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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유랑과 여행의 서사
전종호(시인)
1. ‘시란 무엇인가?’, ‘어떻게 시를 써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피해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시인의 사명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고, ‘어떻게 시를 써야 하는가?’ 하는 것은 문학성에 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어떤 시인이나 평론가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시는 아름답고 재미있고, 무엇보다 감동적인 글이어야 한다. 읽고 나서 얻을 수 있는 감동과 의미, 풍자 같은 교훈이 있어야 한다. 이 감동과 재미, 아름다움과 교훈은 시를 읽는 독자뿐만 아니라 시인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대략 동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2. 누가 시를 뭐라 뭐라 말해도 나는 시를 삶의 기록이고 표현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시의 전제는 삶이다. 삶이 없이 시는 없다. 삶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 시 한 줄을 적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시를 써서는 안 된다. 삶이 없는 시는 참된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삶을 꾸며 아름다운 말로 지어낸 말(巧言)을 시라고 할 수 없다. 그럼 제대로 산다, 살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제대로 산다, 살았다는 말이 반드시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들이 보기에 성공했다, 안정적으로 살았다, 출세했다, 존경스럽다고 말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제대로 살았다는 말은 쓰러지고 실패했더라도 주어진 현실의 삶을 회피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냈다는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시는, 문학은 제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인에게 있어서 자기가 쓴 시 한 편, 한 편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자서전인 셈이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서전을 꾸며 쓸 수는 있다. 몸의 체험 없이 책상에 앉아 머리로만 시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남들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이나 시의 모양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남이 보고 평가하기에 앞서 자기가 쓴 글이나 시는 무엇보다도 글쓴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이 살면서 몸부림친 모습과 스스로 살아내 이루려던 이상과 꿈, 때로는 그 실패의 쓰라림이 반영되고 표현된 것이어야 한다. 시인 자신의 의미와 만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3. 잠 못 이루는 밤의 헤세 :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썼으니 시를 쓰고 산 세월이 오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에 매달린 것은 인생의 쓴맛을 알고 길 위에 나를 세우고 난 이후부터의 일인 것 같다. 한동안 수면 유도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또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지만 심각한 불안과 우울증과 수면 장애로 석 달간 병가를 낸 적도 있었다. 잠의 선수였던 내가 정말 자고 싶은데 거짓말같이 잠이 안 와서 매일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새웠다. 정신과 치료도, 처방받은 수면제도 듣지 않았다. 수십 권 분량의 일본 대하소설 「대망」을 그때 읽었다. 「삼국지」도 여러 번 읽었고,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지」도 읽었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잠은 오지 않고 불안과 우울은 깊어갔다. 그때 정말 뜬금없이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읽어주셨던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라는 시가 떠올랐다. 당시 잠들 수 없었던 시절, 낮이나 밤을 가리지 않고 헤세를 읽었다. 동네 도서관에 있는 헤세의 작품은 다 읽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의 귀절로 만인에게 기억되는 「데미안」이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라, 페르소나가 아니라 자신의 트라우마나 콤플렉스 같은 그림자를 깨고 보듬고 싸매는 삶의 원리를 다루는 것이라는 것도, 그 배경에 융 심리학의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자아가 있다는 것도 그때 깊이 알았다.
