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5.日. 흐리고 밤 늦게 비.
03월05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오늘 일요법회 법당안의 분위기가 조금은 무거워보였습니다. 날씨도 구름진데다가 오늘따라 도반님들의 복장도 검은 색이나 회색 옷 등 어두운 색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다 오늘따라 일요법회의 젊은 피인 태평거사님과 평택보살님과 김화백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량덕보살님은 어제 시어머님 제사를 지내느라고 아무래도 피곤하실 겁니다. 무진주보살님은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님을 함께 모시고 있는 중이라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일 것입니다. 예천동보살님은 친정어머님께서 부상 후 아직 회복 중이라 시간 날 때마다 보살펴드려야 해서 아무래도 힘이 들 것입니다. 묘길수보살님은 다음다음 주경에는 친정어머님을 모시러 고향에 다녀온다고 합니다. 가벼운 치매기가 있는 어머님을 시간이 허락만하면 집으로 모셔다가 함께 지내는 일이 쉽지 않을 듯한데 항상 즐겁고 밝은 얼굴입니다. 밝고 고운 얼굴과 덕성스러운 마음씨에 여러 가지 호리병 닮은 몸매뿐만 아니라 효녀孝女고 효부孝婦들인 일요법회 도반인 보살님들입니다. 일요법회 대표 젊은 피인 주지스님은 독야청청獨也靑靑으로 생생한 표정이었습니다. 부지런하고 정갈한 성격 때문에 삭발을 자주 하시는지 머리가 항상 푸르스름하십니다. 그리고 법당 안에 걸어두었던 탱화幁畵 두 점을 종무소로 옮겨놓았습니다. 탱화가 안 보여서 주지스님께 물어보았더니 미약하지만 탱화에 누군가 손상을 입혀놓은 듯해서 보호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스님과 함께 종무소로 들어가 탱화를 살펴보았습니다. 탱화 두 점 중 신중탱화 아래 부분에 가늘지만 살짝 긁힘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상처를 냈다기보다는 손으로 만져보았거나 물건이나 날카로운 부분으로 스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당이 자그마해서 벽에 걸어놓은 탱화가 사람의 몸에 닿을 수도 있고 호기심에 탱화를 만져보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탱화는 보통 불상 뒤편이나 벽 높은 곳에 걸려있지만 우리 절 콩 법당에서는 우리들과 나란히 서있기 때문에 매우 친밀한 느낌이 들어 일반 신도 분들께는 호기심이 일기도 할 것입니다. 이번에 종무소로 옮겨놓은 두 점 탱화는 사실 아주 뛰어난 필력에 영험이 가득한 장엄불구莊嚴佛具입니다. 지난 가을엔가 백일기도를 하러 온 어느 거사님이 따님 생일을 맞아 탱화 앞에 백설기를 공양물로 올려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검은 기운서린 영험한 탱화 아래 하얀 김 오르는 백설기 공양물이 참 잘 어울리고 아름답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절에 오랫동안 다녀왔던 우리들 눈에는 절집의 그런 예사로운 풍경도 가슴이 뭉클할 만큼 감성이 가슴 밑바닥부터 밀물져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광경을 무의식중에라도 무수히 봐오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느껴보기 힘든 평범平凡 속의 비범非凡을 재발견하는 순간의 호사豪奢를 누려보기도 한답니다.
