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에 다양한 전문 채널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성, 남성, 유아, 입시, 보험, 주식, 낚시, 만화, 영화, 다큐, 종합 등등. 그 가운데 [남자의 날을 세워라!]라는 주제로 케이블 채널이 운영 중인 곳이 있습니다. 주제에서 그 채널의 목적은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성인 남성들이 개인과 가정,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모든 영역에서 남자다움을 바르게 정립하고 힘 있게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 즉, 남자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며 그렇게 되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도움이 되도록 헬스, 옷 코디, 액션 영화, 자동차, 격투기 등 남자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들과 필요하다고 여기는 프로그램을 방송해줍니다. 그런데 남자들에게 정말 인기가 많고 또 제가 보건대 실제 도움도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세상적인 기준에서이지만 아무튼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훈련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에게도 이러한 훈련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영적 자존감과 자존심을 지키고 회복하는 것이 필요함을 절감합니다(꼭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거룩한 성도라면 당연히 영적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사역에 지친 목회자들은 어느새 자신이 가지고 있는 풍성함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상한 습관에 길들여집니다.
어떤 분에게 깔끔한 겨울 점퍼를 구입하여 선물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입었을 때 어느 정도 품위가 느껴지는 따뜻한 점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입으시고 추운 겨울에 가을에 입는 얇은 점퍼를 겹겹이 입고 나오셨습니다. 스스로는 나름 깔끔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편하기에 그런지 모르지만 제가 볼 때는 깔끔하지도 편하게도 안 보입니다. 사람이 불쌍해 보입니다.
물론 그분의 주님을 향한 헌신을 잘 알기에 무시하지 않으며 존중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분의 외모부터 봅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본의 아니게 그 목회자를 저렴한 분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본의 아니게 그분을 목회자가 아닌 불우한 이웃 정도로 여기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더 큰 문제는 어떤 목회자들은 일부러 그렇게 하고 다니면서 도움의 손길을 은근히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즉, 뉴스나 방송에 나오는 구걸하는 빌딩 여사장님, 구걸하지만 실제로는 집이 두 채인 할아버지 이야기와 같은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금식하며 기도할 때조차 기름을 바르고 고급스럽고 깔끔하게 하고 다니며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진정 주님의 말씀과 마음, 계획을 신뢰하시는 분들은 힘들게 목회하시면서도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삶으로 큰 감동을 전해주십니다.
얼마 전에 배우 차인표 씨가 ‘힐링캠프’라는 토크쇼에 출연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도 보면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차인표 씨는 그 방송에서 자신에게 멘토 같으신 분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정하’라는 후원자 분이 계십니다.
성남의 조그만 당구장 위 개척교회 목사님입니다.
후원자의 밤 행사에 오셨다가 만났어요.
그날 풍선에 결연할 아이들의 사진을 넣어뒀습니다.
목사님은 선물인 줄 알고 이것저것 주워 담으셨습니다.
알고 보니 결연할 아이들이었고, 그분은 돈은 없는데 결연은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는 고민하시다가 교회 앞에서 구두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구두를 닦아서 아프리카 어린이들 7명을 후원했습니다.
목사님이 바쁘면 사모님이 닦고.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구두를 닦는 겁니다.
1년쯤 있다가 목사님 소식이 끊겼습니다.
알아봤더니 계속 후원을 하시고 계시는데 그 사이에 목사님이 루게릭병에 걸리셨습니다.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는 병이었어요.”
차인표 씨는 안타까움과 슬픔에 눈시울을 붉히며 계속 말을 이어갑니다.
“목사님을 찾아갔을 땐 어느 정도 말을 하실 때였습니다.
구두닦이 해서 아이들 후원하다가 몹쓸 병에 걸리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내가 만약 죽어서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결연을 맺고 살 수 있다면
열 번이라도 죽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당시에 목사님께서 구두를 닦으시다가 몸이 아파서 못 닦으니까,
사모님이 닦으셨습니다.
그분에 비하면 나는 쓰레기입니다.”
차인표 씨가 이렇게 이야기 할 때 김정하 목사님과 그 사모님께서는 깜짝 게스트, 손님으로서 이미 나와 계셨습니다. 차인표 씨의 이야기를 듣고 사모님께서는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감동의 소식을 짧게 전하십니다.
“구두를 닦으러 오시던 분들이 후원을 해주셔서 아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곧이어 MC 한혜진 씨가 목사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신데 얼굴이 평안해 보이세요.
목사님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비우고 나누는데 있습니다.
부자도 나누지 못하면 거지고,
가난한 자도 나누면 부자입니다.”
