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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들어가며
2. 저자 및 간단한 책 소개 (1) 저자 소개 (2) 책 소개
3. 본문감상 (1) 조선의 지리와 역사 (2) 조선의 수도 서울 (3) 조선의 마을과 주막 (4) 조선사회의 계층, 직업별 모습 (5) 조선여성들의 괴로움 (6) 조선의 종교적 의식
4. 나오며
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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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19세기 말, 외세의 간섭으로 문호를 개방하게 된 ‘은둔의 나라’ 조선에 서양의 많은 여행가, 선교사, 학자, 행정관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조선에 관한 글들을 기록했다. 때문에 조선 말기의 역사나 사회상 등에 대해 외국인들에 의해 기술되어 국내에 소개된 책자들은 적지 않다. 가장 잘 알려진 책으로는 영국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1897년 발간한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 있으며 A. H. 새비지-랜도어가 1890년 조선을 둘러보고 기록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또한 익히 알려진 책이다. 그 외에 헐버트나 언더우드 등 조선에서 활발한 선교 및 교육 활동을 벌여 우리의 역사교과서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인물들이 남긴 저서 또한 종종 소개된다.
하지만 필자가 이번에 읽은 책은 최근(2008년)에 와서야 번역되고 소개된 것으로서 1893년 조선으로 건너와 한반도의 거의 전역을 누비며 선교 활동을 벌인 한 미국인 선교사가 1909년에 쓴 책이다. 1909년에 저술 된 책이라는 점에 처음에는 조선시대와 관련된 원전(原典)에 대한 감상문을 적는 이번 과제와 시기적으로 어긋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책 선정을 주저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 한반도에 들어온 시기나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대부분 조선 시대 말에 이루어 진 것이고, 비록 시기적으로 대한제국기를 포함하고 있지만 대한제국 역시 조선에서 국호만 바뀌었을 뿐 풍습이나 문화, 사상 면에서는 조선 시대 말기로 포함 시키는 데에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1900, 조선에 살다 Village Life in Korea』라는 책을 선정하게 되었다.
2. 저자 및 간단한 책 소개
(1) 저자 소개
저자인 제이콥 로버트 무스(Jacob Robert Moose, 한국명 무야곱)는 186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농장에서 성장하며 정식 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지만, 투철한 의지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여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결심하여 1892년에는 듀크 대학의 전신인 트리니티 대학 신학부를 졸업한다. 이듬해, 그는 메리 매그놀리아 더함 무스를 부인으로 맞은 후 마침내 선교사가 되어 그녀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온다. 이후 그는 25년간 한반도의 거의 전역을 자전거로 누비며 복음을 전파하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조선의 시골에서 보냈다. 1928년 세상을 떠나기 전 까지 춘천중앙감리교회를 세운 장본인으로서 그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설립과 종교감리교회의 탄생에도 큰 역할을 했다.
(2) 책 소개
제이콥 로버트 무스의 『1900, 조선에 살다』의 원서 Village Life in Korea는 그것이 출판 된 미국에서조차 ‘희귀본 중의 희귀본’으로 분류되어 있다. 책자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저자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미 의회도서관의 소장본 한 권만이 파악될 뿐이다. 하버드 대학교를 비롯한 미국의 몇몇 대학들의 도서관 소장 목록에서 제명을 찾을 수 있지만, 그것들은 책자가 아니라 필름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존재가 그 동안 국내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조선 말기의 역사나 사회상 등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기록한 많은 저서들 가운데『 1900, 조선에 살다 Village Life in Korea』가 더욱 눈에 띄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조선은 시골 마을들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저자의 시각에 따라 조선의 시골 사람들과 그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관찰하고 묘사한 대상은 대지 위에 발을 붙인 채 제도와 인습의 멍에를 지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조선 말기에 관한 이방인의 다른 저술들이 주로 조선의 중앙정치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지배 질서 및 문화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이는 저자가 그의 부인과 함께 조선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외부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사람들과 함께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제이콥 로버트 무스가 책의 본문에 앞서 남긴 머리말에서도 이 같은 점이 부각된다.
