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MLB <1> 저스틴 터너와 야구 연습장 주인, 래타 코치
2017.03.02 오후 02:53 | 기사원문
해외야구 이영미 헤럴드스포츠 대표기자, 네이버 '이영미의 스포츠 인 스토리' 칼럼 연재. 추신수&류현진 MLB일기 담당자
<2014년 LA 다저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었던 저스틴 터너가 3년 만에 거액의 FA 계약을 이끌어낸 배경에는 어떤 힘이 존재한 것일까. LA 인근의 한 야구 연습장 주인으로부터 배운 타격폼이 지금의 저스틴 터너를 있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사진=이영미)>
야구선수들이라면 늘 동경하고 꿈꾸는 무대, 메이저리그. 그 무대를 누비는 선수들 중에는 인생역전의 주인공도, 포기를 모르고 도전하는 열정의 주인공도, 또 자신의 목표를 향해 쉼 없이 전진하는 노력의 주인공들이 존재한다. 2017 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 캠프에서 만난 ‘주인공’들과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메이저리거들의 특별한 삶을 들여다본다. 첫 번째 ‘주인공’은 LA 다저스의 저스틴 터너이다. -편집자 주
2014년 마이너리그 초청 선수 신분으로 다저스 스프링트레이닝 캠프에 합류했던 저스틴 터너(32). 그가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저스와 4년 6400만 달러의 FA 계약을 맺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초청 선수 신분의 그는 2014년 다저스 내야진의 유틸리티 멤버로 100만 달러에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고, 애드리안 곤잘레스, 디 고든, 헨리 라미레즈, 후안 유리베로 이어지는 주전 선수들 틈에서 부상으로 인한 공백이 생길 때마다 기회를 잡고 성적을 올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5년 5월, 후안 유리베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떠나자 3루수 자리는 온전히 저스틴 터너의 것이 되었고, 어느새 그는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투수진이 ‘커쇼의 팀’이라면서 야수진은 ‘터너의 팀’으로 말이다.
미국 애리조나 주 캐멀백랜치 글렌데일에 위치한 다저스 훈련장에서 저스틴 터너와 개별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클럽하우스 밖에서 이뤄진 인터뷰를 위해 의자를 직접 들고 나오는 등 친절하고 자상한 면모를 보였다. 웃는 모습이 시원해 보이는 저스틴 터너의 녹록치 않은 야구 인생 이야기.
2014년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처음 다저스 캠프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당신을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엔 그저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눈에 잘 들어 메이저리그 선수로 뽑히기만을 소원했다. 그런데 내게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안했고, 주저 없이 사인하면서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는 기쁨을 만끽했다. 그런 다음엔 무조건 열심히 뛰었다. 부상 선수의 공백이나 수비에 빈자리가 보이면 그 자리들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경기에 뛸 수만 있다면 어느 자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백업 멤버로 시작했던 내가 몇 차례 좋은 경기를 보여주면서 인정받았고, 결국엔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뉴욕 메츠에서 방출된 후 팀을 구하지 못했을 때 LA 인근의 허름한 야구 연습장에서 훈련했다고 들었다. 덕 래타(Doug Latta) 코치를 만나 타격폼을 수정했다고 하던데 그때의 얘기를 듣고 싶다.
“그는 내가 갖고 있던 타격폼에 관한 사고방식을 바꿔줬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항상 다리를 높이 들고 스윙을 했다. 타구의 비거리를 늘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공을 좀 더 여유있게 칠 수 있는 폼을 선호했는데 래타 코치는 그런 내 폼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히팅 포인트를 더 앞에 두고 상체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발을 들었다가 같은 위치에 내려놓는 연습을 반복했다. 래타 코치의 조언대로 레그킥을 하고 콘택트 포인트를 앞쪽에 두는 폼으로 수정하다 보니 스윙할 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변화가 감지됐다. 타구에 힘이 실려 더 멀리 날아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LA 다저스에서 성공을 이룬 비결이 래타 코치로부터 배운 타격폼 수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뉴욕 메츠 시절의 타격폼은 스윙할 때 스트라이크존을 제대로 커버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상체가 투수 방향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면 몸쪽과 바깥쪽에 약점이 노출되기 때문에 계속 타격폼을 수정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래도 약점으로 노출된 존은 잘 커버되지 않았다. 특히 몸쪽 코스에 약점이 많았는데 래타 코치의 도움으로 타격폼을 수정한 이후엔 약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래타 코치가 가르쳐준 폼이 좋았던 건 플레이트 안쪽과 바깥쪽을 둘 다 커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 메츠 시절의 말론 버드와 저스틴 터너.>
뉴욕 메츠에서 만났던 베테랑 외야수 말론 버드와도 특별한 관계라고 들었다.
