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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쇠네 ‘두 서방님’ 이야기
형아 아우야 너의 살을 만져 보아라
누구에게 태어났기에 모습조차 같으냐
같은 젖을 먹고 길러졌으니 다른 마음을 먹지 마라
(훈민가(訓民歌) - 형우제공(兄友弟恭)
…… …… ……
『송강가사』에 실려 있는 훈민가(訓民歌)는
정철이 45세(1580)에 강원도 관찰사로 있었을 때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지은 연시조 16수로,
제3수는‘형제우애(兄弟友愛)’를 읊은 시조이다.
꽤 오래전, 아주아주 오래전에 그 성씨(姓氏)가 알쏭달쏭해서 그냥 <거시기>라면 딱 좋을 만한 형제가 살았는데, 한 부모에서 태어났으되 성정 머리는 영 딴판이라. 사람마다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있는데, 형은 왼편 갈비 밑에 괴불만 한 게 하나 더 붙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심술보라. 그래서 형은 오장칠부(五臟七腑)랬다.
이 이야기는 놀부네 형제 이야기인데, 그들의 성씨가 ‘박’ 씨라고도 하고, ‘연’ 씨라고도 하는 걸 보면, 아마도 <박> 씨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 씨에서 생긴 성씨겠고, <연> 씨는 박 씨를 물어다 준 제비의 연(燕) 자에서 따온 성씨겠지요. 최근에 밝혀진 박응교전(朴應敎傳)의 <흥보만보록>(1833)에는 ‘놀보’와 ‘흥보’의 성씨가 덕수장씨(德水張氏)라고 하네요. 그러니, 그들의 성씨가 어느 것이 맞는지 딱 잘라 말할 수가 없으니, <촌놈 성(姓), 김가(金哥) 아니면 이가(李哥)>라는 속담처럼, 그냥 ‘거시기’ 놀부, ‘거시기’ 흥부라면 딱 맞겠지요. 홍길동전이나 구운몽처럼 지은 이가 있어서 직접 남긴, 그런 글이 아니어서, 입으로 전하다 보면, 전하는 사람에 따라 흥부네 성씨가 달라질 법도 하지요…
그런데 여기서 이 흥부와 놀부의 성씨(姓氏)를 밝히자는 것이 아니라 흥부 놀부의 대가댁에서 종살이한, 아니, 그게 아니라… 머슴살이… 그것도 아니고, 한평생 대갓집 놀부씨 선친 때부터 집사장(執事長)으로 일생을 바치신, 저의 7대조 할아버지 ‘마’자, ‘당’자, ‘쇠’자, 그러니까 바로 ‘마당쇠’ 할아버지 얘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일자무식이라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하는 분이라서 성씨의 근원도 모르셨답니다.
어떤 이는 “마당쇠란 가산 오광대(駕山五廣大) 제6과장에 등장하는, 탈을 쓰고 춤추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광대놀음과는 아주 거리가 멀지요. 어떤 이는 “머슴이나 남자 종, 즉 대갓집에서 마당을 쓸거나 잔심부름 따위를 하던 하인”을 이르는 이름이라 하는데, 가끔 마당을 쓸기는 하셨겠지만, 할아버지는 대가댁 하인들의 수장이셨으니 마당이나 쓰는 하인에서도 거리가 멀고요. 그런데 어떤 이는 “‘마당쇠’는 ‘집사장(執事長)’을 뜻하는 말”이라는데, 그게 바로 우리 할아버지의 직책에 딱 맞는 말이구먼요.
이래 봬도 제가 꽤 괜찮은 상위권 대학에서 지원자가 별로 없는 ‘족보학과’의 수석 졸업생이고 보니 저의 할아버지 성씨의 연원도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답니다. ‘마’씨는 말마(馬)자도 있고, 삼마(麻)자도 있는데, 삼한시대 때 생겨난 우리나라 토착 성씨로서… 아이구! 여기서 족보 이야기는 그만 멈출랍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고도 하고,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라고도 하실 테니까요. 저는 마씨 집안의 ‘당발’이라는 청년인데 사람들이 저를 항상 성과 이름을 함께 붙여서 부르니 그냥 마당발(馬當發)입니다.
