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9.주일낮예배 설교(추수감사절)
*본문; 눅 7:36~50
*제목; 감사로 은혜를 붙잡아라!
프롤로그.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한 해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감사의 제목을 써보면 참으로 놀라게 됩니다. ‘기도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허락하셨구나!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은혜였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는, 그리고 그것을 누리는 영적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감사가 없을 때 몰랐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실한 마음으로 진실하게 작성하시고, 추수감사절 헌금과 함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추수감사절 뿐 만 아니라, 삶이 힘들 때마다 뒤를 돌아보고, 받은 은혜를 세어보면 너무나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경험하고 때문에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1. 오늘 본문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리새인과 창녀 마리아입니다.
예수님이 사역할 당시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많은 기적을 목도하고 놀라, 자기의 집으로 예수님의 일행을 초청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이 진짜인지? 이 사람이 참 선지자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초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실 때, 참된 손님 대접을 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손님이 오면 손님의 귀함의 정도에 따라, 주인이 대접하는 방법이 차이가 납니다. 귀한 손님이 오면, 손을 씻을 물을 제공하고, 더 귀한 손님은 종으로 하여금 그 발을 씻어 드리도록 지시합니다. 하지만 정말 귀한 손님은 주인이 직접 무릎을 꿇고 손님의 발을 씻습니다.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으신 것도 제자들을 이토록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세상을 향해 이렇게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마음과 자세로 섬기는데 세상이 왜 변화하지 않고, 주를 영접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하고서도, 참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실 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손님대접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한 여인(그 여인은 “죄를 지은 여인”(37절)이라고 기록된 것이 아마 ‘창녀’였던 것 같습니다.)이 군중을 비집고 나와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발아래 나와 눈물을 흘립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로 예수님의 발에 먼지를 닦아냅니다.
그런 다음 자신이 평생 창녀생활을 하며 모은 향유옥합을 깨어 그 발에 부어드립니다.
두 사람은 세상에서는 전혀 상반된 대접을 받던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이 시몬은 존경과 인정을 받는 자였고, 창녀인 이 여인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두 사람의 처지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죄인으로 천국과 관계없는 자가 되었고, 여인은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일이 같이 칭찬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바로 여인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평생을 죄인의 신분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다가,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 받고 천국의 자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으며, 그 어려움 상황에서 모은 향유옥합을 깨뜨려 주님 발에 부은 것입니다.
2. 우리는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그러면 우리는 왜 이런 감사를 하지 못하거나, 형식적인 감사에 그치는 것입니까? 한 마디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참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죄사함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천국백성이 된 놀라운 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역을 잘 한다고 칭찬받는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의 목사님 모임이 사정이 있어 개척교회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회의를 주재하던 목사님이 마지막 안건이 마친 후, ‘우리 이 개척교회가 어렵다고 하니 이 교회를 위해서 헌금하는 시간을 가집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모두들 헌금을 하는데, 이 목사님이 속으로 생각이 들드랍니다. ‘나도 어려운데 또 왠 헌금이야?’ 그리고 지갑에서 1,000원 짜리 한 장을 빼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목사님 보기에 부끄러웠던지 손 안에 구겨서 꽉 쥐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인도하던 목사님이 찬송가50장을 부르자고 하더랍니다. 그 찬송가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사랑하고 의지하며 주만 따라 가리라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
갑자기 이 목사님의 얼굴이 너무나 붉어졌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목사가 이런 짓을 하다니... 그것도 어려운 개척교회를 위해서 사용한다고 하는데...’
목사님은 자신이 비록 목사이지만, 믿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펑펑 울면서 다시 지갑에 있는 돈 전부를 드리고 나왔다고 합니다.
감사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내 은혜의 크기입니다. 감사도 주님의 은혜를 놓치지 마시기를, 아니 주님의 은혜를 꼭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감사의 절기를 마련하신 것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감사한 만큼 은혜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3. 또한 고난도 감사의 기회로 삼으면, 은혜의 기회가 됩니다.
창녀였던 이 여인의 삶을 다시 조명해 봅니다. 이 여인은 참으로 비참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그 중심에 감사로 가득 채웁니다. 그랬더니 그 삶의 고난이 그녀를 다시 세우고, 은혜의 선포자로 만드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사의 제목이 없습니까? 아니 오히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지내온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찾을 수 없다면,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한 교회가 건축을 하다가 재정적으로 너무나 어려움을 겪어 건축이 멈추게 되었습니다.그 교회의 담임목사님 동기 목사님들이 와서 격려해주며 기도해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본당이 공사하다가 멈추어버려 횡한 모습을 보고, 다들 말문이 막혔습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이 잠시 숨을 고르시더니 대표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람의 힘으로 도무지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밖에 없고, 그러니 이 어려움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니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 기도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교회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정말 기도대로, 감사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무사히 교회를 건축하게 된 것입니다.
4. 정리
내 삶을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합니다.
감사하면, 과거의 은혜가 현재가 됩니다. 그래서 감사하면 은혜를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현재의 삶의 평가도 바꿉니다.(시몬 vs 마리아)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감사를 기뻐하신 것은 향유가 좋아서가 아니라, 마리아가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좋으셨던 것입니다. ‘50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이 감사로 여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이 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참으로 기쁘셔서 이 여인의 한 일을 복음이 전하는 곳마다 선포하신 것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꺼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고통가운데서도 감사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게 감사하게 하시는 것은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이 이런 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기도와 감사는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내 삶에 묶는 힘이 있습니다. "먼저" 감사하고 보십시오. 구원하시고 내 안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감사하십시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 감사의 상황으로 바뀌어집니다. "마지막으로" 감사하십시오. 은혜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힘, 더 큰 은혜를 누리는 힘이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