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소설이 아니고 사실만 쓴 자서전이다.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 소송 지긋 지긋한 시간들을 쓰다가 머리가 너무 아파 1년을 못 쓰고 다시 써서 완성 한다 대한민국 청주한씨 참의공 종원들 모두 다 읽을 때까지 삭제 안될 것이다.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소송 (지긋지긋한 시간들)1055명이 읽었다. | 우리들의 이야기 담안집hoj | 등급변경▼
조회 970 |추천 0 | 2018.08.29. 03:56 자서전 (2018년 8월 29일부터 9월 10일까지 쓰다가 너무 힘들어 중지하고) 2019년 11월10일 다시 써서 완성을 한다. 실명으로 썻다 명예훼손으로 소송 한다고 ??? 소송 해 봐라!!!
(나에게 잘못하던 사람 모두 죽었다!!! 내가 죽으라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벌 받아 죽은 것이다.!!!! 명예훼손으로 소송해 봐라!! 너도 어찌 되는지, 명심 하거라!!)
소송(재판)은 勝訴(이겨도) 해도 손해, 敗(지는것)해도 손해다. 승소하면 왜 손해냐구? 승소 하려면 피가 말라야 승소하기 때문이다.
나는 피가 마르게 고생하고 노력하여 민사소송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2008가합10389 소유권 이전 각하. 서울고등법원 2011나 11704 소유권이전 기각. 형사소송 서울 중앙 지방법원 2013 고단 6669 사문서 위조 한양명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서울 중앙 지방 법원 2014노 936사문서 위조 항소기각 대법원 2014 도12272 사문서위조 상고 기각 승소 하였다. (대법원 나의사건 한정옥 조회 하여 봐라 거짓인가)!!!!
한양명씨를 대법원까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받게하여 나와의 감사공종중의 소송이 종결 되였다.
재판은 증거를 수집하여 변호사에게는 조언을 듣는 것이다.
변호사만 믿고 있으면 절대로 안된다.
내가 만약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 했으면 패 했을 것이다.
소송 하는 사람은 승소 할것 같으니 소송을 하고 막대한 재력이 있으니 소송하여 상대방 것을 빼앗으려고 한다.
※※※소송은 돈 없으면 패 한다.※※※
내가 감사공종중 대표 한근수를 고소장 만들어 사문서 위조 경찰서에 고소 하고 경찰서에서 사실확인 조사하여 검찰청으로 사건이 이송이 되였다.
내가 증거를 수집하여 계속 검찰청에 "보내
문서 감정하여 달라고 하여야 재판은 이루워 지고 ※※※검사가 증거를 조사하여※※※
★★★한양명씨를 형사소송 대법원까지 승소(기각) 하였기에 때문에
민사소송 서울 고등법원에서 기각으로 승소하고
한양명씨가 청주 한씨 참의공 종중을 이미 폐하고 종중 명의를 감사공종중으로 바꾸워 땅을 빼앗으려 하는
한양명씨의 계획한 것이 물거품이 되고
현재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이 복원 된 것이다!!!! ★★알기나 하고 살아라 침의공 종원들아!!!★★ 한양명씨는 사문서 위조 죄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받고 사망 하였다. 산직이 한동석 땅 팔아 먹고 사망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산107번지와 같은동 108번지 4만평 땅들이 감사공 종중 땅이라고 법원에 사실확인서를 제출한 한동석이가 내가 승소(이기니)하니 정상훈에게 1필지를 1억 5천만원에 팔아 먹고 돈 써 보지도 못하고 사망했다)
※※※ 조심들 하거라!!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내 눈에서 피 눈물 난다!!!!!!※※※
★★여기부터 내가 왜 소송에 가담하게 되였는지 이야기 ★★
나는 여자다. 아버지가 첩실을 얻어 나는 할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우리집은 양조장을 하며 정미소도 하고 군에서 둘째 가라면 서운해 할 정도 재력이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
나의 조부 한 자 노자 수자 께서는 내가 19살 때 돈을 도포 속에 넎고 친족 한명수씨 와 여러번
서울을 거쳐 경기도 고양이라는 곳에 선산 땅을 매입 하시러 가신 다고 하시는 것을 보았다. 우리 할아버지는 조상님들을 섬기시는 유교학자 이시고 서울 성균관 까지 가셔서 나라일을 걱정하시고 뿌리있는 가문을 항상 말씀 하시므로
나는 할아버지 말씀에 쇄내되여 할아버지를 존경하였다.
내가 여자이므로 종중에서 하는 일들을 알려고도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2009년 1월 20일 소송장이 왔다.
※※ ※ 의정부 지방법원 고양지원 2008 가합 10389 소유권 이전※※※
나는 피고: 한정옥외 139명 상속자들 되고 원고 : 청주 한씨 감사공 종중 대표 한근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산107번지와 같은 동 산 108번지 땅이 청주한씨 감사공 종중 땅이니 1달 이내에 답변을 하지 않으면
소송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땅은 청주한씨 감사공 종중 땅이 된다고
아니 들어 지도 못한 감사공 종중이라는 곳에서 소송장이 오고 소송비용을 내라고 하므로
숙부와 고모와 동생에게 연락을 하여 무슨 일이냐? 알아 보았더니
청주한씨 중앙종친회 회장을 여러번 하던 한양명씨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을 이미 폐하고 청주한씨 감사공 종중을 만들어
할아버지께서 매입 하신 땅 4만평을 빼앗으려는 소송이 였다.
