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0 물날 날씨: 아침나절에는 찬바람이 불고 가는 비가 오더니 낮에는 바람만 분다. 겉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다녀야 한다. 춥다.
아침열기(시와 노래, 말놀이, 책읽어주기)-순돌이 데리고 뒷산-좋아하는 수 발표하기-글쓰기-점심-청소-풍물-마침회-양재천 따라 걸어가기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아침부터 바람이 차다.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이 흐리다.
아이들과 바깥 놀이하기 힘들게 보인다.
가자가자 감나무 말놀이를 이제 아주 척척 읊고
시와 노래를 크게 잘 따라 말하는 아이들과 즐거운 아침을 열었다.
노래 씨디를 틀고 줄곧 따라 말하고 우리끼리 해보는데
승민이가 노래인 줄 알고 틀지 말라고 선생쪽으로 다가오다
음악이 아닌 아이들 목소리만 나오니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간다.
어제 우리 말글 연수 때 볍씨학교 선생이 말놀이때 춤 동작을 만들며 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 푸른샘도 한 번 해보자고 하니
노래말에 맞는 동작을 금세 만들어낸다.
줄곧 함께 부르고 동작을 익혀서 형들에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은데
부끄러운 우리 푸른샘들이 할 수 있을까.
아침열기 마치고 날씨를 보니 바람이 차고 비가 금세 내릴 것 같다.
“애들아 바깥 날씨를 보니 오늘은 뒷산을 가기 힘들 것 같아. 선생님은 안 갔으면 좋겠는데.”
“안돼요. 가요.”
“바람도 불고 추운데...”
“안 추워요. 옷 입고 가면 돼요.”
“정말 가야겠니?”
“네.”
“그럼 뒷산에서 오래 놀 수는 없는 날씨니 순돌이를 데리고 얼른 갔다가 오는 건 어떠니?”
“좋아요.”
순돌이를 데리고 간다는 말에 아이들은 그냥 신이 났다.
“옷 단단히 입고 모자 쓰고 가요.”
“네.”
신발을 신는데 앗 가는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비가 안 오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지만 바람이 차다.
다시 한 번, “애들아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은데 꼭 가야겠어. 안 가면 안 될까?”
“괜찮아요. 가요.”
아이들 표정이 단호하다.
“그럼 어서 갔다 오자. 순돌이 데리고 올게 기다려요.”
승민이가 순돌이 줄을 잡고 신이 나서 뒷산을 올라가고 아이들도 함께 줄을 잡는다.
순돌이가 오줌 누고 똥을 누도록 뒤에서 잘 따라가는데
순돌이가 오줌 누고 똥을 눌 때마다 한마디씩 건넨다.
“순돌이는 오줌을 진짜 많이 싸.” “자기 땅 표시하는 거래.”
뒷산 들머리에 들어서는데 가는 비가 안경에 떨어져서 하늘을 보니 금세 쏟아질듯 싶다.
“애들아 비가 곧 올 것 같아. 그만 가고 돌아가자.”
“안 돼요. 더 올라가요.”
“비 맞으면 큰 일 나요. 감기 걸리고 아파서 더 놀 수가 없어요. 그래도 좋아요.”
“네.”
역시 아이들에게는 앞날보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당장이 가장 소중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선생 마음만 바쁘고 녀석들은 느긋하게 순돌이와 올라갈 생각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 조금만 더 가자.”
조금 올라가다 다시 “애들아 선생님은 불안해. 비가 올 것 같아.”
“안 돼요. 더 가요.”
“그럼 남태령 다락집까지만 가자. 이건 선생님도 양보 못해요.
지난해 여름에 형들도 태풍 때문에
덕적도로 자연속학교를 가지 못하고 주문진으로 짧게 갔어요.
날씨를 잘 살펴야 안전할 수 있어요.”
자꾸 날씨 타령하는 선생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미안한지 마지못해 그러자 한다.
