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극계의 작은 화제중 하나는 배우 황정민이 오랜만에 <리차드 3세>를 통해 연극무대로 돌아온 점이다. 서재형 연출의 이 연극은 관록있는 배우들과 패기넘치는 젊은 배우들과 더불어 황정민의 개성 연기가 셰익스피어의 나쁜 남자 캐릭터에 더없는 적역임을 보여준 무대였다.
해가 바로 지나서 빠른 시간안에 다시 연극무대에 선 황정민이 그래서 더욱 반갑다. 그러나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는 인간적이고 교활하기까지 한 리차드 3세와는 달리 그리스 비극의 전범이라고 할 만한 다른 유형의 캐릭터이므로 이 연극을 잘 살릴 수 있을런지는 솔직히 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었다.
황정민이 주연을 맡고 서재형이 연출한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비극 양식이라는 전통의 장점을 흝트리지 않는 경계에서 동적인 부분을 살리고 한국배우들의 개성을 조화롭게 살려 이 시대에도 여전히 소포클레스의 이야기가 매력있음을 알린 정통 명품 연극이다.
무려 250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막장 드라마의 원조 격이라 할만한 이 이야기가 여전히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지니는 비극성에도 기인하지만 무대예술로서의 양식화에 관한 한 고수였던 소포클레스의 작품이기에 가능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서재형의 연출은 정통 연극을 무대에서 직접 접했을 때 관객들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아우라의 환경을 극대화시켰다.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의 몫이지만 받아들일 거리가 없어서 빈곤감을 느꼈을 관객은 없었을 것이다.
한아름의 각색은 소포클레스 원작 희곡의 내용을 조금씩 변경하기는 했지만 정통 양식에 큰 변화를 줄 만큼은 아니었다. 원작에서, 더군다나 희곡 자체가 원작인 작품에서 어느 대사를 가져오고 어느 대사를 비트느냐는 모든 연극작가들의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황정민은 <리차드 3세>에서 연극배우 출신으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준 바 있는데 이번에는 그리스 비극과 정통 연극의 한 가운데로 들어섬으로써 그 진가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누구보다 패악의 역할인데 의도치 않은 운명적인 패악의 역할에서 진실을 하나씩 찾아가며 자신의 원래 모습과 마주해야 하는 역할은 복잡하지만 또다른 인간상이자 숨은 영웅의 모습이기도 하다. 황정민은 그리스 비극 양식의 경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중후반에서 가장 한국적이라고 할만한 강렬함을 보여준다. 자신의 정체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은 이 연극의 형식미를 애초부터 무시했더라면 두드러지는 장면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황정민은 노련함을 통해 연극 양식을 이어 갔고 강렬함을 통해 연극이 배우의 예술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를 맡은 배해선은 황정민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어머니와 아내 역할을 훌륭히 보여주었다. 후반부에 보여주는 감성충만한 그녀의 연기는 황정민의 기세와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는 매력을 보여줌으로써 대단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연극과 뮤지컬에서 소중한 존재인 그녀를 오랜 기간 볼수 있기를 바란다.
늙은 예언자인 테레시아스를 맡은 정은혜의 연기와 목소리, 연극무대를 오랜 시간 지켜온 능청스런 사자 역할의 남명렬, 누구보다 극의 전반을 지켜보며 주연 이상으로 큰 역할을 맡은 코러스 장의 박은석은 이 연극을 더욱 빛나게 한다.
무대의 조명은 어둡게 함으로써 비극을, 세트는 고딕 양식에 가까운 철근 형식을 배치함으로써 바꾸기 힘든 운명에 관한 것임을 암시했다.
좀 더 얘기하자면 이 연극에서 가장 흥미롭게 볼 부분이자 논쟁적으로 볼 부분은 코러스 장이라는 역할이다. 옛날 무성영화에서 해설과 상황을 보여주던 일종의 변사 역할인 셈인데 코러스 장은 연극의 시작에서 끝까지 무대에서 이야기를 직접 던지기도 하고 다른 역할의 보조까지 맡는 내러티브의 한 축을 이룬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소포클레스의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코러스 장의 출현이 줄거리 이해에 더 큰 도움을 딱히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출현은 여러 역할들이 서로 나누는 대사에서 강조할 부분을 부각시켜 준다는 점과 관객들이 연극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작품 흐름의 강약을 살리는 촉매 역할로 손색이 없다. 또한 일련의 무리들이 나와 코러스의 역할을 그때그때 보여준 것은 일찌감치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정리한 비극 양식의 형식을 그대로 모두 보여준 것은 아니었으되 비극 연극에 있어서 현대에도 여전히 유지해야 할 형식미가 최소한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게 해 주었다.
서구에서의 오이디푸스 연극과 바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한국작품에서 역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은 한국배우들의 감정 연기이다. 한국 배우들의 대체적인 강점이지만 그 강점이 작품의 양식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그 강점은 대단한 결과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덧붙여 예상치 못했으나 놀랄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은 상당히 다이나믹한 이야기 전개였다. 코러스 파트에서 여러 무리가 나와 진행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지만 오이디푸스가 문제의(!) 삼거리에서 아버지와 호위관들을 상대하며 해치우는 장면은 마치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에서 최민식이 일당백으로 상대하는 장면이 연상될 만큼 놀라웠다. 차근차근 준비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영화와 단 한번에 라이브로 보여주어야 하는 연극의 환경이 다를진대 어설프지 않게 동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한국 연극의 매력이 또 다른데 있음을 느꼈다.
<오이디푸스>에서 새삼 확인하는 것이지만 현대작품은 내용미가 두드러질 수 밖에 없고 고전작품은 형식미가 두드러질 수 밖에 없다. 종종 고전작품들은 너무나 현대적으로 혹은 퓨전화(?)되어 무대에 올라오곤 하지만 우리가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을 직접 본다는 것은 고전부터 이어져 온 작품의 온전한 그림을 보기 위한 이유가 크다.
처음 연극을 보러 온 젊은이가 양식화된 형식미의 연극에 빨리 적응할 수만 있다면 <오이디푸스>는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아우라 자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벤야민이 일찍 지적한 대로 대량생산과 기술복제가 너무 흔해진 시대에서 작품의 아우라는 붕괴되거나 희석되기 마련인데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은 그 붕괴를 저지하는 일종의 보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다양한 문화예술과 장르는 그 다양함만큼 존중받을 가치가 나름 있다. 그러나 역사 이래로 고대 시절로부터 이어 온 연극의 힘, 배우의 힘, 고전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감동의 하루였다.
첫댓글 보셨군요
남명렬의 대사건 전언을 어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연휴 좋은 시간 되소서
극 전체가 매우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일 수 밖에 없는데 남명렬 배우로 인해 약간의 웃음과 해학이 곁들여진 것 같아 저는 매우 좋게 봤습니다~
좋았어요... 단지
아쉬웠던 것은 황정민이 넘 징징거려서 ...
관객을 울려야지, 지가 울어버리니
조금 식상하더라구요. 마치 코메디 배우가
웃음을 터트리는 것처럼....
연기는 그래도 좋았어요. 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