할아버지 마당쇠 어르신은 놀부와 흥부가 태어나기 전부터 반백 년도 훨씬 넘도록 그 집안을 두루 보살피신 분인데, <십 년을 살아도 시어미 성도 모른다>고, 놀부네 성씨가 무엇인지는 모르셨지만, 누가 뭐라 해도 <흥부와 놀부> 이야기는 제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전해졌다고 봐야지요. <가갸 뒷자도 모르는> 까막눈이라서 글로 적어두지는 못했어도, 워낙에 총력이 좋으셨던지라,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글재주가 있는 유식한 사람들보다도 월등하게 말주변이 청산유수(靑山流水)였답니다. 놀부는 머리가 너무 둔해서 ‘천자문(千字文)’도 못 뗐다는 이야기며, 재능이 뛰어나서 사랑받던 흥부 이야기며 제비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전해주셔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눈으로 본 것보다 더 확실하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살아있는 ‘실화 민담’으로 남게 되었답니다. 끝으로 가훈처럼 남기신 그분의 말씀은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라야 사람이지!>랍니다.
***** ***** *****
부모가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나자, 하루는 놀부가 <날콩 씹은 상판>을 하고 동생 흥부를 불러 말했습니다.
“이놈 흥부야, 듣거라! 사람이란, 믿는 데가 있으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말도 있다. <아무리 멍청이라도 나이가 가르친다>는데, 너도 이제 나이가 불혹(不惑)을 넘고 딸린 식구도 적잖은데, 독립해 나가서 살아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고 이 형만 바라보고 <부잣집 밥벌레>처럼 빈둥대는 꼴이 과히 꼴사납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려 봐라!> 어림도 없지! <벼룩도 낯짝이 있거늘>, 내 재산을 넘볼 생각은 하지도 마라. 부모의 가산(家産)은 장손의 차지이거늘, 네가 어찌 ‘기생충’처럼 빌붙어 살려는 게냐. <소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내 집에서 당장 나가거라.”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말에 흥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습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오. 예로부터 <형제일신(兄弟一身)>이라는데 어찌 무 자르듯 그리 싹둑 자르려 하시오. 형제는 우애(友愛)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형우제공(兄友弟恭)>이라는 시조(時調)도 모르시오?”
놀부가, 분이 상투 끝까지 치밀어 올라,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말도 있건마는, 아버지는 네 형인 나에게는 뼈 빠지게 일만 시켰는데, 그럴 때 네놈은 나를 <소 닭 보듯> 했제. 아버지는 <귀(貴)둥이가 천(賤)둥이 된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는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면서 네 놈이 영특해서 사랑스럽다며 글공부만 시키더니, 너 참 매우 유식하다. 나 같은, 천자문도 못 뗀, 일자무식이 ‘형제일신’이란 말을 어찌 알겠느냐?”
“형님께선 ‘일자무식’이라면서, 불혹(不惑)이라는 말을 어찌 아시오?”
이 말에 놀부가 더욱 화가 치밀어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숨을 가다듬어 목청을 높였습니다.
“이놈 좀 봐라! 음⁓ 그건, 이놈아, ‘나는 혹이 아니라’, 그러니까 ‘혹을 안 붙이고 살겠다’라는 말이다. 내 밥그릇에 네놈의 빨대를 꽂아놓지 않겠다는 말이다.”
놀부는 심술보의 덕분인지,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불리하다 싶은 소리는 <쇠귀에 경 읽기>라, 어떤 말을 해도 놀부에겐 씨도 안 먹히는지라,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라는 말처럼 흥부네는 더는 버틸 힘이 없어 남부여대(男負女戴)로 봇짐 두어 개만 이고 지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월은 물 흐르듯 흘러 어느덧 봄철이 되었구나. 놀부는 흥부네를 쫓아내고 보니,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는 말처럼, 때로 흥부네 생각이 나기도 하고, 더는 야단칠 놈이 없어지니 무엇보다 심심하기 이를 데가 없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부네 집 처마 밑에 제비 한 쌍이 날아들어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심심하고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 없던 차에 <만만한 게 홍어의 거시기>라고, 놀부는 화풀이라도 하듯, 제비 똥이 마루를 더럽힌다면서 장대를 휘둘러 제비집을 부수고 제비를 쫓아내 버렸답니다.
