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루공원(천하제일루-미불의 글씨)
아(鵝)자 비
장관(이태백의 글씨-사람의 사진과 대비)
최호의 제시도
황학루(초천극목 렴권건곤)
승학비거도
이백의 시
황학루
중국 악양의 악양루와 남창의 등왕각과 함께 중국 3대 명루로 불리는 황학루이다. 황학루가 처음 세워진 년도는 서기 233년이다. 1,800년 전에 오나라 손권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입구 황학루공원에는 북송 미불의 천하제일루라는 글씨가 보이고, 멀리 보이는 황학루에 다가가는 길가에 보여지는 것들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왕희지, 조맹부, 구양순 등 이름만 들어도 우리에게 친숙한 명필이자 명문장가들의 글씨가 사람 키 만한 돌비석에 새겨져 수십 미터에 달하며 도열해 있다. 천 여년 역사를 통해 인정받은, 제각각 독특하고 눈부신 글씨만으로도 예술작품이려니와, 일일이 그 글씨는 시각적인 아름다움 외에도 깊은 철학과 정서가 담긴 문학작품들이다. 그 중 하나이자, 바로 이 곳 황학루를 노래한 당나라 시대 최호의 시가 등황학루이다.
昔人已乘黃鶴去하고 此地空餘黃鶴樓라 석인이승황학거 차지공여황학루 黃鶴一去不復返하고 白雲千載空悠悠라 황학일거불부반 백운천재공유유 晴川歷歷漢陽樹오 芳草처(풀이 성하게 우거진 모양처 艸+妻)처(艸+妻)鸚鵡洲라 日暮鄕關何處是오 煙波江上使人愁라 일모향관하처시 연파강상사인수 청천역역한양수 방초처처앵무주 옛 사람 이미 황학을 타고 가 버렸고, 이곳에는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구나 황학이 한번 떠나 다시 오지 않나니, 흰 구름만 천년토록 부질없이 한가하네 개인 강 저쪽엔 한양의 나무가 뚜렷하고, 꽃다운 풀들은 앵무주에 무성하도다 날은 저무는데 고향은 어디 메인가. 안개 자욱한 강 물결 사람을 시름겹게 하네.
시선 이태백도 최호의 이 시를 극찬하였다고 하는데, 물론 이태백의 글씨도 이곳 황학루에서 만날 수 있다. 황학루는 51미터 높이의 5층 건물로서, 수백 마리의 학이 날아오르는 모양으로 지붕 처마가 학이 날개 짓 하는 모양을 닮았다. 양자강과 한수가 만나는 합수머리를 바라보며 그 강으로 나뉘는 무한3진 (한구, 무창, 한양)과 장강대교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황학루의 유래는 중국의 삼국시대 오나라에서부터 이어진다. 어느 날, 신선같은 한 노인이 무창에 있는 신씨라는 노파의 주막을 찾아와 술을 청했다. 신씨는 노인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술을 대접했었는데,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노인은 같은 시간대에 주막을 찾아 계속 술을 청하곤 했다. 신씨는 그 때마다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잔을 내주었다. 반년이 넘도록 공짜 술을 마시던 노인이 하루는 그동안 밀린 술값을 내겠다면서 그동안 안주로 먹던 노란 귤 껍질로 한 마리의 학을 만들어 벽에 붙였다. 그런데 그 학이 아주 생생하였다. 노인은 황학의 그림을 가르치며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면 저 학이 살아 나온다’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신씨는 노인의 말대로 학의 그림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정말로 노란 학이 튀어나와 신씨의 노래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 소문을 듣고 많은 풍류객들이 주막을 찾아왔었고 때문으로 신씨는 많은 돈을 벌었다. 10년이 지난 후 어느날 그 노인이 다시 나타났다. 신씨가 술을 대접하려는데 노인은 술은 사양하고 그 대신 소매 자락에서 꺼낸 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피리 소리를 들은 노란 학은 그림에서 튀어나와 노인을 태우고 구름 위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노인도, 학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다. 그 노인은 비문위(費文褘)라는 선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신씨는 주막을 헐고 노인과 학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정자를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황학루의 유래이다. 신씨의 대접이나 노인의 그림이 모두 無心 (無相, 無住의 布施)으로 이루어진 일이기에 신통스런 학의 춤(妙用)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최호의 ‘황학루’는 경관 좋고 규모가 가장 크기로 이름난 황학루에서 지은 시이다. 