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자 “일본 활동 38년간 의상은 항상 한복… 날 지키는 ‘갑옷’입니다”
[나의 현대사 보물] [8] 가수 김연자
최보윤 기자 입력 2023.06.06. 03:00 조선일보
올해는 대한민국 수립 75주년이다.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룩했다. 그 치열했던 시간을 담은 현대사의 보물(寶物)을 발굴한다. 평범해 보이는 물건에도 개인의 기억과 현대사의 한 장면이 깃들어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연극배우 손숙, 영화인 신영균, 만화가 이현세, 시인 신달자, 김장환 목사에 이어 가수 김연자의 ‘보물’ 이야기를 들어본다.
하얀색 치마저고리 위에 붉은 꽃이 피었다. 초록색 앨범 재킷에 새겨진 타이틀곡은 ‘여자의 일생’(女の一生). 1968년 가수 이미자가 발표한 노래를 일본어로 리메이크해 1977년 일본에서 발표한 김연자 첫 데뷔 앨범이다.
“성공하겠다”며 타국으로 홀로 떠난 딸에게 어머니는 “스물한 살에 ‘꽃가마’를 탈 것”이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을 전하며 멀리 있는 딸을 응원했다. 호기롭게 떠났지만 외롭고 힘들었다. 김연자는 엄마의 꽃가마를 떠올리며 꽃이 크게 그려진 한복에 위로를 얻었다. 한복은 어머니의 품 같았다. 폭발력 넘치는 성량을 조절하기 위한 일명 블루투스 창법(마이크를 입에서 최대한 멀리 떼는 것)에 화려한 의상까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무대를 만들어내는 가수 김연자(64). 1974년 데뷔해 올해로 가수 인생 50년을 맞는 그녀는 자신의 보물로 ‘한복’ 이야기부터 꺼냈다.
◇일본 활동 38년. 무대 의상으로 늘 한복 입어
일본 활동이 처음부터 성공한 건 아니었다. 1977년 도리오 레코드사 오디션에 합격하며 일본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3년간의 활동 계약 기간이 끝나고 기다린 건 해고 통보. “일본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얀색 한복이 그려진 LP판은 재고로 남아 누런빛으로 변해갔다.
데뷔 후 7년 넘게 무명이었다. 김연자는 “한복의 커다란 꽃무늬처럼 언젠간 만개할 거다”라고 스스로를 다졌다. 한국으로 돌아와 1981년 트로트 메들리 ‘노래의 꽃다발’로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 취입한 ‘진정인가요’는 최초의 히트곡이 됐다. ‘수은등’(1984)까지 연이어 히트하며 KBS 올해의 가수상과 MBC 10대 가수상을 거머쥐었다.
화려한 바지 정장과 쇼트 가발을 착용한 김연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뷔 이후 줄곧 그의 옷에 수놓인 꽃무늬가 환하게 빛났다. /상연기획
실패했던 일본 무대에 다시 진출하려고 마음을 다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찬가인 ‘아침의 나라에서’를 일본어로 개사해 발매했다. 서울올림픽 폐막식에서 부른 터여서 일본에서도 인지도가 높았다. 일본을 처음 찾았던 시절처럼 한복을 다시 입었다. “한복은 우아해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주는 심리적 갑옷이기도 하지요.”
이번엔 ‘대박’이었다. 1989년엔 일본 가요계 최대 축제이자 대표적 연말 가요제인 홍백가합전에 처음으로 초청됐다. 당연히 한복을 입었다. 엔카에도 도전해 ‘암야항로(暗夜航路)’ ‘뜨거운 강’ 등 여러 엔카곡을 1위로 올려놓았다. 한복은 일본 관객에겐 찬사를 불러일으켰고, 동포들에겐 위로를 건넸다.
◇북한서 공연... 김정일 “한복은 남조선 것이 예쁘다”
“한복은 남조선 것이 더 예쁘지 않습니까?” 2001년 4월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 공연을 간 김연자에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말했다.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북한 단독 공연을 치른 김연자는 김정일 위원장을 방문하러 가는 자리에 한복을 차려입고 갔다. 북한 고려호텔에서 구한 비단 원단을 이용해 북한 디자이너가 맞춰 준 옷이었다. 원단은 직접 골랐다. 일본서 공연할 때 입었던 한복은 한국 옷감을 이용해 지었지만, 북한에 대한 배려로 북한 옷감으로 옷을 만들었다. “자기네 것이라면 더 좋아하려나 했는데 솔직하게 그렇게 말하더군요. 사실 원단이 옛날 식으로 두껍고 무거워서 편하지 않았거든요.”
2001년 4월 북한 초청으로 평양 공연을 간 김연자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찍은 사진. /상연기획
김연자는 김정일 위원장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라고 한다. 평양 공연에서 ‘칠갑산’ ‘정선아리랑’과 북한 노래 ‘휘파람’ ‘임진강’ 등을 불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도 북한 관객들과 함께 불렀다. 이전에도 방북 예술단이 있었지만 단독으로 공연한 가수는 김연자가 처음이었다. 김연자의 성량에 김정일은 놀랐다고 했다. 이듬해에도 다시 단독 공연을 했다. 다시 김정일의 초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연자는 한국 가수였지만 북한에선 일본 가수로, 일본에선 북한 가수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일본에선 그가 월북 작가인 박세영의 ‘임진강’을 불렀다며 북한 가수라고 비난했다. “NHK 방송에 왜 북한 가수가 나오느냐고 항의가 빗발쳤지요.” 노래 하나 부른 것으로 일본과 북한 사이의 정치적인 문제에 휘말리게 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김연자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렇게 말한다. “저는 한국인 김연자입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전 똑같습니다.”
◇'아모르 파티’ 덕에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가수로
한산 모시로 제작한 김연자의 의상. 우리말이 적혀 있다. /오종찬 기자
김연자는 여러 히트 곡 중 가장 아끼는 ‘보물’로 ‘아모르파티’를 꼽았다. 2013년 발표한 이 곡은 4년 뒤 갑자기 차트를 휩쓸었다. 젊은이들이 강한 비트의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장르에 열광하면서 이른바 ‘역주행’했다.
고마운 노래였다. 일본에서 최고의 가수로 날리는 동안 한국에서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2009년 ‘십분 내로’라는 히트곡을 냈지만 곡이 알려진 만큼 김연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아모르파티’가 갑자기 차트를 휩쓸며 김연자의 이름을 다시 한번 알린 것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어 대학 축제에도 가게 됐다.
일본에서는 한복을 고수했지만, 한국에서는 바지 정장으로 바뀌었다. 신나는 노래와 함께 무대를 휩쓸다 보니 화려한 바지 정장과 쇼트 가발이 그녀의 새로운 상징이 됐다. 화려한 꽃무늬는 데뷔할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김연자는 “최근 가장 아끼는 한복”이라며 바지로 된 의상을 보여줬다. 한산 모시 장인이 한땀 한땀 제작했다고 한다. 한글 글씨가 금사로 수놓여 있었고, 보석도 화려하게 빛났다. 김연자는 오는 6월 말 일본에서 공연을 열 예정이다. 8월에는 신곡 발표도 계획하고 있다. 그녀 인생을 찬란하게 꽃피게 했던 일본에서 아끼는 한복을 다시 입을 작정이다. “이제 한복을 다시 꺼내 입을 시기가 돌아왔어요. 가슴 뛰는 대로 사는 ‘아모르 파티’가 다시 한번 펼쳐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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