경을 만들 때마다 흙을 뒤집는다. 나와 우리 가족이 굶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날로 새로워져야 발전할 수 있다. 만족의 시간을 짧게 가져가야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돗자리를 펴고 앉는 순간, 앞에 간 사람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퇴보한다. 논을 갈다가 쉬는 순간 그 자리에 머물러있게 된다. 그렇다고 나머지 일을 누가 해주는 것도 아니다. 뒤늦게 일을 하면 순차적으로 이리 늦어진다. 같은 일을 해도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땅을 뒤집고 골을 질서 있게 타고 씨뿌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땀을 흘려가며 묵묵히 일해야 땅을 뒤집어 놓은 결과인 개혁의 열매가 얻어진다. 개혁은 거듭되어야 한다. 한 자리에 안주해 있는 순간, 구태가 되어 전진하는 군중에 대고 짖기만 한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 자기는 왜소해져 있음에 놀란다. 내가 짖은 것은 내 먹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남의 먹이를 빼앗는 일에만 열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걷어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남의 돈을 긁어다가 내 선거운동을 한다.
분배라는 명목으로 나눠주면서 말한다.
”나 이쁘지. 기억해 줘.“
”이쁘기는 개 코나 이뻐. 날 강도구먼. 내 돈과 노력으로 천신만고 끝에 평생, 아니 선대부터 이룬 것을 지들이 빼 심심하면 법이랍시고 링에서의 룰을 마구 바꾸고. 강도가 따로 없다니깨.“
농우는 먹이를 제대로 챙겨 주지 않는 사람에게 불편을 늘어놓는다.
”나두 목이 타는디 탁배기 한 모금두 안주고.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 없다니깨.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센 놈은 다 똑같은 날 강도지.“
정의로운 농부는 막걸리 한 병을 먹여 준다. 숨도 쉬지 않고 꿀꺽꿀꺽 넘긴다. 힘이 난다. 흙을 뒤집어 혁신하는 일에 앞장선다. 보드라운 흙의 세상에서 자란 들풀들은 웃으면서 자란다. 나쁜 놈이 어느 순간 덮친다. 정의로운 농부의 힘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기사 일생으로 살아난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자기가 만든 열매를 남겨 두고 떠난다. 그들은 의로운 농부에게 나름의 보답을 한다.
사람의 힘을 등에 업고 다른 농작물을 못살게 구는 때도 있다. 잘 지내라는 뜻으로 솎음질을 해 준다. 어떤 풀은 나풀거리며 아부를 떤다. 이걸 봐주면 더 많은 이득을 안겨줄 농작물을 없애야 한다. 농부는 고민한다.
”저건 꽃의 색깔이 예쁘고 무성한디. 그냥 놔둘까.“
사심에 눈이 어두워지는 순간 먹을거리는 줄어든다. 사사로운 이익이 낳은 결과다. 선택해 놓으면 자기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 한 줌도 안 되는 힘을 쥔 좀생이들의 짓거리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인지 처량한 자신의 처지를 보상받으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 분풀이를 하려는지 온갖 구실을 붙여 사업가의 손발을 묶어 놓는다. 난도질을 한다. 그러면서 지금 자기가 죄를 짓고 있는 줄도 모른다. 그렇게 한 것이 자기 업적이라고 내세운다. 부정한 일을 합리화시키려는 의도다.
가진 사람의 천문학적인 재산으로 상품을 생산하고 수출해서 국가에 세금을 내고 하면 된다. 국가는 그 돈으로 국가 산업발전에 재투자하게 하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세금 낼 사람이 늘어난다. 나라는 부자가 된다. 이것을 사회에 풀어서 세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의 자리를 메워준다. 깨끗한 척 떠들던 사람이 똑똑한 집 두어 채를 몰래 갖고는 자기 집을 위해서 정책을 펴지 않게 할 수 있다. 자기 집 전세금을 올려놓은 것이 들통이 나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해서 그나마 가졌던 권력마저 빼앗기고 쫓겨나기까지는 않는다. 그런 짓 하다가 처량하게 떠나는 뒷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
나쁜 일을 저지르고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밝히지 않는다. 자기가 무슨 투사라도 되는 것처럼 의혹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없이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끊는다.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생전에 저지른 나쁜 행동이나 그런 의혹이 없어지지 않는다.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큰일을 저지른 모양이다. 일말의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 떠벌려 놓은 말과 다르게 행동한 것이 부끄러워서인지 가타부타 말없이 유명을 달리한다.
양심이 없는 놈은 도둑괭이가 된다. 남이 잡든 사이 몰래 남의 집에 기어들어 가서 그간 저질렀던 일을 지워낸다. 이와 연관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밤이 새도록 지운다. 진시황이 어느 날 나타났나.
”현대판 분서갱유가 도둑괭이처럼 살큼살큼 몰래 기어들어 가서 맘에 내키지 않은 것을 없애는 건가. 나쁜 놈들. 진시황이 재탄생했나. 그런디 아직두 밝혀지지 않았나. 그가음 소식이 없네. 이게 바로 진보라는 건가. 알다가두 모르겠는디.“
이런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농우가 빙그레 웃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구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소리를 멍청이들만 모르는가 본디.“
농부는 기록은 인간이 삭제했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강조한다.
”그건 군주국가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지. 군주가 대장인디 지우고 자식할 게것도 없구.“
군주가 한 일은 그러려니 했다. 이런 일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기록의 맥락이 맞지 않는디. 농우인 내가 지나가도 흔적으로 발자국을 남기는디. 골도 파이는디. 중간에 끊겼다구. 무슨 썸씽이 있을 거 같구먼.”
“이유도 적혀있지 않지.”
“나쁜 일을 저지른 거 맞구먼. 떳떳하면 근거를 남겨 두는 것이 일반적인디.”
“뒤가 구려서 그렇겠지.”
“우리가 콩을 뜯어 먹고는 주인한티 혼날까 봐 머리를 숙이고 있거든. 그것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아서야. 이런 걸 보면 그 애들은 우리만도 못한다는 거여. 말도 안 돼.”
“왜 그렇게 썩어 빠진 거야.”
“흙을 제대로 뒤집어 주지 않아서야.”
“그건 맞아,”
“군주 시대에도 사관이 기록한 문서를 보지 않을뿐더러 함부로 손상시키지 않났다구 하던디 도둑괭이가 한밤 중에 함부로 없애. 일에는 전후맥락이 들어맞아야 하는디 어떤 근거로 하던 일을 그만두게 한 거여.”
“그건 자기 잘못을 은폐하려는 거지.”
나중에야 주요 부분이 뭉텅이로 빠져나간 걸 알지. 나중에 알았다고 해도 그건 공시시효가 끝나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범인은 이런 상황을 보고 빙그레 웃고 있어도 뻔히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이게 불공정의 시작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게 문제다.
소가 쟁기를 메고 가면 논바닥에 고랑이라는 흔적이 남는다. 그런 고랑 없이 처리했다면 도둑괭이도 이게 무슨 조화라며 곡하고 지나갈 일이다. 그다음 사람은 벌여 놓은 일을 뒤치다꺼리 해야 한다. 비용도 국민의 세금으로 한다. 어떤 때는 처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게 맞다며 고집을 부린다. 그렇게 토론만 계속하다가 허송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가 다른 부서로 옮기면 문제가 되었던 일은 유야무야가 된다. 이런 일이 거듭되다 보면 그 나라는 부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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