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할 줄 몰라서---
류 근 만
“어! 택시 온다” “번호 확인해 봐!” “맞다 맞아!”
어르신들의 행동인지? 어린애들의 장난인지? 분간이 안 간다. 그러는 사이 택시 한 대가 일행 앞에 멈췄다.
“또 온다, 번호 확인!” “맞아”
역시 호들갑이다. 남성들은 뒷짐을 찐 채 물끄러미 미소를 짓는다. 나는 뒤따라 온 택시의 앞 좌석에 승차했다. 스마트 폰으로 택시를 호출하여 목적지로 가려는데 이렇게 소란스럽다. 초등학생들이 소풍 가는 풍경과 흡사하다. 주변의 행인들이 볼 때 ’주책없는 어르신‘ ’꼴불견 어르신’으로 비치지 않을까 ’살짝‘ 헛웃음이 난다.
구청 대 강당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현장으로 가는 탐방 일정이다. 대상은 ‘어르신 디지털 투어’에 참여한 배움터 노인들이다. 나는 6조에 속했다. 대문짝만한 이름표를 목에 건 어르신들이 여섯 명이다. 안내 봉사자 한 명을 포함해 네 명씩, 두 개 반으로 편성했다.
새로움을 배운다는 들뜬 기분에 어르신도 체면보다 감성에 취한 모습이다. 가을하늘은 짙푸르고 산천초목이 물들기에 제격인 날씨다. 남녀 혼성인 배움터 학생들, 봉사자의 설명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스마트 폰에서 ’티머니 GO' 앱을 찾아 택시를 부르는 연습이다. ‘어디로 가시나요?’ 도착지 난에 목적지를 입력한다. 도착지가 설정되면 상세주소가 뜨고, ‘도착지’를 터치하면 택시형별·추진경로·거리·소요시간·예상요금을 알리는 문자가 뜬다. 운전기사가 목적지를 묻거나 탑승자가 밝힐 필요도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요금이 계산되고 신용카드만 단말기에 대면 영수증이 나온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젊은이나 정보에 능통한 사람은 이미 생활수단이 됐지만, 나이든 노인들은 새롭기만 하다. 아니 모르는 것이 부끄럽고 안타까워 주책도 없고 눈치도 없이 행동하는지 모른다.
나는 반장이랍시고 앞 좌석에 앉았다. 내 스마트 폰에는 모든 정보가 기록됐다. 운전기사도 이미 내 정보를 알고 있다. 서로 궁금한 것이 없다. 출발지에서 일행을 태운 택시는 목적지를 물을 것도 없이 미끄러지듯 달렸다. 차내는 다소 소란스럽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가을 풍경에 취한 듯하다. 밖으로 나오라고 유혹하는 것 같다.
나는 택시기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우리는 ‘어르신 디지털 투어’에 참여한 학생들이니 좀 소란스럽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했다. 택시 기사의 반응도 흥겹다 ‘학생들은 다 그래요, 걱정하지 말고 즐기세요’ 하면서 백미러로 표정을 살핀다. 그러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봉사자한테 받은 카드를 택시 단말기에 대고 요금을 결제했다. 영수증을 받으면서 택시투어는 끝이다.
스마트 폰의 ‘길 찾기’ 앱에서 목적지를 검색했다.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엑스포장 내 사이언스 페스티벌 행사장이다. 예전에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에 근무한 적도 있지만, 너무도 변했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할 시간이 흘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로봇 게임에 몰두했다. 편을 갈라서 상대방 탱크를 링 밖으로 몰아내야 이긴다. 게임에 푹 빠졌다. 주책스러운 어르신들? 꼴불견 소릴 들을 법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배움터 어르신만의 전용 부스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런 공간에 자주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보와 움직임이 확연히 달라질 것 같다. 그러나 이내 ‘헛된 공상’임을 알고, 이를 지우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돌이나 나무나 사람이나 지금 있는 자리가 내 운명에 맞는 최고의 적지라는 생각에서다.
오늘 일정은 빽빽한데 시간이 너무 빠르다. 어른들의 페달은 과속을 부추긴다. 점심 메뉴를 선택하고 식대 정산도 키오스크에서 이루어진다. 커피숍에서도 본인 취향에 맞는 음료를 고르고 값을 지급한다. 백화점 갤러리에서 감상하고 자세를 취하면서 사진을 케첩하고 동영상을 찍는다. 이런 과정을 어르신들이 따라가려니 한마디 정보라도 놓칠세라 졸졸 따라다닌다. 병아리가 어미 닭을 쫓듯 제정신이 아니다. 초등생이 이보다 더할까? 안쓰럽기까지 하다.
모 일간지 전면에서 본 ‘키오스크 앞에 서면 ---노인은 울고 싶다’라는 찐하고 굵은 글씨가 눈에 선하다. 신문 기자가 70대 어르신과 동행해보니 식당·터미널·병원 등등 어딜 가도 노인들이 설 자리가 없더란다. 머뭇거리다 보면 괜히 위축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창구를 찾는 편이 훨씬 낫다고 한다. 신문 사설 면에는 ‘여기도 키오스크 저기도 키오스크 ---노인들 어쩌라고’ 하는 내용도 있었다. 스마트 폰으로 상징되는 디지털화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그 속도는 도시장년층도 피곤할 정도라 하는데 노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피로감 정도가 아니라 배우는 것을 단념하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할지 모른다는 하소연이다.
나도 어쩌다 규모가 큰 식당이나 버스터미널·커피점·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가면 위축이 든다. 다행히 일행 중 눈이 튼 사람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눈치가 보여도 젊은이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나는 용기를 내어 지난달에 노인복지센터 회원으로 등록을 했다. 한편으론 ‘벌써?’ 하는 의구심, 다른 한편으론 ‘잘했다’라고 스스로 부정과 긍정을 넘나들기도 했다. 요즈음 디지털 정보화 배움터가 만원이다. 노인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에게 키오스크 활용법을 알려준다고 한다. 나는 복지센터 회원으로 등록은 했으나 아직 프로그램 참여를 못 했다. 스마트 폰 초급반에 신청했으나 인원이 너무 많아 언제 내 차례가 올지 기다리는 중이다. 지난번 투어는 정보를 듣고 신청을 했는데 운 좋게 기회를 얻은 것이다. 듣고 배운 그것은 숙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날 배운 것을 잊을까 봐 저녁에 스마트 폰으로 택시 부르는 연습을 했다. 핸드폰에서 “티머니 GO' 앱을 찾아 목적지를 입력하고 확인을 눌렀다. 잠시 후 택시가 배정되고 차량 번호와 기사 핸드폰 번호가 뜬다. 도착 예정시간까지 알려왔다. 깜짝 놀랐다. ‘어! 연습인데’ 택시 기사에게 다급히 전화했다. 연습이라 미안하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다. 택시기사가 급한 소리로 ‘취소’를 누르라고 한다. ‘취소’할 줄을 모른다고 했으나 소용이 없다. 신청자가 취소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택시는 도착이 됐고 이미 결재도 끝이 났다. 연습치고는 확실했다. 택시를 부를 줄만 알고 취소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취소하는 방법은 내일 복지센터에 가면 배울 수 있다. 택시비가 날아간 것은 수강료를 낸 셈이다. 무엇이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오늘 배움을 시작한 것은 큰 용기다. 시작이 반이니 절반의 성공이다. 디지털 까막눈을 탈피하려면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복지센터 회원이 된 것도 후회가 없다. 나도 노인이 되어가는 나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