이 시는 율시 중에서 최고로 찬탄 받는 시인데 황학루의 낙성식 기념 백일장에서 장원에 오른 시라 한다. 최호는 이백, 두보 등과 같은 시대 사람이지만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인데 이 ‘황학루’를 짓고 유명해졌다. 뒷날 황학루에 오른 이백(李白)이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어 최호의 운(韻)에 맞추어 시를 지으려다 결국 마음에 들지 않자 ‘崔顥詩在其上頭(최호시재기상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후에 금릉(金陵)의 봉황대(鳳凰臺)에 올라 ’봉황대‘ 시를 지어 최호의 ’황학루‘와 쌍벽을 이루게 되었지만 황학루보다 못하다는 평을 받았다. ’최호‘의 ’황학루‘는 ’장계‘의 ’한산사‘처럼 無心의 상태에서 詩를 지었기 때문에 불후의 명작이 된 것이라 평한다. 제일(第一), 수련(首聯)과 제이(第二), 연(聯)은 세월의 덧 없음을 노래했고 제삼(第三), 경련(頸聯)과 제사(第四), 미련(尾聯)은 노을지는 봄날에 진한 향수에 젖는 나그네의 심정이 그려지고 있다.
최호(704-754)는 하남성 개봉 사람으로 개원 11년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천보 년간에 상서사훈원외랑을 지냈다. 재주가 뛰어났으나 행동이 경박하여, 젊어서 쓴 시는 시의가 부염하였지만 만년에는 수양이 깊어지고, 시체도 변하여 풍골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황학루는 무창 장강기슭의 사산(蛇山) 위에 세워진 5층 누각이다. '천고의 명승, 천하의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황학루는 호남성(湖南省) 악양루(岳陽樓)와 강서성(江西省) 등왕각과 함께 강남 3대 명루에 속한다. 무창의 황학바위에 세워졌다하여 '황학루'라 불리는 곳이다. 황학루는 군사 전략상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훗날 약 212명의 수 많은 문인들이 약 339개의 시를 지어 황학루의 경치를 찬양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중 당나라 시인 최호(崔顥)의 '황학루'와 이태백의 '황학루에서 맹호연(孟浩然)을 광육(廣陸)으로 보낸다'라는 시가 유명하다.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 황학루에서 맹호연이 광릉으로 가는 것을 보냄 故人西辭黃鶴樓 (고인서사황학루) 친구가 서쪽에서 황학루를 떠나간다 (옛친구는 이 황학루에서 이별 고하고) 煙花三月下楊州 (연화삼월하양주) 연기꽃 삼월에 양주로 내려간다 (꽃피는 삼월에 배타고 양주로 내려갔다) 孤帆遠影碧空盡 (고범원영벽공진) 외로운 먼 돛 그림자 푸른 공중에 다하고 (외로운 돛단배 먼 그림자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惟見長江天際流 (유견장강천제류) 긴 강이 하늘가에 흐르는 것만 보인다 (뵈는 것 아득히 하늘에 닿은 장강물 뿐이어라)
황학루는 원래 삼국시대 오나라 황무 원년(223년)에 높이 31.4m의 3층 누각으로 지어졌으나 훼손되어 1985년에 새로이 재건한 것이다. 현재의 황학루는 청나라 건축양식의 높이 51.4m의 누각으로 황금빛 기와와 72개의 붉은 기둥과 처마가 푸르른 하늘과 어울려져 마치 수백 마리의 학이 날개 짓하며 날아오르는 듯 멋진 조화를 뽐내고 있다. 특히 5층 전망대에서는 양자강과 한수가 만나는 합수머리와 장강대교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인다. 내부의 엘리베이터와 에어컨 등의 부대시설이 편안하게 느껴지면서도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황학루의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일 터이다. 이 시는 천고의 절창으로 당시 가운데 인구에 회자하는 시이다. 이백은 일찍이 황학루를 지나다가 최호의 이시를 보고서 "눈 앞에 경치가 있어도 말해 낼 수 없는 것은 최호의 제시가 위에 있음이라"고 말하고는 시 짓기를 포기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져서 이 시의 명성을 더해 주었다. 황학루에 올라 멀리 바라보며 마음속에 이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는 조구가 자연스럽고 기상이 웅대한 데 장점이 있으며 특히 전반 4구는 천균의 필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황학이라는 시어가 세 번이나 겹쳐 나와도 전혀 부자연스러운 감을 주지 않아 신래지필(神來之筆)이라 할 수 있다.