나는 십 수 년간 조선에서 살았는데, 그 시간의 대부분을 외부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사람들과 함께 보냈다. 그 경험은 참으로 흥미진진해서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있는 그대로의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즐겁게 여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 조선에 대해서는 세상에 잘 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 나 자신이 대단히 사랑하게 된 조선인들에 대해 독자들이 보다 명확한 지식과 더 깊은 애정을 갖게 되는 데 이 책이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제이콥 로버트 무스 역시 문화적, 역사적 토양이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이었기에 조선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조선 민중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과 조선을 그려내는 저자의 글에는 간혹 잘못된 기술이나 왜곡된 시선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 같은 점은 앞으로의 본문 감상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3. 본문 감상
『1900, 조선에 살다 Village Life in Korea』는 총 23단원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우선 앞부분에서는 조선의 지리와 산천,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서양으로 잘 못 알려진 부분들에 대해 바로잡고 덧 붙여 본인의 감상을 전한다. 그러고 나서 각 파트별로 양반이나 농민, 상인, 장인 등의 각 계층별 모습을 묘사하고 여성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고통 받고 핍박받는지에 대해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실상을 전달하기도 한다. 더불어 조선 마을의 정경이나 주막 등을 직접 체험하고 거리에 나와 있는 조선인들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감상과 설명을 자세히 서술한다. 뿐만 아니라 조선 마을에서의 오랜 생활을 바탕으로 장례나 혼인, 토속 신앙 등 조선의 관습과 문화에 대한 설명도 소상히 하고 있다.
필자는 23단원의 파트를 비슷한 범주별로 묶어 이 책에서 제이콥 로버트 무스가 묘사하는 조선의 모습은 어떠한지 밝히고 그것에 대한 감상을 써내려가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의 시선이 그와 동일한 조선의 관습과 문화를 바라보는 다른 외국인의 시선과 어떻게 다르고 또한 같게 표현되는지도 살펴보려한다. 특히 영국의 여류 여행가로 유명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이 1894년 2월부터 1897년 1월까지 총 4차례, 11개월에 거쳐 조선을 탐방하고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Korean and Her Neighbors』(1897)에서 조선을 묘사하는 그녀의 시선과 많은 비교가 이루어질 것이다. 제이콥 로버트 무스(이하 무스)가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던 시기와 비숍의 조선 탐방 시기가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그가 조선의 시골마을을 주로 관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비숍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오지나 내륙지방으로의 여행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1) 조선의 지리와 역사
‘조선은 섬나라?’ 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내용에는 조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서양인들의 모습이 잘 묘사되고 있다. 조선을 섬나라로 오해하고 있는 선교사들과의 만남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던 당대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저자는 그가 미국으로부터 받은 편지 중에 “일본국, 조선, 서울”이나 “중국, 조선, 서울”로 주소가 적힌 것들이 더러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 들으면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당시 조선이 외국인들에게 인식되던 위상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면서 무스는 조선에 대한 지리적 정보와 인구, 기후 등을 설명하는데 사실상 그 수치가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비숍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조선의 지리와 기후를 설명하면서 기술하는 구체적인 수치들에 비하면 전문성은 꽤나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애정을 갖고 두 발로 걸으면서 확인한 조선의 지리와 몸으로 느낀 조선의 기후에 대한 감상은 비숍의 설명 보다 더욱 친근하다. “조선의 산들은 큰 통에 담긴 후추가 엎질러진 것처럼 그 옆에 무엇이 있는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반도의 어느 곳에든 뿌려져 있다.” 라는 묘사나 “봄과 가을은 길고 저절로 기분이 좋을 정도로 쾌적하다.” “조선의 기후가 극동에서 최고라고 믿는다.” 라고 말하고 있는 부분 등이 바로 그 점이다.