「유리알 유희」를 읽으면서 우리가 아는 감각과 실용적인 세계 너머 지적 유희의 세계가 있고, 시도, 교육도 그 너머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던 나에게 많은 위안과 새로운 길을 제시해준 것은 「싯다르타」였다. 출가와 고행을 거쳐 세상을 두루 체험하고 돌아온 싯다르타는 뱃사공 바주데바의 조수가 된다. 그는 강물로부터 배우기로, 강물이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작정한다.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는 걸 단번에 깨닫는다. “강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강으로부터 쉴 새 없이 배웠다. 강으로부터 경청하는 법, 고요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영혼, 활짝 열린 영혼으로 격정도 소원도 판단도 견해도 없이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배웠다.”고 썼다. 총명과 오만을 내려놓고 더 따뜻하고 호기심과 더 많은 관심을 지닌 눈길로 세상과 사람들을 보게 된다. 강을 건너는 여행자들을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충동과 욕망에 의해서 지배받는 민초들의 삶 자체를 이해하게 된다. 싯다르타에게 이제 뱃사공은 단순한 직업이나 교통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세계를 보는 방편이 된다. 강의 이쪽(차안)과 저쪽(피안), 강의 의미를 사유하게 되는 것이다. 꼭 헤세를 읽어서였겠느먀만, 나는 우울과 불면증에서 벗어났다. 그 후로 나는 탐비眈美의 문학이 아니라 구도求道의 문학을 하고 싶었습니다. 교사로서도 ‘적응하는(사회화) 교육’이 아니라 ‘생각하는(개성화) 교육’을 하고 싶었다. 어쭙잖은 시를 쓰고 있었지만, 자연과 사람의 일을 통해 구도자적인 삶의 원리를 찾아가고 싶었다. 「비통한 자의 정치학」의 파카 파머(Parker J. Palmer)의 말처럼 ‘마음이 부서져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부서져 열리는’ 체험을 하고 싶었다. 작년 1월에 랑탕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을 때 헤르만 헤세의 시집 한 권만 가지고 갔다. 세상에서 참으로 멀리 떨어진 히말라야 산장의 난롯가에서 원래 온 곳으로 돌아가기를 발원하며 하루종일 옴마니반메훔 진언을 읊조리는 팔순의 노파 옆에 앉아 헤세의 시를 읽었다. 그때의 잠은 달콤했고 히말라야의 하늘은 여여如如했으나, 불과 1년 반 전의 히말라야는 다시 꿀 수 없는 꿈 같은 아득한 세월이 되었다. (※그래도 교육이 희망이다)
4. 삶의 변곡점 히말라야 : 히말라야를 갔다 와서 첫 시집을 냈다. 첫 시집에는 그 흔한 해설 하나 붙이지 않고 ‘길 위의 인생, 길 위의 학교’라는 자서를 달았다.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우리 동네 심학산과 북한산 둘레길에서 시작하여, 휴전선 따라 임진강 평화누리길, 감자바우길, 외씨버선길, 지리산 숲길, 울릉도 옛길, 제주 올레를 거쳐 알프스와 히말라야 설산의 한 모퉁이를 걸었다. 백두산 야생화 꽃밭은 지상 최고의 화원이었고 끝없이 흘러가는 히말라야의 굽은 길은 천상의 출입구였다. 길은 무엇이고, 왜 길을 걷는 것인가. 길은 삶의 통로이다. 길의 끝에는 사람이 있고 마을이 있다. 삶은 길과 길로 연결되어 있고, 길을 통하여 사람은 죽음으로 빠져나간다. 길은 현실이고 내세이기도 하다. 길은 산과 산 사이에 나 있고, 강가를 따라, 산중에, 그리고 산상으로 열려 있다. 길은 자연이기도 하고 자연의 벗이기도 하며 초월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은 등짐을 지고 길을 걸어 고단한 삶을 이어 갔고, 바랑을 맨 늙은 수행자는 이 길을 도(道) 삼아 걸어갔으며, 세상을 바꾸고자 한 사람들도, 세상을 지키고자 한 사람도 이 길에서 만났다 스러져갔다. 그래서 길을 걷는 것은 수행(修行)이다. 히말라야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 코스를 걸었다. 생활의 안락과 편의를 버리고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문명의 속도, 이익, 효율성, 물질, 발전 따위의 현대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등지고 걸을 것이다.
삶의 열정과 기쁨을 뒤로 한 채, 회한을 포함하여 살아 온 자신의 길과, 세계에 대한 성찰이 그를 따를 것이다. 얻을 것이 아니라 버릴 것이 무엇인지, 접촉과 사교의 편안함과 거리를 두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지나온 삶에 대한 질문을 하며, 앞에 남은 길이 얼마인가를 따지기 전에 지나온 길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하게 될 것이다. 오직 지금 걷는 한걸음에 의미를 두며, 발걸음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정신의 지배를 받으며 오롯이 길을 가지 않겠는가. 길을 걸으면서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세상을 버리고 산에 둥지를 틀었던 옛사람들과 그들의 꿈과 또한 절망을 생각한다. 속세를 버리고 죽림을 꿈꾸었던 도인들의 이상(異相)을 그려보고, 이루지 못할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산으로 숨어들었던 신분 질서 속의 억울한 연인들의 피 끓는 사랑을 상상한다. 평등 세상을 꿈꾸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던 동학도와 이들을 평정하고자 했던 지배자들의 발소리를 듣는다.