나는 할아버지께서 학교에 보내 주시여 교육을 받았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 할수있는 판단력이 있고 컴퓨터를 배워 국역왕조실록에 기록된 것을 열람할 수 있는 실력이기에
할아버지가 이룩해 놓으신 것을 한양명씨에게 빼앗기면 안된다는 일념으로
나는 콩팥이 하나라 건강 하지도 못한 사람이 한양명씨가 종중 땅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61번지를 8억 8천만원에 팔아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비용을 사용하며 할아버지가 매입해 놓으신
※※땅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가 해 놓으신 것 인데 참의공 종중은 이미 없어 졌고 땅도 빼앗긴 다니!!! 대응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내가 의정부 지방법원으로 등기소로 찾아 다니고
변호사 1명도 선임 못하고 (돈도 없고 상대방 변호사를 이길 변호사는 없음을 판단 ) 여러사람(구조공단 ,시청 무료 변호사)의 조언으로
민사 소송 의정부지방 고양지원 각하. 서울 고등법원 기각. 형사소송 서울 중앙 지방 법원 기각, 서울 고등 법원 기각 서울 대법원 기각 판결을 받게 하였다
죽을 힘을 다하여 참의 공종중을 폐한 것이 복원 되고 종중 땅 팔아 소송비용 쓰고 남은 돈 2억 9천만원이 참의공 종중회장에게 입금 되였는데 고맙다고 하기는 커녕 나를 명예훼손 한다고 하여 자서전을 쓰게 되였다.
은혜를 모르는 인간들아!!!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컴퓨터로 메아리 쳐본다 인간들아 인간답게 살아라!!!※※※ 청주 한씨 중앙 종친회 게시판 열린마당에 전년도에 사철나무가 쓴 글 들이 있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청주한씨 중앙종친회 게시판 열린마당을 열람 해 봐라!!!
※내가 힘들 때 마다 도움을 요청한 곳이다. 누가 얼마나 도와 줬는지 말해 봐라 !!!※
2018년 8월 29일부터 9월 10일까지 쓰다가 너무 힘들어 중지하고
(분한 마음을 참을길 없어 자서전을 쓰고 있다 수고한 사람에게 칭찬 하는 것이 아니라 헛점을 찿아 명예 훼손 소송을 한다니 은혜를 모르는 ㅇㅇㅇ들 이야기) 내가 청 주한씨 참의공 종중 소송 때문에 생업을 전폐하고 8년 헛일을 하였다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분하고 억울하여 자서전을 쓴다.
지긋 지긋한 시간들 2009년 1월 20 부터 2018년 9월 2일 까지 이야기이다.
8년 동안 수고하여 참의공 종중도 복원되고 감사공종중을 만든자들이 땅을 빼앗기위해 종중땅을 팔아 소송경비로 쓰고 남은 돈 2억 9천만원이
참의공 종중 회장 통장으로 입금 되였는데 나에게는 경비를 한푼도 주지 않아 종중회장과 재무에게 경비를 달라고 했다.
2018년 8월 25일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 재무 한인희가 본인을 찾아 와 이미 폐한 참의공 종중 복원 시킨소송 경비를 500만원을 준다고 하며 누가 시켰느냐고 한다
이곳 부터 재무 인희와 대화 내용
인희왈 할말이 있으면 9월2일대전 풍전삼계탕에서 참의공파 종친회의를 하니 와서 경비를 달라고 해 봐라, 내가 돈을 준다 안 준다 할수 없다.
정옥왈 동생이 재무 일을 보니 말 잘해 줘
인희왈 누가 시켜서 하신 일이요?
정 옥 왈 너희들이 적극 적으로 안하니 내가 했지(화가 나기 시작했다) 경비 안쓰니 왜 ? 감사공 종중 사람들은 종중 땅 팔아 소송경비로 5억 9천을 쓴것 왜 못 받아 내니 ?
나도 경비를 줘야지 나는 패한 참의공 종중을 8년을 내 돈으로 소송에 승소하여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으로 복원 시켰는데 경비를 줘야지!!
인희왈 내 마음 대로 하느냐?
정옥 왈 숙부가 회장 이므로 참고 동생 진희가 참으라 종중에서 경비는 줄 것이다 하더니 고작 500만원이냐!!!
인희왈 500만원도 내 마음 대로 줄 수없다 9월2일 대전에서 총친회의 하니 나와 봐요
정옥왈 500받으러 가니!! 그동안 경비가 500만원 밖에 안들어 갔겠니???
내가 교통사고가 2번씩 났고 신장이 하나라 방광염이 자주 걸리고
신경을 너무 많이써 대장 혹을 8개나 제거 하였다 나는 분노 조절이 안되여 정신과 치료를 아직도 받고 있다 분하고 억울하다
인희왈 누가 시켜서 했어요???
정옥왈 너희들이 안 하니했지 네가 법원에 준비서면을 2번 밖에 안 냈잖니?
네 사촌 윤희 보고 법원에 오라고 해도 한번도 안 오더니 지분등기는 해가 너희들이 적극적으로 하면 내가 왜? 종중 소송 일을 해
인희왈 노수 할아버지 명예 찾은 일이 잖아요!!
인희왈 누나도 지분 등기 해가요!!
정옥왈 우리 할아버지가 지분등기 해서 팔아 먹으로고 그 땅 사놨니!! 그 땅 살 때 너희 할아버지가 얼마의 돈을 냈을 것 같니?
인희왈 노수 할아버지가 다 냈겄지.
정옥왈 윤희는 한번도 법정에 안 오고 네 사촌 선희 때문에 가압류 들어 왔잔아!!!
정옥왈 너희들이 지분등기를 왜 해가 !!! 법원에 나타나 지도 안한 것 들이 지분등기 해가고 산직이 한동석이는 감사공 종중땅 이라더니 내가 이기니 지분등기해서 정상훈에게 팔아 먹어 이게 인간들이 할 짓이니!!! 내 글을 써서 중앙 종친 회에 올린다 (화가 나서 말하니)
인희 왈 해 봐요 내가 가만이 있나 명예훼손으로 걸꺼요
정옥왈 내가 네 원수냐!!! 명예훼손으로 걸게
인희왈 가만이 있나 봐요
나는 화가나 집으로 와 동생 진희에게 소리 지르며 인희와 대화 한 것을 말하고 혈압도 높고 신장도 하나인
나는 또 병이 나서 아팟다
9월1일 동생 진희에게
정옥왈 종친회의에 가니 하고 물으니
진희왈 종친회의에 안간다. 인희와 말다툼 했다
나는 몸이 아파 종친회의에 안가려고 하다가 동생진희가 불참 한다니
9월2일 아침부터 대전으로 갔다. 종친회 장소를 동생이 모른다고 하여 장소를 알기 위해 익희 오빠와 인희에게 전화해도 받지를 않아
종친회 모임 장소를 찾는라고 한참을 헤메던 중 재희 오빠를 만나 장소를 알고 종친 회의에 참석했다.