쫓겨난 제비가 찾아간 곳은, 집이라기보다는 언덕 밑에 막대기 몇 개를 걸쳐놓고 거적을 씌워 만든 곳이었는데, 놀부 집에서 쫓겨난 흥부가 처자식을 데리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놀부네 집에서 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세운 오두막집이었습니다. 막대기 기둥 옆에 새 보금자리를 틀어 아기 제비 여섯 마리를 곱게 곱게 길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렁이가 제비집에 몰래 숨어들었습니다. 이를 본 흥부가 마지막 한 마리만 간신히 구해냈습니다. 3주쯤 지나자, 하나 남은 그 어린 제비가 나는 연습을 하다가 그만 땅바닥에 굴러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답니다. 정성스러운 흥부의 간호로 원기를 회복한 어린 제비는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자, 중굿날쯤 흥부네 집을 떠나 먼 강남으로 날아갔습니다.
강남 제비왕이 다리를 저는 젊은 제비를 보고 물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다리를 저느냐?”
어린 제비는 아비·어미에게서 들은 대로 이래저래 해서 놀부 집에서 엄마 아빠가 쫓겨난 이야기며, 흥부님의 도움으로 구렁이에게서 구출된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아뢰었습니다.
“저런, 큰일 날 뻔했구나! <놀부 심술>이라더니, 그놈의 심술은 온 세상이 다 아는 바이거니와, 이렇게 험악한 세상에 흥부님 같으신 그런 마음씨 고우신 분이 계시다니! 여봐라, 새봄에 삼짇날이 되거든 이 박씨를 그 흥부님네 마당에 떨어뜨리거라. 저절로 잘 자랄 것이니라!”
이듬해 봄이었습니다. 제비는 삼짇날 아침에 그 박씨를 흥부에게 전해주려고 며칠 전부터 서둘러 강남을 떠났습니다. <제비 노정기> 대로 하자면 거쳐 갈 곳도 많고, 들를 곳도 많고, 구경할 곳도 많지만, 그러다가는 시간만 허비하겠기에 잠시도 쉬지 않고 흥부가 사는 마을로 부랴부랴 날아갔습니다. 겨우 삼짇날 전야에 흥부네 마을에 이르렀으나 깜깜한 밤중이라서 흥부네 집이 어디쯤인지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를 어쩌지? 지금 흥부님네 마당에 떨어뜨려 줘야 하는데…»
제비는 흥부네 집이라고 생각되는 곳쯤에 그 박씨를 살며시 떨어뜨렸다. 이튿날 날이 밝자 제비가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흥부네 오두막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멀찍이 떨어져 있는 놀부네 집에서는 벌써 박 넝쿨이 솟아올라, 온 지붕을 뒤덮고 있었답니다. 그 박씨를 떨어뜨린 곳이 흥부네 집이 아니라 놀부네 집이었구나!
이틀이 지나자, 박 넝쿨에는 커다란 박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놀부가 깜짝 놀라, 행여나 지붕이 무너질세라 겁이 나서 마당쇠를 불러 일렀습니다.
“마당쇠야! 박 땜시 지붕이 내려앉게 생겼으니, 박이 열리는 대로 따서 내다 버리거라.”
<일복은 타고난다>더니, 할 일도 많은 마당쇠에게 <설상가상>으로 또 할 일이 생겼습니다. 진짜 ‘대박’이 났지요. 예쁜 박들이 아깝게도 두엄자리에 버려져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흥부는 온갖 품팔이로 뼈가 닳도록 일하며 가솔을 거두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고도 하고,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라고도 하는데, 흥부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속담이구나! <가난과 거지는 사촌 간>이라던가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라는 말이 흥부네에게는 딱 맞는 속담이구먼! 더는 버틸 수 없어 마침내 형님 댁을 찾아가기로 했답니다.