히말라야의 하늘은 여여(如如)하였고 산중의 민중은 순박하였으나, 고단한 힌두의 삶에서 그들과 함께 간구하였다. 길을 가다가 절과 교회를 만나고 시장을 만난다. 우리의 밥과 구원을 만나는 것이다. 밥은 육신의 양식이고 구원은 영혼의 지향이다. 등짐장수의 수고와 한을 만나고 들린 절집에서 원효, 경허 스님을 만난다. 길 없는 길, 없는 길을 만들어 간 분들이다. 티끌 세상의 속인으로서 마음에 번잡함이 가득해 나는 호젓한 산속 숲길에서도 무심한 나그네가 되지 못한다. 아둔한 자의 노력은 미련으로 쌓이고 미련은 산중 첩첩 한숨으로 남지만, 그래도 살아 있기 때문에 들길을 헤치고 산을 오르고 숲길을 걷는다. 크게 깨닫지 못할 줄 알면서 깨달음을 구하고 이미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앞서 간 사람들의 삶과, 내 살아갈 길과 걸음의 의미를 물으며 나는 지상의 길에 한 걸음을 보탠다.”( ※ 시집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서문)
5. 히말라야 팡세 : 다시 히말라야에 왔다. 오늘이 12월 31일. 와이파이가 터지니 휴대전화가 바쁘다. 새해 인사 문자. 깊은 산까지 들어왔으니 올해는 문자 같은 건 주고받지 말자 결심했는데, 할 수 없이 불가피한 곳에만 답을 보낸다. “세상 끝에 와 있어. 새해 히말라야의 힘찬 기운을 너에게 보낼게” 새해 아침을 히말라야 산속에서 맞는다. 왜 나는 내 나라와 가족을 멀리 두고 새해 벽두부터 이 깊은 산속을 헤매고 있는가?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고 했는데, 편안한 믿음을 뒤집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것인가? 모르겠다. 다만 그의 말대로 지금 내게 닥친 산속에서의 현실을 부정하고 평소의 익숙한 신념체계를 고집한다면 이 여행은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끝없이 몸을 낮추고 저 산을 올라야 한다. 바람을 맞고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내 속의 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려고 떠나는 것”이다. 아침마다 7시 30분에 출근하여 북한산을 넘어 떠오르는 해를 내 사무실에서 맞았다. 나의 고민과 수고로 아이들과 교사들의 삶을 조금은 개선하리라 믿고, 남보다 먼저 출근하여 학교의 하루를 준비하며 살았다. 썸바디(somebody)의 의식이었다. 지금부터는 산 앞에 선 단독자, 아무것도 아닌 자(nobody)로서 오직 산을 보며 부실하고 연약한 몸을 끌고 높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나의 의도와 계획을 따라 온 걸음이었지만, 이후의 길에서 벌어지는 일은 알 수 없다. 스스로 통제할 수도 없다. 어떤 영화에서 들은 것처럼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산에 맡기고 길을 따라갈 뿐이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숙소는 여기가 마지막이다. 샤워라도 해야겠다. 아, 뜨거운 물 한줄기에 쏟아지는 은총과 행복이라니! ( ※ 히말라야 팡세)
6. 길에서 얻은 시편들
가. 울릉도(※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울릉도
독도를 어미 삼아
일망무제一望無際
바다에 울창한 숲섬 하나 떠 있다
더러는 세상에 쫒겨 숨어들고
더러는 세상을 버리고
무릉武陵을 찾아 나선 자들이 섞여
중앙의 쇄환刷還과 수토搜討를 딛고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변방의 섬
더 이상 목숨을 부지할 수 없어
육지를 버리고 해류를 따라 흘러와
엄동의 시절 나리꽃 풀뿌리를 씹으며
살림과 지경을 넓혀 나라의 동쪽 경계가 되었다
살아남는 일이 겁났으리라
억센 땅과 풍파와 간고艱苦로 고단했으리라
권력과 외세에 맞서 자식을 지켜 내는 일은
무엇보다도 무겁고 무거운 일이었으리라
송곳 하나 꽂기 어려운 한 뼘 땅에서
한때 난민이었던 사람들이 이주민을 보듬고
이름 같은 꽃이 섬에 와 다른 꽃이 되었듯이
한바다 혹독한 바람을 눕히며 땅의 지문을 바꾸고
동백꽃 후박나무 어울려 가지가지 새들을 불러
마침내 사람과 함께 노래하는 울릉 천국이 되었다
