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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우 목사(한남제일교회)
오늘은 어버이주일이다.
기독교는 효의 종교이다. 보모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십계명 가운데도 인간이 해야 할 첫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소요리 문답에 보면..십계명의 5째 계명의 정신은..“육신의 부모인 윗사람뿐 아니라 동등한 위치 그리고 아랫사람이라고 할 찌라도 여러 가지 위치와 관계에 있는 각 사람에게 마땅히 드릴 존경을 드리고 의무를 다하는 것”이 부모공경의 정신이다. 우리는 부모에게 하듯이 누구에게나 공경의 자세를 가지고 대해야 한다.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부모공경의 정신이다. 가정에서나 학교..직장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차별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더 특별히 하고 누구는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다. 부모를 공경하듯이 남의 부모들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부모공경의 정신이다. 악한 사람이나 사회는 차별을 한다. 우리 사회는 차별이 심한 사회인데..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인종차별, 학력차별, 지역차별, 빈부차별..남녀차별..어떤 이유에서든지 차별은 안 된다.
세상에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부모공경을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고 성경의 정신이다. 그러니까..우리는 누구에게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부모님께 감사하듯이 형제자매 그리고 스승과 제자까지..감사하고 존경하는‘함께 함’의 축복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함께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두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할 때..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응답도 크다고 하셨다. 교회의 시작 자체가 함께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히 임함으로 시작이 되었다. 가정도 함께 함으로 시작 되었다.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함께 살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심으로 가정이 시작된 것이다. 가정은 혼자가 아닌 둘 이상 함께 사는 공동체이다. 함께 함으로 혼자서 할 수 없는 큰 힘이 생기는 것이 가정공동체가 가지는 축복이다.
오늘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함께 할 것’을 명령하셨다. 함께 돕고 사는 가정의 힘을 가르치고 있다. 어버이주일을 맞아 함께 하는 가정의 힘을 통해 축복받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란다.
A.하나님의 복음,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
9절을 같이 읽자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함께...수고함으로 상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상은 말 그대로 보너스이고 축복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고.. 가정의 힘은 ‘상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공경이라는 것은 최고의 존경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부모에게..형제자매에게 가족 간에 서로 존경과 의무를 다할 때..그 가정과 공동체는 상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민족을 찾았더니..바로 중앙아시아의 ‘위구르’족으로 조상대대로 100세를 넘어 살았다. 놀라운 사실은 위그르족의 장수법이라는 것이 특별히 무엇을 먹거나 운동을 잘해서가 아니라..부모에게 효도하며 3∼4대가 함께 어울려 대가족 생활을 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효를 행한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것이 세계보건기구가 밝혀낸 사실이다.
성경에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장수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씀에 순종했던 효자이다. 동시에 부모 공경하듯이 이웃에게도..원수까지도 싸우지 않고 양보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하나님의 복을 받아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창26:12,13).
요셉도 부모 공경하듯이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신 것이다.
다윗도..사울왕의 아들을 끝가지 보살피고..자기를 자주하는 시므이도 용서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는 마음처럼..누구에게나 잘하려는 그런 마음으로 복 받았다.
부모 공경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축복된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이다. 효도는 ’일석 다조’라서.. 효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부모님이 기뻐하신다. ..효도하는 나에게 보람이 있다... 자녀가 바르게 성장한다.
우리의 삶은 수학공식과 다르다. 수학공식에서는 1+1=2이지만 삶에는 1+1=2보다는 더 많은 수..10이 될 수도 있고 100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잣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비싼 옷을 입고 좋은 학교에 유학을 보낸 자녀가 부모 공경을 잘하고 형제자매간에 의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난하게 자란 자녀라도 얼마든지 부모에게 잘하는 자녀나 형제자매가 더 많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는 것도..모두가 함께하는 삶의 상이 주어지는 방정식인 것이다. 신32:20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하나가 천을 쫒고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한다고 했다. 이처럼 함께할 때에는 시너지효과가 있다. 자녀들이 부모공경은 물론 부부간이나 형제자매역시 서로 공경하고 사랑으로 함께하면..다 보너스를 받게 되는 법이다. 우리 가정은 어떤가? 하나님은 우리 가정이 함께 수고함으로 상을 받게 하는 가정의 힘을 주셨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함께하는가? 함께하지 않는가? 에 달려 있다. 어떤 집에서 며느리가 유리그릇을 깨드렸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이 “다치지 않았니? 내가 그릇을 치우지 않아서 큰 일 날 뻔 했구나!”한다. 며느리는 “다치지는 않았어요 어머니! 제가 부주의해서 그랬어요.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인가? 반면에 “아니 그 그릇이 얼마짜리인데..깨뜨리냐? 넌 왜 맨 날 그 모양이냐!”책망을 한다면..며느리뿐 아니라 그 가정 식구들의 분위기가 어떨 것 같은가?-하나님은 상을 받게 하는‘가정의 힘’을 주셨다.
