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다 나약해진다
입원을 앞둔 주말. 큰 수술도 아닌데 괜스레 마음이 심란하다. 평일엔 일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주말이 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겨우 이틀 집을 비우는데도 아이들이 혼자서 챙겨 먹을 수 있도록 간편 조리식품들을 사다 놓고, 냉장고에 버려야 할 반찬들을 비웠다. 그동안 신고 배출하기 귀찮아 미뤄뒀던 망가진 물건들을 경비실에 신고하고 싹 버리고, 지난 교재들이 쌓여있던 박스도 정리했다. 그동안 미루고 묵혔던 일들을 계속 치우고 비워내며 정신을 딴 데로 돌리려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복잡했다.
6년 전 유방과 갑상선에 혹이 있는 걸 발견했다.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종합병원으로 옮겼고 이후 정기적으로 추적관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6개월 전 검진에서 유방의 혹이 많이 자랐다고 해서 3개월 뒤에 재검을 받으라고 했다. 그런데 예약 센터에서는 예약이 다 찼다며 5개월 뒤에나 예약을 잡아주었다. 검진 결과 이번에도 혹이 더 자랐다며 이제는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얼마 전 교통사고가 나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작스럽게 수술까지 하게 되니 몸과 마음이 훅 꺼지는 기분이었다.
입원 당일, 오전에 사무실에 갔다 와서 남편과 점심을 먹고 여유 있게 병원으로 나섰다. 입원 수속을 하고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병실을 배정받았다. 남편은 병실에 잠시 앉아 있다가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집으로 가고 혼자 덩그러니 앉았다. 이 시간을 대비해 집에서 <이토록 평범한 미래> 책을 들고 왔다. 침대 커튼을 치고 이어폰까지 끼고 혼자 조용히 책을 읽었다. 머릿속에 안 들어올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잘 읽혔다. 소설 속에 빠져 현재의 내 상황에만 너무 매몰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 5시 50분쯤 간호사가 나를 깨웠다. 수술 전 준비 사항에 맞춰 준비를 하고 6시부터 수액을 맞으며 대기했다. 8시가 넘어서 한 젊은 의사가 오더니 언제 수술을 할지 모르니 대기하라고 했다. “저 첫 타임 수술인데요?”라고 말하니 그 의사는 당황하며 알아보겠다며 나갔다. 나는 병원 내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내 침대차가 도착했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 앞 대기실에 가자 드디어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널찍한 수술실 한쪽에 6~7명의 간호사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엥? 이상하다. 의사들은 왜 하나도 없을까? 간단한 수술이라 그런가? 그래도 수술 준비를 간호사들만 하는 게 맞나?’하는 궁금증이 들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저 담당의가 들어왔을 때는 빨리 진정제를 넣어달라고 말했을 뿐.
“일어나 보세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에 나는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며 “수술 잘 됐나요?”라고 물었다. 잘 됐다는 의사 선생님의 대답을 들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후 어떻게 침대차에 옮겨졌는지, 대기실에서 남편을 만난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병실로 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암튼 병실로 와서 다시 한숨 잠을 자고 일어나 퇴원 수속을 밟았다.
내가 수술한다고 했을 때 지인이 요즘 전공의 파업으로 난린데 수술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종합병원에 오면서도 별 어려움을 몰랐다. 종합병원이야 원래 오래 기다리기 마련이고 예약제니까. 그런데 막상 내가 수술을 받고 수술실 상황을 보니 전공의 파업의 여파를 느낄 수 있었다. 간단한 수술인데도 이러한데 큰 병을 앓거나 큰 수술을 앞둔 이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이런 어려운 시국에 병원에 남아 일해주시는 의사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특히 나이 들면 아프다. 아프면 나약해진다. 의존하고 싶어진다. 그런 환자들을 모른 척하지 말아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