<가난한 양반 향청(鄕廳)에 들어가듯>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놀부 집을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비단옷 입고 고향 간다>라는 말도 있건만 비단은커녕 <거지 중에도 상거지>라. 놀부 집 앞에 이르러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어, 떨리는 목소리로 형님을 불렀습니다.
“형님! 형님!”
대문 밖에서 흥부의 목소리가 들리자, 마당쇠가 얼른 알아듣고 달려 나가 흥부를 맞아들였습니다.
“작은 서방님, 이게 어인 일이시오. 어서 행랑채로 드시지요.”
마당쇠가 흥부를 행랑방으로 모시고 들어가서 아랫목에 앉기를 권하며 말을 이었습니다.
“서방님이 떠나실 제, 저희는 그 군자 같은 심덕(心德)이면 어디 가신들 못 사시겠나 했제요. 암데 가도 부자 될 줄만 알았더니 오늘 서방님을 뵈니, 저희가 했던 말이 다 헛된 거로구먼요. 서방님이 이러신데, 아씨야 오죽하시리오? 그 새에 아기는 몇 분이나 더… ?”
흥부가 비 오듯 눈물을 흘리면서 목메어 말을 이었습니다.
“<사나운 팔자는 불에도 타지 않는다>고, <안 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복 없으면 어쩔 수가 없네. <가난한 집에 자식만 많다>는 말처럼, 풀마다 낳아서 ‘아들 부자’라는 말을 듣고 사니, 아씨 고생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 이 식구 다 굶어 죽게 되었기에 형님 전에 왔네만 형님은 그간 편안하옵시고 그 성정 머리는 조금 풀리셨나?”
“그분이야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시오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그 성정 머리는 서방님 계실 제보다 몇 곱절은 더 독해지셨소. <나 먹기는 싫어도 남에게 주기는 아깝다>는 속담도, <감기 고뿔도 남 안 준다>는 속담도 바로 그분 거구만요.”
흥부가 그 말을 듣자, 조금 풀릴 듯하던 등골이 썬득썬득 저려 오고 가슴이 두근두근 쥐덫이 내려진 듯하고 머리끝이 꼿꼿하여 하늘로 치솟은 듯 온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형님을 아니 뵙고 그냥 바로 돌아가는 게 옳으이.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말도 있건만, 이럴 줄 알고, 아예 찾아오지 않으려고 했더니, 아씨 간청에 못 이겨 부득이 오게 됐네! 그려.”
“오랜만에 힘겹게 예까지 오셨으니, <말 안 하면 귀신도 모른다>고 <밑져 봤자 본전>이니, 못 얻으면 그만이지 무슨 탈이 있으오리까. 어서 들어가 보시오.”
“그렇다면, 나랑 함께 들어가서 내가 왔다고 좀 이르소.”
“아니요. 그리 못하지요. 만일 저더러 왜 작은 서방님을 불러들였느냐고 트집을 잡으면 우리 둘이 다 날벼락이오니 혼자 들어가 보시오.”
별도리 없어 이판사판으로 흥부가 이를 악물고 종종걸음으로 초당 앞에 당도하니, 놀부가 영창문을 반쯤 열고 두어 발이나 되는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금침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워 있었습니다. 흥부가 죽기로 작정하고 툇마루에 올라서서 벌벌 떨며 몸을 굽히고 형님을 불렀습니다.
“형님! 형님! 떠나온 지 여러 해 이온데, 일안만강(日安萬康) 하옵신지요?”
“뉘신지요?”
흥부는 놀부가 자기를 진짜로 몰라보고 묻는 줄 알고 숨 가쁘게 말을 이었습니다.
“갑술년에 나간 흥부요.”
“흥부? 흥부라! 흥부라면? 아니제! 일 년 치 새경 먼저 받고 모심을 때 도망간 놈 그놈은 황보렸다. 쟁기질하라고 보냈더니 소 가지고 도망간 놈 그놈은 숭보렸다. 흥부? 흥부? 암만해도 기억하지 못하겠다. 무슨 수작인고? <거지발싸개 같은 놈>! 썩 물러가거라!”