B.하나님의 계명, ‘가정의 힘’이 되려면..?
가정의 힘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이다. 어떤 힘이 될 것인가? 본문은 3가지를 제시한다. 넘어질 때에 붙들어 주는 힘, 외로울 때에 따뜻하게 해 주는 힘, 그리고 죽음의 위기 때에 하나님으로 살게 하는 힘...등이다.
첫째, “붙들어 주는 힘”이 되자
10절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넘어질 때..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는 왕따이다. 학교에서나 일터에서 왕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자살을 한다. 요즘에는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우울증치료를 받고 있다. 한창 즐겁게 뛰어 놀아야 될 아이들이..정신과치료를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바로..넘어지면 붙들어 줘야 하는데..넘어지면 아주 죽여 버리고 왕따를 시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생존경쟁에 내몰려..넘어지면 붙잡아 줘야하는데..넘어뜨리고 죽게 하는 것이 바로..자살이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서러움을 당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다 잘하셨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차별하지 않으셨다. 어린아이라고 무시하지도 않으셨고 오히려 사랑하신 것이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사람을 귀히 여기신 것이 예수님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101가지 이야기 중에 중학교 여학생이 백혈병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 머리카락이 다 빠져 가발을 쓰고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짓궂은 학생들이 여학생의 가발을 벗기고 놀려대자.. 여학생은 학교가기를 거부하고 자살까지 생각하며 병은 치료가 되지 않고 더 깊어만 갔다. 이런 안타까운 광경을 보고 있던 한 친구가 병든 친구의 아픔을 나누겠다면서..자기의 머리카락을 다 깍았다. 그러자 그 반 학생들은 앞 다투어 머리카락을 다 깍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병든 학생은 다시 학교를 나오게 되었고 뇌종양 역시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어 갔다. 넘어질 때 함께하는 그들의 수고가..절망 중의 환자에게 희망이 되고 병이 낫게 되었다.
공경은‘사랑과 존경하는 것’이다.
탈무드에 보면 시집가는 딸에게 아버지가 부탁하는 말이...“딸아 남편을 왕처럼 섬겨야 한다. 그러면 너는 왕비가 될 것이다. 만약에 남편을 종처럼 부리면 너는 하녀가 될 것이다”남을 대접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는 것이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어도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고 돈이나 권력이 없어도 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다. 부모를 공경하라. 학교에 가면 선생님을 공경하라. 직장에 가면 사장님을 공경하라. 교회에 가면 목사님을 공경하라. 국가에는 대통령을 공경해야 하는 것이 부모공경의 정신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 연세 드신 분들은 물론 나이 어린 아이들까지..다 존경과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사람들의 마음이다. 누가 양반이고 귀족이라는 말인가?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양반이고 귀족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왕족이다. 그렇다면..당연히..존중하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대하고 형제자매를 대함으로 나도 높임 받고 귀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부모님에게 공경을 해야 한다. 나의 부모만이 아니라..다른 이들의 부모라도 공경해야 한다. 지하철에서 연세 드신 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반대로..연세가 드신 분들은 나의 자녀를 사랑하듯이 남의 자식들도 귀히 여겨서...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어른이 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식당에서는 종업원들에게 환경미화원들에게도 차별하지 말고 붙들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들을 붙들어 드리자. 건강으로..용돈으로..마음으로 부모님께 존경을 드리고 사랑을 드리자..누구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드리는 여러분에게 높여주시는 하나님의 상과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둘째, “따뜻하게 하는 힘”이 되어 주자!
11절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시대를 잘 사는 지혜는 남을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인에게도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으셨다. 사마리아여인은 남편이 5이나 되고 지금의 남편도 남편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정죄나 비판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살 길을 열어주셨다.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이나 죄인이라는 세리까지도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으셨다. 부자청년이나 율법학자에게도 정죄하지 않고 자상하게 하늘의 복음을 전하셨다.
사람은 다 다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말인가? 부모와 자녀는 분명 세대차이도 있어서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이 다 다르다. 집이 낡아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가 좋다고 하고 병이 들어도 병원에 가기를 꺼려하는 부모가 있었다. 지금 하늘나라 가신 후에 생각해 보니까...자식들이 돈을 쓰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해서 그랬구나..하면서 미안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부모는 자식들과 다르다.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이 다르다. 부모님이 하고 싶어 하시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는 일은 또 다른 효도이다. 우리는 서로의 선택을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 가정에도 집에 모실 수 없어 요양원에 모신 분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형편도 다르고 판단도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옳다고 하지 말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함께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특히 교회는 따뜻하게 해야 한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내 부모에게 대하듯이 자리를 양보하는 일은 따뜻하게 해 주는 일이다. 반면에..오래 전 일이지만 저보다 연세 드신 분에게 자리를 양보한 일이 있었다. 마침 옆자리가 났길 래..‘내가 앉아야지..’하는데 그 어른은 자기 손자를 불러 앉혔다.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인가? 누구나 자기 손자는 귀하다. 하지만 남의 손자, 남의 자녀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어떤 중학생이 엄마와 동생과 함께..경로석에 앉은 적이 있었다. 한 노인이 어린자식이 버르장머리 없이..욕을 하더니..따라 내려서까지 욕을 해대니까..아이가 쫒아오지 말라고 밀었는데..노인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죽고 말았다. 가끔 지하철에서 잠을 자면서..자리양보를 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보게 된다. 이럴 때는 내 손자손녀라고 생각을 하시고 인정해주면 좋겠다.
