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브에서 2010년도 미군의 아프칸 전쟁에서 병사들의 헬멧에 달린 카메라에 찍은 영상으로 만든 다큐를 보게되었다. 제3자가 촬영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행동을 찍은 것이기 때문에 상황을 이해기가 혼란스럽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생생했다. 월남전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숨을 죽이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상에서 전투중 부상 당한 병사를 구급용헬기로 호송하는 장면에서 숨이 멎을 뻔 했다. 왜냐하면 56년 전 경험 때문이다.
군에 입대할 때 뭔가 좀 있어 보이려고 인사기록카드에 대학 때 VUNC(지금은 없어진 용산 미군기지 내에 있던 UN군 사령부 방송)에서 견습을 한 것을 근거로 'VUNC 아나운서'라고 과장 기록을 했었다. 당시 유엔군사령부 방송국이었지만 대북 전문 방송이기 때문에 직원이 전체가 한국 사람이었고 나는 남한의 대학생활을 소개하는 프로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기록을 본 부관부 인사과장은 내가 유엔군 사령부에 근무했다고 생각해서 영어를 잘하는 것으로 판단을 했던 모양이다.
미군 헬기 중대에 헬기 통역병으로 파견 나가 있는 병장이 한 달간 한국으로 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내가 뽑혀서 자리를 메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한국군은 헬기가 없고 헬기 수송은 미군이 맡아서 했기 때문에 엠브런스에 해당하는 환자수송 헬기도 전적으로 미군에 의존 했었다.
긴박한 전투현장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헬기로 수송 하는 일은 미군들의 목숨까지 달린 극도로 위험한 임무였다. 휴가를 떠나는 병장이 인수인계를 하면서 내 임무는 전투현장에서 무전으로 땅에 있는 한국군과 통화를 해서 헬기가 랜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순한 일이니 너무 걱정 하지 말라고 했다.
헬기를 타고 작전을 나가서 내릴 때는 헬기가 지상에 착륙하지 않아도 뛰어 내리면 되지만 탈 때는 헬기가 내릴 만한 평평한 공간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사방이 탁 트인 개활지는 적에게 노출될 위험성이 있어 불안하기 때문에 헬기가 내릴 만한 곳을 확보하기 매우 어려웠다. 때로는 급히 사방의 작은 나무들을 잘라내야 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헬기가 적당한 착륙지를 찾지 못해서 우리가 있는 주위를 맴돌기도 하고 반대로 부대가 헬기가 내릴 곳을 찾아서 신속하게 이동을 해야만 하기도 했다. 하여간에 헬기를 타고 내리는 일은 극도로 긴장되어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긴급한 부상자를 응급헬기에 태우는 일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더욱이 미군은 조금이라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하고 아래에 있는 한국군은 초긴장 상태에서 발버둥을 쳐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혹시라도 통역을 잘못 할까봐 두려워서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기도하면서 하루 종일 분주히 뜨고 내리는 헬기 소리 속에서 혹시나 응급헬기가 뜨지 않나 하고 긴장 상태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도 당시는 전쟁말기여서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가서 거 내가 있는 동안 한 번도 출동할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들 사이에서 지내려니 내 영어가 객지가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당시 우리는 호송헬기를 더스토프라고 불렀다. 사실은 메드백 (MEDVAC-Medical Evacuation)이었는데 ‘먼지가 날린다.’ 는 뜻의 'Dust Off' 이었던 것이다. 즉 우리 식으로 하자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뛴다. 혹은 눈썹이 휘날리도록 뛴다.’의 의미 정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