한편 조선의 역사를 기자 조선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1907년 고종이 강제 폐위되기까지를 서술하고 있는데 “바로 몇 해 전 주권을 일본에 빼앗기기까지 이 나라는 외부의 모든 세력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왔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외국인들에게 조선은 그저 ‘중국의 속국으로써 역사적으로 늘 시달리고 나약한 위치에 있었던 나라’라고 인식될 것이라는 생각이 깨지던 순간이었다. 물론 무스의 생각이 조선의 역사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시선 중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개화기를 맞이한 조선에 대해서는 지배층의 무능과 무력을 지적하기도 한다.
(2) 조선의 수도 서울
무스는 서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에 앞서 외국인 사이에 조선인들이 서울을 어떻게 발음 하는지에 관해 많은 논쟁이 있다고 전한다. 서울의 발음이 한 음절인지 두 음절인지에 대한 논쟁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조선의 존재가 익숙하지 않은 만큼 그 곳의 수도인 서울의 존재 또한 외국인들에게는 많이 낯설었을 것이다.
더불어 조선인들이 자기 나라의 수도를 말할 때 꼭 ‘올라간다.’고 표현 한다는 설명은 저자가 얼마나 많은 조선 사람들을 접하고 이야기 해보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그가 여인숙에 묵게 되어 같은 방에 있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면, 종종 "Ola-kam-ni-ka, na-ri-kam-ni-ka?"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는 얘기를 전한다.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표현으로써 계속 쓰이고 있는 이 말을 알파벳으로 풀어 써놓은 문장이 무척이나 재밌었다.
서울을 직접 둘러보고 감상을 전하는 무스는 조선의 수도가 진정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있다고 얘기한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남산이나 북한산의 정경을 전하는 것이다. 한편, 개화가 되면서 달라진 서울의 풍경도 전하는데 “최근 몇 년 전까지 이 대문들은 밤이 되면 모두 닫히고 잠겼으나 요즘에는 서양 전차가 이 대문 중 세 대문들을 통해 드나든다. 지난 5세기 이상 밤마다 닫혔던 이 육중한 문들이 전차선 때문에 닫히지 못하게 된 것이다.” 라고 설명한 부분이다. 전차의 등장을 교과서적인 문장들로만 접할 때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생동감이 느껴졌다.
한편 비숍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서울 거리의 불결한 환경과 악취를 반복해서 지적하고 역겨워 한다. “서울의 성벽 안쪽을 묘사하는 일은 어쩐지 피하고 싶다. (……) 수도로서 서울의 위엄을 생각할 때 그 불결함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라고 말하며 서울 거리의 악취와 불결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무스는 서울의 비위생적이고 악취 나는 거리를 묘사하긴 하지만 문화 상대주의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바라보고자 한다. 냄새 문제는 전적으로 교육에 달려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는 여러 일화들을 전해준다. 한 조선인 신사가 뉴욕에 처음 방문했을 때 ‘도시는 매우 좋으나 냄새가 너무 고약하다.’라고 했다는 얘기, 무스가 좋아하는 소고기 요리를 조선인 손님에게 대접했으나 냄새가 고약해서 먹지 않았다는 얘기 등은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무스가 서울의 악취에 대해 관용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까닭을 잘 알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서울 거리의 조선인들 모습을 서술하는 부분에선 비숍과 무스가 방향을 같이 한다. 비숍이 서울의 일상적 단조로움을 지적한 것처럼 무스 또한 “모든 사람에게 시간이 넉넉하고, 이 큰 수도에 할 일이라고는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서구 세계의 대도시들과 달리 서울은 일손을 놓고 휴일을 보내는 큰 도시의 모습이다.” 라고 표현한 것이다. 근대 산업 문명국가에서 건너온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농업 국가 조선의 수도, 서울의 모습은 분명 정적이고 한가로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3) 조선의 마을과 주막
조선의 수도, 서울의 모습을 묘사한 앞 장에 이어 무스는 이제 지방으로 내려온다. 조선에는 도시나 큰 읍이 별로 없으며 수도 밖에 있는 모든 지역을 시골이라고 한다는 설명을 통해 조선에서 (시골)마을이 사회 조직의 기본 단위임을 밝히고 있다. 조선의 마을 중 그 어느 곳에서도 계획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길을 지날 때 마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한 채 씩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집들에 대해 설명한다. 더불어 조선 마을의 집들은 모두 하나 같이 똑같고 평범한 방법으로 짓고 있음을 말하며 집을 짓는 자세한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저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살필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한 저자의 세심한 관찰과 관심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무스가 묘사한 집은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초가집이나 흙집 보다 더욱 열악하게 느껴진다.