‘우리는 다 다르게 부모공경을 한다. 형편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나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인정해 주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가정의 힘이고 함께하는 공동체의 힘이다.
옛날 어느 도시에 사는 효자가 어느 시골에 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갔다. 시골 효자의 집은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까 옷을 누추하게 입은 청년이 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부엌에서 일하던 늙은 어머니가 부리나케 뛰어나와 아들의 나무 짐을 받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황급히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대야에 물을 떠 왔다. 늙은 어머니는 아들을 마루에 앉히고는 열심히 아들의 발을 씻기면서 아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잠시 후 도시 효자는 시골 효자에게 이렇게 충고를 했다. "여보게, 어떻게 기력도 없으신 어머니께 발을 씻게 하는가? 효자라는 소문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러자 시골 효자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효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지 기쁘게 해 드립니다." 이 말을 들은 도시 효자는 자기가 지금까지 효도를 잘못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대로만 부모를 공경했다. 그는 좋은 잠자리, 맛있는 음식, 많은 용돈을 드리면 부모님이 기뻐하실 줄 알았지만, 자기 부모님의 얼굴에는 시골 어머니와 같은 환한 웃음이 없었다. 그런데 이 시골 청년은 가난한 집에 살았지만, 변변한 돈을 드리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효도는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임을 깨달았다.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집에서 날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많은 용돈을 드린다 할지라도 부모님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부모공경이다. 효도는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다. 다른 어느 누구도..무시를 당할 수는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하고..인정해 주고 따뜻하게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셋째, 세 겹줄의 힘을 주자!
12절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쉽게 끊어지지 않는 세 겹줄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힘이다. 한 사람은 패하고 두 사람은 맞설 수 있지만 이길 수 있게 하는 세 겹줄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힘이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의 세 겹줄을 의지하셨다. 우리는 부모님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천국가실 때..하나님의 천군천사와 함께 하늘나라가실 수 있도록 영적으로 힘이 되어 드려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평안을 위해서..믿음생활을 잘 하실 수 있도록 기도해 드려야 한다.
부모님들 역시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셔야 한다. 형제자매간에도 기도해 주어야 할 것이다. 좋은 교회 교인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해준다. 좋은 그리스도인들은 직장의 상사와 동료들을 위해 하나님께 도우심을 위한 기도를 한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가정 파괴이다. 이혼 가정이 늘어나고 가족이 산산조각이 나고,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아주 심각할 정도로 출산율이 떨어졌다.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신앙의 계승이 되지 않으니..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 세계의 종교별 인구를 조사해 보면 이슬람의 종교인구가 두드러지게 성장하는 반면에 기독교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를 연구해 본 결과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선교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교가 수직적 선교에 열심인 반면 기독교는 수평적 선교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수직적 선교는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행하는 신앙교육을 말한다. 이슬람은 아직도 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하고 신앙교육도 매우 엄격하다. 집안에서부터 이슬람의 경전 코란을 가르치며, 종교적 행위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게 지키면서 가르친다. 그래서 몇 세대가 흘러가도 신앙의 계보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계속해서 자녀를 낳고, 그 낳은 자식에게 이슬람 종교를 계승하여 교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전도이니 세월이 갈수록 이슬람이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과거 초대 예루살렘 교회 때부터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 또는 이웃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 치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평적 선교에 치중하다보니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신앙교육이 약하였다는 것이다. 결국엔 몇 세대 안 되서 신앙의 대가 끊겼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도 기독교 교육이 가정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신앙의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전도해야 한다. 한 교회를 섬기면서..대를 이어가는 신앙에 하나님의 상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가정이 상을 받는 힘 있는 가정이 되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정의 힘이 될 수 있는가?
-붙들어 주는 힘이..우리 자신을 높임 받고 귀히 여김을 받게 할 것이다.
-따뜻하게 해 주는 힘이..부모는 물론 이웃들을 기쁘게 해 줄 것이다.
-세 겹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힘이 세상을 승리하게 할 것이다.
어버이주일이다. 부모님께 감사하며 자녀로서 부모님께 기쁨,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C.하나님의 도우심, 제사장된 성도의 기도
“하나님, 저희 가정은 상을 받고 서로 힘이 되어 가족들이 행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