다행히 가는 비가 거의 내리지는 않는다.
남태령 다락집 밑 층계 앞에서 이제 돌아가자 하니 바로 들려오는 한마디,
“남태령 다락집은 저기잖아요. 층계를 올라가야죠. 저기까지 가야지 다락집이에요.”
정확한 아이들에게 다른 말이 필요없다.
“어서 가자. 와 이제 다 왔다. 봐 저쪽 하늘 구름이 까많잖아. 곧 이리로 올 것 같아. 빨리 내려가자.”
앗 그런데 우리 승민이가 화가 났다.
내려가자는 말에 이제야 되돌아갈 생각에 얼굴이 굳어지더니
선생 옷깃을 잡고 가기 싫다는 뜻을 전한다.
가는 비가 비처럼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제 조금 내리는 것 같아 아이들에게는 먼저 내려가라고 하고
승민이에게 이야기를 다시 했다.
“승민아 미안한데 본디 뒷산까지 가기로 했는데 날씨가 춥고 비가 와서 여기까지만 가고
다음에 더 가기로 했어요. 이제 내려가야 되요. 순돌이 데리고 내려가요.”
선생 옷을 잡은 힘이 승민이 기분을 말한다.
활동보조 선생님 옷과 행동수정관찰가 선생님 옷도 다시 잡는다.
“승민아 순돌이 데리고 가야지. 다음에 다시 오자. 미안해. 순돌이 기다리잖아.”
다행히 순돌이 데리고 가자는 소리에 마음을 돌려주었다.
순돌이 목줄을 잡고 함께 내려가면서
바람 안 불고 해가 나오면 다시 오자고 줄곧 말하는데 기분이 풀린 얼굴이다.
날씨 때문에 흐름이 조금 바뀌었지만
날씨가 허락하는 데까지 갔다 온 셈이라 학교로 돌아오고 나서는 아이들도 더는 아무 말도 않는다.
모두 순돌이 덕분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벌써 다른 놀이와 지금 하는 것에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괜히 선생 마음만 바뻤다.
그렇지만 계획되어 있는 공부나 흐름이라도 자연과 날씨에 따라 바뀌는 게 우리 삶 아니던가.
그럴 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알맞은 활동을 그려내는 몫은 선생이 해야 할 아주 큰 몫이다.
아이들 몸이 튼튼해야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더 날씨를 살피고 아이들 호흡을 살린다.
그러나 아무리 살피고 조심해도 바깥 교육 활동 때 아프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그래서 ‘사고는 순간이다‘를 아이들과 늘 말하며 안전을 챙기도록 돕고
선생들이 살피고 살피지만 그래도 아차 하는 일은 생길 수 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애쓰고 안전을 챙길 수 있는 방법들을 짜임새로 미리 찾고 날마다 살핀다.
다행히 아이들과 선생들이 힘을 합쳐 잘 살피고 있지만 다시 하나 둘 확인할 때다.
물론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충분하게 해낼 수 있는 교육 활동을 줄이거나 마음이 위축될 필요는 없다.
다만 더 잘 살피고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다치기도 하고 아픈 뒤 훌쩍 자라는 게 사람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프지도 말고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선생과 부모 마음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부모와 선생 뜻대로 안전하게만 노는 이들이겠는가.
오늗도 뛰고 달리고 위험한 걸 도전하고 탐험하고 순간마다 온 힘을 다하는 걸.
첫댓글 날씨와 아이들 건강을 세심히 챙기시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오롯히 느껴집니다. 바깥활동이 많으니 선생님과 아이들 몸 잘 돌봐야 겠습니다. 근데 지빈이가 선생님이 톱질하다 손을 다치셨다는데 괜찮으신지요?
맞아요 쌤 ~ 마음 위축될 필요없이 전력으로 도전하고 온 힘을 다해 놀다보면 그 좋은 기운이 아이들에게 더욱 좋은 방어벽으로 자라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