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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03
소변을 식수로 바꾸는 우주복
▲ /그래픽=유재일
소변을 식수로 바꿔주는 우주복이 나왔어요. 공상과학 영화 '듄(Dune)'에는 사람 몸에서 나오는 수분을 깨끗한 물로 바꿔주는 '스틸 슈트(still suit)'가 등장해요. 영화는 미국 작가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이 원작이에요. 이 슈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소변을 정화해 식수로 제공하는 우주복을 개발했대요. 이 우주복은 어떤 원리로 소변을 우주인이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꾸는 걸까요?
우주비행사와 기저귀
우주에서는 산소만큼 우주인들이 마실 물이 귀해요. 지구와 달리 물을 구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우주에서 물을 얻기 위한 기술들을 개발해 왔어요. 그리고 이미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선 '생명 유지 시스템'을 통해 우주비행사들의 소변과 땀, 호흡 과정에서 배출되는 수분까지 재활용해 깨끗한 물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하지만 우주비행사들이 입는 우주복에는 이 같은 장치가 없어요. 우주선 밖으로 나와 우주 공간을 탐사하려면 우주복 내 음료수 가방에 물을 따로 챙겨야 해요. 여기에 저장할 수 있는 물은 1L에 불과해요. 그래서 우주 공간 이동 중 물 부족으로 자칫 탈수 현상이 생기면 혼수상태에 빠질 수도 있어요. 또 오랜 시간 수분을 보충하는 게 어려워 중요한 탐사를 하다가도 중간에 다시 우주선으로 돌아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죠.
심지어 우주 공간에서 작업할 때는 화장실을 따로 갈 수 없어요. 그래서 최대 흡수성 의복(MAG)이라고 불리는 우주비행사 전용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 해요. 문제는 우주비행사들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하루 평균 6시간 26분 정도 우주 공간을 탐사하는데, 자신의 대소변이 묻은 대형 기저귀를 계속 차고 있어야 하다 보니 매우 불편하고 비위생적이라는 거죠.
우주비행사들에 따르면 MAG가 새는 건 흔한 일이라고 해요. 그러다 보니 요로 감염에 걸려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우주 유영 전에는 식사량을 줄이거나 배변량이 적은 음식을 섭취하기도 한대요. 우주비행사들은 기저귀 착용을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생각하고 불편함을 참아왔다고 해요.
우주비행사들의 이런 심리적 불편과 위생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미국 코넬대 웨일 의대 연구팀이 소변을 식수로 바꿔주는 첨단 우주복 시제품을 개발했어요. 우주선의 생명 유지 시스템과 같은 기술을 우주복에도 적용한 거예요. 이 우주복을 입으면 우주선 밖에서 활동할 때 수분 섭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대요. 또 기저귀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건강도 함께 챙길 수 있다고 해요.
정화 장치 달린 우주복
우주복 등 쪽에 백팩처럼 네모난 상자가 달려 있어요. 여기 안에 들어 있는 정화 장치가 소변을 물로 바꾸는 역할을 해요. 정화 장치 등으로 인해 늘어나는 우주복 무게는 8kg 정도라고 합니다.
정화 장치는 우주복 속옷 안의 실리콘 컵과 연결돼 있어요. 우주비행사가 소변을 보면 실리콘 컵에 소변이 모이고, 우주복 등에 달린 정화 장치가 자동으로 켜져요. 컵에 모인 소변은 진공 펌프 역할을 하는 작은 호스를 따라 정화 장치의 여과기로 흘러가요. 이때 이동 과정에서 소변은 항균성 직물 층을 통과하며 세균이나 불순물이 제거돼요.
이렇게 정화 장치의 여과기에 도착한 소변은 어떤 원리를 통해 식수로 바뀌게 되는 걸까요? 정답은 삼투 현상과 역삼투 현상입니다.
삼투 현상은 반투과성 막을 경계로 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물이 이동하는 현상을 말해요. 역삼투 현상은 삼투 현상과 반대로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빠져나오는 걸 말해요. 역삼투 현상이 일어나려면 농도가 높은 곳에 삼투압보다 강한 압력이 주어져야 해요.
여과기로 들어온 소변은 반투과성 막을 경계로 유도 용액(소변보다 농도가 높음)을 만나게 돼요. 그러면 삼투 현상으로 인해 소변 속 물이 반투과성 막을 거쳐 유도 용액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런 다음 물이 들어 있는 유도 용액에 삼투압보다 강한 압력을 가해요. 그러면 역삼투 현상으로 인해 유도 용액 속 물만 반투과성 막을 통과하게 되고 식수가 됩니다. 이 우주복은 소변 500㎖를 수집하고 정화하는 데 불과 5분밖에 걸리지 않는대요.
이렇게 소변을 식수로 바꿔주는 우주복 시제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프런티어 인 스페이스 테크놀로지'에 지난 7월 공개됐어요. 연구팀은 수집된 소변의 최소 75%를 물로 바꾸는 것이 목표이며, 자원봉사자 100명을 모집해 이 우주복의 기능성과 착용감 등을 시험할 계획이라고 해요.
연구팀은 이 우주복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계획'에 투입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달 탐사에 나서는 우주비행사들은 최소 10시간에서 최대 24시간까지 우주 유영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그런 만큼 물을 1L밖에 채우지 못하는 기존 우주복은 적합하지 않아요.
연구팀은 극미 중력 상태에서의 실험도 준비하고 있어요. 극미 중력은 중력이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해요. 소변을 식수로 바꾸는 우주복이 사용되는 곳이 바로 국제우주정거장이나 달처럼 극미 중력 상태의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이 신형 우주복이 실제로 활용되면 우주비행사들이 우주를 장시간 탐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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