석포 옛길을 걸으며
내수전에서 석포까지
바다를 끼고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박새 노래 들으며 평탄한 길을 지나고
파도 소리 들으며 오르막길을 오르면
곧 이 꽃 저 꽃 모여 다시 평탄한 길이다
식물이 오랜 세월 천이遷移를 하듯
사람도 길도 변하고 늙고 굽는 법이니
생선이나 나무 등짐을 이고 지고
뼈 빠지게 걷던 길이 치유의 길이 되었다
길을 걸으면 울컥 눈물도 쏟아지리라
사월이면 정매화 계곡의 벚꽃들이 환하게
길 위의 당신을 환대해 줄 것이다
동백 군락지를 지날 때는
동백꽃이 당신의 아픈 소리에
주먹 눈물처럼 뚝뚝 꽃송이 채 떨며
함께 울어 줄 것이다
심중에 힘든 이야기 하나씩 꺼내 놓으면
동박새가 함께 사는 삶의 지혜를 보일 것이니
따로 또 함께 길을 걸으며
정들포에서 마을까지 일상의 짐을 지고 갔던
옛사람들의 고단한 마음을 상상하라
집으로 돌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독도에서
한바다 파도 고달픈 바위섬에서
일상을 바람에 매고 갈매기들이
서성이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지키려는 자들의 분주한 태극기 물결과
넘보는 자들의 선상 시위를 때때로 바라보면서
태극처럼 소용돌이치는 난바다에서
부질없이 국가의 경계는 무엇이며
섬을 실효 지배하는 우리는 아랑곳없는
무례한 인간들 깃발의 의미를 묻고 있다
내 할 수 있다면
울릉 동백 씨앗 몇 개 물고 와
따뜻한 곳에 키워 꽃을 피우고
해 뜨는 곳을 사모하는 사람들과
해 지는 곳에 헛꿈을 가진 사람들을
손수 키운 동백 숲 그늘 아래 한데 모아
보랏빛 해국海菊 무리무리 발아래 두고
인간의 흉내를 내어
푸짐한 호박 막걸리 한 상 차려 내고 싶다
바람에 흔들리는 뜨거운 섬에서
괭이갈매기들이 모여 앉아 혀를 차며
꺄르륵 꺄르륵 함께 웃고 있다
울릉도 옛길
지치고 외로운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는가
마침내 세상에 등 돌리고 싶은가
그대여, 여기 울릉도 옛길로 오시라
성난 사자처럼 덤벼드는
행남 바닷길을 걸으면
세상에 두려운 것이 파도뿐이겠느냐만
바다와 기꺼이 승부를 보는 자를 볼 것이다
행남 등댓길 잘 늙은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삶이란 얼마나 버겁고 먼 길인가 물어라
실바람에 흔들리는 메마른 솔가지 하나
고단한 당신의 등을 쓰다듬어 줄 것이다
늙은 소나무 숲길이 끝나는 자리에
살구꽃 한 그루 곱게 피어 연분홍빛
삶은 여전히 유혹적인 것임을
봄날의 한낮이 몸소 보여 줄 것이니
그늘진 동백숲길 지나
잘 생긴 소나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저동 옛길은 절로 잘 익은 노인처럼
살아갈 길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다
나. 제주도
남원 포구에서 ( ※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바다는 고요하였다
물은 맑아 투명하였고
쪽색 물빛은 숨을 죽이게 했다
바람은 불지 않았고
더불어 세상은 평화로웠다
낡은 고깃배 몇 척이 아침에 묶여
잔파도에 흔들릴 뿐
끝으로 밀려난 하늘은
먼 바다에 가서야 바다와 한 몸이 되었다
한낮의 바다는 치열하였다
포구는 삶과 죽음의 길목이 되어
아비는 헛된 꿈을 꾸지 않았다
새끼들의 밥과 공부가 된다면
기꺼이 바다에 나가
살아오거나 죽어서 돌아왔다
더러는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했거나
들고 나는 파도 너울 너울에
한숨과 눈물을 묻어 두었다
꽃을 사랑한다고
꽃 피고 지는 소리까지 들었으랴만
난바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는
바람과 파도의 숨결까지 들어야 했다
멀리 고깃배 집어등集魚燈의 불빛이 흔들린다
비로소 오늘 밤 바다의 어화漁火가 핀 것이다
바닷가 곰솔 숲에 숨어
아내는 집 나간 사내를 위해 울고
포구는 억새물결 따라 밤새 뒤척일 것이다
둔지봉에서
둔지봉에 가면 오름에 오르지 마라
여기는 죽은 자들의 땅이니
아랫자락 또는 산허리쯤
수천수만의 무덤 천지를 홀로 거닐며
어떻게 죽어서 여기에 누워 있는지
산담에 갇힌 당신에게 일일이 물으라
삶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등 붙이고 함께 눕는 일임을
