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려탑(平麗塔)이라 불리는‘백탑’을 아십니까?
우리 집에 한 사람이 찾아 왔다. 그는 북한 청진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북한과 접경지대인 장백산(백두산) 중턱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중국과 북한을 넘나들며 자유인으로 살았던 사람. 노루와 사슴과 함께 뛰놀다 지치면 ‘천지’ 그 차가운 물에 뛰어 들어 수영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해 준 사람.
그가 살았던 곳은 지척이 북한이다. 특별한 국경선이 없고 무릎 차는 압록강이 형식적인 경계선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살벌한 국경선이 아니라며 몇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어느 날 아들이 학교를 가다 말고 3명의 또래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네다. 아이들은 강아지 한 마리를 앉고 북한에서 온 아이입네다. 신발이나 옷과 강아지를 바꾸기 위하여 온 것입네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아들이 작아서 신지 못한 신발을 모아서 주었습네다. 그 후 이 아이들이 자주 강아지를 들고 우리 집을 찾아 왔습네다. 너무 자주와서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사정 하였습네다.”
그의 이야기 중 70% 정도뿐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다시 물을 때마다 조금 천천히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는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사람보다 빠르면서 강한 북한 사투리를 쓰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천지의 반은 중국과 나머지 반은 북한 땅으로 구분되어 있습네다. 원래 천지에는 아무런 생물체가 살고 있지 않았습네다. 물이 차가울 뿐만 아니라 아직도 백두산은 활화산으로 천지 속에서 가스가 올라옵네다. 오래 전 북한에서 ‘산천어’를 방생하여 지금은 ‘산천어’가 많이 자라고 있습네다. 사람에게는 국경선이 있는데 ‘산천어’는 중국과 북한을 자유롭게 넘나듭네다. 보통 민물고기는 회로 먹지 않습네다. 그러나 ‘천지’에서 사는 ‘산천어’만은 예외입네다. 깨끗한 ‘산천어’를 회로 먹으면 정말 쫄깃쫄깃합네다.”
나는 잠시 그의 이야기를 멈추게 하였다. 중국과 북한이 천지를 어떻게 나누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 분명한 역사관을 가지고 설명해 주는 것이다. “김일성을 찬양하는 것은 아닙네다. 하지만 그가 한일 중 몇가지는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네다. 오래 전부터 북한은 중국과 국경 문제로 마찰을 이었습네다. 김일성은 1962년 중국과 조중변계조약 맺고 국경선을 확정했습네다. 천지와 장백산이 그때 분할되었습네다. 당시 중국의 접경 지대에 있는 압록강의 몇 개 섬도 북한으로 편입했습네다. 나는 김일성이 아니라면 아마 '천지'도 '장백산'도 중국에 빼앗겼을 것이고 생각합네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청나라는 ‘장백산’을 자신들의 영산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네다. 김일성은 명절이 되면 ‘동북삼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에게까지 명절 선물을 보냈습네다. 그는 중국에 살고 있는 자신의 민족을 돌볼 수 있었던 통이 큰 사람입네다. 아마 후대에 역사가 이 사람을 새롭게 평가해야 할 것입네다.”
그는 우리 집 거실에 있는 ‘탑’을 만든 장본인이다. 수용소 안에서 5개월 동안 4000여 장의 전화 카드를 모아 3개월간의 작업을 거쳐 ‘탑’을 만들었다. 수용소 안에는 가위와 본드가 허용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책 가운데를 도려내고 그 속에 가위와 본드를 숨겨 아주 힘들게 중국의 요양 ‘백탑’을 기억하며 만들었다. 요양의 백탑(白塔)은 일명 평려탑(平麗塔)이라 부른다.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무너뜨리고 부여에 ‘평제탑’을 쌓은 것 같이,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이 탑을 쌓았다.
‘백탑’에 서려 있는 고구려 유민들의 '한'만큼, 그는 수용소 사람들의 처절한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던 것이다.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전화카드 한 장, 한 장 속에 서려 있는 저들의 피 맺힌 '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