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삶의 경험은 과거 생으로부터 비롯된 복잡한 원인을 시사한다
앞서 우리는 지장보살(Ksitigarbha Bodhisattva)의 서원과 수행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제 '지장(Ksitigarbha/Dizang)'이라는 이름과, 이 보살과 관련된 '심지법문(心地法門, 마음의 근본 바탕에 관한 가르침)'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든 사람은 이러한 '심지(心地, 마음의 근본 바탕)'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지장보살이 지닌 것과 동일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지장보살은 이 상태를 완전히 깨달아 실현하신 반면, 우리에게는 이것이 아직 깨달아지지 않은 채 망상과 업(業), 그리고 고통—구체적으로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삼장(三障, 세 가지 장애)'—에 가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불교 경전 가운데 『지장경(Ksitigarbha Sutra)』은 '효경(孝經, 효도를 다룬 경전)'으로서, 효행의 의미를 드높이고 확장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효도는 부처님과 보살님들의 깊은 은혜에 보답하는 것까지 그 의미가 확장됩니다. 이곳에 마련된 '이은당(憶恩堂, 은혜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전당)'은 주로 부처님과 스승님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공간이며, 이것이 바로 효도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서만 우리는 지장보살의 서원과 행을 온전히 체득하고, 본래의 순수한 심지를 회복하며, 그 안에 감추어진 무한한 보물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몇 가지 핵심 개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인과법칙(업, karma)을 이해하고 믿어야 합니다. 누구나 이 개념을 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 작동 원리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과법칙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번 생에 겪는 경험들은 과거에 뿌린 원인에서 비롯된 결과(열매)이며, 이러한 원인과 결과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개인을 둘러싼 거시적 환경부터 당장 마주하는 주변 환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바로 이 인과법칙에 의해 형성됩니다. 우리가 현재 겪는 일들은 과거 생에 지은 원인들이 결실을 맺은 것이며, 오늘 우리가 행하는 행동은 미래 생의 원인이 되어, 훗날 다시 현재 행위의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의 삶이 매우 복잡하다면, 이는 그가 과거 생에 심어놓은 원인들 또한 그만큼 복잡했음을 의미합니다. 이곳에서 불법(佛法)을 공부하는 것—경전을 읽거나 공양간에서 봉사하는 것 등—은 미래를 위한 원인을 짓는 동시에, 과거에 지은 행위의 결과를 경험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에서는 보시(布施)에 따른 업보와 과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왜 똑같은 보시를 행하더라도, 어떤 이는 세 생애에 걸쳐 과보를 받는 반면, 또 어떤 이는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그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일까요?
가난한 사람에게 10위안을 건네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만약 단순히 동정심에서,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건네준다면, 그에 따른 업의 결실은 미미하여 고작 20위안 정도의 보답으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공덕의 실제 가치는 전적으로 당신의 마음가짐, 즉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그 10위안을 지극한 공경심으로 건네며, 상대방을 깊이 존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한다면, 그 공덕은 훨씬 커져서 천 배, 혹은 그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단순히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위로와 조언을 건넨다고 가정해 봅시다.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고 계신가요? 이는 과거에 보시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 많이 베푸는 법을 배우신다면, 다음 생에는 풍요롭게 살며 더 이상 이런 고통을 겪지 않으실 겁니다"라고 말해주거나, 부처님의 명호를 염송하도록 가르치고, 신심을 북돋우며, 불법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때 상대방을 업신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존중하며 대한다면, 당신이 쌓는 공덕은 훨씬 더 커집니다. 똑같은 액수의 돈이라도, 어떤 의도와 어떤 태도로 보시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원인의 성격이 결과의 성격을 결정짓습니다. 시작할 때의 의도가 진실하지 않으면 그 결과물 또한 깊이가 부족할 것이나, 진실한 의도로 행하면 그에 따른 보상 또한 깊고 클 것입니다.