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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젖줄 금강.26 - 전해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다르다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담이야 한다. 그래서 답사를 하고 순례나 확인이 필요한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금강 천리 트레킹도 금강을 이해하는데 큰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는 것이다. 직접 보아야 감탄을 스스럼없이 토해내고, 난개발이나 오염된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단순한 메시지의 전달로는 상식선을 넘지 못하기 쉽다. 직접 봄으로써 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건전한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현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수시로 그 모습이 바뀔 수 있다. 생생한 현장에서 판단능력을 키워주고 자신을 돌아보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자책을 느끼게 한다. 반성과 깨달음을 준다. 능동적 사고를 길러줄 수도 있다.
냇물이라고 항상 같은 냇물이 아니듯 강이라고 같은 강줄기가 아니다. 봄날 강 흐름이 다르고, 여름 가을 겨울이 다르다. 주위에서 꾸며지는 분위기가 다르다. 어떻게 분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처럼 드러낸다. 금강도 자주 들러보아야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된다. 비로소 금강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 있다. 작은 냇물 하나도 수시로 변하지 싶은데, 천리 길 금강이라고 항상 같은 모양새일 수는 없다.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물론 그 뼈대는 그렇게 단시일 내에 변화가 없다. 하지만, 그 안에 크고 작은 물결처럼 어우러지는 생태계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이듯 그때그때 새로운 몸짓처럼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며 다른 느낌이다.
강을 중심으로 우리의 지혜로운 삶은 시작되어 발전하였다. 때로는 가뭄과 홍수를 겪어가며 순탄치만은 않았음에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그 속에서 선조들의 생활상이나 민속자료를 찾고 나아가 역사의 한 단면을 본다. 비록 무지렁이일망정 어려움을 딛고 끈질기고도 억척스럽게 살아온 삶이 아니던가. 우리의 역사는 그렇게 강물처럼 유유히 이어져 왔고 또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살았고 강물을 보며 살아왔다. 강물이 줄어듦에 안절부절 하였고 강물이 넘치면 또한 슬금슬금 하늘의 눈치를 보았다. 순간의 분노가 치밀어도 강 그 자체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천재지변이었고 오로지 하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로 여겼다.
천재지변을 놓고 하늘과 다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냥 조용히 피해가거니 최소한으로 그치기를 바랐다. 그렇게 소망을 이뤄주며 타협하듯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되었지 싶다. 그래서인가 쉽게 금강을 등지고 떠나지 못했다. 그렇게 그곳에 머물러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즘 개발의 붐을 타고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너무 이해 타산적이고 약삭빨라진 것이다. 나만 있고 남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혼자 휘젓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넓고 넓은 세상이 갑자기 너무 좁아지고 옳고 그름을 떠나 경거망동한 일에도 주저함이 없다. 멈춤이란 브레이크가 없는 것이다. 아니 모르는 것이다. 겉물만 잔뜩 들어서 말만 미끈하게 쏟아놓고 뒷감당을 못하는 것이다.
금강 상류의 소하천 중 하나인 버드냇길은 산책로로 대전시민의 체육공원 역할을 하며 건강관리를 위해 남녀, 연령층, 계절에 관계없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걷는다. 시간대도 여건에 따라 삼삼오오 달라진다. 그런데 같은 코스라도 느낌이 새벽은 새벽대로, 아침은 아침대로, 오후나 저녁은 저녁대로 달라진다. 활짝 개이거나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면 날씨에 따라 다르다. 그만큼 분위기가 달라지면 그 영향을 받아 느낌이 다르다. 그냥 앉아서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달라진다. 현장에 나서보아야 비로소 실감을 하게 된다. 계절을 느끼게 된다. 현장은 항상 정적이기보다 동적일 수가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낄 수가 있다.
그만큼 직접 보는 것과 전해 듣는 것은 다르다. 풍문으로 듣거나 전달로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선입감까지 끼어들거나 고정관념이 앞질러 가로막을 수도 있다. 전해 듣기만 하면 자칫 왜곡되거나 편견에 빠져들 수 있다. 같이 보고 있어도 보는 관점이나 취향이 다르기에 전혀 다른 것을 보거나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달리 느끼고 달리 생각하고 판단력도 같은 듯 같지가 않다. 여북하면 백번 들어야 한 번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전해 듣는 것만으로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현장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장을 찾아 직접 보고 챙기고자 한다. 그래야 의문점이나 의구심에서 벗어나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2017.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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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문이 불여일견임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금강이 좋아 대전으로 갈 때면 늘 공주로 나가서 국도로 금강을 바라보며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