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나는 커피를 남들보다 조금 특별나게 좋아했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충격을 준 것 가운데 하나가 뉴욕 맨해튼의 스타벅스였다. 90년대 중반 뉴욕에 출장을 가서 커피를 마시는데, 정말 보도 듣도 못한 커피였다. 커피도 커피지만 다른 것들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먼저, 종이컵이 거대했다. 저 많은 양을 사람이 마시라고 주는 건가 싶게 컸다. 그 큰 커피잔에 커피를 가득 따르니, 더 뜨겁고 더 검어보이는 것 같았다. 커피는 진하고 탄 맛이 났다. 손님들은 커피를 버려가며 크림이나 밀크, 설탕을 넣어 마셨다. 크림 넣을 공간을 확보하려고 사람들은 그 아까운 커피를 막 쏟아버렸다. 크림 종류도 10%네, 하프앤하프네 하며 다양했다. 참 이상한 커피, 이상한 문화일세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즈음일 것이다. 스타벅스의 CEO라는 사람이 낸 책이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사서 본 건 아니고, 우리 매체에 소개해달라고 출판사에서 보낸 것. 뉴욕에서 마셨던 커피라 관심을 가지고 하워드 슐츠가 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어서 금세 읽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커피 관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스타벅스는 최고의 품질 관리를 위해, 가맹점을 내주지 않고 모든 브랜치를 직영하며 본사에서 직접 관리한다는 것을 큰 자랑거리로 내세웠다. 신선한 커피 원두를 제공하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직원 처우에 관한 자랑도 많이 했으나, 그보다는 '직영'이라는 말에 관심이 더 많이 갔다. 커피는 신선함이 생명이고, 바로 그 신선한 원두를 제공하기 위해 그런다고 했으니.
그 후로 뉴욕을 두어 번 더 갔고 어느새 스타벅스에 익숙해졌다. 거의 부서질 듯한 나무 의자와 탁자를 갖다 놓은 것이 또 눈에 들어왔다.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허접해보이는 그곳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옆 테이블의 의자를 가져다 앉기도 하고, 자리에 합석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분위기가 '힙'했다. 인텔리젠시아, 스텀프타운, 블루바틀 같은 제3의 커피 물결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어느날 한국에도 스타벅스가 들어온다는 뉴스가 떴다. 경제부 쪽으로 보도자료가 왔을 것이다. 나는 좋아했었다. 드디어 한국 커피문화도 바뀌겠구나 하고. 90년대 중후반만 해도 한국 커피는 커피가 아니었다. 좀 한다는, 직접 볶는 커피점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일반 커피점들은 커피가 뭔지도 모르고 커피도 아닌 커피를 팔았다. 자댕 같은 괜찮은 곳도 있기는 했으나 금방 망했다. 자동판매기와 봉지 커피가 대세였다.
보도자료에 나온 대로, 스타벅스에 전화를 해서 취재하고 싶다고 했다. 왜 경제부가 아니라 문화부 기자가 전화를 했느냐며 의아해 했다. 어쨌든 만나자고 했다. 한국 1호점인 이대점에서 만났다. 홍보 담당자라며 젊은 여성이 나왔다. 나는 보도자료에 나온 대로, 왜 신세계에서 한국 스타벅스를 운영하는지부터 물었다. 하워드 슐츠가 가장 큰 자랑거리로 내세운 게 커피의 품질 관리를 위한 "직영"인데, 아무리 한국이라지만 신세계가 운영하면 직영이 아니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다. "이건 당신들 CEO가 말하는 스타벅스 정신에 어긋나는 사기 아닌가"라는 말을 직접 했을 것이다. 배신감 같은 게 들었으니까.
"본사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같은 답을 한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없다. 홍보 담당자가 참 인상적이었다. 이름은 미셸이라고 했다. 스타벅스의 홍보 담당자가 한국 사람이어서 호기심이 생겨났다. 캐나다에서 자란 한국인 1.5세. 한국말을 아주 잘 했다. 놀라운 것은, 아무리 공격적으로 따져 물어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종일관 담담했다. 속으로, 스타벅스가 직원 훈련을 참 잘 시켰구나 싶었다.