먼저 산 자들이 알려줄 것이다
그럼에도 정말로 죽음이 궁금한 자는
여기 와서 다시
역사를 기억하는 억새에게 물으라
제 한 몸 던져 온전히 부서져야만
모진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不屈과
다랑쉬 오름 너머 저 넓은 성산포 바다
포효와 격동에 다다를 수 있음을
흔들리며 비로소 보여줄 것이니
문도지오름
굳이 높이 서지 않아도
들판이 낮으면 목을 뺄 필요가 없고
보이지 않는 걸 알려고
멀리 까치발 할 일은 더욱 없다
내려다보아 깎아 볼 일이 없고
우러르며 마음을 굽힐 일도 없다
낮아도 이만큼의 높이
멀어도 이 정도의 거리에 서서
원시의 수풀을 양쪽에 거느리고
말 몇 마리 품 안에 풀어 키우고 있으니
이만하면 한 생이 넉넉지 않은가
함부로 머리를 숙이지 않고
결코 마음을 상하지 않으며
간절하게 오래 바라볼 수 있다면
잘난 놈 못난 놈 함께 엎드려 사는
오름 밭에서
이 자리 하나면 한 생애가 충분치 않은가
바람이 어느 날(※임진강)
바람이 어느 날 나에게 말했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묻지 말고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딘지 살펴보라고
불어오는 바람을 움켜쥐고
나뭇가지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
햇살은 어떻게 잎사귀를 어루만지는지
살랑대는 잎들이 어떤 톤으로 속삭이는지
서로 살 비비며 술렁거리는 말이 무언지
들어보라고 바람이 말하였다네
가진 것이 무엇이고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지 말고
그게 당장 긴요한 건지
쓰잘데없는 일 무겁게 지고
한평생 헛걸음질 치고 산 건 아닌지
숲 속 태평한 새들에게 물어보라고
다시 바람이 불어 부탁하고 가네
다. 히말라야
히말라야를 꿈꾸며 ( ※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다
눈 덮인 산 넘어 길이 있는지
몇 갈래 길을 이은 마을에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몰라
갈급한 것을 모두 채우고 싶다
세상의 모든 길을 다 갈 수는 없다
길은 시작도 끝도 없다
시작과 끝은 발끝에 있고
발끝은 마음에서 비워지는 것이니
구름처럼 또한 갈 수 없는 길은 없다
길 가다 어쩌다 만날 기막힌 풍경 앞에
나를 부리고 싶다
사진으로는 장엄풍경莊嚴風景을 다 나타낼 수 없고
영상으로는 적막공허寂寞空虛 다 담을 수 없으니
내 옆에 가까이 당신을 세워 두고 싶다
넋 나갈 풍경 앞에
손바닥만 한 햇빛 한 줌 깔고 앉아
저만큼 비켜서서
화엄설산華嚴雪山을 당신과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굳이 세상에 등 돌릴 일이 또 무엇이랴
길은 시작도 끝도 없다
턱없는 히말라야
숨은 막히고 눈이 트이는 눈들의 잔칫집
오늘 설설설 바람 부는 고개를 넘는다
다가갈수록 산은 위대하고 한 생은 너무 가볍다
히말라야 3
- 순례의 길
아름다움을 찾아
여기저기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다 보면
숨 막힐 듯한 풍경에 넋을 잃기도 하지만
설령 눈에 들지 않는다 하여
세상에 위대하지 않은 산천이 어디 있으랴
아무리 황무한 사막이나
높고 추워 가혹한 고산지대일지라도
뭇 생명 새끼를 낳아 키우는 곳이니
생명이 살고 죽는 곳이라면 어디나
위대하지 않은 강산은 없다
맨땅 위 발 벗고 헐벗은 남루라 해도
비록 불편은 있어도
존귀하지 않은 삶이란 없다
거센 비바람 가난한 세파에 맞서
골주름 잔주름 자잘한 얼굴이라도
타오르는 저녁노을 앞에서 무심한 듯
환하게 웃고 있는 노인의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또 있으랴
행여 문명에서 멀리 있다고
비교하여 삶의 빛깔을 논하지 말라
아무리 고단한 인생이라도 저마다
반물빛 구성진 가락 하나씩은 있는 법이니
시간과 싸우며 보이는 풍경만을 찾지 말라
굽이치는 삶 깊은 물결 차분하게 들여다볼 일이다
히말라야 7
- 롯지
바람 가릴 지붕 아래
구획된 공간에
몸 눕힐 합판 침상 하나
덮을 두꺼운 이불 한 채
씻을 물 가까이 있다면
여우 바람처럼
스며드는 찬바람이나
얇은 널빤지 벽 사이
옆방의 피 끓는 청춘들
뜨거운 사랑의 노래쯤이야
성내지 않고 들어 주겠다
더 바랄 것 없는 가벼운 삶
지고 온 나의 짐이 너무 무겁다
히말라야 10