2018년 9월 2일 11시 대전풍전 삼계탕에서 한인희외14명이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 임시 종친 회의를 했다ㆍ
종친회의 시작
회장 불참 부회장 인사 총무 상관 사회
본인이 회의 진행 계획표를 달라고 하니 없다고 하며 매우 불친절 했다
나는 속으로 회의 계획표 15장도 복사를 안 해왔느냐!!! 네 돈으로 복사 할려면 그렇케 아까운 법이다.
나는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10000장도 더 복사하여 등기로 제출 했다.
내 돈은 (과부 전 재산 엽전 한잎 처럼) 내가 제일 어려운 시기였다.
회의 안건은 기금 마련과 신도비 세우는 것 상의였다
상관왈 종원들이 많이 안 왔다고 투덜 거리며 회의는 종료 되였다
여기 부터 나의 발언
정옥왈 인희에게 한양명씨에게서 받은 돈 재무(인희)가 회계하여 보고 하라고 했다
인희왈 회계 보고 할 필요 없다고 했다
총무 상관왈 무슨 돈을 달라고 합니까? 왜? 돈을 달라고 해요 ? 야유를 했다.
정옥왈 재무 인희는 말살된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을 여자가 되 찿기 위해 죽을 뻔 했는데 경비를 500만원 준다이게 말이 되느냐!!!하고 묻자
총무 한상관은 야유를 하며 경비는 무슨 경비 돈을 왜? 달라고 하느냐!!! 원래 참의공 종중이 였다.
정옥왈 너희들이 잘해서 참의공종중이 복원 되였느냐? 내가 소송 승소해서 2억 9천 만원을 찾았는데 경비로 500만원도 줘서는 안된다!!!
어쳐구니없다 500만원 받을 려고 종중에 소송경비 달라고 하겄냐??? 껌 값이냐!!!
종원들은 모두 나가고 나는 다리가 떨리고 발이 떨어 지지 않아 못 일어 났다. 빈 방에 나 홀로 있기 어려워 문 밖에 나무 밑에 앉아 내가 이런 대우 받으려고 수년을 무거운 가방들고
전국 참의공 종원 협조자와 증거를 찾아 헤메고
소송에 대법원까지 승소하여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이란 종중의 명칭을 되 찾았아 놨나 허탈 하기만 하다.
나는 자서전을 쓴다. ★★★잊지 않는다★★★
오늘의 치욕을 기억 하리라!!!
청주 한씨 참의공 종중 종원들아!!! 이미 참의공 종중이 말살되고 감사공 종중으로 종중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을 때
★★★당신들을 무엇을 하였느냐!!! ★★★
소송 중에 있는 참의공 종중을 되찾기 위해 어떤 행동들을 했나 말해 보아라!!!!!
2007년부터 한양명씨가 감사공 종중을 이미 만들고 소송위원장으로 하고 대표는 회장 한근수씨 . 감사공 부회장 한근준. 감사공 감사 한길진. 감사공 이사 한강.
그외 한양명씨 친족들이 똘똘 뭉쳐 청주한씨 감사공 종중을 만들어 이미 참의공 종중을 폐하고 종중 에서 관리하는 땅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산 107번지와
같은 동 산108번지 약 4만평을 빼앗기 위해
한후복씨 외 4인 명의로 된 종중 땅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64의1번지를) 8억 8천만원에 매도하여 소송비용으로 5억 9천만원으로 변호사 18명을 선임하고 소송비용 으로사용하 였다.
본인은 감사공종중은 고유종중이 아님을 민사소송 형사소송 으로 밝혀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이 복원 되고
현재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 회장 한상기씨 통장으로 2억 9천만원이 입급 되였다.
내가 패소 했으면 2억 9천만원이 참의공 종중 현재 회장 통장으로 입금 됩니까?
종중을 복원시킨 본인은 자원해서 (시키지 안 했는데 했다)
소송에 관여 하였으니 경비를 500만원 이면 된다. 누구랑 상의하여 500만원 준다고 하느냐!!!
그것도 못준다!!! 돈을 왜 ? 달라고 하느냐? 나는 경비 안썼냐!!!
조상의 유지를 받들어 상속 지분등기 안하는 것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어찌하면 또 빼앗아 보려는 자 하늘이 용서 하지 않는다.
약삭 빠른 상속자는 지분 등기를 해가고 또 팔아 먹은 자(한동석)도 있다 재판 때는 한동석은 감사공종중 땅이라고 하더니 내가 승소하니 지분 등기 해가고 정상훈에게 2필지를 팔았으나, 2필지중 법에 걸려 1필지는 못 팔고 1필지는1억 5천만원 팔아 먹어다. 그리고 죽었다 죽을 나이가 아닌데 시향 지내고 7일후 죽었다. 왜? 죽었을까?. (잊지말자 6월25처럼, 잊지말자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은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땅 4만평이 수백억 짜리가 되므로 상속자들이 재산 권리 행사 안하니 또 빼앗아 보려는 자 천벌을 받는다ㆍㆍㆍㆍㆍ)
현재 종중 회장님은 내가 여자라고 종중회의에 참석도 못하게 하고 종중을 폐 하고 감사공 종중 대표로 나온 한근수씨와 법원에서 증인으로 신청 하였다고 나를 때린 감사공종중 이사 한강씨는 공로패를 주고 꽃다발도 주고
참의공 종중 뿌리 책에 사진 까지 올리고 공로를 기억하여 길이 길이 보존 하신다고 책을 내셨습니다 .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져도 참았습니다. 왜 ? 현 참의공종중 회장님이 숙부님 이므로 ㆍㆍ ㆍ
분하고 억울함을 어찌 참으리요 기가 막혀 글쓰기를 시작한다.
