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건배 구호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술은 권하는 맛에 든다고 한다. 술은 알맞게 먹으면 약이요, 지나치면 독이라 했다.
집안 내력이 술을 못 먹지만, 반세기 직장에 몸을 담으면서 분위기에 따라 한 두잔씩 홀짝 한 것이 내겐 전부이다.
술을 예찬하는 사람들 얘기도 재미있다.
술이 없는 곳에 사람이 없다고 하고, 술이 들어가면 지혜가 나온다고 했다. 술 때문에 불구대천이 된 친구도 있다.
평소엔 내성적이던 친구도 술이 한잔 들어가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불끈 치솟는지 완연히 사람이 달라 놀라기도 한다. 특히 오늘처럼 눈이라도 내릴 멜랑꼴리한 날이면, 마음에 맞는 친구와 생태찌개라도 놓고 한잔의 쐬주를 마시고 싶다. 나 역시 중독은 아니나 애주가임은 분명하다.
아내도 칠순 포구에 도달하니 제법 술을 한다. 진한 청색의 맥주만 좋아하더니 요즘 무슨 빨간 뚜껑의 쐬주를 선호한다.
술은 일종의 마음의 연지라고도 해, 일시적인 마음의 표현이라고 했지만 술은 우리사회에 필요의 악이다. 잘 조절하면 윤기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벌써 연말이 지나고 연시로 겁도 없이 다시 한해를 간다. 해마다 연말연시 때를 돌아보면 둘러앉아 자주 잔을 맛대며 소리친다. 술을 좋아하던 싫어하던 위하여를 하며 마음을 다지고 분위기를 일신한다. 대개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소리치는데 주로 건강하라고 당부한다. 위하여를 큰소리로 외치면 모두 따라하지만 갑자기 나를 지목했을 때 막상 주저주저하며 망설여 순간의 고문이 아닐 수 없다.
돌아와 건배에 대해 여기저기 찾아 아 ! 그것을 할 걸, 하는 것들을 적어본다. 행여 나처럼 순간 고문을 당한 분들은 참고하시라고.
ㅡ 뚝배기; 뚝심있게 배짱있게 기운차게
ㅡ걸걸걸 ; 더 사랑할 걸, 더 참을 걸, 더 즐길 걸
ㅡ사우나; 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ㅡ지화자; 지금부터 화합하자
ㅡ오징어; 오래도록 징그럽게 어울리자
ㅡ해당화; 해가 잘수록 당당하게 화려하게
ㅡ주전자; 주인의식을 가지고 전문적, 자신있게
ㅡ나가라;나라, 가정, 자신의 발전을 위해
ㅡ된장국; 된다고 자신있게 장점살려 꾹 밀고
ㅡ명승부;명년 승진 부자가 되자
ㅡ당나귀;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
ㅡ변사또; 변함없이 사랑 또 사랑
ㅡ모바일;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일어나길
ㅡ무조건; 무지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건승하자
ㅡ나그네; 나는 여러분 사랑, 그대들도 나를 사랑,네?
ㅡ마당발 ;마주앉은 당신의 발전을 위해
ㅡ무한도전;무조건 한마음, 도와주며 전화걸자
ㅡ문술천; 문학과 술이 있는 천국
ㅡ9988234;의사들이 주로 쓰는 건배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아프다가 간다.
찾아 써놓고 과연 나는 무엇을 택할까? 지난해는 청바지를 했는데 올해는 그래 외우기 쉬운 당나귀로 할까보다
소리없이 푸른 뱀이 꿈틀댄다. 뱀은 지혜요 불사조요 허물벗고 다시 태어난 신상이다. 서로 어울려 꾸미지 말고
미소 지으며 그 사람의 장점을 인정해 주자, 진정 자기를 기억해 주는 자는 기억이 돌아온다고 했다.
오늘 4일, 샘밭장으로 가서 웅크린 군상들 틈바구니에서 무말랭이 찬 饌을 사오리라. 맛있는 김치만두를 빚어 파는 시골 아낙,큰 누님을 닮은 앞에도 서리라. 동해안에서 이맘때면 즐기던 배불뚝이 도치도 영을 넘어왔으면 모셔오리라.
마음을 주고 받는 이들앞에서 건배를 외치며 한해의 징검다리를 자신있게 뚜벅뚜벅 걸어가자,(끝)