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과 명이나물
2024년 3월 19일 흐림. 온도는 5도~20도
비올 날씨라는 일기예보에 마음이 바빠졌다. 토요일에 노원장과 조교장이 목련꽃을 따러 올 텐데 그때쯤이면 꽃이 다 지고 말거라고 곁지기 걱정이 한 짐이다.
“걱정 할 게 뭐 있어요? 그러지 말고 오늘 가서 우리가 미리 따 놓으면 되지.”
아침을 먹고 부랴부랴 고령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에 조교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느 정도 핀 목련을 따면 되나 물었다. 껍질이 완전히 싸인 것이 좋단다. 시골집에 들어가자 부엌 앞 목련 나무에 몽우리가 몽울몽울 달렸는가 확인했다. 윗가지는 꽃이 활짝 피었는데 밑가지의 몽우리들은 꽃을 덜 피워서 몽울이가 몰굴몽글하다. 예쁜 생명을 따려니까 꽃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다도에 열심인 친구가 목련차를 만들고 싶다니 내 손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곁지기랑 장대를 들고 몽우리가 껍질에 싸인 것과 껍질을 조금 벗은 몽우리를 구분해서 다서 사진 찍어 조교장과 노원장께 보냈다. 어느 쪽이 좋으냐고? 조교장은 껍질이 완전히 싸인 것이 좋다하고 노교장은 꽃이 좀 핀 것이 좋단다. 그러면서 꽃 따는 일이 번거러우니 양교수랑 같이 와서 꽃을 딸 테니 이교장 시키지 마세요. 하는 문자를 보냈다. 그에 답하는 문자를 보냈다.
“이건 일이 아니고 놀이에요. 토요일까지 꽃놀이할 수 있게 기다려줄 지 몰라 달려왔어요 . 물론 그때 오셔 꽃놀이할 꽃도 좀 피어나겠지요?
털에 싸인 목련 등껍질을 만져보니 식물의 몸에서 동물의 털을 만진 촉감 ㅡ 폭신하고 따스한 느낌이 손끝에 남아요.
벗겨진 회색 껍질이 말을 거네요.
'할미꽃 털이에요.'
'고양이 얼굴이에요.'
'날개 편 나비에요.'
'쥐털 걸친 아이에요!'
그리고 목련꽃이 더디 핀 것, 조금 핀 것, 활짝 핀 것들을 바구니마다 가지런히 놓고 사진 찍어 보냈더니 조 교장이 문자를 보냈다. “어느새요. 감사합니다. 코 끝에 목련향이 나는 듯 해요.” 그래서 내가 답했다. “목련향 고이 품고 님들을 기다려요.”
그러며서 “차를 사랑하는 님께 정호승 시 한 편 올립니다.‘하면서 정호승의 ’시 한 편‘을 적어 보냈다.
<차 한 잔>
입을 없애고 차나 한잔 들어라.
눈을 없애고 찻잔에서 우러나는 작은 새 한 마리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라
지금까지 곡우를 몇십 년 지나는 동안 찻잎 한번 따본 적 없고
지금까지 우전을 몇 천 년 만드는 동안 찻물 한번 끓여본 적 없으니
손을 없애고 외로운 차나 한잔 들어라
발을 없애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 첫눈 내리기를 기다려라
마침내 귀를 없애고 지상에서 내리는 마지막 첫눈 소리를 듣다가 홀로 잠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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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를 들면서 화를 내본 적이 없다. 어떤 일로 화가 나있더라도 차를 드는 동안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아버린다. 내가 드는 한잔의 차가 남에 대한 미움과 세상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없애버린다. 차를 즐긴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긍정의 눈을 갖는다는 것이다.차는 침묵의 세계로 나를 이끈다. 차를 들면서 말을 하지 않게 되는 내가 참 좋다. 시는 침묵으로 이루어지고, 침묵은 나를 시인답게 만들어준다. 결국 차는 나를 홀로 있게 해준다. 홀로 있어야 시를 생각할 수 있고 시를 쓸 수 있다. 시는 홀로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혼자 차를 드는 일은 시를 쓰는 일이다.
나는 요즘 차를 들면서 지난날의 실패의 고통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지금 현재를 생각하려고 해도 과거로 돌아갈 때가 많다. 그럴 때 굳이 과거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계속 차를 들고 있으면 내가 끌려갔던 그 과거의 분노와 상처에 대해 그만 무덤덤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차는 내 마음속에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듯 내 과거를 현재의 세계와 중화시킨다. 강물이 바닷물을 만나면 결국 바닷물이 되어버리듯 차를 드는 동안 나는 과거에 있는듯하지만 늘 현재에 있다. 미움도 중오도 상처도 분노도 없는 현재의 세계로 인도하는 차 한 잔의 손길이 어찌 고맙지 아니하랴.>
<명이나물>
명이나물이 자랐다. 창고 옆 응달에 씨 뿌리고 해마다 기다렸다.
‘언제 따 먹을 만큼 잎이 올라올까?“
올해로 4년 되는 해다. 따 먹을 정도로 잎이 손바닥만큼 컸다.
수삼은 5년 근이다. 6년 근이다 하며 기다리며 키우는 식물이지만
명이 나물을 4년이나 기다려 촉이 차차 자라니 참으로 귀한 나물이다.
한 잎 한 잎 아기 팔을 매만지듯 조심스럽게 땄다.
저번에 곁지기가 명이나물을 따 왔을 때는
간장과 매실 효소를 부은 통에 명이나물을 넣고 위에 돌을 올렸다.
잎이 치뜨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공군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도 맛이 상큼하고 입에 딱 달라붙었다.
명이나물을 김밥처럼 펴서 그 위에 밥을 얹어 삼 싸 먹어도 좋고,
그 위에 고기를 얹어 고기쌈을 사 먹어도 맛있다.
더덕을 감싸 먹으면 더 고급스러운 반찬이 될 것 같은데?
내일은 더덕을 사러 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명이나물을 땄다.
조금 있다가 곁지기가 와서 밭을 다 망쳤다고 혀를 찼다. 명이나물을 딴다고 북데기를 밟고 다닌 탓이다. 북데기 밑에서 자라고 있는 새싹을 생각도 못하고 밟고 다닌 격이 되었으니. 북데기 밑에서 열심히 싹을 피우고 있던 명이나물은 거대한 할매 발의 무게에 눌려 얼마나 놀랐을까? 그래도 할배가 북데기를 들추어내고 세상을 보게 해주었으니 다행이지.
“도와준다고 하면서 늘상 저지레만 하네.”
“그건 몰랐네!”
텃밭에서도 씨 뿌려놓은 데를 모르고 밟고 다닌다고 잔소리를 들었는데. 그러니 곁지기는 살구나무 싹이 올라오는 데는 막대기를 세 개 새워 두고 내게 일렀다.
“저기 막대기 세 개 새워둔 데는 건이가 갖다 준 살구 먹고 그 씨를 심었는 게 싹이 올라오고 있는 거니까 밟지 마!”
어린 아이를 가르치듯 설명을 열심히 해댄다. 남편에게 나는 철부지 아이 격이다. 그러면 어때? 따라와서 점심 때 따뜻한 밥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부추 따서 부추전 구워 맛있는 점심 대접하는데. 따스한 밥 먹고 ‘아내가 있어 좋구나!’ 생각해야지. 사랑 받으려면 매사에 감사해야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