목사님은 루게릭 병으로 인하여 발음도 부정확했지만 굳어진 근육을 움직이며 따뜻한 말을 건네셨습니다. 사실 목사님의 목소리는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모님께서 목사님의 부정확한 목소리를 전부 알아들으시고 통역해주십니다. 다시금 차인표 씨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이 아프시기 전에 구두를 닦아 후원한단 얘기를 듣고
컴패션 밴드 강의부탁을 했습니다.
그 때가 처음 만난 거였습니다.
차가 없으니 걸어오셨습니다.
모르는 분에게 강의요청을 했으니 강의료, 사례비를 드려야 했어요.
제 돈을 드려야 하는데...”
차인표 씨는 잠시 울먹이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잠시 마음을 추스린 후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가 강의료를 더 드렸어야 하는데
그 순간에도 ‘얼마를 드려야 하나?’ 계산했었습니다.
힘들게 구두 닦아서 후원하시는 힘드신 분을 모셔다 놓고
이런 생각이나 하는 나에게 실망했고, 너무 죄송했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이 모여서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 멘토 김정한 목사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날 방송된 배우 차인표 씨의 ‘힐링캠프’로 수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아서 방송국 게시판과 인터넷 기사 게시판에 따뜻함과 반성의 글들을 셀 수 없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청자는 “힐링캠프가 끝난 후 컴퓨터를 켜고 한국 컴패션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면서 “지난 월요일 밤 컴패션 1:1 어린이 양육 신청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등의 감동적인 후기들을 올렸습니다.
방송 이후 많은 연예인들도 차인표 씨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를 본받아 연예인들도 많은 후원을 시작했고 방송의 감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배우 정려원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얼마 전 차인표 선배님 출연하신 힐링캠프를 보게 되었다. 본받을 게 참 많으신 분 같다.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어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배우 윤소이 씨도 “차인표 선배님의 힐링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뀌신 가치관으로 얻은 사랑과 행복, 그의 삶... 존경하고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한명 더 결연해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컴패션 구호단체는 이날 방송의 효과로 일주일 만에 5,200여명의 후원자가 생겼고 한동안 폭발적으로 이 효과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지금도 방송을 보지 못한 분들이 이 소식을 듣고 녹화 방송을 계속 받아본다고 하는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저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차인표 씨가 주님의 사랑으로 남들이 선뜻 할 수 없는 선한 일을 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차인표 씨를 넘어서서 그가 주목했던 김정하 목사님의 삶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든 작은 개척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루게릭 병에 걸리셔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주님의 사랑과 마음으로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나누고 싶어 하셨던 그분의 빛나는 모습이 지금도 제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목회자들은 힘들다는 이유로 구걸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러면 안 되며 차라리 바울처럼 일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일 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전 9:13-15)
다만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은 특수한 경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위의 말씀에서 모든 사도들, 모든 목회자들이 자신처럼 일하면서 사역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인도하심을 받아서 자신의 믿음의 분량대로 해야 합니다.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적절한 사례비를 받는다면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아가 교회와 성도의 입장은 목회자의 생활을 당연히 책임져야만 합니다. 최선을 다해 그러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질로 인한 세상 근심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야 목회 사역인 말씀과 기도, 양육 등에 있어서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과 양육 등 사역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당장 내일 자녀들의 병원비가 없다면 어떻게 설교와 심방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생활고로 어려운데 어떻게 상담과 가르침을 요청하는 성도님들이나 그들의 모임에 방문할 수 있을까요? 초대교회의 사도들도 이렇게 고백하지요.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4)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고전 9:11-12a)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 9:13-14)
위의 말씀처럼 성도님들은 지극히 당연하게 목회자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통로로 쓰임 받고자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목회자는 성도님들에게 충분한 영적인 공급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성도로서 이런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어려움만 이야기하고 상담을 요청하거나, 자신들의 모임에 방문해주기를 바란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처럼 악한 것이 또 있을까요? 여러분이 목회자들의 경제를 챙겨주지 않는다면 목회자들은 여러분을 챙기기보다 가정경제를 먼저 챙기기 위해 수시로 일을 해야 합니다.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를 돌볼 수 없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누군가가 심방이나 상담을 요청하면 그런 목회자들은 이렇게 대답해야겠지요.
“제가 오늘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갈 수가 없어요.”
“제 아내 병원비를 마련해야 해서 택시 운전하는데 다음에 다시 전화 주세요.”
“저희 딸래미들의 등록금을 아직 마련하지 못해서 일하러 가야 합니다.”