본인이 저장해 놓은 sns의 기록물과 대법원 나의 사건기록 을 증거로 무궁 무진하므로 자서전을 쓴다. 사실대로 다시 써서 청주한씨 참의공종 중종원들이 모두 알도록 하기 위하여 청주한씨 중앙종친회 홈피와 문예지에도 내고 드라마 공모지에도 출품할 것입니다.
본인의 자서전에 실명자 들은 명예를 훼손 시킬 목적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기고 자서전을 쓰고 싶어 글을 쓰고 있으니 틀린 글이 있으면 나에게 찾아 오던지 댓글을 달면 고쳐 드리겠습니다.
1심 의정부 지방법원 고양지원 2008가합 10389 소유권이전 재판
한양명씨가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을 이미 폐하고 감사공종중으로 종중의 명칭을 바꾸워 본인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산107번지와 같은 동 산108번지 상속자 와 한양명씨가 재판을하여
한정옥이가 참의공종중으로 복원 시킨 재판 기록 이다.
많은 청주한씨 참의공 종원들은 참의공 종중이 이미 폐하고 감사공 종중으로 사용한 사실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땅을 빼아으려 시작 한양명씨와 몇몇사람들이 1997년 부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선산에 선조 한 전 신도비를 만들 것을 의논하고 선조 한전의 황해도 관찰사 임시로 감사직 6개월을 한 것을 1998년 2월에 한양명씨가 찾고 신도비를 만들면서
한양명씨가 신도비에 망_한노수씨의 공적은 삭제하고 한노수씨가 만든 신도비는 땅에 묻고 새로 만드는 신도비 건축비를 인양종중 (친정 종중)사람들에게 모금하여 신도비를 만들었 습니다.
망_한노수의 자 한상순씨가(1998년도 참의공 회장) 직위가 높은 감사공 종중으로 종중 이름을 변경 하자고 했다며 문서를(청주한씨 중앙 종친회 신문)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취장암으로 죽어가는 숙부 한상순씨가 1998년 6월에 종중을 바꾸자고 했다. 믿어 집니까?
참의공 종중 보다 높은 감사공 종중 으로 하자고 하고 신도비 세우는 날 종원들이 찬성하였다 누구십니까?
양심을 가지고 살아야 자식들이 잘 됩니다.
1998년 부터 청주한씨 참의공은 폐하여 없어 졌다. 청주 한씨 중앙 종친회에 감사공 종중으로 등록되고 종중 명칭은 감사공종중 으로 되였다.
한양명씨가 청주한씨 중앙 종친회에는 인터넷 족보를 직원들을 시켜 만들었다.
인텃넷 족보에 참의공 종중을 치면 안 나온다. 감사공 종중을 쳐야 종중이 나온다.
한양명씨는 감사공 종중으로 완벽하게 만들려고 종이 족보를 만들어 족보에 이름을 등록하라.
족보 등록 하려는 종원들에게 등록비를 내라. 청주한씨 중앙 종친회 에서 족보가 다 완성 되여 간다. 족보 등록비 안 내면 족보에 자기 이름은 못 올라간다. 재촉하기 시작했다.
청주한씨 중앙종친회에 감사공 종중으로 등록되여 족보가 청주한씨 감사공 종중으로 발행려고 할 때
본인이 청주한씨 중앙종친회 족보과 한상용씨에게 참의공 종중 복원 된다. 1심에서 이겼으니 족보 발행을 늦추워 달라!!!!
족보 발행 못하게 수차례 찿아갔고 전화도 제가 해습니다.
누구 한사람 청주한씨 중앙종친회에 족보가 잘 못 되고 있으니 고쳐라 항의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말을 해 봐라!!!.감사공 종중으로 족보를 만들면 안 된다고 말을 한 사람 !!!누구 있는지 나와 봐라!!!
중앙종친회에가서 내유동 한전 신도비석 해석한 기록물 달 라!.한양명씨 자서전 달라하면 족보과 한상용씨는 한상기씨가 돈을 많이 주시니 귀찮케 한다 .
한 정옥 왈: 돈 안 받았다.
한상용 왈 족보과 한 상용 씨가 웃으며 숙부 한 상기 씨가 돈을 많이 주시니 중앙종친회 쫒아와
청주한씨 세계표 달라!,고양시 신도비문 해석 달라고 하지 돈 안주면 하겠습니까?. 귀찮아 하며 하던 말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숙부님 돈 주셨습니까???
한양명씨는청주한씨 중앙종친회 회장 4번 회장 역임한 청주한씨 중앙종친회에서 막대한 권한이 있는사람이다. 한양명씨가 2007년부터 감사공 감사 한길진씨를 시켜서 광주지방법원 2007가합 3690 (법원기록)손해배상(제1호증)
청주한씨 감사공종중 소 종중 인양 종중에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63번지 1500평 땅을 왜? 팔아갔느냐!!! 트집 잡아
허위문서를(1980년참의공 종중종종회의록) 만들어 변호사 최정재 선임하여, 소종중 인양종중에 소송해 오므로 인양종중에서 변호사 이승재 한광수 최국신을 3명을 선임하여 대항 했지만 패소 할것 같았는지
※※※소송 취하하는 조건으로 1억원을 빼앗겼다※※※
2008년부터 한양명씨가 자청하여 소송 위원장을 하고 2008년 감사공 한근준 부회장을 시켜 감사공 회장 한근수를 대표로 하고
감사공 종중 회장(대표)한근수씨를 앞세워 2008년 3월15일 감사공 종중 임시총회를 개최 하고
몇 명이 모여 회의를 하고 참석도 하지 않은 본인의 오빠 한관희 와 재당숙 한상길 그리고 대종손 한상대 또 한근수씨가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산107번지와 같은동 산108번지 약 4만평 (명의신탁)을 감사공종중 땅이라고 소송비용에 쓰라고 1억원을 지원 하였다고 문서를 만들어
의정부 지방법원 고양지원에 한근수씨가 대표가 되여 위의 상속자들에게 소송장 제출 했다.