“말론 버드가 2013년 뉴욕 메츠와 계약했을 때 처음 만났다. 말론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온통 야구만 생각하는 ‘마니아’이다. 메츠 시절, 그와 온종일 야구 얘기만 나눈 적이 많았다. 2013년 후반기에 접어들 무렵 말론이 내게 타격폼에 대한 팁을 알려줬다. 레그킥 동작에 대한 조언이었고, 그의 조언대로 몇 차례 연습 후 스윙을 했더니 공이 멀리 날아갔다. 그렇게 타격폼을 수정하면서 작은 희열을 느꼈다. 그 해 오프시즌 동안 말론에게 뭔가를 더 배우기 위해 따로 미팅을 가졌는데 말론은 내게 알려준 팁들이 덕 래타 코치에게 배운 내용이라며 래타 코치를 소개시켜줬다. 말론은 이미 래타 코치와 인연을 맺고 1년 6개월 전부터 연습을 해온 사이였다. 그렇게 래타 코치를 알게 된 난 말론과 함께 래타 코치가 운영하는 연습장에서 일주일에 5일을 매일 만나다시피하며 야구에 파묻혀 살았다. 서로 타격폼 수정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연습한 끝에 문제가 많았던 타격폼을 수정했고, 그 타격폼이 초청선수 신분으로 참가한 다저스 캠프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의 저스틴 터너를 있게 한 데는 말론 버드와 래타 코치의 도움이 컸다고 이해하면 되겠나.
“물론이다. 나도 처음엔 말론이 전하는 래타 코치 얘기에 반신반의했었다. 그러다 직접 타격폼에 대한 지적을 받고 수정해가면서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2013년 겨울, 말론과 함께 타격 연습을 하며 보낸 시간들을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그가 먼저 스윙을 하고 나오면 그 스윙이 어떻게 보였는지 나와 래타 코치가 얘기했고, 내가 스윙할 때 말론과 래타 코치가 내게 조언해줬다. 특히 래타 코치는 배팅케이지 밖에서 우리의 폼 전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의견이 아주 정확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난 타자로 더 큰 성장을 이뤄나갔다.”
땅볼이 아닌 뜬공을 치거나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를 날리기 위해 래타 코치와 많은 연습을 했다는 게 사실인가.
“래타 코치가 매우 중요시하는 부분은 공을 멀리 높게 띄우는 것이다. 타자에게 항상 어려운 숙제가 베이스까지 가기 위해 공을 잘 때리는 것이다. 래타 코치의 말대로 공을 멀리 치면 팀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할 만한 시간이 많아진다. 팀의 목표는 주자들이 다음 베이스로 진루해서 1루, 2루, 3루를 돌아 홈에 도달하는 것 아닌가.”
덕 래타 코치는 고등학교 코치 출신이다. 줄곧 동네 개인 야구 연습장에서 레슨을 해온 사람이 메이저리거들을 지도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 그의 어떤 조언이 마음에 와 닿았나.
“야구가 아름다운 이유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가 고등학교 코치라고 해서 날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타격폼을 수정하려면 움직이는 요소들을 어떻게 잘 이용해야 할지를 알아야 하는데 래타 코치는 그 점에 대해선 정말 지식이 많은 분이다.”