조선의 마을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묘사한 것들 중에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조선의 주막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무스는 조선인들을 일과 풍류를 위해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로 표현하는데 이를 위해 밤에 쉬어갈 장소로써 마을마다 주막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설교를 위해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는 그 역시 주막에서 숙식을 치른 경험이 꽤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조선의 주막은 방을 사용하는 데에는 돈을 받지 않고, 음식 값만 받는데 주인은 손해 볼 것이 없다. 십여 명이 함께 방을 차지하더라도 한 사람이 방을 차지하는 경우보다 세탁할 이불이 더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방에는 베게로 쓰이는 목침만이 몇 개씩 던져져 있을 뿐이고 그 방에서 객(客)들은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잠을 잔다. 무스의 표현을 빌리면 ‘상자 안의 정어리들처럼 포개져’ 잠을 자는 것이다. 겨울은 물론 한여름에도 뜨겁게 데우는 주막의 방바닥은 세균 배양기 역할을 하며 수많은 곤충과 벌레들의 부화와 성장을 돕는다.
주막에 대한 이처럼 자세하고도 현실적인 저자의 묘사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중앙의 정치나 궁궐에서의 생활상, 관념적인 사상을 주로 다루는 여타의 과거 기록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생생하고도 살아있는 민중의 역사인 것이다. 단연 저자가 조선 외부에서 건너온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묘사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겠다. 조선인들 눈에 비춰지는 그들 자신의 주막은 너무나도 당연하여 하등 특별할 것도, 특이할 것도 없고 유별나게 기록으로 남길 필요 또한 느끼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막에 대한 특별한 감상을 무스만이 느낀 것은 아닌 듯하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비숍 역시 서울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조선의 여관이라는 곳, 즉 주막을 경험하게 된 기억을 떠올린다. 그녀가 그려내는 주막의 모습은 무스가 묘사한 그것과 거의 유사하다. “각재(角材)를 13~15센티미터 정도로 자른 나무 베개 대여섯 개가 여기 저기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라거나 “조랑말의 말린 똥까지 때는 여관의 방은 언제나 과도하게 따뜻하다”는 부분에서 이를 잘 확인 할 수 있다.
한편 주막의 가격을 언급한 부분에서 당시 조선 민중의 고단함 또한 엿볼 수 있다. 무스와 비숍 모두 조선의 주막 가격이 턱 없이 싸다고 지적하는데 무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노동자가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서는 그가 종일 일한 하루치 임금을 다 바쳐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방인에게는 거의 공짜인 것처럼 느껴지는 수준의 주막 가격이 조선 민중에게는 하루 종일 일한 삯에 해당 된다는 사실이 왠지 씁쓸하게 느껴졌다.
(4) 조선사회의 계층, 직업별 모습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이다. 크게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되는 조선시대의 신분은 내부로 들어가면 세분화가 더 가능하다. 이러한 당시 조선시대 사회의 계층과 해당계층이 담당하던 사회적 행위들에 대한 무스의 시선은 어떠했을까.
먼저 양반에 대한 그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노동을 거부하고 한문 공부에만 매달리는 양반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양반이 이러한 운명을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동정 하고 있다. 양반의 외관을 묘사하며 손톱은 양반자신이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표시로 길게 기른다는 부분은 무척 흥미로웠다.
