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을 겪고 난 뒤, 오늘은 손님이 없어도 조금은 괜찮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출발해보고자 했습니다.
오늘도 다들 바쁘시겠지...라는 생각으로.
9시 15분,
방송을 키니 저 윗집에서 어르신이 내려오고 계십니다.
지난주엔 못뵀는데, 오늘은 나오십니다.
"오늘 다 나가브런~ 암도 없어~" 하십니다.
무슨 말씀인가 싶었더니, 마을 내 주민 단체로 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상시 늘 나오던 뒷집 어르신도, 윗집 삼촌도 아무도 안나오셨습니다.
유일하게 어르신만 나오셔서 사셨습니다. 오늘 코스는 오전이 바쁜 코스인데, 오전 마을이 다 없다고하니 오늘 장사도 글렀다 싶습니다.
"어르신은 왜 안가셨어요~? " 라고 여쭤보니
"나는 걷지도 못하니, 따라가지도 못하지~" 하십니다.
아마 마을 분들도, 신경쓰였을 것입니다. 신체적으로 어려우신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지, 또 우리는 어떻게 더 해야할지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어르신께는 아랫동네 가보겠다고하며 천천히 이동해봅니다.
9시 35분,
회관에도, 마을 곳곳에도 정말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다 나가셨나봅니다. 마을 주민 다 같이 놀러간다니 좋은 일이긴한데, 저는 한 편으로는 쓸쓸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잘 다녀오시길 바랄뿐입니다.
9시 50분,
오전에 어르신들이 거의 없다보니 다른 마을들도 빨리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물 옆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 물건을 고르고 집으로 모셔드려야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 황급히 저 아랫길로 떠납니다. 쫓아가기도 어려웠지만, 옆에 계신 다른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로,
"저 양반, 본인이 싫으면 저렇게 내 빼~~" 하십니다.
오늘은 물건을 안사려고 한다는 그런 뜻이었습니다. 걷는 걸음이 불안하기만 하였지만 생각보다 매우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시는 어르신. 어르신의 또 다른 특징 하나를 알아갑니다.
10시,
저 멀리서 어르신이 손짓하십니다. 이번주 제사 지내야 하신다며 청주랑 다른 것들 주문 하십니다. 청주는 매장에 없어 미리 떼와야합니다. 어르신께선 아쉬운대로 막걸리를 이야가하십니다. 그러곤...
"막걸리, 계란.....그리고 식혜.... 세개 맞지?" 하십니다.
맞다고 말씀드리는데, 또.."막걸리... 계란... 식혜" 맞지? 하십니다.
필요한 것들이 있었는데, 혹시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못살까봐 몇번을 다시 되뇌이십니다. 어르신께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 하시라고 말씀드리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10시 10분,
여기도 회관은 텅텅 비었습니다. 가려던 찰나 전화 옵니다.
"점빵차 이리 오나?" 회장님었습니다. 손님이 없던 찰나 반가운 전화였습니다. 바로 가겠다고 말씀드리며 회장님께 물건을 드렸습니다.
10시 20분,
이번주까지도 제사를 지내시는 집안이 많은가봅니다. 오늘도 회관에서 차를 세우시곤, 청주 주문을 하십니다. 백내장 수술을 하셨는지 썬글라스를 끼고 계십니다.
"나 못알아보겠어?" 하십니다.
바로 여쭤보곤 누군지 알아뵙니다. 어르신 주문하는 사이 다른 어르신 오셔서
"회관에 술이 없어~ 한 박스만 내려줘 하십니다." 그 사이 또 다른 어르신 오셔서,
"당숙모, 막걸리 하나 좀 사줘봐~" 하십니다. 그러곤 바로 막걸리 2병 큰걸로 사시는 어르신. 마을에는 집안 사람들끼리 가까이 사시는 분들이 많아 가까운 친척은 아닐지라도 같은 종가집의 혈연 관계가 많아 서로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주 의외의 관계에서 친인척 관계였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10시 40분,
손님이 계속 없던 찰나, 저기서 어르신이 오십니다.
"나 밭에서 일하다 와서 돈은 안갖고 왓는데, 올려줄텨?" 하십니다.
어르신들은 밭에 일하러 간다 싶으면 최대한 편안한 복장으로 귀중품은 모두 두고 나오십니다. 핸드폰도 때로는 두고 와서 연락이 안될 때도 있습니다. 어르신은 이것저것 고르시더니 올려놔 하십니다.
