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정기산행
소원을 말해봐~ 대구 팔공산 관봉 갓바위(관봉석조여래좌상)
산행 & 낙동강전투 다부동전적기념관 관람
글.사진: 경산시,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 자료임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해발 852m의 험준한 팔공산 관봉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조성되어 있다.
의현대사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조성했다고 전해지며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영험 많은 부처로 알려져 기도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팔공산 남쪽 관봉(冠峰)의 정상에 병풍처럼 둘러 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이다. 관봉을 '갓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불상의 머리에 마치 갓을 쓴 듯한 넓적한 돌이 올려져 있어서 유래한 것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뚜렷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탄력이 있지만, 눈꼬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 있어 자비로운 미소가 사라진 근엄한 표정이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다소 올라간 어깨는 넓고 반듯해서 당당하고 건장하지만 가슴은 평판적이고 신체의 형태는 둔중해진 듯하다. 투박하지만 정교한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는데, 오른손 끝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유사한 손모양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닮았다. 그러나 불상의 왼손바닥 안에 조그만 약항아리를 들고 있는 것이 확실해서 약사여래불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인데 앞면과 옆면으로 옷자락이 내려와 대좌를 덮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광배의 구실을 하고 있으나, 뒷면의 바위하고는 떨어져 따로 존재하고 있다. 풍만하지만 경직된 얼굴, 형식화된 옷주름, 평판적인 신체는 탄력성이 배제되어 8세기의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때 의현스님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천도하기 위하여 불상을 조각하였는데 밤이면 학들이 날아와 추위를 지켜주고 3식 식사도 그들이 물어준 양식으로 연명하며 불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와촌에는 가뭄이 들면 팔공산 관봉(갓바위)에 불을 지르고 새까맣게 태우면 용이 놀라 부처를 씻기 위해서 비를 내린다고 한다.
갓바위(양)와 불굴사(음)을 오가면 음양이 조화로 기도의 효험이 두배 - 풍수지리학적으로 갓바위 부처님(관봉석조여래좌상)이 팔공산에서 양의 기운을 품고 있는 반면 불굴사가 자리한 곳은 팔공산에서 음의 기운을 품고 있는 요지여서 갓바위 부처님과 석조입불상에 한날 불공을 드리면 소원성취한다는 설화가 있다.
팔공산 관봉(冠峯)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전통사찰로 소지왕 13년(491)에 극달대사(極達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인조 19년(1641)에 수총(秀聰)이 중창하였다.
1765년에 기성화상이 중수(重修)하였고, 운암화상이 삼수(三修), 낙허화상이 사수(四修), 월인화상이 오수(五修)하였다. 비구니 제희스님이 1985년에 극락전, 산신각, 요사체 등을 중수하였고, 1989년에는 종각과 요사체(僚舍體) 1동을 조성하였다.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431호인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5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중앙고속도로 다부 I·C에서 동쪽 아래 다부동고개가 시작되는 입구지점에서 25m 높이의 기념비와 탱크 모양의 전적기념관이 6·25 당시 격전지였던 유학산을 바라보며 서 있는데 이 건물은 1980년 12월, 당시 다부동 새마을부녀회장인 정순덕 여사가 우리 군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에게 6·25전쟁시 다부동 전투의 승리를 기리기 위하여 전승기념관 건립을 호소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국방부에서 건립하게 되었다.
국·도비를 지원받아 7억4천만원의 공사비로 1981년 7월 착공하여 11월에 완성한 이 기념관은 서울 남산 미술원에서 탱크모양으로 특별히 시공하였는데 외벽에는 격전 당시의 모습을 부조로 나타내고 내부에는 당시 전투에서 사용하였던 중화기와 소총 등을 전시하고 있다. 기념관 아래 부지좌측에는 4억1천만원(도비2억, 군비2억1천)의 공사비로 1995년 5월 준공한 2층 건물의 관리사가 있는데 1층은 사무실과 휴게실(매점), 2층은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95년 6월 24일 다부동전투 희생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행사시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신 가운데 구국용사충혼비 제막식과 함께 '구국관(救國館)'으로 명명되어 준공기념 행사를 가진바 있다.
우리 군에서는 1979년 3월 1일 전적지관리사업소를 설치하여 왜관지구 전적기념관과 함께 이 기념관을 관리해 오다가 보다 더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1997년 2월 1일부터는 한국자유총연맹 경상북도지회에 위탁관리하고 있는데 학생, 군인, 일반인 등 연간 약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이 곳을 찾아 전쟁의 교훈과 자유수호 의지를 되새겨 가고 있다.
