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 불국사(大母山佛國寺) /전통사찰, 태고종
-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1385년(공민왕 2) 진정국사께서 창건. 창건 때는 약사절로 불렀다.
조선 말 고종이 불국정토를 이루라는 뜻으로 불국사란 사명을 내렸다.
6.25 때 절은 없어지고 약사불만 남음. 1964년부터 관악산 삼막사 주지 권영선께서 중건에 나섬.
(불국사 안내문에서 내용을 보고 정리함)
2023년 4월 20일, 오전 7시 40분 고속버스를 김해서 탔다. 정오에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지하철 일원역에서 내려 걸었다. 가방 두 개를 지고 걸으려니 몹시 불편하다.
대모산은 300m가 안 되는 산이지만 강남이 모두 보이는 산이겠다. 그 산 중턱에 불국사는 있다.
대모산은 구룡산과 연계, 시민이 편하게 이용하도록 길이 잘 놓여져 있다. 좋은 공원 구실을 하고 있다.
서울시 강남구엔 전통사찰이 두 곳, 불국사와 봉은사 뿐이다.
불국사는 그리 큰 절이 아니다. 암자 수준이다.
약사보전
불국사 석불좌상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36호
높이는 79.5cm.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고, 머리에는 나발이 새겨져 있으며 머리 정상에는 계주가 표현되어 있다.
호분이 여러 겹 칠해져 있어 원래 얼굴 모습을 알기 어렵지만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섬세한 원만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불신(佛身)은 위축되었으며 머리 크기에 비해서 어깨가 좁다.
두꺼운 대의(大衣)를 편단우견으로 착의, 대의 옷주름이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약간 투박하게 새겨져 있다.
두 손은 마주 포개어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올려 선정인(禪定印)을 결하고 있다.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불상 형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머리와 신체의 어색한 비례와 자연스럽지 않은 옷주름의 조각 등에서 볼 때, 고려 말기 조각으로 추정한다.
(인터넷 찾아보기, 불국사 안내판 참조)
이 불상이 밭에서 나와 진정국사가 이곳에 절을 짓고 약사절이라고 하였다.
설명과 같이 얼굴이 둥글고 크다. 목은 굵으며 짧다. 보기엔 균형감이 떨어진다.
나한전
나한상은 목조각이다.
불국사에서 본 롯데타워, 날이 매우 흐리다.
불국사에서 봉은사까지 4km 남짓, 짐이 없다면 걸을 만한 거리이다. 버스를 탔다.
수도산 봉은사(修道山奉恩寺) /전통사찰
-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794년(원성왕 10)에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하여 견성사(見性寺)라 하였다.
고려시대의 사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498년(연산군 4)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선릉(宣陵/성종 능)을 위하여 절을 크게 중창하고, 절 이름을 봉은사라고 개칭하였다. 1501년(연산군 7) 왕은 절에 왕패(王牌)를 하사하였다.
1551년(명종 6) 선종(禪宗)의 수사찰(首寺刹)로, 광릉 봉선사(奉先寺)는 교종의 수사찰로, 봉은사 주지로 보우(普雨)를 삼았다.
보우는 1562년에 정릉(靖陵/중종 능)을 선릉(宣陵) 동쪽으로 옮기고 현위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1563년(명종 18) 절에 순회세자(順懷世子)의 사패(祠牌)를 봉안하기 위하여 강선전(降仙殿)을 세웠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전란으로 소실, 1637년(인조 15)에 경림(敬林)과 벽암(碧巖)이 모연(募緣)하여 중건하였다.
1665년(현종 6) 화재로 소실, 1692년(숙종 18)에 왕실 시주로 삼존불상(석가모니불·아미타여래·약사여래)을 안치하였다.
1702년(숙종 28) 왕이 절에 전백(錢帛)을 하사하여 중건을 마쳤다.
1757년(영조 33) 상헌(尙軒)·영옥(穎玉)·선욱(善旭) 등이 힘을 모아 중수하였다.
1789년(정조 13) 선욱과 포념(抱念)이 세자각(世子閣)·대웅전·명부전·향각전·관응당(管應堂) 등을 보수하였다.
1790년에 전국 사찰의 승풍과 규율을 감독하는 오규정소(五糾正所)의 하나가 되어 강원도와 경기도의 사찰 일부를 관할하였다. 1824년(순조 24) 경성(鏡星)·한영(漢映)·승준(勝俊) 등이 세자각을 비롯하여 모든 당우를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 31본산 때에는 경성 일원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그때 가람으로는 대웅보전(大雄寶殿)·대향각(大香閣)·화엄경판전(華嚴經板殿)·선원(禪院)·영산전(靈山殿)·심검당(尋劒堂)·관응당·천왕전(天王殿)·강선전(降仙殿)·독성각(獨聖閣) 등이 있었다.
1939년 실화로 대웅전, 동서의 승당과 진여문, 만세루, 창고 등이 소실.
1941년 주지 도평(道平)이 대웅전과 동서의 양 승당, 1942년 영산전·북극전(北極殿)·만세루(萬歲樓)·천왕문(天王門) 등 중건.
1943년 절의 서쪽에 있던 종남산(終南山) 명성암(明性庵)을 이곳으로 이건(移建)하였다.
1972년 동국역경원의 역장(譯場:경전번역소)이 이곳에 들어왔다.
1975년 진신사리 1과를 봉안한 삼층석탑과 석등을 조성하였으며, 1982년에 진여문과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1996년에 미륵대불을 조성하였으며, 1997년 천왕문과 법왕루(法王樓)가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인터넷 찾아보기 백과사전, 봉은사 홈페이지 등을 참조하여 정리함)
봉은사 연혁이 화려하다.