이런 고백이 믿음 없는 소리라고 험담을 일삼으며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더욱 가슴이 아픈 것은 이 이야기들은 실제 목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입니다. 단지 성도님들께 돈이 없어서 일하러 간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모님들이 아르바이트를 하시는지 아십니까? 얼마나 많은 목사님들이 택시 운전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그분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며 모든 책임을 그분들에게 전가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목회 현실입니다.
물론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성도님들이 어떻게 힘든 목회자들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그런 분들은 예외의 경우일 것입니다. 다만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분들이 목회자들의 가정과 경제에 무관심한 경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많은 곳을 다니지만 진정 어려움과 고통가운데 몸부림치시는 분들은 오히려 최선을 다해 헌금과 사례비를 준비하시는 경우가 많으십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전 재산인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처럼 말입니다.
그분들은 정성껏 편지봉투에 감사기도제목을 쓰셔서 축복기도 받기를 부탁하십니다. 정말이지 제 마음이 무너지는 것만 같습니다. 주님을 향하신 사랑을 작은 물질에 담아서 표현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얼마나 큰 감동을 받는지 모릅니다. 당연히 저는 거절합니다. 돌려드리는 것을 한사코 안 받으시는 분들에게는 집에 돌아와서 다시 헌금이나 다른 방법들로 돌려드립니다. 그리고 제 손에 아무런 경제적 이익이 없어도 자꾸만 다시 가고 싶은 주님의 감동이 임합니다. 어느 누구보다 한 번 더 제 마음에 기도제목으로 떠오르곤 합니다. 고통가운데서 솟아나오는 그분들의 마음의 간절함과 주님을 향한 최선을 다한 사랑의 표현이 제 마음을 종종 가득 채웁니다. 참으로 주님의 마음은 어렵고 힘든 분들을 향하시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예배인도 하러 가던 전철 안에서 손수건을 판매하여 장애인들 및 독거노인들을 돕는 봉사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격이 이천 원인데 문제는 제 주머니에 천원밖에 없었습니다.
“성령님, 어쩌지요. 좀 모자르네요.”
“그냥 주면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그냥 봉사자에게 돈만 주고는 손수건을 안 받았습니다. 오히려 봉사자는 고맙다면서 연신 인사를 하더군요. 그런데 감사하고 재미있는 일이 보였습니다. 제 옆에 앉으신 분들과 제 앞에 앉으신 분들도 저와 봉사자의 모습을 보았기에 손수건을 받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입니다. 손수건을 구입하려던 모든 승객들이 돈만 기부하고 손수건은 받지를 못합니다. 제가 몇 분을 미리 보았는데 그분들은 손수건을 받아서 가방에 넣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손수건을 안 받고 기부만 하는 분위기인 것을 보고는 가방에서 얼른 손수건을 도로 꺼내시더라고요.
이 모습이 연출되는 가운데 제가 먼저 물질 사용에 있어서 모든 분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되새기며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형편 이상으로 헌금과 구제, 섬김과 나눔에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할 수 있는 훈련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함을 마음가운데 기쁘게 되새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 가운데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지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되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부디 여러분 모두가 영적자존심을 잘 지키시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으셔서 경제적 여유, 마음의 여유가 있으신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여러분에게 은혜와 영적 공급의 통로로 쓰임 받는 분들을 돌아보십시오. 그분들의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주십시오.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십시오. 그 가운데 때를 따라 도우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더욱 풍성하게 받아 누리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그러한 축복의 통로가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힐링 캠프를 보면서 저도 정말 감동이 되더라고요. 컴패션 관계자 분도 그 때 차인표 한 분의 영향력이 얼마만큼 대단했는지를 간증해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을 통해 세상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희들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첫댓글 아멘! 가슴이 짠 합니다. 글을 보는 내내 제 가슴에 성령님의 뜨거운 눈물이 느껴 집니다.
제가 요새 많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에 관해 말씀을 나눠주셔서
마음의 감동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며 살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
힐링 캠프를 보면서 저도 정말 감동이 되더라고요. 컴패션 관계자 분도 그 때 차인표 한 분의 영향력이 얼마만큼 대단했는지를 간증해 주셨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을 통해 세상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희들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감동의 물결이 다가옵니다. 부하든 가난하든 세상에 생명을 나누는 삶을 살기를 결단해봅니다.
부끄럽습니다. 나를 다시 한번 돌아 보는시간이었읍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주는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조금씩 조금씩 경험하고있습니다...
더 풍성한 나눔의 삶의 자리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마음 마저 가난하다고 여겼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참 많이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나 자신만 생각하고 있어서 ....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따뜻한 사람들로 인해 저도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