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자막이 오르고 한 동안 멍해지거나 먹먹해지는 영화. 이런 멍-먹한 것들은 어떻게라도 그 흔적을 남겨놓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한편 충동과 별개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너무 많은 것이 생각나는 작품도 있다. 1954년 베네치아 영화제에 출품된 <La Strada>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생각이 많으니 하고픈 이야기 또한 적지 않다. 어떤 것을 빼고 줄여야할지 당혹스러울 정도로.
<La Strada>
타이틀 <La Strada>. 영어로는 ‘the street’, 우리말로는 ‘길’이다. 제목으로 알 수 있듯 로드무비로 분류할 수 있겠다. 저 유명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델마와 루이스> <삼포가는 길> <서편제> 처럼.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개봉 1954년(이탈리아), 1957년(국내)
출연
줄리에타 마시나 - 젤소미나(Gelsomina)
앤서니 퀸 - 잠파노(Zampanò)
리처드 베이스하트 - Il Matto(나무도장)
줄거리
(음악작품에서의 서주와 같은, 젤소미나 주제의 트럼펫 선율이 끝나면)
외딴 촌동네의 가난한 처녀 젤소미나는 죽은 언니를 대신해 차력사 잠파노의 조수로 팔려간다. 가슴 근육을 이용한 쇠줄 끊기가 유일한 레퍼토리인 잠파노는 그녀에게 어설픈 광대역을 맡긴다. 어리숙하지만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인 젤소미나의 꿈은 예술가. 젤소미나는 잠파노의 학대와 어설픈 광대역에 질려 도망을 하던 중 유랑 서커스단원인 Il Matto를 만난다. 일 마토는 길가의 돌멩이라도 제각기 쓸모가 있다며 젤소미나의 각박한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한편 집시의 후예 일 마토는 잠파노의 차력을 비웃으며 악연의 고리를 만들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잠파노의 화풀이 주먹질에 목숨을 잃는다. 주먹질에서 시체의 유기까지를 모두 보게 된 젤소미나는 정신적 쇼크에 빠져 삶의 의지를 잃고, 잠파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남겨두고 홀로 떠난다.
세월은 흐르고 서커스단의 일원으로 떠돌던 잠파노는 우연히 시골 아낙의 흥얼거림을 듣게 되는데, 바로 젤소미나가 즐겨 부르던 멜로디다. 마을 아낙은 미친 여자로부터 들었으며 그녀는 병들어 죽었다고 전한다. 술기운을 빌어 괴로움을 잊으려는 잠파노가 해안에서 오열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유물 같은 100여 분짜리 영화에 할 말이 많은 것은 아무래도 레트로-를 자극하는 인물들 때문일 게다.
먼저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1920~1993).
1950년 <청춘군상>으로 데뷔해 <8과 1/2> <달콤한 인생> <카비리아의 밤>과 같은 영화로 후대의 감독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달콤한 인생>은 196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겼고, 평생에 걸쳐 24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영화 밖 그의 인생도 영화나 다름 없다. 데뷔작으로 만난 여주 마시나와 1953년 결혼,금혼식 다음 날인 1993년 10월31일 사망, 1994년 3월23일 마시나 사망. 50년 이상을 함께 영화를 만들고, 함께 가정을 꾸리고, 50일 차로 함께 잠들었으니 이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 어디 있으랴.
다음 젤소미나 역의 줄리에타 마시나(Giulietta Masina, 1921~1994).
전술한 바 펠리니 감독의 영원한 뮤즈. <카비리아의 밤>으로 1957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비극적인 세상을 순수한 영혼으로 버텨내는 여주인공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자신을 계속 여주로 캐스팅해야 했던 남편의 고민&갈등 앞에서 상당 기간 은막을 떠나있기도 했다. 1953년 결혼 이후 유산과 병마로 두 아이를 잃어 영화 밖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찰리 채플린이 가장 존경하는 여배우라 칭할 정도로 영화사에 남편 못지않은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잠파노 역의 앤서니 퀸(Anthony Quinn, 1915~2001).
