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이골 이 생원 집은 다른 집이 아니라 전에 호환 갔다 살아와 뜻밖에
삼박골 공소에서 주교까지 뵈옵게 되어 친정 식구, 시집 식구 다 함께
영혼상 쌓이고 쌓인 기갈을 풀어버린 서금순 데레사의 집이다.
그 해 가을 강 신부가 다시 삼박골 공소에 오시게 되어
판공성사를 받고 난 다음 그 해 겨울에 바깥노인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이른 봄 해토될 무렵에 안노인마저 찬류 세상을 하직하였으므로
이 비리버, 서 데레사 내외만 단출하게 남았다.
그들은 부모가 물려준 부대밭을 파먹으면서도 다른 속세의 욕심은 없이
평화의 보금자리 속에서 그날그날을 사주구령에 열심히 지냄으로써 만족하였다.
이제 이 평화스러운 데레사의 집도 주인댁의 입에서 토설되었다.
들을 만큼 들은 포졸 두목은 다른 포졸들을 쳐다보며 한 번 씽긋
소리없이 웃고 나더니 주인댁을 향하여 제법 점잖게
“주인댁, 이것 참 미안하오. 매우 수고하셨소.”
하고 물러앉으며 제가 볼일은 다 보았다는 표시를 하였다.
주인댁은 민망스럽고 불쾌하기 짝이 없어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부엌에 나가 있는 동안 포졸들도 한 사람씩 일어나 바깥마당에 나가 서서
두런거리고 있고 포졸 두목만 방에 앉아 있더니 이 두목 역시 조금 있다가
바깥마당으로 나간 다음, 술값은 낼 생각도 아니 함은 물론이요,
온다 간다 말없이 다 어디론지 가버리고 말았다.
용진골 앞의 행길에는 의기양양한 포졸들의 그림자가 흰 눈 위에 우쭐거린다.
이제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다가 오던 행길을 버리고 우편 골목으로
꺾어들어 올라가면 거기가 지금 이들이 향하고 가는 정삼이골이다.
점심때가 벌써 되었는지 마을에서는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흰 눈 속에 폭폭 파묻힌 이집 저집에서는 파란 연기가 한가로이 떠오른다.
“거 참, 조 참판네 며느리는 좀 얌전해. 우리가 잡아다 주었지만 참 사람은 아깝대...”
“아무렴, 그러니 이성칠이 아낙이 그의 형이라니까 이 역시 어지간할 테지....”
“그러기에 모두 풍겨 놓기 전에 그 집에 먼저 가 보자고 내가 그러지 않았어.”
이렇게 포졸들이 떠드는 것을 두목이 주의를 시켜 묵묵히 걸음만 걷는다.
원체 눈이 많이 쌓여서 행길에는 사람 발자국이 드물다.
성칠이 비리버 내의는 이미 군난이 난지라 신절이 위험함은
이미 느끼고 있는 바이지마는 오늘 무슨 일을 당할 줄이야 어찌 뜻하였으랴.
비리버는 한나절 동안 짚신 몇 켤레를 삼아 치우고는 이제 점심을 받고 앉아
자기 아내 데레사와 함께 재미있게 밥을 먹고 있었다.
포졸들이 벌써 자기 집을 에워싼 줄도 모르고....
조금 있더니 앞집 늙은 마누라가 밭은기침을 한 번 하고 갑자기 문을 열고 보니
“아이고, 점심 잡수십니다 그려!”
하고 미안해 한다.
“왜 그러세요, 들어오시지요.”
비리버는 반가이 맞이한다.
“누가 밖에서 찾는데요.”
“네, 잠깐 사랑에 들어앉으라고 말씀하여 주십시오. 내 곧 먹고 나갈 터이니... ”
이렇게 심상히 대답하는 동안 노파의 뒤를 다라 들어온 포졸 두 명이
뜰 위로 성큼 올라서서 문을 열고 있는 노파의 어깨 너머로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방안을 들여다보던 포졸이 심술궂은 눈을 비리버에게 던지며
“여보, 이 댁이 이성칠씨 댁이오?” 하고 묻는다.
“예, 내가 이성칠이오. 왜 그러시오?”
하는 비리버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포졸은 서슴없이 방안에 들어선다.
비리버는 밥숟갈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나
“아니, 임자는 어떤 양반이기에 이처럼 무례하게 남의 안방에 막 들어선단 말이오?”
하고 준절히 꾸짖어 본다.
비리버는 그제야 포졸이 무슨 이유로 자기 집을 습격하였는지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몰라 주저하는 동안 밖에 있던 포졸이 뛰어들어
홍사로 비리버를 결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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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누미님 오라버니 수술하시고 정신없으실 터인데 글 까지 올리셨군요. 신부님 빠른 쾌유를 기원드립니다. 감사..
저두 늘 감사!!!
감사합니다. 가끔 들어와서 부지런히 읽어봅니다. 밀려있던 것 오늘에서야 따라 왔어요. 넘 잘 읽고 있습니다. 무한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