※※2009년1월 20일 소장이 본인에게 왔다 의정부 지방법원 고양지원 2008 가합 10389 소유권이전 소송을(제3호증) ※※
감사공 대표 한근수씨가 (회장) 본인에게 소장이 보냈다. 본인은 위 상속자 한 사람으로 소장을 받고 고모 한상예와 사촌 한영순에게 숙부 한상기씨에게 동생 한진희에게 연락하라고 전화를하고
고모한상예 집 (서울 서초동에 사는데)에서 1월 29일 미국 숙부한상기씨에게 전화를 했다.
숙부는 깜짝 놀라고 한근수씨에게 전화와 편지를 보낸다고 했다.
소장은1달 이내에 답변 하지 않으면 감사공 종중 땅이된다는 소장이 였다.
위의 토지는 조부 한노수씨가(80세) 충청도에서 고양시 까지 가려면 2일씩 걸려 힘들게 돈을 전대에 차고 가시는 것을 본인이 보고 그 땅 매입 하고 여독으로 조부 한노수씨는 82세에 사망 하시였다.
할아버지가 매입한 땅을 참의공종중을 이미 폐하고 종중의 이름도 감사공 종중으로 바꾸어 감사공 종중 만든 사람들에게 빼앗기면 안된다는 숙부 한상기씨의 편지가 왔다.
나는 생존자로 기록된 내유동 선산 관리인(산직이) 생존자 한동석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집을 찾기 위해 한나절을 헤매도 초행이며 산속이라 한동석을 아는 사람이 없고 지쳐 쓰러질 정도에 겨우 한동석 집을 찾았다.
소송 때문에 왔다고 하니 지친 사람에게 물도 안주고 대화도 못하고 왔다.
이튼날 생존자 한광수씨가 고척동에 살고 있다고 기록되여 한광수 집을 찾아갔다. 한광수 왈
나는 소송장 온 줄도 모른다, 땅 살 때 돈만 냈다. (정말모를 까요? 감사공 편이 였지요) 역시 냉대 였다..
고모에게 대표자를 세워 대항 하라고 전화도 하고 편지도 보냈습니다. (제3호증 고모편지)
그러나 대표로 하려는 자가 없어 본인이 고양 등기소에가 등기부 등본과 폐쇄 등기를 발급하였다.
의정부 지방 법원 고양지원에 내용증명으로 감사공 종중 땅이 아니고 산 107번지는 본인의 조부 한노수싸외 18명이고 산 108번지는 한노수씨외 14명의 명의로 매입 된 것 임과
조부 한노수씨께서 위의 땅을 땅 매입 하시러 가시는 것 본 한상예 한상기 한정옥 증인들 이라고 2009년 2월 17일 답변서을 제출했다.
또 증거자료를 수집 하여 대전에 있는 동생에게 보내 동생 한국희가 하옥호명으로 4월 2일 답변서 제출했다.
서울 잠원동에 한기수의 자 한유가 살기에 집으로 3 번 찾아가 겨우 통화하게 되였다. 한양명씨가 친족이기 때문에 협조 할수 없다고 전화를 끈었다.
(왜 ? 이렇케 힘든 일을 할까?) 조부 한노수씨가 사 놓은 땅을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여 종중 명의를 바꾼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갔기에 답변서를 썻더니 발목 잡혀 소송이 패소하면 상대 소송비용 까지 본인이 지불 해야한다.
참의공 종중은 말살 되고 종중 명의가 감사공 종중으로 바뀌던 말던 상관 말걸 땅을 치고 후회 한다!!!!
아무도 도와 주는 사람이 없다, 혼자 일산 마두 법원에 수 없이 찾아가서 공아도 변호사가 준비서면을 제출하면 복사를 해 왔다.
멀고도 먼 고양시 마두에 있는 의정부 지방 법원까지 가서 복사 하려면 하루가 꼭 걸린다 . 종중 상황 잘 모르는 본인은 증거 찿는 길은 상대가 제출하 는 문서에서
허위 증거를 찾는 것 밖에 없다.
공덕동 법률 사무소와 종중일 하사는분 들을 찿아 다니며 귀동냥 눈동냥을 하며 서울 역사 박물관을 찾아가 파조 한 전의 기록 컴퓨터 국역 왕조 실록 에
참의공종중과 참의공 종중의 유래를 찿아 참의공종중이 고유 종중임을 증명하는 준비서면을 만들어 제출하였다 (법 상식을 모르므로 공덕동 법률 구조 공단 법무 상담자와 시청에서 종중 일 보시는 무료 변호사들 에게 조언을 받아다 )
피고들이 제출한 답변서도 복사(한상수와 한춘자 한동섭)하여 주소와 전화 번호로 각 사람들에게 전화를하여 협조를 요청 했지만 한동례(망-한대진씨자 한동섭가족) 가족들만 협조하고 한춘자는 전화 조차 하지 받지 안했다 .
본인은 한동섭의 선친 한대진씨가 사망하신 사실을 알아 내고 (망자를 살아 있는 자 라고 하며 소장을 보냈다고 ) 답변서를 만들어 대필하여 9월4일 한동섭 명의로 답변서를 제출하였다.