황학루
黃鶴樓 [당, 崔顥]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黄鶴樓送孟浩然之廣陵 [당, 이백]
故人西辭黄鶴樓, 烟花三月下揚州. 孤帆逺影碧山盡, 唯見長江天際流.
與史郎中飲聽黄鶴樓上吹笛 [당, 이백]
一為遷客去長沙, 西望長安不見家. 黄鶴樓中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
重建黃鶴樓 二首 [現代, 林散之 찬서]
當年曾訪原黃鶴, 此日人歌黃鶴樓. 黃鶴一去又重返, 蒼龍驚看大江游.
昔聞鐵鍊鎖孤洲, 今賭鋼橋壓兩頭. 古有奇觀今更勝, 移山倒海鬼神愁.
黃鶴樓詩 [明, 洪源] 현대 윤수석 서
莽莽煙波路幾重, 豪情盡在水雲中. 胸間江漢千層浪, 脚下龜蛇一道虹. 百載紅羊曾遇劫, 九霄黃鶴又乘風. 願將點點靑春血, 漚入洪濤永向東.
漢口宴別 [唐, 宋之問] 현대 靳選之 서
漢廣不分天, 舟移杳若仙. 秋[淸]虹[江]浮晩[暖]日, 江[黃]鶴弄晴煙. 積水浮[移]冠蓋, 搖風逐管絃. 嬉遊不可[知]極, 留恨此山[長]川.
醉落魄-九日吳勝之運使黄鶴山登髙 [송, 戴復古 사] 현대 何虛中 서
龍山行樂何如 今日登黄鶮 風光政要人酬酢 欲賦歸來 莫是淵明錯 江山登覽長如昨 飛鴻影裏秋光薄 秪有黄花 覺牢裹烏紗 一任西風作
上黃鶴樓 [淸, 黃遵憲]
磯頭黃鵠日東流, 又此闌干又此秋. 鼾睡他人同臥榻, 婆娑老子自登樓. 能言鸚鵡悲名士, 折翼天鵬慨督州. 洒盡新亭楚囚淚, 煙波風景總生愁.
洞庭春色 望黃鶴樓 [淸, 黃仲則 詞]
爲問司勳誰家樓, 心天沖題詩 算吾宗老輩 子安去久 玉京舊侶寂 瑋來遲 今日我遊 因薄譴朝 我廓人民 半是非還 聞說又 吳宮楚館 電捲星移 千年謫僊又去 空傳語 天上相思 望三湘七潭無邊水 蠻荊門 郢樹一片斜暉 祗有此樓常不改 與江漢茫茫無盡 期歸與好把落杲 短笛鶴背橫吹
登黃鶴樓 [明, 林章]
望裏山川是楚鄕, 美人何處水茫茫. 禰衡作客留江夏, 趙壹辭家出漢陽. 鶴去未知芳草暗, 雁來先覺白雲凉. 依樓無限西風意, 堪與千秋一斷腸.
寄牛相公 [당, 두목]
江[漢]水横衝蜀浪分 危樓㸃的拂孤雲 六年仁政謳歌去 栁遶春堤處處聞
步望詩韻 [現代, 劉藝 撰書]
黃鵠未伴昔人去 舊地巍峨見閣樓 駕鶴仙翁終復返 峽東游子興悠悠 參差蒼翠千層樹 迆邐絪縕萬頃洲 三鎭雄姿今更是 憑欄凝望怎須愁
秋日登黄鶴樓懐劉四臯 [명, 송등춘]
黄鶴樓前江水流 故人何處木蘭舟 雙雙燕子南飛去 瑟瑟蘆花鐡篴秋
舟泊漢江望黄鶴樓 [명, 장거정]
楓林霜葉净江煙 錦石游魚清可憐 賈客帆檣雲裏見 仙人樓閣鏡中懸 九秋查影横清漢 一笛梅花落逺天 無限滄洲漁父意 夜深髙詠獨鳴舷
出鄂州界懐表臣 [당, 유우석]
夢覺疑連榻 舟行忽千里 不見黄鶴樓 寒沙雪相似
庭堅以去嵗九月至鄂登南樓歎其制作之美成長句乆欲寄逺因循至今書呈公恱 [송, 황정견]
江東湖北行畫圗, 鄂州南樓天下無. 髙明廣深勢抱合, 表裏江山來畫閣. 雪筵披襟夏簟寒, 胷吞雲夢何足言. 庾公風流冷似鐡, 誰其繼之方公恱.