"어르신들 농사 일이 시작되서 다들 바쁘신가봐요~ 오늘 참 사람 없네요~" 말씀드리니,
"그래도 나는 사가지 않나~?" 하면서 위안을 주십니다. 외상으로라도 갈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11시
여기도 어르신이 집에 안계십니다. 오늘 뭔 날인가 봅니다. 어르신이 주로 끌고 다니는 차도 없고, 동네에 무슨일이 일어난건가요.
11시 20분
뒤로 돌아가는길이 막혀서 시정으로 와서 후진으로 어르신집으로 올라갑니다.
"아니 어째 이렇게 오나?"
저 위엣집이 공사하고 있어서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어르신께 오늘 손님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드리니,
"그럼 내가 많이 사지 뭐~ 어서 팔아보게~" 하십니다.
칼국수 면부터 빨래 비누까지 5만원이 넘게 사주십니다.
"아니 빨래 비누도 있었어? 내가 이거 자주 사는데, 이거 읍에서 사서 갖고 들어올라면 참 무거워~" 하십니다.
점빵차에 무엇이 있는지 유추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없을 것 같아서 말씀 안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필요한 것이 있다면 늘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11시 30분,
"내 지난번에 하나 사준다고 했지~? 애가 몇살이랬지? 이거 잘 먹나?" 하십니다.
지난번에 과자 받으신 이후로, 그 답례로 하나 사주신다고 합니다. 답례를 바란것은 아니었지만, 감사했습니다. 어르신은 그러곤
"진간장도 하나 줘봐~ " 하시며 물건 하나 더 사주십니다.
늘 군인 PX를 이용하시던 어르신, 가격 비교가 남달랐지만 점빵차 만날 때마다 뭐라도 하나 더 사주시려고 하시는 어르신의 마음이 더욱 감사했습니다. 오늘도 어르신의 아들 이야기 자랑은 끝나지 않습니다.
11시 45분
이곳 회관도 오늘은 모이지 않나봅니다. 오전은 이걸로 끝나야하나봅니다.
13시 40분,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많이 찾으셨습니다.
"이제 울 아저씨가 술은 안마시고 막걸리만 드시니, 내 1주일에 4병은 받아야겠소" 하십니다.
그 옆에 계시던 어르신도 "나도 한 병 주게나" 하시더니 뒤에 어르신도 "난 두병 주게나 하십니다."
어르신들은 막걸리를 끓여서 설탕 넣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하십니다. 처음들어보는 제조법인데, 정말 맛있나 싶긴했지만 어르신들은 그렇게 종종 드신다고 합니다.
2병을 사신 어르신은 1병은 4병 드신다는 어르신 어르신댁에 한 병 놔달라고 합니다. 고마운 마음이 있으셨나봅니다.
다른 어르신께서는
"어이~ 우리집 공병 갖구가게~ 아 그리고 욕하지 말게나~ 내가 정리 해놨는데, 옆집 할망이 잘못해놔서 병이 좀 더럽네~" 하십니다.
알겠다고 말씀드리며 다음주에 갖고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4시,
어르신께서 회관으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아니 뭣땜시 그렇게 늦는감?"
늘 우유 받는 어르신이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항상 점빵차가 많이 팔려야함을 이야기하시며, 점빵차가 늦어지는 것을 이해해주십니다. 오늘도 우유랑 반찬을 사시는 어르신.
"조심히 혀~" 하시며 인사해주십니다.
14시 10분,
점빵차를 반가워해주시는 어르신 부부
"갖고 왔는가? "
늘 댓병 2개를 사시는 어르신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혼합잡곡을 추가로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어르신께서 주문하신 물건 함께 드렸씁니다. 그러곤 짜투리 돈을 찾는 사이, 어르신의 남편분께서 아로나민 통에서 동전을 꺼내주십니다. 집 앞까지 점빵차가 오는 것이 그렇게 좋으신가봅니다. 늘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르신의 표정에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14시 30분,
여기도 사람이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어르신과 함께 이야기하던 중 따님께서는
"수정과는 없지요?" 하십니다.
수정과를 찾는분은 또 처음이었습니다. 물건을 갖고올까 싶었지만 동네에서는 주로 직접 끓여드시니 사드시는 분들은 적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도 알겠다고 하며 이해해주셨습니다. 잠시 집에 갖다 오신 따님.