- 포터
자기 백은 목 앞에 걸고
내 짐을 등에 메고 걷는다
만만치 않은 짐을 메고
평지도 아니고 높은 산을 오르는
그와 함께 걷는 길이 마냥 편치 않다
우리나라에도 과거에 포터가 있었다
서울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손님의 짐을 먼저 들기 위하여
달음박질하던 지게꾼이 있었다
사실 농부였던 우리 아버지들이 모두
평생 무거운 짐을 지던 지게꾼이었다
지게 짐 덕분에 먹고 배운 자식들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노동량이나 수익으로 볼 때
고용해 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니
너무 미안한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등짐의 무게는 너무 버겁고
노동의 대가는 너무 가벼워
함께 걷는 일이 종일 불편하다
내 주는 돈이 비록 적으나
가족의 따뜻한 밥 한 끼 옷 한 벌이 된다면
더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을 내어 찌아 한 잔 사 주거나
장조림 하나에 소주 한 잔
소박한 저녁 술자리를 하면서
드디어 나는 마음의 빚을 덜기로 했다
히말라야 15
- 타다파니의 아침
눈을 뜨니 마차푸자레가 코앞이다
안나푸르나 사우스는 이미 기상했고
임출리와 마차푸차레는 일어나기 싫다는 듯
긴 구름 띠로 얼굴을 가렸다
먼동이 튼다 붉은 구름바다다
마차푸차레가 생선 꼬리 같은 두건을
구름 위로 살짝 들어 보인다
산 위로 볼그레 구름 띠가 다시 둘리고
마침내 산들이 빛을 쏘기 시작한다
진정 상서로움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고개를 들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합장을 한다 나마스떼
아침마다 정화수 떠 놓고 빌던 할머니처럼
산에 와서 나는 물활론자가 되었다
히말라야 16
- 핫팩
핫팩 하나로 침낭 안이 뜻밖에 따뜻하다
아, 한 주먹 열熱주머니가 주는
사소한 행복이라니
행복이란 풍요가 아니라
간절함을 채워 주는 것
힘들 때 함께 앉아 등 기대는 것
작은 불씨로 함께 외로움을 녹이는 것
핫팩 하나로 히말라야 추운 밤이 행복하다
히말라야 18
- 히말라야 모디콜라
누워서도 베갯머리까지 물소리가 사납다
잠이 들자 물소리가 꿈이 되었다
이 물 저 물 다 모아 큰 강이 되리라
비탈 강 물길을 몰아 세상에 나가리라
힌두의 대지를 적시는 어미 강이 되리라
흐르고 흘러 신성한 갠지스와 만나
죄 많은 영혼을 위한 정화수가 되리라
불에 타 찢어진 피곤한 육신을 안고
바다로 바다로 달려가리라
마침내 큰 바다 인도양에 닿아
윤회의 틀 벗고 홀로 가벼운 정신이 되리라
말을 마친 물소리가 흔들어 잠을 깨운다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나도 오늘 저 산을 오르며
눈물과 수고의 땀방울 그대에게 보탤 것이니
성내지 말고 잘 가시게
천천히 가면서 해탈하시게 모디콜라*
* 계곡을 흐르는 작은 규모의 강, 네팔어
히말라야 21
- 꽃은 어디서나 피고
설산은 경건하고 계곡은 유장하다
당찬 물소리 옆 굽이치는 길가에
작은 꽃들이 무더기로 피고 있다
밟히는 자갈들 사이를 뚫고
연두색 다랑이 논둑에 또 집 앞뜰에
노랑 빨강 분홍 자주 어린 꽃들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패랭이꽃이나 애기똥풀 자주달개비
우리나라 꽃들과 얼굴이 닮았다
꽃이 스스로 이름을 짓는 것은 아니므로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지만
이곳저곳에 이 꽃 저 꽃 피어
눈의 나라에 새 세상이 오는가
꽃들이야 다 제 이유가 있지
사람 보라고 피는 것이랴마는
이 나라 저 나라 여기저기에 피어
우리도 낳고 죽고 까부르고
한 세상 살다 가노라 외치고 있다
사시사철 만년설 이고 있는 안나푸르나
무거운 짐 진 사람 사는 아랫마을에
꽃들이 홀로 함께 제 색깔대로 피고 있다
고요의 바다 ( ※ 히말라야 팡세)
아궁이의 불이 고요의 끝에 가 닿는다
거역할 수 없는 고요의 혀가 불길을 당기고
밤새 어둠을 살라도 고요를 쫓지 못한다
살아있는 것은 불이 아니라 적막이다
세상을 등지고 온 몇몇이 불 앞에 앉아
목을 조이는 울음을 삼키고
칠흑의 고요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전기도 전파도 닿지 않는다