送田三端公還鄂州 [당, 무원형]
孤雲迢遰戀滄洲, 勸酒梨花對白頭. 南陌送歸車騎合, 東城怨别管絃愁. 青油幕裏人如玉, 黄鶴樓中月並鈎. 君去庾公應借問, 馳心千里大江流.
送儲邕之武昌 [당, 이백]
黄鶴西樓月 長江萬里情 春風三十度 空憶武昌城 送爾難為别 銜杯惜未傾 湖連張樂地 山逐汎舟行 諾謂楚人重 詩傳謝朓清 滄浪吾有曲 寄入棹歌聲
鶴樓懷古岳廟 [現代, 曾勤]
獨上危樓接太虛, 烟波一望水波平. 高浪畵閣依山麓, 遠近風颿遴客程. 仙棗有亭撑老樹, 梅花無笛落江城. 白雲黃鶴今何在, 斷碣殘碑落池橫.
雪中再登黄鶴樓 [명, 宋基]
平生不願萬戸侯 亦不願識韓荆州 但願武昌連日雪 日日醉登黄鶴樓 樓前絶景冠今古 况有繽紛雪花舞 玉樹參差認漢陽 瀛洲浩蕩迷鸚鵡 江頭兒女走欲顛 謂我自是騎鶴仙 白雲飛盡黄鶴去 此景不見三千年 我拍闌干為招手 世上神仙果何有 桃李非無頃刻花 江湖亦是逡巡酒 他日重來五百春 樓前花草一畨新 相逢不識純陽子 何用重尋回道人
再登黃鶴樓 [淸, 彭而述]
飛樓縹渺著江干, 霜鬢登臨記往年. 隔岸春城浮檻外, 亂帆斜日到橋前. 山連秦蜀開荊甸, 水下東南盡楚天. 回首蒼桑生感慨, 孫劉興廢幾茫然.
送康太守 [당, 왕유]
城下滄江水 江邉黃鶴樓 朱欄將粉堞 江水映悠悠 鐃吹發夏口 使君居上頭 郭門隱楓岸 候吏趨蘆洲 何異臨川郡 還來康樂侯
黄鶴樓記 [당, 閻伯里]
州城西南隅有黄鶴樓者圖經云費禕登仙常駕黄鶴還憩於此遂以名樓事列神仙之傳迹存述異之志觀其聳構巍峩高標巃嵸上倚河漢下臨江流重簷翼館四闥霞敞坐窺井邑俯拍雲煙亦荆吳形勝之最也何必頼鄉九柱東陽八詠乃可賞觀時物會集靈仙者哉刺史兼侍御史淮西租庸使鄂岳沔等州都團練使河南穆公名寧下車而亂繩皆理發號而庶政其凝或逶迤退公或登臨送遠遊必於是極長川之浩浩見衆山之纍纍玉室載懷思仲宣之能賦蹤可揖嘉叔偉之芳塵迺喟然曰黄鶴時來歌城郭之竝是浮雲一去惜人世之俱非有命抽毫紀兹貞石時皇唐永泰元年歲大荒落月孟夏日庚寅也
[楹聯]
樓未起時原有鶴;
筆從擱後更無詩.-각필정 련, 청 曾衍東 찬.
龜伏蛇盤, 對唱大江東去也;
山高地闊, 但看黃鶴再來兮.-현대 關山月 찬서.
對江樓閣參天立;
全楚山河縮地來.-청 方維新 찬.
到來徑欲凌風去;
吟罷還思借笛吹.-淸 魯之裕 찬.
鶴唳霄漢;
樓廻天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