어떻게 이 다부동이 격전지가 되었을까, 잠시 지난 역사의 현장을 되새겨 보면 팔공산 자락이 서쪽으로 숨가쁘게 내달리다 가산, 오계산 봉우리를 맺어 놓고 허리가 휠때쯤 주저앉은 다부동고개, 다부동은 팔공산이 일어서 황학산, 유학산, 소학산을 빚어놓은 틈새에 고즈넉이 앉아 있다. 그래서 다부동 고개는 숙명적으로 격전을 치른 요충지일 수 밖에 없었다. 신라 - 조선시대에 걸쳐 축성된 천생산성, 가산산성, 냉산산성은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다부동고개의 험난한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다. 달구벌과 관문(문경새재)을 잇는 유일한 통로, 일찍이 왕건과 견휜이 대권의 길목에서 혈투를 벌인 곳이 바로 다부동 고개였고 병자, 임진 양난이 치열하게 펼쳐졌던 곳, 가까이는 6·25 전쟁때 조국의 최후 보루지로서 꽃같은 생명이 처절하게 쓰러져 갔던 곳이다.
조선시대까지 이 고개는 문경새재를 거쳐 한양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1급 관도)이어서 경향을 드나드는 관원들을 위해 원이 설치돼 있었다. 역이 생기고 많은 관원과 행상인이 묵어가는 주막촌이 형성되면서 자연 상거래가 활발해졌다. 이 때 돈많은 거상들이 몰려들면서 부자가 많은 곳이라 하여 다부원(多富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관원들과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했기 때문에 다부동 고개는 전국의 여느 고개처럼 산적이나 맹수가 나타나 주민을 괴롭힌 적이 없다. 대신 부사, 목사 등 목민관의 선정비가 많았다. 하나 모두 전화속에 묻혀 찾을 길이 없다.
수많은 전란이 다부동 고개를 거쳐 갔지만 6·25라는 동족상잔의 참화는 아직도 고개구비마다 또 인접한 유학산 곳곳에 서려 있다. 실제 '94년과 '95년, '97년, 2000년, 군부대(50사단)의 유학산 일대 수색에서는 유골 및 전쟁유품들이 많이 발견되어 전쟁의 참상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으며 수습된 유골들은 기념관 입구 오른쪽 양지바른 곳에 안장하고 대통령의 휘호가 새겨진 구국용사충혼비를 세워 '95년 6월 25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참석하신 가운데 제막식과 추모제를 거행함으로써 이들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렸다.
303고지(자고산 : 왜관읍 석전리) - 328고지(석적읍 포남리) - 숲데미산(석적읍 망정리) - 유학산(석적읍 성곡리, 가산면 학산리)을 잇는 방어선은 치열한 고지탈환전이 벌어졌던 곳이며 특히 유학산은 9번, 328고지는 무려 15번이나 고지주인이 바뀌었다고 한다.
유학산은 다부동을 병풍처럼 감싸 안고 있고 낙동강 동안에 펼쳐 놓은 것 같은 돌산인데 839m의 정상에 올라서면 적 포병이 대구시를 공격할 수 있는 요지이다. 따라서 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하여 처절한 죽음의 혈전을 벌였는데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8일간 9차례의 탈환전중 아군측 신병 병력이 하루 700여명에 달할 정도로 희생이 컸던 곳이며 당시 후방에서 신임 소위가 보충되어 오면 유학산 정상의 소대까지 올라가는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당시 다부동 고갯마루에는 조그만 옹달샘이 있어서 12연대 1·2대대가 '자유천', '생명천', '구국천'이라 부르며 식수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도로확장으로 없어졌다. 다부동 전투는 9월 24일 천생산(구미시 인동) 진지를 탈환할 때까지 55일간이나 계속되었으며 북한군 2만 4천여명과 국군 1만여명이 죽거나 다치는 인명피해를 냈다. 특히 이 전투에서는 최초의 한미 연합작전으로 북한군과 전차전이 벌어졌는데 볼링앨리 전투(포탄화구가 날아가 후방에서 폭발하는 상황이 마치 볼링공으로 핀을 넘어 뜨릴 때의 모양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로 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John.H. 마이켈리스대령(전 미8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미 제27연대는 이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소방대(위급한 전선에 항시 투입되어 불을 끈다고하여 붙여진 별명)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다부동전투는 당시 투입된 북한군 3개사단에 비참한 패배를 안겨 주었고 특히 13사단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북한의 적화야욕을 저지시켜 전세를 역전시키는 발판구실을 했던 것이다.
