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들의 땅- 저주의 숲 『시엠 레아프(Siem Reap)』
눈부신 앙코르와트의 부조 / 앙코르와트 전경
영종공항에서 오후 5시에 출발한 대만 원동(遠東)항공 여객기는 3시간 비행 끝에 대만(臺灣) 까오슝(高雄) 공항에 도착했다. 한 시간 정도 면세점을 기웃거리다 다시 9시경 출발하여 3시간 정도 비행한 후 캄보디아 ‘시엠 레아프(Siem Reap)’ 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쯤이었는데 현지시각으로 새벽 2시였다.(우리나라와 시차 2시간) 시엠 레아프(Siem Reap)는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유적군 인근에 세워진 도시로 ‘시엠’(시암족:태국)을 ‘레아프’(격파하다)는 의미라고 한다.
크메르족은 인근의 국가들과 인도차이나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끊임없는 경쟁을 벌이는데 앙코르왕조에 이르러 인도차이나반도의 맹주(盟主)가 된다. 그 후 끊임없는 타민족의 도전을 받는데 시암족(태국)의 일곱 번 침공까지는 잘 막아내었지만 여덟 번째 침공에 무너졌다고 한다.
AD 9세기부터 건립되기 시작한 거대한 사원들은 자야바르만 7세 때 이르러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힌두사원들과 벽화와 조각상들이 대량으로 조성되는데 이곳을 둘러 보노라니 그 거대한 규모에서부터 정교한 석공들의 기술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아유타야(시암족:태국)에 패한 후 400여 년 동안 밀림 속에 버려진 앙코르 유적군은 유령의 숲으로 알려져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하여 아무도 접근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 앙리 무오의 탐사와 앙코르의 저주
1860년, 프랑스의 자연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앙리 무오(Albert Henry Mouhot)가 이곳의 유적을 탐사하기 위해 짐꾼을 모집하는데 현지인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회피하여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앙리 무오가 처음 발견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 제법 많은 서양인들이 앙코르와트를 이미 방문했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보일러보 신부는 1857년 앙코르와트 탐방기인 『인도차이나 여행(안남과 캄보디아/Travel in Indochina, The Annam and Cambodia)』라는 책자를 발간하였다.
앙리 무오는 1년여 탐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말라리아에 걸려 현지에서 죽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앙코르의 저주’라고 무서워하였다고 한다.
앙리 무오의 기록이 책으로 출간된 후 이곳을 방문하였던 몇 명이 더 희생되었고 이어진 폴 포트 정권 때 250만이 희생된 것도 앙코르의 저주 연장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앙코르와트 전경 / 앙코르 여왕 복장 / 앙리 무오
9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세워진 이 앙코르 유적군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걸작으로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사원들이 밀림 속에 산재해 있는데 훼손이 매우 심각하고 워낙 방대하다 보니 가난한 캄보디아 국가 재정으로는 복원을 엄두도 못 내고 유네스코와 몇몇 나라에서 도와주고 있기는 하지만 복원의 진척도(進陟度)는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유네스코에서는 항공기 진동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하여 대형항공기의 취항을 억제하여 200명 정도의 승객을 태우는 비행기만 취항하고 있는데 비행장이 유적군과 너무 가깝게 건설된 것도 문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