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공부방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우쿨렐레 연주, 캄보디아에 울려 퍼지다!
푸른교회 캄보디아 순교여행기이정순 센터장
푸른교회 부설로 운영되고 있는 푸른공부방 지역아동센터는 영등포 지역의 한부모 가정을 비롯하여, 조손가정 및 다문화 가정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지난 20여 년간 지역 내 많은 헌신과 섬김을 감당해오고 있는 전문 아동 보호 시설로서 아동의 보호와 교육 및 다양한 전문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약 3년 전부터 악기 수업의 일환으로 전문 강사를 모시고 우쿨렐레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우쿨렐레 강습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에게 이것을 배워서 꼭 해외 공연을 가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는데 당시는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는 눈치였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굳게 약속을 하고 수업을 시작하였고 하나님께 늘 이 일을 이루어 주시라고 새벽마다 기도를 드렸는데 마침내 캄보디아 역사탐방의 기회가 서울시 공동모금회와 복권기금에서 지원하는 방학 프로그램 공모 사업을 통해 주어졌다.
여행을 떠나면서 무조건 우쿨렐레를 비행기에 실었다. 인솔 교사들을 포함한 우리 센터의 아이들 그 누구도 이전에 캄보디아를 가본 적이 없어서 공연을 어디서 해야 할 지조차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냥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안 되면 앙코르와트 앞에서 버스킹을 할 생각이었다. 계획된 3박 4일의 여행 일정이 정신없이 흘러가고 연주할 기회를 계속 놓치고 있었다.
2일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이드에게 이런 상황을 이야기를 했더니 내일 일정이 세계 최대의 민물 호수인 톤레샵을 방문하는데 그곳에 있는 수상 가옥 마을의 <베트남 보트 피플 난민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일정을 조정해 주면서 “그 곳 아이들은 먹을 것이 가장 시급하거든요”하면서 그 곳의 아이들을 위해 간단한 선물도 준비해 가면 더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이튿날인 2018년 12월 7일. 배를 타고 30분 정도 호수 안쪽으로 들어가자 물 위에 떠있는 수상 가옥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마을은 월맹에 의해 공산화된 베트남에서 자유를 찾아 탈출하여 “보트 피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로서 탈출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천신만고 끝에 현재의 톤레샵 호수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캄보디아에서도, 베트남에서도 받아주지 않아서 이 호수를 벗어날 수도 없고, 국적도 없이 살아가는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도착을 해보니 교실 3개짜리의 통 바오(Thong Bao) 학교는 이 마을의 유일한 학교로서 이곳에서 약 100여 명의 아이들을 비롯한 교사 및 관계자 10여 명이 공부를 하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거의 물위에 세워진 원두막 수준이었다.
우리는 무대랄 것도 없는 부엌 앞에서 그동안 배운 우쿨렐레 연주 실력을 발휘했다. 우리 아이들이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부르는 찬양과 복음성가를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으로 신기한 듯 쳐다보며 처음에는 낯설어 했지만 곧 해맑은 웃음에 서로의 마음이 열리고 금방 하나가 되었고 마지막 곡으로 찬양 “싹트네”를 연주할 때는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들며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우리 주님의 은혜는 언어를 초월하여 역사하심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 아이들 마음 속에도, 또 이 아이들 마음속에도 예수님의 사랑이 싹트기를 기도하였다.
연주가 끝나고 통 바오 학교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손을 잡는데 손바닥이 우리 아이들의 부드러운 손에 비교하면 너무 거칠어서 놀라웠다. 준비한 라면과 과자를 비롯하여 한국에서 가져간 약간의 연필을 기부하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이 아름답고 좋은 세상을 이들과 함께 누리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이 아팠고 작은 것의 소중함과 감사를 모르고 살아온 우리들의 모습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곳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다음 일정을 진행하는 중에도 내내 마음속에 그 아이들의 모습과 눈동자가 잊히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에 돌아가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각자 용돈의 십분의 일을 기부하자고 제안하였더니 모두들 좋다고 찬성을 한다.
한국에 돌아온 후 우리 센터에 기부금 함을 마련하고 각자 1달러씩 넣고 있다. 이 작은 기부의 시작이 우리 아이들의 자람과 함께 커지고 기부금 액수도 2배, 3배 같이 커져 나가서 우리 아이들이 장차 자라서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 때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웃)으로 자라나기를 기도해 본다. 2월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