연회국사에 대해서는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없다. 삼국유사 기록 외는 남은 기록이 없는 모양이다.
<삼국유사 권5 피은避隱 제8 연회도명緣會逃名 문수점文殊岾>에 고승 연회가 국사國師란 짐을 지지 않으려고 도망가다가
문수보살과 변재천녀를 만나 깨달고 왕실로 들어가 국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시대 성전사원 일곱 곳이 있었다고 한다. 봉은사, 사천왕사, 봉선사, 감은사, 봉덕사, 영모사, 영흥사.
이 일곱 절은 모두 경주나 그 부근에 있었던 절이 아닐까?
고려시대엔 개경에 봉은사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겠지만 고려시대 사적 기록은 없다.
명찰순례1(저자 최완수) 봉은사 편을 읽었다.
현재 봉은사는 광해군 때 성종 능인 선릉의 능침으로 창건한 절이란 생각이 든다. 그 이전엔 확신할 수 없다.
봉은사는 강남구 노른자리인 삼성동, 도심에 있는 절이다. 1990년 초에 강남 개포동 살 때 한두 번 온 기억이 있다.
그때에 비하면 매우 번잡스럽다. 곧 '부처님오신날'이라 등이 달려 있어 건축물을 보는데 어렵다.
신도들과 관광객이 많아 구석구석 구경하기도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았다. 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미루어야겠다.
일주문, 큰 도로와 접해 있다.
사천왕문, 봉은사에서 '진여문'으로 부른다.
봉은사 목조 사천왕 입상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60호
현판 글씨는 청남 오제봉(1908~1991) 선생이 솜씨다.
일주문과 사천왕문 사이에 매점이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사적비와 승탑 등이 있다.
법왕루, 1997년 완공.
선종갑찰 대도량 불기 2970년(1943년) 오세창 / 독립운동가인 위창 오세창 선생께서 쓰신 글씨이다.
법왕루 안
선불당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4호
1941년 주지 일초 태욱께서 예전 심검당 자리에 선불당을 지었다.
매화당
수월관, 전통 문화 체험관 2관
전통 문화 체험관 1관, 한자가 내겐 어렵다.
지장전, 2002년 6월 화재로 모두 타고, 12평인 지장전을 40평으로 2003년 12월 새로 지어 완공하였다.
심검당, 1939년 화재, 1941년 새로 지었다.
삼층석탑, 진신사리 1과를 봉안하고 있다. 대웅전 앞이다.
대웅전 문살
봉은사 목 삼불상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6호
삼세불(약사여래/석가불/아미타여래), 1651년(효종 2) 조각승 승일과 그 제자들이 만들었다.
봉은사 감로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6호
봉은사 신중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9호
홍무25년 장흥사명 동종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6호
1392년(공양왕 4/태조 이성계 즉위 원년) 장흥사에서 만든 종. 종뉴는 분실.
대웅전 안에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신중도, 삼세불도, 감로도, 삼장보살도 들이 있지만 나는 두 점만 본 것 같다.
대웅전 현판 글씨는 등 때문에 보기 어렵다. 추사(김정희)체 이지만 집자도 아닌 흉내낸 글씨라고 한다.
영산전 가는 길
영산전에서 본 대웅전
영산전
영산전 글씨는 지운영이 썼다고 한다.(명찰순례/최완수)
지운영(池雲英,1852~1935), 한국인 최초로 고종의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서화가
초명은 운영(運永). 호는 설봉(雪峰) 또는 백련(白蓮). 종두법 시행의 선구자인 지석영(池錫永)의 형이다.
봉은사 목 삼존불상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7호
가섭과 아난존자를 협시로 한 삼존불은 특이한 경우이다. 조선 후기에 만든 불상이다.
봉은사 영산회상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7호
봉은사 목 십육나한상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28호
봉은사 십육나한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8호
봉은사 신중도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39호
봉은사 사자도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38호
칠성각, 전각 외부를 참배하게끔 만들어서 전각을 옳게 볼 수 없다.
북극보전, 심상훈인란 인이 있다고 한다. 고종의 이종사촌 동생이라고 한다.(책, 명찰순례)
칠성각 주련은 볼 수 없어서,,,,추사체인 모양이다. 추사 글씨는 아니고 하성파 글씨로 생각(책, 명찰순례)
하성파, 성파 하동주(1865~1943)는 거제출신으로 진주지역에서 활동한 서예가, 추사체에 대가이다.
칠성각 외벽 그림
영각
연회국사(신라 고승, 봉은사 창건), 석주당 정리대종사
청허당 휴정대선사, 허응당 보우대사
태고 보우(太古普愚, 고려 말 국사)
허응 보우((虛應普雨 1515~1565), 문정왕후를 도와 불교 중흥을 꿈 꾸었지만 유림에게 배척, 제주도 귀양 중 살해 당함.
청허 휴정(서산대사), 사명당 유정(사명대사) 등이 법손이다.
백곡당 처능대선사, 사명당 유정대선사
영암당 임성대선사, 남호당 영기대율사
영각 안에서 밖을 보다.
판전, 글씨는 추사 김정희
판전 현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3호
판전 안을 볼 수 없다. 문이 잠겼다. 판전 안에 몇 점의 문화재가 있다.
봉은사 판전 신중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0호 봉은사 판전 비로자불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2호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목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4호
흥선대원군 불망비
추사 김정희 기념비, 추사는 봉은사에서 임종을 하였다고 한다.
다래헌
범종각
미륵전
종루
연회다원, 차 한잔 하는 곳.
운하당, 1941년 중건.
사적비
보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