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동전 한 닢어치의 기름을 보시한 어느 가난한 여인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반면 프라세나지트 왕은 엄청난 양의 기름을 사용하여 수천 개의 등불을 밝혔지만, 그 공덕은 가난한 여인이 바친 동전 한 닢어치의 공덕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프라세나지트 왕에게 5만 근의 기름을 바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는 왕이었기에 그 정도 양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날, 목련존자(마우드가랴야나)가 등불을 관리하는 소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새벽이 다가오자 그는 등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등불들은 모두 쉽게 꺼졌지만, 가난한 여인이 바친 등불만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신통력을 동원해 보았음에도 불꽃은 그대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이승(二乘, 성문이나 연각의 경지)’을 성취한 아라한의 신통력으로는 그 등불을 끌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시자가 쌓은 공덕이 워낙 컸기 때문인데, 이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보시’라고 합니다. 등불을 올린다는 행위 자체는 같았지만, 그 결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이곳에 모여 법문을 들을 때도 그 결과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한결같은 정성과 진실한 마음으로 듣느냐, 아니면 산만하고 흔들리는 태도로 듣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 얻는 공덕이 매우 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으며, 누구나 그 공덕을 얻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과연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인연)을 갖추고 있을까요? 우리 푸서사(普壽寺) 공동체 안에서도 접수처 업무를 보는 등 각자의 소임을 수행하느라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이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공덕을 그들에게 회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찰을 후원하고 법문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돕는 재가 수행자들도 계시지만, 정작 그분들은 직접 자리에 참석하여 법문을 들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근저에 놓인 인과관계를 살펴보면, 그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하게 얽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우리 일상의 매 순간과 우리가 품는 모든 생각은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많은 이들이 수행의 길을 걷거나 법문을 듣지만, 궁극적인 결실을 얻는 이는 드뭅니다. "처음 발심이 진실하지 않으면, 그 뒤를 잇는 수행의 길은 우여곡절이 많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과관계를 진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것은 곧 지혜가 갖추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과법칙을 명확히 식별하고 이해하는 것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그것은 사람을 신중하게 만듭니다. 나쁜 원인을 짓거나 불건전한 생각을 품는 것을 감히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뒤따를 업보를 두려워하며 즉시 경각심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인과관계에 대해 깊고 명확한 이해를 길러야 합니다. 즉, 특정한 원인은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一生经历很复杂,说明前生的因也很复杂
上次讲地藏菩萨的愿行;现在讲“地藏”二个字,讲讲地藏菩萨的心地法门。“心”,大家都具足,我们的心地跟地藏菩萨的心地是一样,不过地藏菩萨是证得的,我们的“地藏”是没有证得的,都被我们的惑业苦、(贪、瞋、痴)三障给障住。
《地藏经》在佛经里是孝经,把孝道的意义发扬光大,这个孝道是我们对诸佛菩萨报佛恩。我们这里有忆恩堂,忆恩堂最重要的是报佛恩、报师恩,这是孝道。这样才能够具足这些愿行,才能恢复我们纯正的心地,那我们的心地无尽宝藏才能发挥。
今天我们讲讲名词,第一,明因果,相信因果。简单的说,谁都懂因果,但是我们都不认得因果,什么原因?很复杂。现在我们今生感受前世的果,过去因感现在果,这个果是错综复杂的。就一个人来说,整个大环境、小环境都是因果所促成的,我们现在所受的是前生的果,今生再所做的就是未来世的因,未来世所受的是今生所做的果。
就个人来说,他的一生经历很复杂,说明他前生的因很复杂。大家在这里学佛法,不管读过乃至行堂都是造未来的因,但也是过去的果。举例来说,在《地藏经》讲布施功德的因缘,为什么做同样的事情,有的人就三生受报,有的却是无量劫受报?
同样的布施,你看这个穷苦人,捐助他十元,捐助是可怜他,顺手掏出给他十元,以这种态度做的功德,后来感果顶多加一倍,二十元回报。从心地来说,那就不止二十元,看你怎么样用心。如果是以恭敬心,对待这个穷苦人,恭恭敬敬供养他十元,供养时对他说话很客气,那你的功德比前头那个功德就大,成了千百倍。
如果是第三者,不但给他钱,还安慰他劝他,“你今天为什么这么穷?因为过去没有布施,你要多舍,来生就富有了,不会再这么穷了。”或者教他念佛、信佛,给他说佛法,绝不轻视他,那你这功德更大了。同样的一个钱,看你怎么用心,以什么态度做供养。
同样是因,因地不是真诚的,所感的果也不真诚,因地真诚的,所感的果就大。那贫女供养一个金钱的油,那是她的全部财产;波斯匿王供千灯,拿多少罐多少车的油,还不如这一个贫女一个金钱的油。这是什么原因?她是“竭尽施”,波斯匿王供养五万斤油,他是国王,无所谓的。
正赶上那天是目犍连尊者当香灯师,到天亮了要把灯熄灭,其他的灯都熄灭了,他就是灭不了贫女所供养的灯,甚至用神通熄灭这盏灯也熄灭不了。佛就出来跟他说,你以罗汉的二乘人功力熄灭不了,她的功德非常大,这叫“竭尽施”。同样一个因,都是供养灯,但是所感的果不同。现在大家都在这里闻法,如果你一心闻法,至心恳求闻法或三心二意闻法,完全不同,所感的果就不同了。
我们上课谁都知道,闻法的功德非常殊胜,人人都愿意闻法,有这个因缘吗?同是普寿寺的僧众,现在有人在知客室到不了,大家就给他回向,把我们的功德送给他。还有居士护持我们的道场,护持大家闻法,他也不能闻。看看这里头的因果,错综复杂得很。
我们每天用心,从早到晚念念都有因果。我们修道乃至闻法的很多,证果的很少,“因地不真,果招纡曲”,要这样明因果。加个“明”字就是智慧,你能把因果分清楚、明白了,有什么好处?不敢造因也不敢起坏念头,当你一生起,马上就警觉了,怕落因果。必须深切明了因果,有如是因,一定感如是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