한 줌의 온기로 목숨을 버티며
하릴없이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
아궁이에는 꺼질 듯 작은 불이 타고
하늘에는 별이 호수처럼 비추는데
불 앞에서도 흐르는 별 아래서도
마음은 비고 시리다
집에서 멀리 떠나 맞는 히말라야의 밤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비단 몸서리치는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 싸움에 지친 눈물 때문도 아니다
깊고 큰 산에 들어와 마주한
저 고요의 바다
텅 빈 묵음을 더는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화遷化 ( ※ 히말라야 팡세)
그립다 전할 수 없을 때
표현의 극단은 소식을 끊는 것이다
깊은 산 또는 멀리 몸을 숨기고
어두운 불빛 아래 밤마다
혼자서 외로움을 쓰는 것이다
사랑은 등잔불처럼 감출 수 없어
참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눈 내리는 밤
부치지 못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 굳은 얼음 기둥으로
산 아랫마을을 말없이 굽어보거나
남들이 찾지 못하는
히말라야 산중에 홀로 들어가
세계의 문을 걸어 잠그고
숨소리 머리 터럭 한 올 남김없이
별빛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라. 임진강 ( ※ 임진강)
임진강 1
- 거꾸로 흐르는 물
물은 흘러야 한다
낮은 곳으로 스며 가난한 땅을 축이고
굽이굽이 구석구석 반도를 적시어
바다에서 만나 한 세상을 이루어야 한다
흐르고 싶어도
여기 흐를 수 없는 강이 있다
알을 밴 연어 떼처럼 온몸으로
거슬러 올라야 사는 강물이 있다
역류逆流를 타고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만나야 하고
시간은 앞으로 나가야 하나
만날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이
분단과 경계와 금지에 맞서
홀로 물방울로 멈춘 사람들이
강가에서 살고 있다
주문呪文의 시간에서 풀려날 수 없어
세월의 허리를 붙잡고
건널 수 없는 나루터에서
하릴없이 우는 사람들이 있다
우는 사람들 곁에서
우두커니 서서 함께 우는 강물이 있다
이념을 걷어내고 거슬러 올라
모두 제 갈 길로 가야 하거늘
흐를 수도 거스를 수도 없는 강가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눈물을 따라
임진강은 목놓아 울고 있다
임진강 7
- 흐르지 않는 강을 위하여
이제 강은 얼지 않는다
동무들과 조마조마 가슴 쓸어내리며
언 강을 건너 학교 가던 일은 추억이 되었다
이제 한겨울에도 얼지 않으므로
우수가 되어도 풀리는 강물은 없다
이제 강은 흐르지 않는다
대나무 마디마디처럼 댐으로 갇히고
보로 나뉘고 하구는 둑으로 막혀
바다가 되고 싶은 강의 꿈은 이루지 못한다
더러운 것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장마철 범람의 장관도 더는 볼 수 없다
흐르지 않으니 이제 강은 울지 않는다
흐르는 강물을 쓸쓸히 지켜보거나
쪼그리고 앉아 강울음을 듣는 사람은 없다
강을 물 담는 커다란 항아리로 생각하는
돈의 유령이 강을 떠돌 뿐
흐르는 강물을 보며 가슴 조리는 시인은 없다
흐르지 않는 것을
흘러가며 울지 않는 것을
흐르고 흘러도 바다에 닿지 못하는 것을
흘러도 대지를 적시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을
어찌 물이라 강이라 사랑이라 할 수 있으랴
강은 흘러야 하고
흘러 흘러가며 흥얼거리는
강물의 노래는 계속되어야 한다
흥겨운 강의 노래 따라 부르며 손뼉 치는
갈대와 철새들의 합창은 계속되어야 한다
임진강 13
- 오금리 빈들의 노래
겨울 들판은 한참 비워두어도 좋으리
초록 파도와 가을 바다 황금물결 시절을 지나
댑바람이 불어도 무람한 억새밭 떼춤을 보며
무상無常한 빈들을 노래해도 좋으리
바람은 고요의 깊은 곳에서 불어오고
죽을힘을 다해 사막 지나 바다를 건너온
헐벗은 독수리에게 잠자리 안마당으로 내주고
할 일 없는 수더분한 뒷방 늙은이나
강 건너 매운바람의 한 판 굿판이어도 좋으리
군대처럼 진격하는 벌거벗은 강바람을 맞으며
가지런한 기러기떼 날아오면 날아오는 대로
총 총 총 까부는 새끼 한 마리 거느린