말이 필요 없는 배우. 국내의 올드팬에겐 장 들라누와 감독의 <노틀담의 꼽추(1956년)>- 아름다운 에스메랄다(롤로브리지다)를 따라 죽음을 맞는 순정남 콰지모도(앤서니)로 기억된다. <열정의 랩소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희랍인 조르바> 등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마지막으로 음악을 맡은 니노 로타(Nino Rota, 1911~1979).
이탈리아 출신으로는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영화음악 작곡가. <길> <카비리아의 밤> <달콤한 인생> <8과 1/2> <로미오와 줄리엣> <대부1/2> 등의 음악을 맡았다. 알파치노의 퀭한 눈 저편에서, 올리비아 핫세의 금빛 머리띠 뒤에서 흘러나오는... 아~ 탄성을 발하게 만드는 멜로디가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La Strada>는 펠리니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네오-리얼리즘에 입각해 고통 받는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그리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 신화적 세계관의 완성된 카달로그이자, 그 이전에는 전혀 도달할 수 없었던 내 정체성의 위험한 발현이었다.”
작품과 관련한 감독의 회고에도 불구, 영화 내내 머릿속을 떠도는 이미지와 단상들이 있었다. 소설로는 「백치 아다다」 「벙어리 삼룡이」, 배우로는 정윤희/원미경, 용어로는 신파/비극 등.
둥근 눈망울이 슬퍼 보이는 젤소미나를 보면 우리의 여배우들이,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일제하의 단편소설들이, 비극적 마무리에선 많이 보던 신파가 떠올랐다. 결국 감상을 최대한 요약하면 ‘이태리판 신파’.
정말 그런가 영화를 따라가보자. (신파(新派)란 용어가 일본의 구파극인 가부키에 대립해 생겨난 터, 피해가고 싶지만 딱히 대체할만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ㅠ.ㅠ)
잠파노가 1만 리라에 젤소미나를 사는 장면에선
“벙어리인 아다다가 흡족할 이치는 없었지만 돈으로 사지 아니하고는 아내라는 것을 얻어 볼 수 없는 처지였다. 그저 생기는 아내는 벙어리였어도 족했다. 그저 일이나 도와주고 아들딸이나 낳아주었으면 자기는 게서 더 바랄 것이 없었다.” - 「백치 아다다」
시골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어설픈 광대 젤소미나에게선
“벙어리가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그는 물론 이성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동네 처녀들이 저를 '벙어리', '벙어리'하며 괴상한 손짓과 몸짓으로 놀려먹음 받을 적에 분하고 골나는 중에도 느긋한 즐거움을 느끼어 본 일은 있었으나 그가 결코 사랑으로써 어떠한 여자를 대해 본 일은 없었다.” - 「벙어리 삼룡이」
마토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젤소미나의 모습에선
“그때야 그는 색시가 타 죽으려고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 「벙어리 삼룡이」
해변가 좌절하는 엔딩신에선
“한참만에 보니 아다다는 복판도 한복판으로 밀려가서 솟구어 오르며 두 팔을 물 밖으로 허우적거린다. 그러나 그 깊은 파도 속을 어떻게 헤어나랴! 아다다는 그저 물 위를 둘레둘레 굴며 요동을 칠 뿐,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어느덧 그 자체는 물 속에 사라지고 만다...짝을 찾아 도는 갈매기떼들은 눈물겨운 처참한 인생 비극이 여기에 일어난 줄도 모르고 끼약끼약하며 흥겨운 춤에 훨훨 날아다니는 깃치는 소리와 같이 해안의 풍경도 도웁고 있다.” - 「백치 아다다」
이 정도 매칭이면 신파 맞다. 마치 펠리니 감독이 K-신파를 그대로 베껴간 느낌이다. ㅋㅋ
하긴 신파가 따로 있나, 적당한 막장과 적당한 비극에 슬쩍 레트로를 묻히면 신파지.
각설, 황금만능의 시대에 순결한 영혼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육체적으로 더러는 정신적으로 결함을 갖고 태어난 이들에게, 차마 외면 못하는 신의 아량에 의해서나 겨우 허락되는 것은 아닐까.
또 허락된다 하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 순결한 영혼이 다치지 않는 세상은 없다. 따라서 영화에서는 물론 현실에서도 우리의 삶은 비극이다. 신상옥 감독에 의해 <벙어리 삼룡이>로, 펠리니에 의해 <길>로 버무려진 신파가 비슷해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