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저가폰 소유자의 약점을 잡았는지 휴대폰 매장에서 전화가 왔다. 내용이 그럴듯...안그래도 가진 휴대폰의 약발이 떨어져 다운되고 에러가 나던 터였다.
싼게 비지떡? 그래도 비지는 맛이라도 있지. 기기를 바꾸니 자료를 옮겨간다해도 몇가지 이동거부현상이 일어났다. 카톡은 생존, 밴드는 사망이었다.
지나칠까? 그래도 그곳에 내가 뿌린 것들이 많았으니...심폐소생술(?)로 복원하니 그참에 웬 휴전선 철조망 뚫고 넘어온 멧돼지 같은 멧세지가 있었다.
통상 밴드란 가입자가 요구받은 실명확인 차원에서 자신의 정보(이름, 나이, 거주지, 전화번호 정도)를 입력하면, 그러한 것은 관리자인 리드만 알수 있고, 비밀보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멧세지가 뚫고 들어온 것은 나는 이해가 어려웠다.
아무튼 상대방은 부산출생으로 어려서 부모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간 45세 여성이라했다. 현재 군의관 신분(프로필 사진은 의사 가운)으로 우크라이나에 평화봉사단(Peace Corps)으로 파병되어 있는데, 임무가 끝나면 한국에 머무르고 싶다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해서 밴드에서 나를 선택했고, 귀국전 많은 정보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나는 처음부터 해킹에 의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캐나다의 평화유지군 파병 정보도 확인이 어려웠다. 그리고 나이 많아 이성의 대상은 아니라는걸 강조했다.
나의 답변에 몇차례 댓글이 달렸으나 내가 응하지 않자 문자는 중단되었다. 다만, 진정으로 귀향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도움주지 못함에 미안함이 남을 것 같다.
['행복한 감시국가 중국'을 읽고]
일본 작가 두사람(가지타니가이 와 다카구치고타)이 쓴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 내용상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기에 웬만하면 번역된 원문의 문장을 그대로 옮기려 노력하고, 나의 생각을 보탰다.
중국에서는 국민을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교통법규 위반부터 소셜 미디어상에서의 체제 비판까지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위반자에게는 항공권 구매와 철도 이용 금지 등 사회적 제재가 가해지는데, 이미 2천만 명이 그 대상이란다.
글로벌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에 따르면, 조사대상 28개국 국민들은 과반 수가 자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답하는 반면, 중국의 국민들은 90%이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답했단다. 그만큼 중국 국민은 생각의 합치가 잘 이루어지거나, 그러한 공산사회주의 체제에 잘길들여져 적응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감시사회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그에 따르는 '자유의 상실'을 논한다면, 동시에 '편리성과 안전성 향상'이 대립된다는 의미이다.
예를들면,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의 SF소설 '1984'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를 빼앗긴 채 획일적으로 살아가는 디스토피아(dystopia)를 그려내지만, 반면에 같은 영국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는 태어나기 전부터 신분이 정해져있고, 골치아픈 가족관계, 육아, 돌봄노동 등에서 해방되고, 보람있는 직업을 가지며, 불특정 다수와 성관계를 갖는 등 향락적인 생활을 즐기는 유토피아가 그려진다.
그래서 최근들어 일부 사람들은 '1984'보다는, '멋진 신세계'에 더 흥미를 가지는 것 같다고 한다. 실현되지 않은, 아직은 어디까지나 상상일 것이다. 내가 볼때는 둘다 마약에 취해 죽어가는 사회란 생각이 강하다.
그런걸 실행에 옮기다보면 발달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에 대한 신용점수가 사회에 전파되어, 부정적인 계층이 고정화되는 '가상의 슬림(slim
: 날씬한, 희박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차 끊는 냄비속의 개구리가 되어 이러한 현상을 인식하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이게 중국처럼 사회주의와 독재를 통하여 영구집권을 꿈꾸는 정치꾼들이 노리는 것인데, 사람들은 투철한 각자도생의 정신으로 안타깝게도 내발목에 쇠고랑 안채웠으니 나몰랑이라 하며 살아가는 현실이다.
아무튼 중국에서는 지방정부가 개인의 신용점수를 평가하여 입학, 고용, 생활보호, 사회보장, 군입대, 공산당 입당 등 사회의 여러분야에 자료로 활용 한다고 하였다.
무조건 나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수억개 감시카메라를 활용하여 자료를 수집하여 못된 짓을 못하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사람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어기면, 감시카메라가 찍어 본인에게 즉시 통보하고, 벌금고지서가 날아온다고 하였다.
실제 그렇게 해서라도 환경이나 사회질서가 잡힌 곳도 있다하니,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행하지 못하면 국가(사회)의 감시와 통제를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에게 눈에 띄는 신용점수 평가항목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사이비 종교 활동에 참여한 기록이 없으면 플러스 50점, 있으면 마이너스 50점...'
