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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10
사명 자가 가야 할 길 / 이성우 목사
칸트라는 사람은 ‘인간다움, 사람다움, 지도자다움’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둘째,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
셋째,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느냐?
생각이 행동을 만들어 내고, 행동이 습관을 만들어 내며, 습관이 곧 삶이 되는 것이니까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이 생각하는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어떤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칸트가 말한 이 세 가지 틀 속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가지는 세 가지 특성을 대입시켜 본다고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힘써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생각과 이런 행동의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을 소망하고 있기 때문인줄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의 행동은 마땅히 하나님을 위하는 어떤 일들을, 또는 하나님의 일을 힘써 행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만약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힘쓰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그 자체로서 아직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기에 합당치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일을 힘쓰는 사람이다.’라는 하나의 결론적인 도식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힘써야 할 일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한 마디로 오늘의 말씀의 주제와 연결해서 말한다고 하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과 관계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하나님의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참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했던 사명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하나님의 일을 힘썼던 사람들이었으며, 그 일을 위해서 자신들의 삶을 기꺼이 헌신하고 충성을 다했던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힘쓰게 되는 결정적인 힘의 근원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자 하신다고 하는 분명한 사명의식과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한 분명한 신앙의 고백, 즉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자기에게 사명으로 맡기셨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고백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시종일관 우리를 향해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으며, 그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이 한결같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이고 영원한 것임을 증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들이 역시 신실한 사랑으로 응답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와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다음 교회와 성도들이 그 사명을 감당해왔던 역사를 살펴보면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그 사랑을 헌신적인 사랑으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사명자로서 자신을 헌신하며 충성하길 원했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은 하나님의 큰 사랑에 감동되고 감전된 사람들이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 가운데 가장 큰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물음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구약성경 이사야 43장 21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 말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사명 중의 사명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것보다도 앞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열왕기상 13장 1-10절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열왕기상 13장 전체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사명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 어떤 길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13장 전체의 말씀을 보면, 세 사람의 등장인물이 있는데 이 세 사람의 행동이 보여주고 있는 바를 통해서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사명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 어떤 길인가를 말씀하려고 의도하고 있습니다.
☛ 우선, 오늘 본문 말씀인 1-10절에 등장하고 있는 사람은 유다로부터 하나님의 특명을 받고 북 이스라엘 땅, 벧엘에 세워진 제단에 찾아와서 벧엘 제단과 여로보암 왕가를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익명의 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벧엘의 금송아지 제단을 향해서 갖고 계신 하나님의 혐오감과 분노의 마음에서 비롯된 벧엘 제단의 파멸과 여로보암 왕가의 멸망을 용기 있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선지자의 행동은 커다란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으며,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충성심과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스라엘 나라가 남북 왕국으로 분열된 상황이었으며, 북 왕국의 초대 왕으로 등극한 여로보암 왕이 남북 왕국의 분열을 고착화시키기 위해서 취한 행동 가운데 벧엘과 단이라는 두 곳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었으며, 레위 인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을 뿐만 아니라 절기의 날을 7월에서 8월로 변경하여 지키도록 한 상황이었습니다.
평상시도 아니라 이제 막 분열이 마무리되고 고착화되어 가는 가운데 분명히 여로보암 왕의 감정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분단의 경계선을 넘어가서 그것도 예민한 장소에 직접 찾아가서, 더욱이 여로보암 왕이 이제 막 그 벧엘 제단에 찾아와서 분향을 하려고 하던 순간에 그 자리에서 그 왕을 향해서 벧엘 제단이 무너져 내리고 여로보암 왕가가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었을까 하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예측해 볼 만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선지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벧엘 제단에 찾아가서 용기 있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으며, 자기의 말린 손 때문에 은혜를 입은 여로보암 왕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 함께 집으로 가서 머물기를 청했지만 이러한 왕의 요구를 하나님의 명령을 충성스럽게 수행하기 위해서 매몰차게 거절하고는 곧장 유다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유다에서 벧엘까지 먼 길을 오느라고 육체적으로 피곤했을 것이며, 더군다나 죽음도 각오해야 하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긴장했겠습니까?
그러니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육체적인 피곤도 풀고 목마름과 배고픔도 달래기 위해서 잠시라도 쉬었다가 가는 길을 선택할 만도 해 보이는데,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자기의 갈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모습이 몹시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이 선지자가 보여준 행동 속에서 사명 자가 가야 할 헌신과 충성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 본문 말씀 이후에 등장하는 또 한 사람의 등장인물은 벧엘에 살고 있었던 한 “늙은 선지자”입니다.
그는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가고 있던 익명의 선지자를 나귀를 타고 뒤 쫒아가서는 거짓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속여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떡을 먹고 물을 마시며 쉬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이 늙은 선지자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여로보암 왕에게 잘 보임으로써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그랬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떻든 이 늙은 선지자의 경우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명 자가 사명 수행에 어정쩡한 모습을 취하고 있어서 자신도 불행에 빠지고 다른 사람까지도 불행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늙은 선지자의 행동도 맘에 들지 않지만, 더 안타깝고 큰 문제는 이 늙은 선지자의 행동으로 말미암아서 유다에서 왔던 익명의 선지자는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끝까지 따르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렸고,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징계가 그 선지자에게 임해서 유다로 돌아가던 노상에서 사자에게 찢겨 죽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익명의 선지자가 그렇게 죽게 되자 자기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직접 그의 죽음을 수습해서 자기 묘실에 장사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 아들들에게 나중에 자기가 죽거든 그 익명의 선지자 곁에 자기를 장사지내도록 부탁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유다에서 왔던 익명의 선지자의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엄격히 말하면 그는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속아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사명을 끝까지 수행하는데 무관심했기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끝까지 따르지 않은 셈이 되어 버렸고 그래서 그는 노상에서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선지자의 죽음을 우리는 단순히 이렇게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선지자의 죽음은 결국 죽음을 통해서라도 자신이 선포했던 하나님의 심판 경고의 준엄성을 해치지 않기 위한 거룩한 희생이요 헌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모든 처신과 삶, 더 나아가서 그의 살고 죽는 것조차도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던 사명수행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감당하고 감수해야 했던 모든 행복과 불행까지도 그가 전한 ‘경고의 메시지’의 전달과 보존이라는 맥락에서 결정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의 죽음은 그가 전한 하나님의 심판 선포가 분명하게 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강한 전달 방식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한 최후의 봉사로 자신의 생명까지 하나님께 바쳐지게 되었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스라엘 나라의 열 두 지파 가운데서 열 지파를 분배받게 되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솔로몬이나 그의 아들 르호보암처럼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고 다윗 왕처럼 하나님만을 섬기는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다스려 주기를 기대하시며 그에게 그런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계속되는 하나님의 심판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정치적인 욕심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우상 숭배에 빠지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그는 사명 수행에 실패한 자가 되고 말았음을 성경은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임하게 된 심판으로 그의 집이 그 땅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명 자의 행복과 불행은 얼마만큼 사명 수행을 위해서 헌신하며 충성하는가에 달려있음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기본적인 사명 수행뿐만 아니라 여러분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 수행을 위해서 얼마나 헌신하며 충성을 다하고 계십니까?
바라기는 본문에 기록된 익명의 선지자처럼 여러분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명 완수의 마지막 순간까지 헌신하시고 충성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칭찬과 함께 면류관의 상급을 받게 되시는 복된 사명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