한편 일반 농민들에 대한 태도는 무척이나 온화하다. 농민을 조선의 뿌리라고 표현한 저자는 그들이 일 년 내내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는지 상세하게 묘사한다. 비숍 또한 주목했던 조선인의 게으름에 대항하듯 무스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이러한 인상은 조선에 단지 몇 주 동안, 그것도 대부분 개항장 근처에서 머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얘기라고 역설하고 있다. 더불어 농민들이 서로 돕는 품앗이 풍습에 관심을 보이고 그들이 사용하는 지게를 조선 최고의 발명품이라 예찬하기도 한다.
양반, 농민 다음의 신분으로서 상인을 소개하는데 무스는 조선 상인의 수는 많지만 몹시 영세하여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라면 아예 상인의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활동하는 시장의 활발하고 왁자지껄한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덧붙여 장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농민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다소 낮음을 지적하고, 그들의 열악한 작업장과 조악한 연장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가구나 도기 등의 뛰어난 작품에 대해 찬사를 보내며 그것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의사와 관련된 내용이다. 무스는 한의사는 차라리 없는 편이 이 나라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의사들이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인체를 자기 스스로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고 말하며 한의사와 한의학의 비과학적인 처방과 치료에 대해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의사가 병자에게 놓는 침과 뜸에 대해 상당한 불신을 보인다. 이 같은 그의 시선에서 서구중심적인 모습이 많이 드러난다. 조선 사회 내부의 여러 문화와 풍습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환경적 배경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5) 조선 여성들의 괴로움
『1900, 조선에 살다』에서 줄곧 등장하는 내용은 조선의 여성들이 얼마나 핍박받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내용임에도 특별히 두 개의 장(章)을 할애하여 불공평한 삶으로 태어나는 ‘조선의 소녀들’과 속박의 굴레에 갇힌 ‘조선의 여인들’에 대한 설명을 진행한다. 이는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독립된 장(章)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조선에 들어온 외국인들에게는 조선 사회의 남녀불평등과 여성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특별히 눈에 띄고 또 신경이 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무스는 조선에서 여성은 유감과 슬픔의 위로를 받으면서 태어난다고 말한다. 이렇게 태어난 조선의 소녀들은 아무런 이름이나 붙여진다. 결혼을 해 출가하면 그들의 이름은 없어지고 단지 누구의 아내, 누구의 댁 그리고 후에는 누구의 엄마로 불리기 때문이다. 필요하나 이름 없는 존재, 교육 받을 기회조차 부여 받지 못하는 지각없는 존재로 표현되는 것이 조선의 여성들인 것이다. 그녀들이 겪는 가혹한 가사노동과 시어머니의 구박, 더불어 남편의 구타는 저자가 주변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경험을 통해 자세히 묘사된다. 구타를 피해 도망간 부인을 잡아 사다리에 묶고, 양발에 마른 풀잎을 동여맨 채 불을 붙여 뼈가 드러나도록 태운 남편의 사례나 “조선에서는 코가 잘린 여성을 많이 볼 수 있다. 투기로 인해 남편이 잘라버렸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전에는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고 설명해놓은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조금 과장되거나 왜곡된 측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충분히 충격적이고 잔혹하기까지 하다. 단순히 ‘조선시대 여성들은 사회나 가정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고통 속에 살아갔다.’라는 설명만을 들었을 때와는 확 다른 느낌이다. 더군다나 당시 실제로 그것을 보고 들었던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접하니 현실감이 배가 되고 구체적인 당시 상황에 대한 그림 그리기가 훨씬 수월해지는 것 같다. 한 세기 밖에 흐르지 않은 과거이지만 너무나 멀고도 낯설게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신장된 여성들의 지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초가집이 있던 자리에 빌딩이 들어서고, 논과 밭이 있던 자리에 공장이 올라가는 변화 못지않게 우리 사회의 의식적인 변화와 성장도 빠르게 진행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과거의 생생한 기록은 그것이 설명하는 과거의 어느 시점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6) 조선의 종교적 의식
선교사였던 무스는 조선의 종교적 의식이나 신앙과 관련된 부분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그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조선 민중들의 토속신앙이었다. 먼저 혼령을 떠받드는 조선인의 모습에 대해 자세히 보여주는데 ‘조선 사람들은 땅, 불 그리고 하늘 등 온 우주가 혼령들로 가득 차있고 그들의 위계는 서로 다르며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고 여긴다.’는 설명을 한다. 어디를 가나 혼령 숭배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집 안에서도 뒤뜰이나 마루, 부엌으로 시선을 돌릴 때 마다 발견 할 수 있다. 마을 입구의 장승을 ‘악마의 기둥들’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재밌는데 이 또한 혼령의 존재를 믿는 조선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덧붙여 혼령숭배를 위한 사당이나 무당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특히 무당을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여성이라고 표현한 그는 조선 사람들은 신분 고하나 교육 정도에 상관없이 어려움에 처하면 주저하지 않고 무당을 부른다고 설명한다. 특히 저자가 직접 관찰한 무당의 굿판은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이 어이없는 굿판은 한참 계속되다가 무당이 지쳐 쓰러지자 갑자기 끝났다.’라고 마무리 짓는 부분에서 혼령숭배와 무당 등 토속신앙에 대한 기독교 성직자로서 그의 비판적 생각을 잘 읽을 수 있었다.
