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카작행) 김레오니드 할아버지(1929년생), 김로자 할머니
교육원에서 김레오니드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8세 때 카작 까라간다로 실려왔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라 실려올 때의 기적은 별로 없답니다. 기차가 쉴 때 뛰어들 내려가 욕조에 들어가 미역감던 일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성인이냐 어린이냐에 따라 강제이주에 대한 느낌이 다를 수 있다 하겠습니다.
이분의 생애에서 확인되는 중요한 점은, 학력이 높다 보니, 기술이 있다 보니, 기관에서 관리자로 일하다 은퇴하여, 월급도 많아 살기가 괜찮았다는 점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듣던 아들한테 한마디 했습니다. "야, 들었지? 공부 많이 하면 할아버지처럼 여유롭게 살 수 있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지?"
아들을 대학 보내 졸업했는데, 딸들은 공부하기 싫어해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큰아들이 40세 때 레닌그라드 어느 호수에 타이어로 만든 배 타고 들어가 고기잡다가 풍랑에 뒤집혀 익사하는 일로 속병이 났다는 슬픈 이야기도 했습니다.
며느리와 살지 않고 부부가 지내는 이유를 물었더니만, 자기네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고려인 노인들이 그런다고 합니다. 말 듣기 피차 불편하여 그런다 했습니다.
오후에 만난 김로자(아바야 마나사에서 식당 운영) 할머니는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하였습니다. 고부간에 성격이 맞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고, 이곳 할머니들의 독립심이 강해서 그런다고 했습니다. 남자들이 하는 일을 못하는 게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충분히 혼자서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보니 그런다 했습니다. 다만 할아버지들은 음식해 먹는 게 서툴러서 구차하다 했습니다. 할머니들은 연금까지 나오므로 변변하게 산다고 합니다. 당신의 사진이 들어간 책을 드리니 아주 좋아하며, 떠듬떠듬 읽어보았습니다. 결혼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를 오늘 새로 들어서 녹음했습니다. 병든 아버지와 앞못보게 된 어머니를 두고 결혼할 수 없어, 데릴사위로 들어올 사람에게만 결혼하겠다고 조건 내걸어 마침내 지금의 남편을 만난 이야기였습니다. 그 시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 옆에 이사와서 양 부모를 모시며 살다 장례를 치렀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