'사이비 종교활동...' 소위 이단(異端)이라며 배척하는 사람들에겐 고소하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중국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는 허용하나, 사회안정의 틀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현실 종교의 자유제한, 특히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유별나다고 하였다. 그들은 특정인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특히 싫어한다. 그들의 이념과 배척되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 1월 KBS 보도에 의하면 4천여개의 십자가가 불타고, 교회가 폐쇄되었다고 했다. 불교방송에서도 승려가 절에서 쫒겨나고, 사찰이 파괴되었다고 하였다. 9300만? 여명의 공산당원은 종교를 가질 수 없다. '종교단체관리법'에 의하여 종교시설의 운영은 인허가 대상이고, 정부의 관리 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렇듯 중국에서의 종교활동은 우리나라와 같이 자유로울 수 없다. 벗어난다면 사이비로 취급 당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감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고, 당연히 부정적인 계층, 가상의 슬림으로 분류될 것이다.
뭐? 괜찮다고? 미안하지만 종교란 개인의 평가대상물이 아니다.
'감시사회화'를 둘러싼 대립은 사실 '현시점의 불쾌함'을 강조하는 입장과 '훗날에는 불쾌함이 소멸(익숙해짐)'할 개연성이 크다고 강조하는 입장의 대립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 현시점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것은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은 과연 옳은 것일까?
이 책에서는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공리주의적인, 쾌락이 더 많은, 고통이 더 적은 상태라는 의미'로 묘사했다. 행복한 감시국가(사회)의 본질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입각하여 쾌락이나 고통의 원천을 묻지 않고,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실현을 위해 그 수단으로 사람들을 감시하는 국가(사회)일 것일게다.
중국의 대중감시는 시진핑 집권이후 "인터넷 보안법"에 따라 크게 확대되었으며, 중국 본토에는 2019년 기준 스카이넷 감시용 CCTV 2억 대가 보급돼 미국의 감시카메라보다 그 수가 4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중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기본적으로 어느 국가(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한다.
그러나 언젠가 언론에서는 1만 7천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출입국자들의 심사자료를 과기부에서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을 위해 민간업체에 넘겼다고 하였다. 이에 시민단체에서는 소송 채비를 한다고 하였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법으로 운운...그러나 알려지면 국제적 망신꺼리에다, 이 나라엔 법이 밥보다 훨씬 약하다는걸 겪어봐서 다들 잘안다.
궁극적으로는 어제 내가 하였던 일과들이 수집되어 지고, 지금 당장은 내가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는가를 누군가의 감시를 받는다면... 글쎄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 온 나같은 꼰대들이야 힘의 논리에 잘 순응하지만, 까칠한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게 잘 통할까?
요즘세상의 단면으로 표현되는,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럴 듯한데, '내 것은 내 것'이니 세상 누구도 참견하지 말라는 개인사생활보호를 내세우는 사람들에겐 통하지 않을 것이다.
지자체마다 4차원 세계로 가는양 앞다투어 건설한다는 스마트시티(Smart city)의 본질을 사람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런지가 의문스럽다.
세계 각국이 향해 가고있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대명사, '인공지능(인간의 가치를 상실하고, 기계에 종속되는...)'이란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다양성보다 획일성...
감시사회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을 보호하고...' 라는 문구가 좋았다. 양약보다는 예방의학이란, 외면보다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산약초 동의보감'처럼 뿌리깊은 보호본능에 길들여진 삶으로, 감시사회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도 온라인상에 글을 올리면 감시자가 따라붙고, 종전 코로나 상황에서는 동호회 사이트 접속도 막는 것 같을걸 확연히 느꼈다. 나는 그걸두고 조지 오웰의 1984의 실현이라고 하였다.
스마트폰에서 중국 틱톡의 우스꽝스러운 동영상을 보고 웃음 흘리기에 앞서, 그러한 통신망의 정보침탈, 스마트시티의 의미쯤이라도 조회해 보며, 우리들 각자에게 다가올 앞날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 디지털 감시기술은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된 지능형 CCTV,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실시간 도시 관리 시스템인 스마트시티와 안면인식 기술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범죄예방 알고리즘, 클라우드 컴퓨팅(사용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주문형 서비스) 기반의 원격 감시 시스템 및 국가 발행 디지털 화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현대 국가의 감시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정보와 서비스) 감시의 성격을 갖는다.
즉 무선인터넷, LTE, 5G, 블루투스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스마트폰, 사물인터넷(loT : 데이트의 연결 및 교환목적), 항공 드론과 연결되어 실시간 감시가 가능해졌다.
디지털 정보통신기술 및 데이터 수집 환경의 변화로 오늘날 국가의 사회감시는 표적감시를 넘어서 빅데이터 감시로 전환되고 있다.
앞에서와 같이 우리는 흔히 스마트 시티란 말을 접한다. 그것은 정보통신기술(ICT),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도시 운영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앞에서와 같이 우리의 생활이 전반적으로 감시당하고, 노출됨을 의미한다.
날이 갈수록 우리네 일상이 감시가 심한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서는 것 같아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벌써 문화와 일상이 침탈 당했다고들 말하였다.
그러나 이 복잡 고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대세가 무엇인지를 인식해야 하고, 무엇이든 양면성이 있다는 점을 알며, 슬기롭게 받아들여야할 것같다. 나이 들었다고 꼰대취급만 당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오며 이룩한 성과에 대한 보상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것이다.
* 잘 사용하지 않는 용어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시대에 적응하려면 필요한 것들이기에 스트레스 받으며 써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