처음부터 래타 코치의 지적이나 조언들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그는 처음 만난 내게 타격폼 수정 요소들이 많다고 얘기했다. 2013 시즌을 마치고 나름 내 성적에 만족하고 있었는데(86경기 출전, 타율 .280 2홈런 16타점) 그런 소리를 들은 것이다(웃음). 그런데 래타 코치의 지적이 틀리지 않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항상 고민했던 문제들이었기 때문이다.”
래타 코치에게 레슨비를 많이 드려야 했겠다(웃음).
“레슨비를 하나도 받지 않으셨다(웃음). 그냥 내게 기부하는 마음으로 연습장을 위해 선물을 해달라고 해서 얼마 전에 55인치 텔레비전을 보냈다. 케이지 안에서 영상을 보시라고(웃음). 그리고 공도 많이 선물했다. 자주 선물해드리려고 하는 편이다. 래타 코치가 운영하는 연습장이 더욱 발전해나가길 바란다.”
<항상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저스틴 터너. 그리고 안드레 이디어.(사진=이영미)>
그러다 2014년 LA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 캠프 초청 선수 신분으로 참가했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는다는 게 당신한테는 어떤 의미였나.
“메츠에서 방출된 후 과연 날 원하는 메이저리그 팀이 있을까 싶었다. 직장을 잃은 터라 기분이 우울했었고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다. 그러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다저스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다저스 유니폼을 입는 게 소원이었다. 비록 마이너리그 신분이었지만 그 유니폼 자체가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볼티모어 오리올스, 뉴욕 메츠 등 주로 동부에서 머물다 서부에 있는 팀으로 옮겨 온 셈이다.
“정말 좋았다. 동부에 있는 팀에서 뛸 때는 스프링트레이닝 캠프가 플로리다에서 진행됐다. 그러다 다저스로 오면서 스프링트레이닝 캠프를 애리조나에서 하고 있는데 캘리포니아에 있는 가족들이랑 친구들이 내가 연습하는 모습을 보러 캠프를 방문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다저스에 왔을 때 3루 주전은 후안 유리베였다. 공교롭게도 유리베의 부상이 잦아지면서 출전 기회가 늘어났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백업멤버들에게 인생역전의 기회가 되는 건 사실이다. 나도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많은 연습을 했었고, 항상 준비하며 때를 기다렸다. 참으로 다행인 게 기회가 생겼을 때 래타 코치로부터 배워온 타격폼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팀에 내 존재를 각인시켜 나갔다. 후안 유리베가 다쳤을 때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는 정말 좋은 선수이고, 다저스에서 열심히 뛴 동료였고, 우리 팀의 리더였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유리베가 못한 것만큼 경기에서 더 열심히 뛰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당신은 ‘다저스의 보물’로 인정받았다. 그 유명한 ‘터너타임’이란 말도 탄생시키면서 말이다.
“삶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라고 종종 생각한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게 신기하고, 다저스 팬들이랑 사진 찍고 사인을 해주는 게 기분 좋다. 특히 나를 쳐다보는 어린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야구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코리 시거와 수비 훈련 중인 저스틴 터너.(사진=이영미)>
야구하면서 이것만은 꼭 지키려 하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
“‘루틴(routine)이다. 야구 선수의 시즌은 아주 길다. 루틴이 없으면 무너지기 십상이다. 특히 몇 경기 성적이 좋지 않으면 마인드 컨트롤하기 어려워지는데 루틴이 나를 잡아주고 내가 어느 부분에서 발전해야 하는 지 정확히 알려주는 것 같다. 루틴이 있으면 힘든 일이 닥쳤을 때 내가 돌아 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준다.”
2015년 오프시즌 동안 왼쪽 무릎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팀에선 당신을 대신할 3루수를 찾기도 했다. 재활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진 않았나.
“무릎 수술을 받고 그 다음 시즌 오프닝 때 내가 뛸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빠른 회복을 위해 코치들과 엄청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운 좋게도 빨리 회복이 됐고, 시즌 개막전을 팀과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회복이 빨리 진행됐기 때문에 내 미래를 걱정하진 않았다. 지금은 아무 문제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16 시즌 당신은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전반기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6월부터 다시 살아났다. 커리어 처음으로 27홈런 90타점 타율 2할7푼5리를 기록했는데.