변호사 공아도씨가 준비서면 제출한 것을 또 복사해 보니 감사공 대표 한근수씨가 본인의 선친 제적등본 발행하여 제출한 사실을 알아 내고 망자가 제적등본을 어찌 발급 하느냐 발급 해준 면장 발급자 한근수 모두가족 관계법 위반으로 고소하여 소송을 취하하여 달라고 간청하였 지만 벌금70 만원 부과로 형사(한근수 벌금70만원) (대전지방 검찰청 공주지청 2010형제 4152)소송은 끝이 나고,
또 준비서면을 자세히 검토하니 본인의 친정 오빠 한관희 한상길 한상대
한근수씨가 소송비용을 1억원을 지원한 기록을 보고 준비서면 모두 허위 작성임으로 간주했다 ㆍ (오빠한관희가 자기땅 빼앗아 가라고 1억원을 지원하는 사람이 아님)
많은 사람들이 본인을 친정 재산 빼앗아 보려는 미친여자 취급을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나는 지쳐만 갔다
허위문서 1980년 참의공 종중 회의록 에 속아 소취하하는 조건으로 1억원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아 내고
한양명씨와 한길진씨를 소송사기로 형사 소송(고소)하여
1억원을 인양종중에 환수 되였다. 형사소송(대전 검찰청 공주 지청 2013 형제 2342 한양명 한길진 사기죄)
공아변호사가 준비서면을 제출한 것을 또 복사하여 조사 해보니
내유동 선산 관리자 한동석과 한남수가 법원에 인증서 (사실확인ㆍ감사공 종중 땅이라고)인감 증명서를 첨부하여 제출한 것을 살펴 보니
한길진씨가 한남수 인감 증명을 위임 받아 발급한 사실을 찾아 법원에 인감증명 허위라고 반박 준비서면을 냈다.
2009년 음력10월 5일 감사공종중회의 회의록 준비서면 제출, 한양명씨는 종중 회의록을 만들었다 종친 회의록 참석자 8명 은 한양명씨의 자 4명과 한강씨외 모두 한양명 친족이였다.
소송위원장 한양명씨 친족임을 밝히고 도장이 똑 같은 막대 도장이며 허위문서 라고 반박 준비서면과 진정서를 냈다.
숙부 한상기씨에게 법원으로 사실관계확인 편지를 내시라고 하여 한상기씨가 사유서를 만들어 메일로 보내와 본인이 9월 6일 본인것과 2통 진술서 등기로 제출했다
(본인을 땅 빼앗으려는 미친여자 라고 감사공 종중 종원들 및 소 종중 인양종중 종원들이 모두 손가락질하며 미친년 취급을 하여 친정도 못갔다)
법률 상식이 부족한 본인은 광명시청 무료상담소 와 공덕동 법률 구조 공단에 수없이 많이 찾아가
준비서면 만들어 숙부 한상기씨에게 메일을 보내 검증 할 때 마다 띄어 쓰기 틀렸다, 철자법 틀렸다, 복사를 다시 해야 하면 미칠것 같고 혈압이 올라 머리가 터질것 같았다.
한상기씨에게 변호사를 선임 하자고 전화를 했다.
9월30 일 재판날 피고 상속자 수십명에게 전화 했지만 참석자는 총 9명이 뿐이고
감사공종원들은 한양명 외 24명이 참석했다.
한인희와 처음 만났다. 한인희 선친 한상각씨는 보았는데 인희는 어려서 보고 장성후 처음이라 친분이 없어 조심 스럽게
준비 서면을 제출하라고 하니 대답만 네 네하고 준비서 면을 제출하지를 않는다.
본인은 초조했다.
한상기씨가 이병주 변호사를 소개하여 찾아 갔더니 준비서면은 본인이 만들고 변론기일에 참석하는 조건으로 거액을 요구하며 승소할 경우 거액을 성과금을 요구해
인희에게 전화를 하니 돈을 낸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상담만 하고 왔다.
한상예씨가 아는 수원 에있는 변호사를 찾아 가자고 하여 한정옥 한상예 한영순그리고 한인희와 변호사를 찾아 갔더니 선수금 3000천만원에 성과금10억원을 요청하여 상담만 받고 왔다.
한영순이가 식사 대금 지불했다
한상기씨가 고양 산소 사진을 보내와 조부 한노수씨가 만든 비석이 있는지 조사하라고 하여 고양시 내유동 산소를 찾아가는데 또 못 찾아 헤메게 되니 내가 미쳤지 왜 이렇케 지쳐 헤매나 눈물 까지나
비석을 찾고 보니 조부 생전 세운 비석 아니라 반짝 반짝 빛나는 새 비석이 였다.
중앙종 친회 족보과에 가면 비문 해석이 있다고 김광훈 장로님이 알려 주시여 중앙종친회를 찿아가 족보의 비문 해석 문을 복사하여 보니
국역 왕조실록에 적혀있는 비문과 달리 조부 한노수씨 공적 은 삭제되고 한양명씨 공적만 있다.
신도비 건립 헌성금 지불한 자들은 모두 소종중 인양종중 본인의 아버지 숙부 오빠 사촌 당숙 재당숙 모두 친정 사람들이 였다. (신도비문은 모두 한 문으로 새긴 비석이라 자세히 봐야 안다. 돈 내고 자기 아버지 업적 삭제하는 비석을 세운 꼴이다) 한양명씨 에게 속았다.
속은 사람보다 속이는 사람이 더 나쁜 사람 아닌가!! 눈 없으면 코벼가는 세상이라더니
우리 친정집이 당했다. 우리 오빠는 속을 얼마나 섞고 괴로울까 생각하면 가슴이 아팟다.
이미 할아버지가 세운 신도비석은 사라지고 없다. 현재 신도비는 한양명 업적을 기록하여 비석이 세워졌다.
한양명씨는 증거 인멸하기 위하여 조부가 세우신 비석을 땅에 묻어 버렸다. 모두 증거인멸 하였다고 11월17일 한동섭 준비서면을 대필하여 제출하였다.
공아도 변호사가 재산세를 한동석이 지출하였다고 준비서면을 제출하여
소 종중 인양종중 한근수가 지출한 영수증을 첨부하여 반박 준비서면 제출하였다.
