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 32만명이 바꿔야
학년통합 검정 없는 탓, 1학년 검정에 합격해도 2학년에선 불합격할 수도
검정교과서 곧바로 수정도 교육현장 혼란… "졸속" 비난
교과서 검정(檢定)을 둘러싼 잡음이 속출하고 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 검정에서 탈락한 저자들이 집단 반발하는가 하면, 이미 검정이 이뤄진 고교 '역사' 교과서는 뒤늦게 '한국사' 교과서로 다시 고쳐 쓰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교육 백년대계는커녕 1년 단위로 그때그때 교과서를 만드는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학년마다 출판사 다른 교과서
대학교수와 교사 96명으로 이뤄진 '2010학년도 중학교 국어 검정 교과서 판정 결과를 납득할 수 없는 집필자 모임'은 최근 교과서 검정을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 달라"는 질의문을 보냈다.
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6일 중2 국어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22종 중 7종(31.8%)을 불합격 판정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평가원은 창의성과 내용의 정확성·공정성, 교수학습방법 등의 항목으로 심사한 결과 이들 교과서가 합격 기준인 총점 80점보다 낮게 나왔다고 탈락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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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한 7개 출판사의 중1 교과서는 현재 모두 학교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채택률을 합하면 44.6%에 이른다.
결국 현재 72만여명의 중1 학생 중 32만명 이상은 내년 2학년 때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로 바꿔 공부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탈락 교과서의 필자 중 한 명인 A교사는 "같은 출판사의 국어 교과서는 1~3학년 교과서가 같은 기준과 체제에 의해 유기적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제재(題材)와 작가가 중복되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작품의 시대적 안배, 학습목표의 위계성 등이 치밀하게 고려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당장 학년이 올라가면서 교과서가 바뀌게 되면 교육 현장에 혼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1학년 때 배운 '소나기'나 '홍길동전'을 2학년 때 또 배워야 하거나, 2학년 교과서와 같은 출판사의 1학년 교과서를 각자 다시 공부해야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중학교의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3학년 영어 교과서는 18종 중 3종(16.7%)이, 2학년 음악 교과서는 16종 중 8종(50%), 한문 교과서는 16종 중 5종(31.2%)이 탈락했다.
이에 대해 교육과정평가원측은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평가원 관계자는 "채택률이 높다는 것은 교과서의 질 외에도 출판사 마케팅이나 유명 저자 여부에도 좌우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작년에 이어 또 합격해야 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교과서가 달라도 같은 교육과정의 틀 안에 있고 중복되는 제재도 10%를 넘지 않는다"며 "교육은 교과서보다도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검정 제도의 변화에 있다. 7차 교육과정까지는 초등·중학교 1학년 검정에서 불합격한 출판사는 2학년 검정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1학년에서 합격하면 3학년까지 그대로 합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07 교육과정에서부터는 1학년에서 불합격해도 다음해 2학년을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친 것이다.
결국 1~3학년 과정을 통합해서 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한 학년씩 검정을 하는 제도 자체의 문제 때문에 상당수 학생들이 학년마다 교과서가 바뀌는 불편을 겪어야 하는 셈이다.
◆고교 '역사'는 '한국사'로 수정 중
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너무 빠른 교육과정의 개편 때문에 이미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뜯어고치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 '2007 교육과정'에 의해 생겨난 '역사' 과목 교과서에 대해 이달 초에 검정 결과가 나왔는데, 지난해 말 '2009 교육과정'에선 '역사'가 '한국사' 과목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합격한 6종을 다시 7월까지 '한국사' 교과서로 뜯어고치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역사' 교과서는 근현대사를 강조한 서술이었지만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다시 전근대사의 비중이 늘어났다"며 "검정결과 발표 때 합격본은 부분 수정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정 심사에 참여했던 B교수는 "전혀 통보를 받지 못했다"며 "정부가 교과서 만드는 일을 너무 졸속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