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밤"을 지나 오늘은 11월 1일이다. 1자가 세개 겹치는 좋은 날이다. 35년 전 오늘 나는 가난한 학생이자 직장인의 신분으로 집사람을 만나 어린 나이에 성급하게 혼례를 올렸다. 서로가 사는 것이 힘겹고 각자 비용이 소요되니 그럴 바에 합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화려하기는 커녕 너무도 평범한 최소한의 절차만 갖춘 의식이었다. 여유롭지 못한 생활에 온갖 풍파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행복을 가꾸려 노력했고 두 아이들을 장성시키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긴 시간을 흔들림 없이 사는 이가 있을까. 우리도 부단히 싸우고 화해하면서 인고의 생활을 견뎌 왔다. 그래서 지금은 이미 미운정 고운정 다 든 베테랑이 되었다. 2년여 주말부부로 살고있지만 그 재미마저 줄어 휴일에도 올라가지 않고 따로 놀기가 예사이다. 그래서 35주년 결혼 기념일도 각자 보내고 있다. 그래도 다음 주 7~8일에는 이 곳에서 집사람과 만나 정든 멤버들과 고별전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35년을 함께 기념하고, 월례대회를 해온 지인들과 이 지역의 그린에 아쉬운 작별을 고하려고 한다.
오늘 우리의 吉日에 골프방송에는 LPGA와 KLPGA의 명승부가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LPGA경기는 중국의 해남도에서 열렸다. 한국 선수 대부분이 중하위권으로 처지고 박인비와 김효주는 부상으로 기권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김세영이 상위권에 살아남아 끝까지 우승경쟁을 했고 마지막 날 마지막 홀에서 혼자 버디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마음졸이며 응원했는데 기대에 부응하여 3승을 달성한 신인왕 후보에게 심심한 축하를 보낸다. 한국 거제도 경기에서는 김혜윤이 8언더파의 코스기록을 달성하며 3년만에 우승했다. 무승의 김해림, 배선우 등을 응원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중견선수의 우승은 감동적이었고, 후배들에게도 많은 메시지를 줄 것이라 생각되어 흐뭇하다.
나 역시 오전 한나절을 골프로 보냈다. 정규홀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하는 곳 에스페란자다. 최근에 강의온 모 프로에게서 원포인트 레슨을 받고 그립과 자세를 교정하고 있는 중인데 혼자하면 아무래도 잘 안된다. 어깨 턴을 더 하고 볼에 더 다가서라는 등 송곳 같은 지적은 역시 프로의 눈이다. 내 약점을 꿰뚫고 있어 신뢰가 갔고 그의 말대로 하면 문제가 해결될 듯 한데 쉽지가 않다. 오늘 9홀 플레이는 6오버를 쳤다. 평소보다 모두 잘 안됐다. 샷도 그렇고 퍼트도 살짝살짝 빗나갔다. 그런데 9번 아이언으로 한 20미터 어프로치 하나가 버디로 이어져 그나마 기분좋게 돌아올 수 있었다.
완주에서의 내 근무는 이제 꼭 2개월을 남기고 있다. 그동안 집을 떠나와 주말부부로 살아온 것도 어느새 2년 반이 되었다. 비록 집사람과 떨어져 있어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혼자 살기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끼니를 스스로 해결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방법도 익혔으니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하면 좋은 경험이다. 오히려 이 자유롭고 간섭없는 생활을 마감하고 귀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다들 근무를 마치고 나면 뭘 할거냐고 묻지만 현재로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오랜 근무를 마감했으니 우선 쉬면서 긴 안목으로 제2의 인생을 생각해 볼 것이다. 그동안 따뜻한 시선으로 격려하고 이끌어 주신 모든 이들의 배려에 감사하면서 오늘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