2010년 11월 25일 재판날이 되었다. 참석자는 한정옥 한 진희 한충희 한상예한인희 한준희 한동섭 한동려례 한동순 한평수10명이고
감사공 종원들은 수 십명이 와서 법정에서 본인을 외워 싸고 나를 때리려고 하여 동생한진희 와 한충희가 보호하여 매는 맞지 않았지만
그 충격으로 대인 공포증에 걸려 외출 하려면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해야 했다.
상속자가 159 명 으로 늘었다. 상속자 들아 어디 숨어 나타 나지 않느냐!!! 본인은 통곡했다.
형사소송으로 한양명과 한길진씨에게 인양종중에서 왜? ㅣ억원을 왜 빼앗아 갔느냐!!! 소송사기로 고양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증거물들을 찾아 1심법원에 본인 한정옥 명의로 8번 한동섭 명의로 2번 한국희가 하옥호 명의로2009년 1번 한인희가 2010년11월18일 1번 준비서면 제줄 했다. (제4호증 1심 소송기록)
본인은 법 지식이 없어 준비서면 1장 쓰려면 백번을 고치고 또 고쳐야 되므로 신장이 하나라 방광염에 걸려 고생을 했고 혈압이 올라가 머리가 터질것 처럼 아팟다
나의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어떤 고통인지 체험을 해 보아라 !!!
2010년12월16일 의정부 지방법원 고양지원2008가합10389각하 판결 받았다
청주한씨 참의공파 종원들아!!! 상상해 봐라 지긋 지긋 했다.
서울고등법원 2011 나 11704 소유권이전 소송 위원장 한 양 명씨가 항소를 하였다.
아이고 큰일이다. 어찌해야 하나!!! 항소이유서를 뭐라 작성 했는지 한동순을 시켜 4월7일 복사해 오라고 하였더니 항소이유서는 제출안하고 항소장만
제출하였다고 하여 상속자들 에게 전화하여 2011년 4월10일대전에서 모이자고 하였더니 한 민교씨외 39명이 모였다.
변호사 선임하자고 돈 낸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고 한 용희씨가 모인 사람 모두 점심식사 대접을 했다. 돈이 있어야 변호사를 선임하지 발만 동 동 하다가 또 광명시에 무료법률 상담을 찾고 족보상담을 찾아 매주마다 찾아가 볍률지식을 조언 받았다.
항소 이유서를 받아 꼼꼼히 살펴 보니 1980년 종중 회의록에 본인의 조부 한노수씨(1970년사망)와 한동섭 선친 한대진씨(1975년사망) 가 참석한 회의록 이기에 허위 문서임을 (모두 사망한 사람)
고양경찰서에 조사하여 달라고 고소장을 제출했다. (우리 집안을 우숩게 보고 사망한 조부 한노수씨가 무덤에서 나와 아들 한상순과 종중 회의를 했다)
이것은 허위 문서였다.
고소장이 서울 중부 경찰서로 이송 되여 중부경찰서에서 장지영 조사관이 조사를 하였는데 (2011년6월14일) 본인도 부르지 않코 적당히 허위 문서로 작성하여조사를 끝내고 피고인 한양명 한근수 한길진 한갑수 모두 죄 없음으로 판결이 나왔다. 나는 재 조사를 신청 하였습니다. 검찰청 (2012 형제118024) 재 조사가 되였다.
항소 이유서에는 변호사 이광범과 변호사이덕희로 변경하였다 서울검찰청에 장지영씨가 부실조사 했다고 재조사 요청하고 신문고에 부실조사 하였으니
재 조사 요청을하여 문서 감정 요청을 했더니 2011년음력10 월 5일시향을 끝나고 한양명씨는 참의공 종중은 폐하고 감사공 종중으로 사용 하기로 결의 101명 서명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미국 숙부에게 한국에 오셔서 중앙종친회 회장 한갑수와 한양명을 만나야 된다고 하였더니 한국에 오셨다. 2012년 5월1일 청주한씨 중앙종친회에서 전국에 있는 청주한씨 종중 회장들이
모여 총회를 한다고 하여 미리 한갑수회장을 만날 것을 예약하고 중앙종친회 사무실에 숙부님을 모시고 가서 한갑수회장과 한양명 그리고 한근수와 한길진씨를 만났다. 한갑수 회장(감사공 이사) 한양명(소송위원장) 한근수(감사공회장및 감사공대표) 한길진(감사공감사)
한갑수 왈 나는 모른다. 법이 해결 할 것이다.
한양명 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니 다수가 감사공종중으로 변경 하자고 찬성 하였으니 법이 해결 한다
한근수왈 삿대질을하며 너는 여자니 빠져라! 네가 올자리가 아니다!
한길진 멀뚱 멀뚱 보고 있었다. 이것이 대표라는 자들이 한 행동이다. 감사공 종원 들이 항소를 하여 본인은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현 참의공 종중 회장님이 이병주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하였지만 돈을 낸 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감사공 종원들은 이기려고 혈안이 되여 고양시 덕양시 내유동 64의 1번지 종원들의 공동 명의 된 땅을 김승준 변호사를 선임하여 감사공 종중 땅이라고 소송하여 빼앗아 8억 8천만원으로 매도 하였습니다
서울 고등 법원에는 변호사 이광범과 이덕희 로 바꾸웠습니다) 본인이 재 조사를 요청하여 허위 문서가 밝혀
한양명씨를 형사소송 서울지방법원 2013 고단6669 한양명 징역 6개월 집해유해 2년 선고가 되니
서울고등법원에 김차회 오인경 변호사로 바꾸웠습니다
한양명씨는 형사소송에 이원후 김승준 김영옥변호사 등을 선임하였습니다. 본인은 서울 고등법원에 본인의 명의로 뿐만 아니라 상속자들 허락을 받아 도장을 만들고 한상기 한상예 한진희 한동섭 한용희 한평수등 이름으로
준비서면을 30번 제출했습니다.
한 인희가 1심에 한번. 2심에 1번 한 국희가 1심에1번 그 이 외 누가 본인을 도와 주었습니까?