커피를 공짜로 준다고 했는데도, 우리 돈으로 그냥 사먹었다. 함께 간 사진기자가 그런 걸 칼 같이 지키는 성격이기도 했고 회사에서도 그런 걸 얻어먹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영수증 들고가면 회사에서 돈이 나왔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커피 기구를 보면 눈이 거의 돌아간다. 미셸을 만난 스타벅스 1호점에서 자기로 된 커다란 커피 용기를 처음 보았다. 냉큼 샀다. 고가였다. 당시 2만원쯤 했을 것이다. 그걸 캐나다까지 들고와 지금도 사용중이다. 아래 사진. 아직까지 이만큼 좋은 용기를 보지 못했다.
한국 스타벅스는 뉴욕에서 받은 충격에 비하자면 그저 그랬다. 그때만 해도 나는 '커피 근본주의자'여서 한국 스타벅스는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수수한 뉴욕에 비해 비까번쩍한 것도 좋아보이지 않았다. 1호점에 이어 2호점을 대학로에, 3호점은 명동에 냈다. 크게 손해보는 장사였다. 이미지를 위해 가장 번화한 곳에 일부러 낸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고급 이미지를 만들어나갔다. 가격도 너무 비쌌다.
나는 분위기, 가격이 일단 싫었고, 미국에서 볶은 콩을 배로 실어오면서 원두의 신선도 유지 운운하는 것은 진짜 사기 같아서 더 싫었다. 게다가 한국 스타벅스는 입점할 때 다른 커피업주들을 피눈물나게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목 좋은 곳을 골라 들어가면서, 기존 커피점을 내쫓는 방식이었다고 했다. 건물주를 찾아가 거절하기 어려운 임대료를 제시한다는 말도 나왔다. 재벌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였다. 인사동에 들어서면서 '스타벅스'라고 한글 간판을 달았으나, 꽤 괜찮은 커피점이 있던 자리였다. 쫓아낸 것이다.
한국 스타벅스는 마음에 안 들어도 홍보 담당자는 마음에 들었다. 미셸은 내가 처음으로 만난 한국 출신 캐나다 사람이다. 내가 캐나다 이민을 결정하는 데 미셸의 영향도 만만치 않았다. 다시 만나자고 해서 캐나다에 대해 많은 걸 물어보았다.
캐나다에 와서 보니 스타벅스가 막강 팀호턴스에 밀려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스페셜티 커피전문점을 찾아다녔다.
미셸이 토론토로 돌아와 연락을 해왔다. 한국에서 결혼해 남편, 아들과 함께한 십수년 만의 귀환이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이 좋아서 나갔다가 다시 살러 왔다고 했다. 게다가 우리 동네에 자리를 잡았다. 요즘도 가끔 통화하고 만나기도 한다.
한국 스타벅스는 출발부터 커피로 말하자면 '사기를 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분 절반을 넘어 67.5%나 신세계가 가졌다고 들었다. 예전의 내 주관적인 기준을 들이대자면 전적으로 사기 친 거나 다름없다. 매장 운영 방식 같은 것으로 이후 한국 커피업계에 좋은 영향을 끼친 것도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커피 근본주의자의 주관적인 기준이라고 말하는 거다.
사기를 쳤든 어쨌든, 캐나다 출신 스타벅스 홍보 담당자 미셸을 만나 캐나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졌고, 나는 캐나다로 살러왔으니 덕을 보기도 했다. 알고 보니 미셸은 경영학으로는 캐나다에서 첫째로 치는 대학 졸업생이었다. 프리젠테이션과 질의응답 등에 관한 공부를 대학에서 이미 하고 나왔지 싶었다. 한국 스타벅스에서 오래 일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래부터는
1) 비염, 축농증
2) 분노조절장애, ADHD
3) 여드름과 아토피 등 피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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