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체육복을 읽는 아침 11. 학생부장을 하라고요? 240530
“이 선생, 나 좀 봐!”
“예, 학생부장님”
“거두절미하고, 너 내년에 나하고 같이 일하자.”
“예? 저는, 아니 저는 발령받아서 2년 동안 교무부 문서만 담당했지, 학생부는 해 본 적이 없어요. 부장님처럼 씩씩하게 애들 막 지도할 자신도 없고……”
“야!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에 학생부장이라고 써있었는 줄 아냐?”
그렇네요. 부장님이 안중근 의사나 강감찬 장군님도 아닌데 학생부장 하라고 등판에 점 일곱 개쯤 박히신 채 태어나시진 않았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어요.
“아, 그럼 ……”
“내가 많이 도와줄 테니까 일단 학생부 문서랑 학폭부터 시작해 보자고!”
“아, 네, 네!”
내가 얼떨결에 학생부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위와 같다. 2년 가까이 교무부의 문서 작업에 시달리다가 내가 교사인지 교육행정직 공무원인지 분간이 어려워질 때쯤 존경하는 선배 선생님의 강권으로 이듬해 보직을 옮기게 된 것이다. 후일담이지만, 아이들하고는 잘 지내고 열정이 있어 보이는데 매일 문서 작업에 절어 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대로 두면 멀쩡한 신규 선생 하나 망가지겠다 싶으셨다고 했다. 여하튼 그때는 한 번 발 들인 학생부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선생님들이 들으면 싫어할 얘기겠지만, 학교 내에서 기피하는 업무나 학년 또는 학급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저연차 교사, 기간제 교사에게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있었다’라고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도 아니면 차마 학생들에게든 학교 일에든 빵꾸가 나는 것을 못 보는 책임감 강하거나 마음 약한 교사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학교 일이란 게 한 번 정해지면 보통 1년 동안 유지가 되기 때문에 ‘2월 말에 잠깐만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1년이 편하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용되는 그것이 2월 말,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는 이른바 ‘업무분장’의 고약한 풍경이었다.
저연차와 기간제 교사뿐만 아니라 학교를 옮겨서 새로 발령받은 교사들에게도 이런 고약한 인습은 비슷하게 적용된다. 특히 직전 학교에서 맡았던 업무가 무엇이냐가 그대로 꼬리표처럼 달려오거나 때로는 확정적인 소문의 형태로 본인보다 먼저 새 학교에 도착해 있곤 하기 때문이다. 개중에 특히 숨기고 싶어도 정말 숨기기 어려운 꼬리표가 고3 담당과 학생부, 특히 학폭 담당인데, 내가 후자에 해당했던 셈이다. 어떻게 아셨는지 새로 옮길 학교의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대뜸 초면에 학생‘부장’을 맡아달라고 하신 것이다.
일반 회사와 달리 학교는 승진 체계가 무척 단순하다. 평교사를 20~30년쯤 하다가 운이 좋거나 승진 점수를 잘 쌓으면 교감, 교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 그 외의 직급은 없다. 장학사와 장학관은 국가공무원인 교사의 신분에서 시도교육감 소속의 지방공무원 신분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승진이 아니라 직렬을 바꾸는 ‘전직’에 속한다. 그러니까 교사였다가 장학사, 장학관이 되는 것은, 같은 재벌 그룹 내의 다른 계열사로 옮기는 것과 같다. 어쨌든 평교사로 재직하는 기간이 길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행정 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서 평교사와 교감, 교장 사이의 중간 관리자를 임명하는데 그것이 보직교사 즉, ‘부장’ 교사이다.
부장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권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책임은 많다. 학교가 돌아가는 것도 좀 알고, 수업에도 전문성이 좀 있고,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도 척척 잘 지도해야 하고, 때로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선생님들의 멘토 역할도 해야 하지만 그런다고 자기 만족감 외에 특별히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경력이 좀 되는 교사들이 보직을 맡게 되는데, 나는 당시에 겨우 교직 5년 차에 1급 정교사도 아닌 2급 정교사, 그리고 첫 아이의 출산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초보 아빠였다.
하지만 그놈의 공명심이 뭔지, 남들보다 젊은 나이에 부장 교사가 된다는 것을 나의 능력에 대한 인정으로 착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 책임의 영역을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이 스스로의 발등을 너무도 강력하게 찍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함께 근무하던 교사의 수가 10명, 전교생이 75명이었는데 이렇게 작은 학교의 경우 일이 편할 거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규모가 작으니, 교사의 공석도 많아서 내가 담당해야 하는 업무 영역이 학생부장으로서의 고유 영역뿐만 아니라. 학교폭력, 보건, 전문 상담에 부서원으로 속해 있는 체육 선생님의 업무까지 일정 부분 담당해야만 했다. 거기에 입신 영달의 부푼 꿈을 안고 입학한 새내기들의 담임까지 맡았으니 그야말로 거대한 파도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꼴이었다. 당시엔 자가용이 없어 집 근처에 사시는 선배 선생님의 차를 얻어 타려면 오후 네 시 반에 타의로 칼퇴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집에 일을 잔뜩 싸가서 새벽까지 처리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도 이전 학교보다 조금 나아진 것은, 그런 나의 모습을 살갑게 지켜봐 주는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전엔 제멋대로 울타리를 뛰어넘으려는 성질 나쁜 양들을 돌보는 목동 같았다면 이번엔 그 산골 목장에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살가운 주인집 아가씨가 여럿 나타난 느낌이었달까.
“쌤! 어제도 늦게 주무셨죠. 국어 수업 중에 쉬운 부분은 저희도 공부해 올 테니까 어려운 부분만 좀 설명해 주시고 수업 준비 부담 좀 덜어보세요!”
“쌤! 이제 곧 태어날 아가도 생각하셔야죠. 아빠가 아프시면 안 됩니다. 힘내세요!”
“쌤같이 다정하고 열정적인 분을 담임쌤으로 만나서 기뻐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그 시절의 아이들이 준 메모다. 내 면전에서 전해준 것이 아니라 키보드를 부술 듯 폭풍처럼 일을 처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말없이 교무실 한켠에서 지켜보다가 차마 말로 건네지 못하고 글로 써 준 고마운 마음이다. 아마도 그렇겠거니 하고 그저 마음을 믿는 일뿐만 아니라 글로써, 말로써 서로의 마음을 다정하게 전할 수 있는 것이 선생과 학생의 또 다른 관계의 모습이라는 것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하는 날들이었다.
첫댓글 "쌤" 은, "선생님"은 같은 뜻인데 우리에게는 웬지 닟설다.
그래도 잘 격어 내셨군요!
힘들었어도 지나고 나면 재미기 있네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쌤"이 낯설지요, 요새 유행어잖아요. 학생들은 선생님에게도 그렇게 부른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