준비서면 1장 만들려면 100번은 고치고 고쳐야 했으며 복사하여 제출하려고 보면 잘 못 써 또 고쳐 3부씩 만들어 법원에 등기로 10000장도 더 보내야 했습니다 .
서울 고등 법원 법정에서 한강 씨는 증인으로 신청 하였다고 본인을 쫓아 다니며 6대 폭행 당하였습니다.
서울 고등법원 항소 이유서에 제출한 1980년 참의공 종중 회의록 에는 (1970년에 사망하신 조부 한노수씨와 1975년에 사망하신 한대진씨(한동섭 선친) 망자가 회의에 참석한 허위문서를 찾아 (문서감정 ) )
서울 검찰청에 문서감정을 요청하여 허위 문서임을 밝혀 고등법원도 속혀먹는 감사공 종중 종원들임을 밝혔 서울 고등 법원 기각시켰습니다.
그냥 증거가 밝혀 집니까 ? 허위문서를밝히려고 형사소송2013고단6669 무너위조죄 2014년 02 월 18일한양명 징역 6개월 집행유에 2년 형받음 사무장 유한섭 벌금 200만원 사무장 공창열 벌금 200만원 한양명씨는 누명을 벗으려고 형사소송 항소를 하였습니다 사건번호 2013 형제 93129 한양명. 유한섭. 공창열 위조 사문서 행사죄 . 한양명 징역 6개월 집행유에 2년 형받음 사무장 유한섭 벌금 200만원 사무장 공창열 벌금 200만원 2월 18일 모두 기각 판결이 났습니다. 기각 한양명씨는 누명을 벗으려고 형사소송 항소를 하였습니다 서울 중앙 지방법원 제8형사부 사건번호 2014노 936 위조 사문서 행사 한양명 징역 6개월 집행유에 2년 형받음 사무장 유한섭 벌금 200만원 사무장 공창열 벌금 200만원 8 월 29일 또 모두 기각 판결이 났습니다.기각
한양명. 유한섭 공창열 이가 상고를 하였습니다. 대법원 2014도12272 사문서 위조죄 2015년 11월26알 대법원 상고 모두 기각 본인이 검사님 수없이 많이 찾아가 진정서를 제출 해야 했고 허위문서 원본 문서 감정하여 달라고 진정서를 수차례 낸 바 참의공 종중 회의록 원본에 구멍이 빵빵 뚤려 있고 복사하면 표가 안 난다는 사실을 밝혀 감사공 종중 단체는 불법 단체임으로 밝혀서 기각이 되였다.
한양명씨는 종중을 감사공 종중으로 못 바꾸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형을 받고 도 종중땅 매각 한 돈을 안 내놓으려고
한상완씨를 종중의 대표로 내세워 참의공 종중회장으로 선출된 한상기씨를 회장 무효소송을 내기 시작했다
한양명씨는 종중을 감사공 종중으로 못 바꾸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형을 받고 죽었다.
억울해서 어찌 땅속에있는가 !!! 욕심은 금물 !!!.
한상완 씨가 연세대 부총장을 하였다기에 믿고 상의한 내가 어리섞었음에 통탄한 글을 청주 한씨 종친회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50만원 벌금이 냈다.
한상완씨는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 이라고 하면 안된다. 명심하시요 !!!. (한상완씨를 처음 봤을 때는 나에게 수고 했다고 하며 나를 돕는것 처럼 하였기에 나는 학자가 지식인이 거짓말 한 것을 청주한씨 중앙종친회 종중 홈 피에 올렸더니
나를 명예소송을 걸어와 벌금50만원을 내게 한사람이다. 전 생애 내 원수 들이냐 !! 왜 내 속을 썪이냐!!
왜 ? 이리 험난한 길을 걸었을 까 허탈 하기만 하다.
이렇케 험란하게 혼자 애태우며 땅도 안 빼앗기고 참의공 종중으로 복원 되였습니다 .
참의공 종중이 저절로 복원된 줄알고 종원들 끼리 화기 애애하며만나면 맛있는것이나 사먹고 맛있더냐!!!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
본인의 공로는 은폐하고 여자라고 종중회의에 참석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참의공 종중을 폐하고 소송하여 온 자들을 공로상 주고 꽃다발 주고 참의공 종중 뿌리 책에 사진까지 기록해 업적을 길이 길이 빛내신 다니 기가 막힙니다.
본인이 패소 하였다면 청주한씨 참의공 종중이라는 명패가 존재 합니까?
청주한씨 종원들은 말을 해보시요!!!! 어처구니 없고 기가 막히고 분하여 참을 길 없었습니다.
등기부 등본을 열람해 보니 본인이 승소하니 한동석씨는지분등기 하여 정상훈에게 2필지를 팔아 먹었다 1필지를 ㅣ억 5000만원에 팔아 먹었다. 한동석 시향 지내고 7일 후에 죽었다 . 사랑하는 돈은 누가 쓰고 있을까?
법정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은 망_ 한용이 지분을 한춘자와 그 가족이 2필지 지분 모두 자기 땅이라고 지분 등기 하여 갔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느냐!!!
망- 한명수씨 지분도 한인희 가족이 지분 등기하여 갔다 재판날 참석하라고 전화 해도 출석 안한 자 들이 지분등기를 왜? 해가 웃기는 사람들이다.
자기가 해야할 행동 하지 않고 지분 등기 해가는 자들은 내유동 땅이 복이 아니 될것이다.(저주가 아니다, 바른 말이지) 나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로 아직도 고통속에 살고 있다.
웃음을 잃은 내가 웃으려 노력하며 산다!!! 지난일 들을 잊을 수는 없지만 잊도록 노력한다.
먼 훗날 책으로 발간 되는 날까지 모든 고통은 내 기억에서 잠 들거라!!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하고 고통스러워 1년을 안쓰고 지내다가 끝을 맺어야 되기에 오늘로써 끝을 맺는다.
2019년 11월 13일 한정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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