우아한 재두루미 에미 아비 한 쌍
발소리에 자빠질 듯 날아가면 날아가는 대로
밥맛 좋은 오금리 햅쌀 소문을 퍼뜨려
오호라 햇살 한 줌 맨주먹에 쥘 수 있다면
이 땅의 갈등과 분열을 끌어안고
조용히 사그라드는 저문 밤 빈들이면 어떻고
높고 시퍼런 철책 포위망이 걸어와
메마른 삭신을 묶어 간들 또 어떻겠는가
7. 퇴직을 하면서
이력서
산다는 건 결국 신발을 끌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일이라는 걸 이력서는 알고 있다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놀란 마음으로
가난하고 어리석던 어두운 강을 건너
희끗희끗 빠진 머리의 초로初老가 되기까지
몇 켤레의 신발을 버리고 또 몇 켤레
새 신발을 사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얼마나 자주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는지 신발들은 알고 있다
꿈은 희망과 같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더 자주 허무의 꽃으로 졌고
초록의 냄새를 맡고 길을 나섰지만 대개
희미한 빛으로 끝난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남루한 내 신발들은 알고 있다
초목의 짙푸른 숨소리를 함께 들었으나
네 그르니 내 옳으니 하며 삿대질하던 동무들
하세월을 신발은 모두 지켜보았던 것이다
꽃방석 꽃 잔디 널렸던 날도 더러 있었으나
불똥 끄듯 다급하던 시절이 더 많았고
마늘 싹이 난초 꽃대처럼 솟은 일도 있었으나
애장터 무더기 진달래는 더 오랫동안 피었고
미루나무 잎사귀 이슬방울 함께 맞으며 기댄
아름다운 사람들이 옆에 없지는 않았으나
부끄러워 감히 꺼낼 수 없는 치명적 사랑을
내 신발들은 모두 다 알고 있다
걸러내고 걷어내도 쌓이는 앙금과
걸어도 달려도 닿을 수 없는 길의 중간에서
신발을 내던지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던 시절의 터무니없는 노래를
이력履歷의 줄 사이에서도 다 말할 수 없었다
8. 부끄러운 자화상
부끄러운 시업詩業( ※ 어머니는 이제 국수를 먹지 않는다 서시)
시를 쓰느라 밤새 시답잖은 시간을 보내고
시詩다운 것과 시답지 않은 것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을 돌아보는 아침
굴리는 눈알이 슴벅슴벅 편치 않다
고상한 것 같아도 시를 쓴다는 게
시인이라는 사람들 저 좋아서 먹고
떠들다 노래하고 쏟아낸
배설물을 치우는 것은 아닌가 몰라
한 편의 시를 쓰고 한 권의 시집을 묶어
남을 읽게 하는 일이란
남의 귀한 시간과 돈과 여력을 빼앗는
되갚을 수 없는 헛지랄은 아닌가 몰라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일이란 게 한심하게도
한 주먹의 통찰도 위로도 쓸모도 없는
쓰는 자 혼자의 기만과 만족이 아닐까 몰라
어쭙잖은 시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전종호(全宗顥) 약력
1958년생. 부여에서 자라고 공주에서 공부했다.
공주사대부고, 공주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동국대학교에서 교육학 석·박사과정을 했다.
경기도 휴전선 근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학교 현장과 학문과 운동의 영역에서
교육의 길을 묻고 찾으며 살았다.
경기도 선유중학교 교장을 퇴직했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감정 배설행위이며 자기오락이지만,
또한 사람들의 마음에 스미고 젖어드는 의미가 되고
사회적 울림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를 쓰고 있다.
시집으로 <임진강,(중앙&미래, 2024),
<꽃들의 수작(전자시집, 디지북스, 2024)>,
<어머니는 이제 국수를 먹지 않는다(중앙&미래, 2023)>,
<꽃 핀 자리에 햇살 같은 탄성이(작은숲, 2021)>,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어른의 시간, 2019)>,
시 산문집으로 <히말라야 팡세(중앙&미래,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