미닫이창 밖으로는 탄구스님과 새로 오신 행자님이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탄구스님은 다양한 사회경력을 갖고 있는 만큼 소탈하고 말과 일에 힘이 있는 스님이십니다. 밤색 행자복을 입고 있는 행자님은 앞과 뒤가 반짝반짝 빛날 만큼 하얀 머리에 절집에서도 요즘 보기 드물도록 바짓가랑이 끝에 행전行纏까지 차고 있습니다. 행전이란 야구선수의 스타킹 같은 것입니다. 바지에 행전을 차고 안 차고의 차이는 스님 자세의 날선 각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누운 스님을 위한 행전은 없다.’ 라는 말은 방금 제가 만들어낸 말입니다만 잠자리에 누울 때는 반드시 행전을 풀기 때문에 행전은 늘 긴장과 깨어있음을 의미합니다. 탄구스님과 행자님의 공통점은 일을 잘 하는 것이라고 모두 말씀을 하십니다. 일을 잘한다는 의미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과도, 일을 많이 한다는 것과도 일견一見 통하는 말이지만 그보다는 일을 해야 할 때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이를 테면 일속과 일머리를 잘 알고 잘 파악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탄구스님은 맞는 말인데 행자님은 더 지켜봐야할 듯합니다. 그리고 척 보면 아시겠지만 ‘누운 스님을 위한 행전은 없다.’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라는 영화제목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 것입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2004년도 출간된 코맥 맥카시의 원작소설을 충실하게 편집해서 코언 형제가 감독한 동명의 장편영화입니다. 영화 제목은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에서 따온 구절로 본래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인데 ‘No country for old men’을 따서 제목을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원작과 제목에서도 잘 나타나있지만 세기말적인 건조함와 인생의 절망감을 지향하고 있는 영화라 배경음악이 전혀 없는 영화이면서 마지막까지 새로운 희망이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송아지 눈알을 번뜩이며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이 산소통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청부업자 역의 스페인 출신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가 몰입도를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인생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2008년도 아카데미상을 휩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사한 경우로 1994년도 프랑스 제작 뤽 배송 감독 영화인 ‘레옹’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영화중 부패한 마약단속반 반장 역을 맡고 있는 게리 올드만의 정신병적인 연기는 연기란 무엇인지에 대답을 하는 교과서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저런 역을 맡아서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물욕에 눈을 뜬 큰스님이나 돈에 치인 종합병원 원장이나 일감이 끝없이 넘쳐나는 대기업 CEO보다 때론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공양간에 들어가면 예전에는 차실茶室 방문이 활짝 열려있었는데 지난 동안거 이후로는 항상 차실 방문이 닫혀있었습니다. 지난 동안거 중에 예기치 못한 염궁선원 화재로 인해 방사가 부족해서 차실을 선방의 두 분 스님 거처로 사용했기 때문에 동안거가 끝난 뒤로도 방문이 닫혀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전 약 3년가량 차실을 차담과 대화방인 활짝 열린 공간으로 활용했던 것은 말짱 잊어버리고 근래 3개월가량의 잔상이 눈에 남아서 여전히 차실을 닫힌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는 내 감각에도 스스로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상황에 금세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습관으로 정착해가는 과정을 차실 방문과 내 시선과의 관계關係를 통해 선명하게 느껴보는 중입니다. 그런 이유로 예전 같으면 차실로 몰려 들어가 미닫이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을 즐기면서 한 분 도반님이 팽주 자리에 앉아 재빠른 손놀림으로 방금 뽑은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주고받을 터인데 오늘은 공양간 밥상 주변에 둘러앉아 쌀 튀밥을 집어먹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을 네 주로 나누어본다면 일요법회를 마치고 점심공양 후 오후시간을 첫 주는 108배를 하고, 두 번째 주는 산행을 하고, 세 번째 주는 대비주 정근을 하고, 네 번째 주는 울력을 하면 어떻겠냐는 주지스님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찬성을 하였습니다. 아참, 일요법회를 마치고 법당 마루를 막 나서는데 어떤 등산객 차림의 남자분이 돌계단에 발을 올려 딛으면서 도량 마당이 충분히 넓은데 낡은 건물을 싹 치우고 새로 대웅전을 크게 지으면 좋을 것 같다면서 한번 지으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글쎄, 내가 주지스님도 아닌 다음에야 뭐라고 선뜻 대답하기가 난처했으나 법회가 끝나고 법당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나를 아마 신도회회장쯤으로 착각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야 커다란 대웅전을 반듯하게 지으면 좋기야하겠지만 그게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일이라서요... 라고 우물거렸더니 그 남자분이 나를 가리키면서 하는 말씀이 “턱 보니 충분히 하실만한 것 같은데 한번 그렇게 해보시지요.” 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관음보살님께서 등산객으로 화化하여 하시는 칭찬 같아서 귀로 듣기에는 좋으나 마음에는 살짝 걸리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글쎄 그럴 때가 되면 해봐야겠지요. 그럼 거사님께서도 한쪽 어깨를 빌려주시면 일이 더 쉽게 되겠네요.” 라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건 그런데 우리 절 천장사를 내 관점으로 지켜봐서는 번듯한 대웅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경허스님의 자취가 남아있는 인법당과 수월스님 후원은 원형을 간직한 채로 잘 보존을 하고 소실된 염궁선원 자리의 축대를 땅바닥까지 해체해서 다시 정리한 후에 기초를 든든하게 한 후 마주보고 있는 성우당과 조화를 이루도록 삼층 건물로 올려서 선방과 요사와 스님들 편의시설을 확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성우당은 그야말로 신도들을 위한 열린 공간이 되어 활기차게 운영이 될 것입니다. 물론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