한편 토속 신앙을 이야기 하면서 무스가 주목한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바로 조선인들의 조상숭배이다. 무스는 ‘유교에 연원을 둔 조상 숭배야 말로 조혼, 남아선호, 축첩, 여성비하 등 온갖 종류의 악습의 뿌리’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가 직접 제사를 위해 일가가 모두 모인 집에 들려 본 제삿집의 광경을 묘사한다. 너무 가난해 부인과 아디들은 의복을 반도 걸치지 못한 상황에서 성대하게 차려진 제사상의 모습은 그가 보기에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방인 선교사였던 무스는 “기독교도들이 이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벌여야 할 가장 힘든 전투는, 바로 이 조상 숭배의 관습에 초점을 맞추어 그에 대항할 강력한 보루를 마련하는 일이다.” 라고 말하며 후에 이어지는 3장(章)의 내용에서 조선에서의 포교 현황이나 선교 방안 그리고 그것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며 글을 마친다.
4. 나오며
우리 내부의 시선이 아닌 외국인의 눈으로 본 조선 시대 말 모습은 매우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 제이콥 로버트 무스의 『1900, 조선에 살다』는 그가 조선에서 상당기간 뿌리박고 민중과 호흡하며 살던 인물이기에 비교적 객관적이고 문화 상대주의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온전히 조선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 할 수 없는 이방인이기에 무스는 종종 글에서 잘못된 설명이나 왜곡된 시선을 보여주기도 한다. 종로에 있는 종각에 대한 전설을 소개하면서 에밀레 종의 설화를 잘 못 가져다 쓴 부분이나 조선의 ‘집’ 이라는 단어를 보통명사(house)로만 파악할 뿐, 추사명사(home, 가정)로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조선어에는 home의 참다운 의미를 포함하는 단어가 아직 없다고 단언하다.’라고 단정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찬송가를 부르는 조선인들을 바라보며 무스는 “조선인들은 모두 노래 부르기를 사랑하지만 그들이 어릴 적부터 구슬픈 소리를 내고 곡소리 하는 법을 배워왔기 때문에, 노래하고 환호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아주 새로운 세계다. 그들은 가끔 술에 취해 부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노래 같은 것은 거의 들어보지 못한다.” 라고 하며 그의 잘못된 편견을 사실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서울 거리에서 나는 악취에 대해 비숍에 비해 상대주의적인 태도를 취했던 그가 조선인의 음악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그녀와 반대였다. 비숍은 한국음악에 대해 소개하면서 ‘서양인의 귀에 그것이 거슬리는 불협화음으로 들리는 것은 한국 음악의 음계가 유럽 음악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자가 선교사였기에 글 전반적으로 흐르는 기독교적인 시선과 조선의 시골 마을들을 기적의 요람으로 삼는 선교사적 결미는 간혹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관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 민중의 생활 모습과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감상은 휴머니즘의 온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조선 시대 말, 당시를 살아가던 인물이 직접 쓴 글을 읽으니 전문서적이나 일반 역사 교양서에서는 느낄 수 없던 그 때의 풍광과 냄새, 소리 등이 생생하게 전해 옴을 느낀다. 더불어 외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조선 시대 사회의 정경은 색다른 역사 인식적 감각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앞으로도 과거의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이 직접 쓴 글이나 색다른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글들을 많이 접하여 다양한 시선을 견지하고 역사적인 안목을 넓힐 수 있도록 해야겠다.