흥부가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면 놀부 수작이 이러하니 다 틀렸다는 걸 눈치채고 벌떡 일어서서 나와 버리면 아무 탈이 없으련만, 자세히 일러주면 무언가라도 좀 보태주실 줄 믿고 자꾸 형님을 불렀습니다.
“형님! 제발, 형님! 저 흥붑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도 있지요.”
“어떤 고얀 놈이 자꾸 나를 형님이라 부르느냐? 내가 우리 집안 9대 독자인데 나한테 너 같은 동생 놈이 어디 있단 말이냐? 쓰레기 같은 놈! <머리 검은 짐승은 남의 공을 모른다>했고, 또 <검은 머리 가진 짐승은 구제하지 말랬다>라는 말도 있다. 너 같은 거지 배를 채우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지. 배가 고프면 저 두엄자리에 내다 버린 박통이나 거두어 가거라.”
“형님, 고맙습니다, 형님!”
“이놈아! ‘형님’ 소리는 빼거라!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흥부는 두엄자리에서 꽤 큼직한 박 한 통을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박 속을 끓이면 온 식구가 며칠은 연명할 수 있을 터였다. 식구들을 불러 모아 박을 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이냐!
<복 없는 놈은 달걀에도 뼈가 있다>더니, 가득 차 있길 바랐던 박속은 텅 비어 있고 ‘보은포(報恩匏)’라 쓰인 조그마한 봉투 하나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제비가 강남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내력을 적어놓은 노정기(路程記)인 줄로 알고 ‘보은포’라면 충청북도 ‘보은’을 거쳐오다가 얻은 박씨라는 말이려니 지레짐작하며, 흥부가 가족들을 둘러 세우고 서둘러 그 봉투를 열어 읽었습니다.
흥부는 정신을 가다듬고 잘 듣거라. 네가 그토록 어렵게 사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네 나이 불혹이 넘도록 어찌하여 형에게만 의존하려 하였느냐?
둘째, 네 아들들은 이미 다 장성했는데도 어찌하여 일을 시키지도 않고 애비·에미의 입만 바라보면서 살게 두느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고도 많으 니라. 네 아들들을 즉시, 일거리를 찾도록 내보내거라!
셋째, 너 자신도 생활 태도를 바꾸어 당장 새로운 일과표를 작성해서 즉시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거라!
넷째, 네가 앞으로 부자가 되면, 그것은 어쩌니저쩌니해도 너에게 못되게 군 네 형의 덕이니라. 네 형을 조금도 원망하지 말 것이며, 훗날 네 형이
어려 운 처지가 되어 너에게 도움을 청하거든 기꺼이 도와주도록 하거라!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더니, 소문 참 빠르다.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자, 놀부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동생네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쓰러져 가던 움막집이 아닌 대궐 같은 고층 집이었습니다. 출입문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어디로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시골 당나귀 남대문 쳐다보듯>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놀부는 애가 닳았습니다.
그때 집 앞에 네 바퀴 수레가 경적을 울리며 멈추어 섰습니다. 그런 수레를 처음 보는지라 놀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유심히 살폈습니다. 앞문이 열리더니 말끔한 양복 차림을 한 하인이 나와 뒷문으로 달려가 문을 열자, 고관대작 같은 한 어르신이 나오시는 것이었습니다. 놀부는 무릎을 꿇고 조아려야 할지 망설이다가 힐끗 그 어르신을 훔쳐보았습니다.
“아니! 이게!… 누구시오?! 오, 내 동생 흥부…님? 아니…시오? 흥부님!”
흥부는 거지꼴이 된 형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
놀부가 다시 목청을 돋우어 말했습니다.
“저 놀부올시다! 저요! <형제는 일신>이라 했는데, 형인 저를 몰라보시오?”
놀부의 말이 흥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어떤 고얀 놈이 나를 형님이라 부르느냐? 내가 우리 집안 9대 독자인데 나한테 너 같은 동생 놈이 어디 있단 말이냐? 쓰레기 같은 놈!…»이라던 그 말.