“개인 성적은 좋았지만 팀이 월드시리즈까지 가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나는 내 개인 성적보다 팀 성적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아주 많이 속상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틸리티 플레이어에 불과했던 선수가 4년 6400만 달러에 FA 계약을 이끌어냈다. 야구하면서 이런 날이 오게 될 줄 상상해봤었나.
“전혀 상상을 못 했다(웃음). 그냥 야구가 좋아서 시작한 건데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운이 좋았던 건 기회가 주어졌을 때 팀에 필요한 존재란 걸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그게 내 야구인생을 멋지게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상대팀 에이스 투수에게 강한 비결이 무엇인가.
“비결은 없다. 목표는 항상 이기는 것이다. 이런 목표가 내 비결이 아닐까 싶다.”
가족 외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코치 래타이다. 그와 함께한 2013년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브랜든 맥다니엘 트레이닝 코치한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를 돕기 위해 그는 가족들과 함께 네브라스카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왔다. 두 사람 덕분에 내가 좋은 대우를 받고 선수 생활을 영위해나가고 있다.”
저스틴 터너는 올시즌 자신의 목표에 대해 “좀 전에도 말했지만 개인 성적보다는 팀이 잘 해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칭찬으로는 동료들이 자신을 향해 최고의 팀메이트라고 인정해주는 순간이라고. 그는 ‘야구만’ 잘하는 선수보다는 ‘야구도’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
레전드 모리 윌스가 보는 저스틴 터너
LA 다저스의 레전드이자 20세기 최초의 100도루를 달성한 모리 윌스(85세, 6년 연속 도루왕, 1962년 내셔널리그 MVP 수상, 골드글러브 2회, 올스타 5회)는 올해도 다저스 인스트럭터의 신분으로 스프링트레이닝 캠프에 참가했다. 훈련장에 모리 윌스가 나타나자 저스틴 터너를 비롯해 안드레 이디어, 코리 시거 등이 반가움을 나타나며 모리 윌스와 인사를 나눴다. 이후 기자를 만난 모리 윌스는 저스틴 터너에 대해 “항상 노력하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요즘 선수들은 내가 현역으로 뛸 때와 차이점이 많은데 저스틴은 옛날 선수 50%, 요즘 선수 50%가 반반 섞인 것 같다. 그런 점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는 클럽하우스에서도 항상 분위기를 ‘업’시키는 친구이고,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선수이다.”
모리 윌스는 저스틴 터너가 처음 다저스에 입단했을 때 별로 주목받지를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노력과 열정이 모두가 주목하는 저스틴 터너로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저스틴의 성공 스토리는 모두 멘탈과 관련이 있다. 그는 성공하는 걸 원했다. 어떤 선수들은 메이저리그까지 도달하면 모든 걸 이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큰 착각이다. 저스틴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매년 더 잘해야 직성이 풀리는 선수이다. 선수는 야망이 있어야 한다. 저스틴은 그런 야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는 ‘젠틀맨’이다. 만약 내 딸이 저스틴 같은 남자친구를 데려온다면 난 무조건 오케이다(웃음).”
<스프링트레이닝 캠프 인스트럭터로 참가하는 LA 다저스의 레전드, 모리 윌스. 그를 보고 몰려든 저스틴 터너와 안드레 이디어, 그리고 코리 시거. 저스틴 터너의 미소를 보며 드는 생각은‘시원함’이다.(사진=이영미)>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기자 통역 조아라>
*‘Story in MLB’ <2>편의 주인공은 NC 다이노스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로‘역주행’에 성공한에릭 테임즈입니다. 에릭 테임즈가 시범 경기 초반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는 부담을 덜고 메이저리그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밀워키 선수들에게 ‘바보야’란 한국어를 알려주며 웃음을 유발시키는 에릭 테임즈와의 인터뷰, 기대해주세요.
기사제공 이영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