"이거 금화규에요. 물도 끓여먹을 수 있어요. 지금 심는 시긴깐 갖고 가서 심어요~" 하십니다.
꽃 안에는 씨가 최소 50개 있다는 어머님의 말씀. 생김새는 접시꽃하고 비슷하지만, 먹을 수 있다는 따님의 말씀에 조심히 갖고갑니다. 그러고 떠나려던 찰나 어르신들이 "저 윗집도 가봐~" 합니다. 일이 있으시진 않으실까 싶었지만 안부차 들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영민농원에 밑반찬 배달 지원도 함께 해야하는지라, 조금 빨리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집에 가뵈니 어르신이 나올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아이고 왔어~ 왔으면 갈아줘야지~" 하십니다.
어르신께는 일부러 사실 필요는 없다고 하였으나, "젊은 사람이 먹고 살겠다고 이리 하는데, 뭐라도 해줘야지~ 괜찮아~ " 하십니다.
그러곤 영민농원 밑반찬 배달 지원 간다고 말씀드리니,
"영민농원엔 안들려요? 거기도 살 사람 있을텐데" 하십니다.
그곳은 들리는 시간에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하니, "거기 주민들도 다 돈 많고, 살 사람들 많아~ 근데 점빵을 잘 이용 안하는 것 같아~" 하십니다.
늘 점빵의 매출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어르신. 어르신께는 조금 더 신경써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곤 이동하였습니다.
점빵차가 다니는 코스에는 올해 다시 시작하는 밑반찬 지원 대상자 집들이 있기에, 이동하며 배달을 지원하곤 합니다. 오늘은 총 6가정, 늦어지지 않도록 부랴부랴 다닙니다.
15시,
오늘도 회관에 어르신들이 계십니다. 부녀회장님도 계십니다.
"도시락 갖고 왔죠? 우리마을꺼 줘요~" 하십니다. 이 곳은 한 집이었습니다.
"어? 내가 두 집 추천 했는데... 아 아마 자녀가 근처에 살아서 그런가보네~" 하십니다.
자녀가 가까이 있어도 챙기기 어려운 것이 요즘 삶입니다. 하지만 모든 집을 다 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누락이 되는 과정이 있다면 저희도 안타까움이 있긴합니다만, 그래도 사정을 다시 말씀드리며 이해할 수있도록 설명해드립니다. 부녀회장님은 별 다른 말씀없이 알겠다고하며 넘어가셨습니다.
15시 30분,
어르신께서 저 아래 대문에서 기다리십니다.
오늘도 물건을 사시나 싶었습니다.
"음.. 이거하고, 저거하고... 잠깐만 기다려봐. 내 회관에 좀 갖다 올테니." 하십니다.
그런 사이 다른 어르신 한 분,
"아니 결제를 좀 해주고 가지, 장사꾼 붙잡아 두는 건 첨 보네~" 하십니다.
"내가 맘같아선 내가 결제해주고 보내고 싶네~"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던, 저렇게 말씀하시던 다 점빵을 걱정해주십니다.
그 사이 어르신이 오십니다. 그러곤 결제를 해주나 싶었는데, 갑자기 퇴비를 뿌려달라고 하십니다. 그러다
"아니, 퇴비를 저기 옮겨만 놔줘~" 하십니다.
제가 오늘은 서울을 갈 일정이 있어 작업복을 입고 오지 않았는데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어르신 부탁대로 해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서 20키로 퇴비를 어찌 옮기나 싶었습니다.
"자네 아니면, 내가 이걸 어찌 옮기겠나. 정말 고맙네 고마워~" 하십니다.
언제까지 농사를 지어야하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끝까지 내 농사를 하시는 어르신의 의지를 보면 대단하시다 싶기도 합니다.
퇴비를 다 옮기고나서야 결제 해주시는 어르신. 연신 고맙다고 인사해주십니다. 어르신을 마지막 손님으로 맞이하며 오늘 하루도 끝났습니다.
어제 오늘 정말 많은 분들이 안계셨습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할 시기라, 주간 시간엔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지나가는 차량 외상이라도 물건 갈아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장사 잘하고 갑니다. 다음주에는 어르신들 농 작업이 얼마나 되셨는지 여쭤보며 다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