그러나 형의 초라한 모습을 보는 순간, 그리고 보은포라 쓰인 쪽지의 글귀가 떠오르면서, 흥부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예를 갖추어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아니, 9대 독자 형…님…? 어인 일이시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놀부는 흥부가 자기를 형님이라고 불러주는 데에 감복하고 있었습니다.
“형님, 잘 알고 있습니다. 형님께서 저와 제 식구를 하루아침에 몰아내신 건… ”
“아닐세! 그건 내 본뜻이 아니라, 그것은… 어쨌거나 내가 잘못한 것 같기도 하네!… ”
“… 지금 곰곰 생각해 보니… 그때 형님이 저를… ”
“동생,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좀… ”
“… 저를 쫓아내신 것은… 아무래도… ”
“백번 죽어, 아니 그냥 죽어 마땅… ”
“… 저를 쫓아내신 것은 아무래도 저에게… 독립심을 길러주시느라고 그러셨다는 걸 잘 알고 있지요. 제가 항상 형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형님!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 오금이 굳어있던 놀부는 흥부의 끝말을 듣고 진짜 자기가 옳은 일을 한 것인 양 금세 거드름을 피우면서, 흥부를 뒤따라 들어갔습니다. 흥부가 안내하는 휘황찬란한 거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놀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그 박 말이다. 지붕에 한 개 남아 있던 그 커다란 박을 탔더니 말이다. 그 속에서 ‘보수포(報讎匏)’라는 딱지가 붙은 궤짝이 나오길래, 내가 천자문도 다 못 뗀 게 천추의 한인데, 내가 박을 길러준 보수(報酬)로 그 박 속에 금은보화(金銀寶貨)가 가득 들어 있을 줄로만 믿고 그 궤짝을 열었다가 그만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이래저래 빚만 갚아대느라고 기둥뿌리가 다 패고, 지금은 이렇게… 거지 중에 상거지, 완전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쨌거나 동생이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었는지 그것이 무엇보다 궁금하이.”
놀부는 한편 시샘도 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격으로, 심술보가 활짝 열리면서 심통 사나운 말을 이어갔습니다.
“흥부야, 네가 부자가 되다니!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 할 놈 없다>는 말도 있고,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도 있거늘, 너 같은 주변머리 없는 놈이 도둑질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부자가 되었겠느냐? <도둑도 제 발이 저린다>는데, 솔직하게 고백할 수는 없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면 달리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었더란 말이냐?”
형이 소문을 듣게 되면 곧장 달려올 것이라고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터라, 흥부는 조금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형님, 잠깐 앉아 계시오.”
흥부는 건넌방에 들어가, 보은포(報恩匏) 봉투 속에 들어 있던 글귀를 놀부의 처지에 딱 맞게 다시 고쳐 써서 넣어둔 노란 봉투를 서랍에서 꺼내 들고나와,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놀부 앞에 와서 조용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형님, 지금까지 형님께서 저에게 자립심을 길러주시고, 계속 저를 도와주셨으니, 이제는 제가 형님을 도와드릴 차례입니다.”
뭔가를 잔뜩 기대하는 듯 놀부의 눈빛이 황홀해지고 있었습니다.
“형님께 이 ‘선물’을 드리오니 이대로만 하시지요. 제가 부자가 된 비법이 그 속에 다 들어 있으니까요. 형님, 꼭 그렇게 하실 거지요?”
“…….”
놀부는 노란 지폐가 가득 들어 있으려니 기대하며 아무런 대꾸도 없이 흥부가 뜸 들이지 말고 어서 그 봉투나 건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 형님, 저의 ‘선물’을 받으시지요.”
놀부는 흥부가 내미는 봉투를 낚아채듯 받아 속주머니에 꼬깃꼬깃 쑤셔 넣고, 화초장을 받은 것보다 더 기뻐 날뛰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랴부랴 뛰쳐나와 집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동생 하나는 진짜 잘 두었제! 오! 어찌나 영특했던지, 잘될 줄 알고 그래서 내가 그토록 귀여워했었지! 내가 아무리 무식해도 ‘형제는 일신’이라는 말은 잘 알고 있제!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