조지훈 시인은 직접 종군하면서 격렬했던 다부동 전투의 참상을 1950년 9월 26일, 이렇게 시로 표현하였다. 이 시는 1995년 시비로 만들어져 구국용사충혼비와 함께 제막식을 가진 뜻깊은 글이다.
7월7일(日) 06시 출발 광장 분수대앞
▣ 가는곳:
▶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로 山63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도착지: 갓바위로613 (대한리587) 선본사 주차장 ☎053)851-1868
▶ 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486 다부동전적기념관☎054)973-6313
▣ 등산코스 및 탐방:
▶ 등산코스: 팔공산 관봉 (八公山 冠峰 852m)
● 1 팀
선본사 3번주차장(공화실 뒷편)- 좌측능선-(900m)- 4거리 2번째 우측-(200m)-
4거리 직진- 3거리 좌측- 4거리 직진- 3거리 직진- 화실옆 3거리 좌측- 관봉-
관봉석조여래좌상(갓바위)- 되돌아서 화실쪽으로 200m이동 3거리에서 좌측-
이정표3거리에서 선본사쪽으로 하산- (600m)- 선본사 관람- 주차장쪽으로 1.2km
- 선본사 3번주차장 원점회귀 (4km 2시간30분소요)
● 2 팀
선본사 3번주차장- 우측능선- 감나무집- 묘봉암입구 삼거리 좌측- 쉼터 & 헬기장
좌측- 능성재4거리 좌측- 은해봉옆- 선본재- 노적봉- 화실옆 3거리 우측- 관봉-
관봉석조여래좌상(갓바위)- 되돌아서 화실쪽으로 200m이동 3거리에서 좌측-
이정표3거리에서 선본사쪽으로 하산- (600m)- 선본사 관람- 주차장쪽으로 1.2km
- 선본사 3번주차장 원점회귀 (5.7km 3시간30분소요)
▶ 낙동강전투 다부동전적기념관 관람
▣ 참가비 : 30,000원
신청후 352-0851-9323-13 농협 김대웅 입금
(입금순: 카페에 신청 댓글을 달고 5일내에 입금치 않으면
운영진에서 삭제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2017.11.28변경
▣ 준비물 : 개인장비, 우의, 행동식, 카메라, 식수, 여벌옷
개인 약, 반찬
(아침: 간식 제공, 중식: 밥만 제공)
▣ 산행신청방법
다음 카페, 서산 산사모 등산안내/신청방 꼬릿말에 신청하세요.
☞ 산행& 탐방시 발생하는 안전사고, 질병에 의한 발병 등은 본인책임으로
사전 해당보험에 가입하거나 질병에 대한 대비를 강구하기 바람
산 사 모 회 장 김 대 웅 (☎ 010-5426-0186)
사무국장 맹 범 영 (☎ 010-5404-6600)
감 사 박 상 의 (☎ 010-4421-2912)
등반대장 김 동 석 (☎ 010-5406-6280)
등반대장 김 한 중 (☎ 010-9599-0658)
첫댓글 김대웅 맹범영 박상의 신청합니다.
김은자, 이은자, 김동해 신청합니다.
김용택 신청합니다.
김묘제 신청합니다
김한중 부부 신청합니다.
황의복신청합니다.
안명준 신청합니다
김석운 신청합니다
박병호 김정숙 부부 신청합니다
정옥남 가재태 김기종 정한두 신청합니다
최원갑씨 외 1명 신청합니다
이종복씨 신청합니다
정헌.김선보 신청합니다
부석 안광순 서한석 등 6명 신청합니다
회장님 ! 수고 많아요 . 등업신고 후 산행 신청 합니다 ~ 이두현~
선배님 반갑습니다.
이춘식 진윤수 외 4명 신청합니다
김완호.박종태.김근덕 신청합니다
송금
임윤영.명형진.이능배.김재웅.백미경 신청합니다
유기문.명상우.오연택 신청합니다
이상 45명 접수로 차후 접수자는 대기로 하겠습니다
지정미 외1인 신청합니다
벌써 만차되서
대기자네요~
혹 취소자잇으면 연락주세요
김기창 신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