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IT업계 新풍속도…"개발자들이 몰려와요"
라온시큐어 역대급 채용 결과, 티맥스도 1000명 넘어
빅테크 거품·연봉 경쟁 사라져, 기술력 있는 회사 주목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3일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업체 부스 및 채용공고 등을 살펴보고 있다.
들어가면 고생이라는 중소·중견 정보기술(IT)기업에 개발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예년까지만 해도 대기업·플랫폼사로 속수무책 빠져나가는 직원들 뒷모습을 하릴없이 바라보는 게 중소·중견 IT기업의 처지였다면, 올해는 다르다. 지난 3월부터 이달까지 상반기 채용을 진행한 중소·중견 IT기업들은 '역대급' 결과를 공개하며, 달라진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역대급 채용 결과…작년이랑 다르네?
20일 IT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소·중견 IT기업 채용에 신입·경력 개발자들 지원이 대폭 늘었다.
가장 먼저 팡파르를 터트린 업체는 라온시큐어다. 라온시큐어가 지난 3월 진행한 신입사원 공개 채용에는 무려 20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최종 경쟁률 102대1. 역대급 기록이다. 이런 라온시큐어의 채용 기록은 타 업계서도 "그 회사에 뭐가 있길래 그렇게 지원자가 많냐"며 호기심의 대상이 됐다.
호실적(?)을 기록한 회사는 라온시큐어 뿐만 아니다. 티맥스, 안랩, 웹케시 등도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티맥스 그룹 경력직 공채에는 약 12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특히 슈퍼앱 기반의 배달공제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핀테크 계열사 티맥스핀테크에는 300명이 넘는 IT연구원이 몰렸다. 티맥스 관계자는 "지난 4월은 정기 공채 시즌이 아닌 '수시 공채'로 슈퍼앱 개발, 확산을 주도할 인력을 추가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수시 공채임에도 예년의 정기 공채보다 지원자가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안랩도 최근 진행한 '상반기 신입·5년 이하 경력자 대상 공개채용'에서 모집정원을 크게 뛰어넘는 지원자 수를 기록하며 서류 전형을 마감했다.
웹케시도 비슷한 상황이다. 정확한 숫자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지난달 진행한 신입사원 공개 채용은 예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고 이 회사 측은 귀띔했다. 웹케시 관계자는 "올해 중견IT업계 채용 시장은 예년에 비해 좋았다"면서 "지난해엔 대기업으로 이직률이 높았는데, 올해는 그런 양상이 많이 줄어 상황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경쟁적으로 높여주던 연봉…거품 걷히고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 주목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소·중견 IT기업에선 '사람이 없다'며 곡 소리가 났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빅테크 기업들이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신입·경력 할 것 없이 개발자 지원 1순위는 빅테크였다. 이 가운데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 엔씨소프트 등 이름 꽤 있는 회사들은 '개발자 몸값 인상' 경쟁을 시작했다. 파격적인 연봉 인상은 기본이고, 스톡옵션, 자사주 지급, 복지 혜택 확대까지 제시했다. 실제 2021년 네이버 본사 임직원 1인당 평균 보수는 1억2915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26.0% 불었다. 카카오 본사 임직원 1인당 평균 보수도 1억7200만원(스톡옵션 제외 시 8900만원)으로 전년(1억800만원)에 비해 59.3% 뛰었다.
당연히 개발자들 안중에 중소·중견 IT기업은 없었다. 잘 다니던 직원들이 하루 아침에 '네카오로 간다'는 통보를 하지 않는 것에 안도했다. 자금력에 따라 인재 부익부 빈익빈이 현상은 가속했다.
그러다 분위기가 갑자기 반전됐다. 먼저 글로벌에서 감지됐다. 지난해 경기 침체, 투자 위축이 감원으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빅테크 인재 시장의 열기는 사그라들다 못해 얼어붙었다. 트위터, 메타, 아마존 등 글로벌 IT 대기업들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는 고스란히 국내 대기업·플랫폼으로 전이됐다. 고객사들이 IT예산을 대폭 축소하면서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개발자를 내보내거나 채용을 동결했다. 당장 네이버는 신규 채용에 보수적인 기조로 돌아섰다. 전체 채용 규모도 두자릿수로 줄였고, 계열사마다 필요한 인력을 중심으로 채용키로 했다. 심지어 카카오는 진행하던 채용을 취소했다. 카카오는 지난 2월 경력 개발자 수시 채용 지원자들에게 일괄적으로 탈락 처리를 통보했다. 일부 지원자는 서류 전형과 코딩테스트를 통과하고, 면접 전형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한 가운데 개발자들은 살 길을 찾아야 했고, 이들의 시선은 다시 기술력 있는 중소·중견 IT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덕분에 중소·중견 IT기업의 인재 이탈은 소강상태고, 오히려 지원자가 몰리고 있는 양상이다. IT업계 관계자는 "대기업·플랫폼에서 경쟁적으로 개발자 연봉을 올려주면서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만 집중됐었다"면서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이 같은 거품이 걷히면서, 취준생들이 진짜 기술력 있는 회사를 주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중소·중견 IT기업이 인재 호황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중견IT기업으로 인재 이탈에 전전 긍긍하는 중소IT기업도 많다. 한 중소IT업체 관계자는 "여전히 중소기업에선 중견기업으로 이직하려는 직원들이 많다"면서 "IT 전공자도 지원을 하지 않아서, 비전공자를 데려다 교육시키면서 업무를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