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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 대종중
 
 
 
카페 게시글
●-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숭례문 옛날사진
오대댁손자 추천 0 조회 105 08.03.05 11:5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1893년

 

 

Armous(1893)  (Royal Coreum Custom in Fusan)

문 밖에서 찍었다. 초가 지붕 가게(假家)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차 길이 좁다.

그러나 좌우 성벽, 성벽 위 여장(女墻)은 그대로 살아 있다.

 

 

1898년

 

 

Bishop(1898)  (Korea and Her Neigbbours)

 

오른편 하단에서 시작되는 성벽은 지금 힐튼 호텔 어름일 것 같다.

성벽을 따라가다 사진 중앙쯤 숭례문이 보인다.

숭례문에서 성벽은 다시 구불구불 서북쪽 인왕산으로 이어진다.

사진 우상단 삼각형 봉우리는 도성(都城)의 진산(鎭山) 백악(白岳=北岳)이고

백악 2시 방향에 삼각산 보현봉이 보인다.

 

 

 

비숍여사 사진 중 성벽 시작 부분이라고 짐작되는 힐튼 호텔 부근을

필자가 2007년 9월에 찍은 것이 위 사진이다.

 

 

 

 

찍은 연대는 알 수 없지만 Bishop 의 사진과 거의 같은 앵글이다.

정면 위 인왕산, 인왕 오른쪽 끝자락 백악, 백악의 뒤 삼각산 모두 헐벗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일제 침탈이전부터 우리나라 산은 민둥산이었다.

 

 

 

Bishop 의 사진 구도를 구글에서 잡아 보았다.

 

 

1898년

 

 

Bishop(1898)  [Korea and Her Neigbbours]

처음 올린 1893 년 사진과 거의 비슷하나 도로가 좀더 넓어졌다.

 

 

Bishop 구도에서 앞으로 다가간 사진인데 가게 지붕이 초가가 아니라 기와다.

따라서 연대는 잘 모르겠다.

 

 

1900년 대 초

 

 

 

현판이 보이지 않고 문에 붙은 성벽각도상 성안 즉 남대문 시장 쯤에서

찍은 것 같다. 전봇대가 있고 좌하단에서 홍예문까지 전차 선로가 이어져 있다.

 

따라서 위 사진을 찍은 해는 남대문을 지나는 전차 종로-용산선 개통

1899년 12월 20일 이후- 1900 년대 초반 일 것이다.

왼쪽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오른 쪽은 성벽이 아직 성문에 붙어있다.

 

 

 

1907년

 

 

황태자전하한국어도항기념사진첩 (1907)

황태자란 가인(嘉仁 요시히토) 나중 대정(大正) 천황이다.

 

성문안쪽 -남대문시장방향에서 찍은 사진이다.

봉영(奉迎)이라 쓴 아치는 1907년 10월 황태자 의 조선 방문을 환영한다고

일진회(一進會)에서 세웠다. 대문에 붙은 성벽은 완전히 사라졌다.

황태자를 더럽고 누추한 숭례문을 통과하게 할 수 없어 성벽을 헐고

도로를 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차는 아직 홍예를 통과하고 있다.

 

 

1910년 무렵

 

 

현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성밖 곧 서울역 쪽에서 찍었다.

좌우 성벽은 완전히 사라지고 앞쪽에 일본식 축대가 나타났다.

전차 선로는 홍예문-성문으로 통과하지 않고 옆으로 옮겨졌다.

 

 

1920년 대

 

 

역시 문밖에서 찍었는데 왼쪽에 파출소가 보인다.

 

1945년

 

 

 

해방 되던 해 서울역 쪽에서 찍은 사진이다.

전차 동력선이 어지럽게 깔려 있고 길 좌우로 왜식(倭式)가옥이 즐비하다.

 

 

1950년

 

 

아마 9.28 수복 직후 찍은 것이 아닌가 한다.

 

 

역시 6.25 전쟁 중

 

 

 

전쟁 중에 찍은 것 같은데 위 9.28 수복 후로 짐작되는 사진 보다는

지붕 기와 등이 수리되었다. 문 앞에 써 있는 ‘SOUTH GATE’ 는 당시

숭례문의 영문 표기인 듯. 2층 문루 앞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데

글자 해독이 잘 안되고 다만 ”休戰’ ‘江山’ ‘붉어진다’ 이런 것만 보인다.

아마 당시 진행되던 휴전협상을 반대한다는 뜻인 듯.

 

 

1952년 경

 

 

전차에 ‘노량진’이라는 행선지 표시가 있다.

앞쪽에 도라무깡 두 개가 보인다. 당시는 저걸로 별걸 다 만들었다.

시발 택시라고 최초의 국산차도 도라무깡  우그려뜨려 만들었다는 설이 있었다.

엔진이야 미군 지프차 불하 받은 것에서 떼어내 붙였을 테고.

버스도 도라무깡으로 만들었다고 했던가.

 

 

2007년

 

 

 

우여곡절 끝에 이정도 까지 왔는데… 그만

 

 

2008년 2월 10일 밤

 

 

 

 

 

앞으로는 (?)

 

 

 

복원구상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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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3.09 15:44

    첫댓글 숭례문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있게되어너무나 감사합니다 새로운 조감도까지 동안 강영하시지요?이제 완전한 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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