5. 참고문헌
- 제이콥 로버트 무스 지음, 문무홍 옮김 『1900, 조선에 살다』, 푸른역사, 2008
- 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이인화 옮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도서출판 살림, 1994
- 김희영, 「제국주의 여성 비숍의 여행기에 나타난 조선 여성의 표상」『동학연구』Vol.24, 2008
- 신문수, 「동방의 타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韓國文化』Vol.46, 2009
- 정연태, 「19세기 후반 20세기초 서양인의 한국관」, 『역사와 현실』No.34, 1999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민중들의 삶이 잘 닮겨 있는 책이라니 관심이 생기네요. 제가 읽었던 공사견문록도 하층민부터 최상층의 지배층인 왕에 대한 이야기까지 종합적으로 다루어져 있었지만 이 책은 그보다 서양인이라는 조선문화의 외부인의 시각이 반영되었다고 하니 새롭고 신기합니다. 또 주막의 얘기는 저도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주막 외에도 서민들의 삶이 드러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글 곳곳에서 서민들의 삶이 드러나는데요. 서면상의 한계로 전부 다 언급하지는 못했네요. 그 중에 하나만 소개해드리자면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민중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시골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은, 길가 쪽으로 향한 약 한 평 정도의 영업공간을 갖고 있다. 가게의 전면은 널빤지들로 되어 있는데, 낮에는 펼쳐서 상품을 진열하는 데 사용하고, 밤에는 가게를 닫는 문짝으로 쓴다. 상인은 가게 한가운데 멍석을 깔고 앉아 긴 곰방대로 담배를 피면서 손님을 기다린다. 손님은 가게에 들어가지 않은채 길에 서서 원하는 것을 주문한다. 상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주문받은 물건을 집어 손님에게 전해 준다.
서양사람의 눈으로는 상인이 물건을 파는 데 전혀 무관심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정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그런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보통 받고자 하는 가격의 두배를 부른다. 상인이 가격을 부르면 예외없이 흥정이 이루어지는데, 미국 사람이 볼 때는 이 마을에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렇게 언성은 높아지지만, 거래가 진행되는 과정은 매우 유머러스하고 한편으로는 매우 진지하기까지 하다. - 위의 책, p.196>> 여기서 보듯이 서민의 생활에 대한 저자의 자세한 묘사가 무척이나 흥미로운 책입니다. 나중에 시간 되실 때 한 번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이전에 조선에 온 선교사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확실히 이 책의 저자와 다르게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조선에서 25년간 뿌리 박고 살았던 선교사라는 부분이 크게 영향을 미쳤겠지요.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에 번역된 책으로 서양인 선교사가 바라본 조선에 대한 생생하고 냉철한 조사가 잘 느껴집니다. 시골의 농민들의 삶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겨 당양한 계층의 생활사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것 같네요. 특히 비숍의 저술과 비교하니 더 이해가 잘됩니다. 잘봤습니다!
간혹 너무 주관적이고 왜곡된 시선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서민들의 생활사 연구에 대한 자료로 좋을 것 같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글 자세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조사하면서 이 책을 읽었었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시골 마을에 살던 선교사라 그런가 여성이나 소녀들의 고통,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양반이나 토속신앙까지 세세한 것들까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읽기 쉽게 분류를 해주셔서 더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읽으셨다니 훨씬 더 쉽게 이해 되셨을 것 같아요. 재밌는 부분이 많이 있었는데 다 소개해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